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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527화 (527/670)

# 527

귀환 마교관

527화

위급한 상황에 처했던 추희룡이 사비강을 보며 반색했다.

“사 궁주! 와 주셨구려!”

“음? 우리가 그렇게 반가워 할 사이였던가?”

“사비강 궁주.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옹기승은 절대 모른다고 시치미를 딱 잡아떼더니. 이젠 또 무슨 오해가 있는 걸까?”

“그, 그게 바로 오해요. 옹기승이….”

“설마 련주전 후원에 묻혀 있는 것도 몰랐다고 말할 생각은 아닐 테지?”

“몰랐소! 맹세코 몰랐소! 그건… 그렇소! 그 마족놈들의 짓이오! 그놈들이 간악하게도 옹기승을 련주전 후원에 묻어 두고….”

“야이, 미친 련주 놈아!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소리야? 내가 개호구로 보이냐?”

사비강이 모처럼 버럭 화를 내자, 추희룡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한편 혈도사괴는 갑자기 나타난 사비강을 보면서 섣불리 움직이지 않은 채 묘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추희룡이 다시 소리쳤다.

“미안하오! 내 솔직히 말하리다. 옹기승은 내가 숨긴 것이 맞소. 다만 나는 그를 보호해서 추후에 사 궁주에게 알려 줄….”

“맞네. 맞아. 이 새끼 날 개호구로 보는 게 맞네. 그치? 량아.”

“뭐… 그런 것 같은데요.”

“도대체 날 얼마나 개호구로 보면 저런 변명을 하는 거지?”

“음… 아마도 잡것 중에서도 아주 개잡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사부님을 발톱에 낀 떼만큼도 하찮게 보거나, 시궁창에서 기어 다니는 구더기 수준으로 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그 구더기의 똥….”

따악!

“아얏, 왜 때리세요?”

뒤통수를 얻어맞은 추량이 발끈해서 소리치자, 사비강이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몰라. 왠지 네가 더 기분 나빠, 인마.”

“물어보셔놓고는… 전 사실 그대로 말했을 뿐이라고요!”

“네가 날 그렇게 보는 건 아니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사부님을 천상의 하늘님처럼 우러러본다고요. 그래서 사부님을 시궁창의 구더기 똥 취급하는 저 추 련주를….”

따악!

“우씨….”

“닥쳐.”

“예, 사부님.”

추량이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사비강이 추희룡에게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내 제자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당신이 날 얼마나 시궁창의 구더기… 하아, 아무튼 얼마나 하찮게 취급하는지 알겠군.”

추희룡이 난감한 기색으로 소리쳤다.

“미, 미안하게 됐소! 이건 진심이오. 사실 나는… 그렇소! 욕심이 났었소. 옹기승의 몸에 깃든 마령혼에 욕심이 났었소. 그래서 내가 일순간 판단을 잘못 내려서….”

“일 없어. 뭣들 해? 하던 일, 마저 하라니까.”

혈도사괴가 어정쩡한 자세로 애매한 태도를 보이자, 추희룡이 돌연 혈도사괴에게 돌아섰다.

“잠깐! 이렇게 하자!”

“또 뭐요?”

일괴가 으르렁거리며 묻자, 추희룡이 사비강을 힐끔거리고는 말했다.

“너희들도 저놈이 누군지 잘 알 거다.”

“사비강 궁주 아니요?”

“그래! 사비강 궁주다! 저자에 대한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을 테지?”

“뭐 대충은.”

혈도사괴와 추희룡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사비강은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추희룡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네놈들이 날 죽인다고 한들, 저자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가? 기력을 소모할 대로 소모한 너희들이 저자를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그래서… 잠깐 손을 잡자?”

“말귀를 알아듣는군.”

추희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도사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전음으로 무슨 내용인지 한참이나 주고받았다.

마침내 일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좋다. 저자부터 먼저 죽이고 다시 우리 일을 보도록 하지.”

“후후. 아주 꽉 막힌 친구들은 아니군.”

추희룡이 내심 안도하며 돌아섰다.

한편 나뭇가지 위에 있던 추량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일이 요상하게 돌아가는데요.”

“그렇군.”

사비강이 팔짱을 풀고는 목을 이리저리 우두둑 꺾었다.

추량이 속삭였다.

“이 정도면 사부님을 구더기 똥만도 못한 개잡….”

따악!

“그만해. 충분히 느끼고 있으니까.”

“아, 예.”

추량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자, 사비강이 나뭇가지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어디 한 번 덤벼 보시겠다고?”

“잘난 척하지 마라. 사비강. 아무리 네놈이 강해도 혈도사괴와 내가 손을 잡는 한 쉽진 않을 거다.”

“쉬울 것 같은데.”

“흥! 건방 떨지 마라!”

타앗!

추희룡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동시에,

타다닷!

혈도사괴가 기를 끌어올리곤 뒤를 쫓아왔다.

마침내 추희룡의 검이 그대로 사비강의 심장을 뚫기 직전이었다.

내상을 입었으리라 생각한 자신이 너무 빨랐던 탓일까?

사비강은 그 자리에 서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추희룡은 확신했다.

자신의 검이 사비강의 심장을 뚫을 것이라는 것을.

‘흥! 방심했구나! 넌 이걸로 끝이다!’

제아무리 그가 강하다고 할지라도 이젠 절대 피할 수 없다.

마침내 그의 검봉이 사비강의 가슴에 닿았을 때!

푸우욱!

시퍼런 검기를 머금은 칼날이 가슴을 뚫고 튀어 나왔다.

추희룡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의 가슴을 찢고 튀어 나온 칼날을 보았다.

‘어찌…?’

한 끗 차이였다.

일 푼의 힘만 가해도 자신의 검봉은 사비강의 심장을 찢어발겼으리라.

한데… 찢어진 것은 사비강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이었다.

촤아아아악!

심장을 뚫은 칼날이 뽑혀 나오면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추희룡이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검을 지팡이 삼아 거꾸로 짚었다.

“커억…!”

그가 시커먼 피를 한 차례 토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혈도사괴 중 일괴가 두어 걸음 물러나 있었다.

그의 칼날에는 자신의 피가 잔뜩 얼룩져 있었다.

“어째서… 네놈들이…!”

“후후. 배신은 당신만 하는 게 아니지.”

일괴가 싸늘한 웃음을 흘렸다.

추희룡은 다시 한 번 검붉은 피를 울컥 토해내고는 그대로 고꾸라져 다신 움직이지 못했다.

늘 이인자라는 그늘 속에서 발버둥만 쳤던 그의 삶이 그렇게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사비강이 그를 내려다보며 가만히 읊조렸다.

“배신만 일삼다가 배신을 당해서 죽는 당신 운명도 기구하군.”

사실 추희룡이 갑자기 돌아서서 혈도사괴에게 제안을 한 직후, 사비강은 별도로 일괴에게 전음을 흘렸다.

추희룡을 제거하면 살려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일괴는 사비강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비강이 추희룡의 품에서 두루마리 일곱 장을 꺼내 들었다.

“나머지 가져와라.”

사비강의 말에 일괴가 천천히 다가와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여기 있소.”

그 찰나,

쉬이이이이잇!

일괴의 눈빛에 살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허리춤에서 칼이 뽑혀 나왔다.

어떤 보물인지도 모를 물건을 고분고분 넘겨 줄 혈도사괴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틈만 보이면 사비강까지 제거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속셈이었다.

찰나지간,

쒸이이이이이엑!

한 줄기 섬광이 그들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촤촤촤아아아악!

섬뜩한 파육음에 이어 혈도사괴 세 사람의 머리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그들은 마구 뒤집히는 세상을 보면서 자신들이 무엇에 어떻게 당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분명 검은 내가 휘둘렀는데 어째서 내 머리가…?’

그것이 일괴가 떠올린 마지막 생각이었다.

후두둑, 데굴데굴…

머리를 잃은 세 사람의 몸통은 바짝 마른 장작처럼 변해서는 그대로 쿵,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피는 터지지 않았다.

대신 허공을 한 차례 휘저은 베르타스가 둥실 뜬 채로 붉은 빛을 연신 발하고 있었다.

피를 완전히 흡수한 베르타스가 사비강의 허리춤으로 돌아오더니 그대로 착 검집에 갈무리됐다.

마침 추량이 얼른 다가와 텔레포트 스크롤을 주섬주섬 챙겼다.

사비강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량아.”

“예, 사부님.”

“나는 교관으로서 사람을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아, 예….”

“그런데 요즘은 그 말이 점점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란하다.”

뭐라고 농을 던지려던 추량은 사비강의 표정을 힐끔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사비강의 표정이 전에 없이 진중했기에.

추량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고쳐 쓴다는 건… 처음부터 잘못된 게 아니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고친다’는 표현을 쓰겠지요?”

“그래서?”

“어쩌면 그 말 자체에 희망이 있다고도 봅니다. 처음부터 그릇된 것이 아니라는 그 말. 애초에 악인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는 뜻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마족과 인간이 다른 점일 수도 있을 테고요.”

사비강이 잠시 멍한 표정으로 추량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게… 하하.”

추량이 다시 스크롤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네가 했던 말 중에서 가장 멋있었다.”

“예? 뭐가요? 아아! 그 추종술에 대한 말씀입니까? 흐흐. 추종술은 자아를 지워 버리고 완벽한 타인이 됨으로써 인간의 심연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

“시끄럽다.”

“흐음. 그게 아니면… 설마 사부님이 구더기 똥만도….”

“닥쳐라!”

“아, 예.”

추량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말이 멋있다는 거야?”

**

문이 벌컥 열리면서 뇌검대주(雷劍隊主) 이차명(李嵯明)이 실내로 들어섰다.

방안에서 서성거리던 단리추가 휙 돌아서며 물었다.

“어찌 됐는가?”

“귀양문(貴陽門)은 봉문을 선언했고, 귀도세가(鬼刀世家)는 장원을 그대로 두고 종적을 감춰 버렸습니다. 다른 문파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보고를 올리는 이차명이 끌어 오르는 분을 감추기 힘들다는 듯 뺨을 연신 씰룩였다.

단리추 역시 마찬가지였다.

콰장!

그가 주먹으로 탁자를 산산조각 내고는 으르렁거렸다.

“이 한심한 작자들! 똘똘 뭉쳐서 맞서기도 모자란 상황에서 뿔뿔이 흩어져 숨어?”

때마침 차분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마족들이 두려운 것이겠지요.”

이차명의 뒤를 이어 실내로 들어선 사람은 총관 양문수(陽文手)였다.

그는 무인이라기보다는 문사에 가까운 자였다.

양문수가 착잡한 표정으로 단리추에게 말을 건넸다.

“문주님. 지금이라도 재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족의 기세는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들은 결코 자비를….”

“재고할 것 없소! 무인으로서 악이 두려워 물러선다면 그것이 더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 아니겠소!”

“하지만 문주님만 믿고 있는 본문의 무인들은….”

“그러니 내 애초에 말하지 않았소! 사정이 이렇게 된 이상 떠날 자들을 탓하지 않겠다고! 양 총관도 그들이 그리 두렵다면 떠나시오. 그대를 비난할 자는 이곳에 아무도 없소!”

다른 문파가 남아서 협력했다면 또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일성검문만 남은 상황.

패배가 불을 보듯 뻔하다.

양문수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제가 어찌 문주님을 등지고 떠나겠습니까? 저 역시 이곳에서 가주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정녕 그리 결정했다면 더 이상은 날 흔들지 말아 주시오.”

“명심하겠습니다.”

양문수가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는 존경심 가득한 눈빛으로 단리추를 보았다.

‘제가 흔든다고 해서 흔들릴 분도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세상에 홀로 남게 될 소문주님을 생각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 말만큼은 가슴으로 삼켰다.

그런 말을 꺼내 봐야 대쪽 같은 단리추가 고집을 꺾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가슴만 더 아프리라.

그때 무인 하나가 황급하게 들어서며 보고했다.

“문주님! 마족들이 십 리 이내로 접근했습니다!”

“알겠다! 놈들을 썰어 버릴 준비를 하자!”

그곳에 있던 모든 자들이 포권을 취하며 소리쳤다.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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