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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579화 (579/670)

# 579

귀환 마교관

579화

팟!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였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루시달의 심장은 온데간데없었다.

바리탄은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자신이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과식하면 탈난다고 주군께서 말씀하지 않았소?”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헬무트였다.

어느새 나타난 그가 루시달의 심장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놈!”

바리탄이 버럭 소리 지르면서 그에게 달려갔다.

그 순간 헬무트는 붉은 기운을 터뜨렸다.

그러자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바리탄의 신형이 갑자기 느릿하게 보였다.

대신 그는 여유 있게 손에 들린 심장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츠츠츠츠츠츳!

다음 순간, 심장이 잿더미처럼 변하더니 그의 콧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바리탄의 손이 날아드는 시점에는 이미 잿더미로 변한 심장을 헬무트가 완전히 흡수한 직후였다.

바리탄의 눈동자가 잔뜩 커졌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분노가 치밀었다.

“네놈이… 내 것을…!”

“애초에 당신 것도 아니었을 텐데.”

헬무트가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바리탄의 몸에서 마력이 폭사했다.

그 순간, 헬무트의 앞을 한 사람이 스윽 가로막으며 나타났다.

“사탕을 빼앗겼으면 마족답게 인정하고 물러나는 게 어떤가?”

“뭐라?”

“일전에 내 사탕도 뺏어가서 잘 먹지 않았나?”

자카르트를 두고 한 말이었다.

바리탄의 뺨이 씰룩였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능운파는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지켜보기만 했다.

결국 바리탄이 차갑게 웃더니 툭 던지듯 말하고는 돌아섰다.

“뭐, 먼저 먹는 놈이 임자지.”

“수긍해 줘서 고맙군.”

사비강이 말하자, 바리탄은 눈을 가늘게 떴다가는 걸음을 옮겼다.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이 걸리적거리는 벌레들을 다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마왕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이들을 최대한 이용한 다음에 정리해도 늦지 않다.

그래, 결국 언젠간 자신의 것이 될 일이다.

죽 쒀서 개 준 꼴이 됐지만, 전쟁이 끝나면 어차피 삶아 먹을 개새끼가 아닌가?

바리탄이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

오랜만에 강호가 시끌벅적했다.

물론, 최근 들어서 바람 잘 날이 없는 강호였지만, 이번에 떠도는 소문은 모처럼 희소식이었다.

멸마궁이 마족의 핵심 군대를 격파했다는 소식!

자카르트를 죽이고, 이번엔 루시달까지.

비록 멸마궁도 피해를 입었다지만, 모처럼 연승 소식이었다.

“역시 멸마궁은 마지막 남은 희망이야!”

“누가 아니라던가? 사비강 궁주님이 없었더라면 우리 강호는 지금쯤 쑥대밭이 되었을 테지.”

“이 사람아, 쑥대밭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 아마 이 강호에 살아남은 자가 없었을 걸세.”

“그도 그렇군.”

객잔에 모인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루시달 공작을 대파한 멸마궁의 승전 소식을 화제 삼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나저나 그 소문은 들었나?”

“무슨 소문 말인가?”

“이번에 멸마궁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마족 놈들 중에 배신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더군.”

“배신자? 혹시 그 ‘헬무트’라는 자 말하는 건가?”

“아, 물론 그자도 도움이 됐겠지. 하지만 지금도 마왕 편인 척하면서 멸마궁을 돕는 자가 있다고 하네.”

“그래? 그게 누군데?”

“나도 모르지. 다만 그 마족은 마계에서도 반역을 일으킨 적이 있는 인물이라더군!”

“허어! 마족 놈들도 속내가 제각각이구먼!”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우리 강호인이 똘똘 뭉쳐야 하지 않겠나? 아직도 ‘마왕 폐하,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고 소리치고 다니는 미친놈들이 있다던데.”

“에잇, 퉤! 그런 놈들은 다 뒈져야 해!”

“누가 아니라던가? 자기 딸이 마족에게 강간을 당해도 용서할 거라는 미친 인간의 말이 생각나는군.”

한편, 객잔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떠드는 말을 들으면서 묵묵히 식사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아니, 그 중 한 명은 사람이 아니었다.

바로 능운파와 구윤이었다.

능운파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바리탄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는군.”

“그렇군요. 멸마궁에서 아무리 쉬쉬해도 발 없는 소문이 천리를 가는 법이지요.”

구윤의 말에 능운파가 피식 웃었다.

“그게 아닐 테지. 일부러 그 정도의 소문을 흘리도록 한 게 아닌가? 이것 또한 군사의 생각일 텐데.”

구윤은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능운파는 구윤이 저런 웃음을 지을 땐 긍정의 뜻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능운파의 추측은 대체로 사실이었다.

바리탄의 배신이 어느 정도 노골적으로 드러나야지 흑성에 있는 마왕을 깨울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간 마왕을 흑성에서 끌어내야만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유리한 싸움이 진행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왕이 멸마궁보다 바리탄을 먼저 제거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물론, 바리탄이 마왕을 제거해 주면 더욱 좋다.

어쨌거나 둘 중 하나는 이이제이(以夷制夷)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남은 자들의 싸움이 시작될 거다.

가능하다면 이 양자 싸움에 능운파를 끼워 넣어야 하는데….

“고민되겠군.”

능운파가 불쑥 꺼낸 말에 구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 난투 속에 나를 던져 넣어야 할 테니까.”

구윤은 내심 당황했지만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자네는 나를 믿지 않을 테니까.”

“믿습니다.”

“무엇을? 내가 마왕의 자리에 오르면 고분고분 마계로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아닙니까?”

능운파와 구윤의 시선이 허공에서 조용히 얽혔다.

능운파가 피식 웃었다.

“제법이군. 떠나야지. 미련 없이.”

능운파가 시선을 돌려 왁자지껄한 객잔의 풍경을 훑어보았다.

왠지 벌써부터 그리움을 담은 시선 같기도 했고, 저들을 모두 자신의 아래로 두고 싶다는 욕망을 품은 눈빛 같기도 했다.

그리고 언뜻 언뜻 사비강이라는 이름이 들릴 때면 격렬한 질투와 증오가 뒤섞인 눈빛이 되기도 했다.

구윤은 모른 척,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최선을 다해서 맹주님을 도울 겁니다. 맹주님이 반드시 마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능운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자네는 나의 군사니까.”

능운파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석양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하늘은 불길이 번진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무랑은 정자에서 노을을 바라보았다.

“아름답네요.”

문득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니, 매설란이 옆에 다가왔다.

그녀의 전신에서 풍겨지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무랑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한 번 더 강해졌음을.

동시에 그녀가 한 층 더 성숙해졌음을.

이제는 그녀에게서 어떤 기품이 느껴진다.

이렇게 변화가 뚜렷한 사람도 오랜만에 보는 듯했다.

긍정적으로 변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매설란은 무랑에게 늘 기분 좋은 상대였다.

“달라졌군.”

“진 당주님이 주신 영단으로 꽤 효과를 봤어요.”

“그랬군.”

무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백의 노고를 무시하고 싶지 않았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말한 것은 비단 ‘무공이 강해졌다’는 것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영단을 복용하면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리라.

매설란이 노을을 보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가 무랑을 슬쩍 돌아보며 물었다.

“왜 노을은 저렇게 아름다운데, 한편으로는 쓸쓸한 느낌을 주는 걸까요?”

“그건 아마도 저 아름다움이 찰나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저 아름다움을 끝으로 캄캄한 어둠이 시작될 테니까.”

“역시 그렇군요.”

“하지만 그 어둠도 곧 물러나고 반드시 미명이 떠오르니 희망을 지팡이삼아 살아가는 게지.”

“맞는 말씀이에요.”

“모든 인간들은 기억해야 할 걸세. 절망과 희망은 반드시 같은 방향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우린 그 절망이 끝일 거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면 그 절망의 반대편에서 희망이 떠오르는 법이야. 인간이 이처럼 힘든 시기에 절망으로 아우성치는 것은 결국, 그 방향에서만 희망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라네.”

“알 듯 말 듯한 내용입니다.”

무랑이 매설란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원래 그게 안다는 거지. 안다는 건 그런 거야. 안다고 확신하는 순간, 오히려 모르게 되는 걸세.”

매설란은 말없이 웃어 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말없이 노을을 바라보았다.

문득 기척을 느낀 매설란이 뒤를 돌아보니, 옹기승과 흑귀가 나란히 정자에 오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매설란과 무랑에게 다가와 포권했다.

“총관님과 전주님께 인사드립니다.”

매설란이 반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두 분, 무슨 일인가요?”

그녀는 내심 이 두 사람에 대해서 걱정하던 차였다.

이번에 루시달 공작을 공격하는 작전에서도 두 사람은 자원해서 빠졌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한데 이렇게 둘이 함께 찾아오니 이참에 그 이유를 물어볼 생각이었다.

한데 옹기승과 흑귀는 제법 진지한 표정이 되어서 무랑을 보며 말했다.

“실은 전주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에게?”

무랑 역시 뜻밖이라는 듯 미간을 좁히고는 두 사람을 보았다.

옹기승과 흑귀는 서로를 한 번 바라보고는 결심을 굳힌 듯 동시에 입을 열었다.

“예.”

**

“헉!”

자콕 백작은 침상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이마를 짚었다.

지독한 악몽.

아니, 이건 신탁이었다.

‘젠장…! 이런…!’

어금니를 쿡 씹은 그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꿈을 더듬어 보았다.

그의 표정이 점점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들러를 찾아가서 상의를 해보는 건 어떨까?’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들러는 생각보다 꽉 막힌 마족이었다.

그를 설득하거나 이해시킬 자신이 없었다.

‘최근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건 이 때문이었나!’

생각보다 최악이다.

그 불길함이 마족의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 때문이었다니!

그는 침상에서 일어나 서성거렸다.

당장이라도 흑성을 벗어나는 것이 어떨지 깊이 고민해 보았다.

만약 벗어난다면, 어디로 벗어나야 하는가?

‘제길!’

한참이나 서성이던 그가 결심을 굳히고는 외투를 챙겼다.

거듭 생각해 보아도 흑성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자신에게 신탁이 내려올 정도면 그 재앙은 코앞에 닥쳤다는 뜻이다.

행동은 빨라야 한다.

자콕이 방문을 막 열어젖혔을 때였다.

“헉!”

하마터면 그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주저앉을 뻔했다.

놀랍게도 문 앞에는 그가 지금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가 떡하니 서 있었다.

“이 야밤에 어딜 가려는가?”

묵직한 음성이 흘러들었다.

“폐, 폐하!”

자콕이 얼른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마왕 타란트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그를 지나쳐 탁자로 걸어가서 앉았다.

“뭘 그리 놀라는가? 누가 보면 내가 사비강이라도 되는 줄 알겠군.”

“한, 한낱 인간에게 제가 놀랄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면 날 보고 놀랄 이유는 있다는 건가?”

타란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섬뜩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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