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6
귀환 마교관
466화
“헉, 헉, 헉…!”
교주는 두 팔을 척 늘어뜨리고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옹기승을 보았다.
검붉은 기운에 휩싸인 옹기승은 마치 불길에 휩싸인 채 걸어 다니는 화마(火魔) 같았다.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땅바닥은 타들어 가는 소리를 내며 시커멓게 그을음이 생겼다.
물론 정말로 타들어 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검붉은 기운이 스치기라도 하면 온몸이 오싹해질 만큼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타들어 가는 듯한 소리가 나는 이유는 그만큼 강렬한 마기였기 때문이다.
교주는 몸을 가늘게 떨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죽어 널브러진 마인들 천지였다.
교주 역시 피범벅이 된 채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있었다.
자만했다.
마령혼이 이렇게까지 옹기승의 몸에 익숙해져 있을 줄은 몰랐다.
어지간하면 마령혼은 저렇듯 의지를 가지고 나타나지 않는다.
한데 지금은 완전히 옹기승의 몸을 잠식해 버린 듯했다.
이제야 옹기승의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자신의 몸속에 있는 괴물이 깨어날 까 봐 두렵다던 말.
저걸 깨우지 말았어야 했다.
과연 저걸 이겨낼 수 있을까?
처음으로 그에게서 자신감이 사라졌다.
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그래, 아직은 포기할 단계가 아니다.
조금 더 싸우다가 도저히 힘들 것 같으면 그때 몸을 빼내도 늦진 않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희열감도 차오른다.
만약 저 마령혼을 자신이 취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존야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쿡쿡. 좋아. 어디 갈 데까지 가보자고. 친구!”
팟!
순간 교주의 몸이 지워졌다.
뒤이어 그는 옹기승의 머리 위 허공에 나타나면서 떨어져 내렸다.
“마령혼! 내게 귀속되어라아앗!”
그가 비명처럼 소리 지르며 중력을 이용해 일검을 내질러 갔다.
**
촤아아악!
“크읏!”
옷자락이 찢어져 나가면서 매설란의 하얀 어깨가 드러났다.
그녀의 전신은 이미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가 당한 상처에서 흐른 피도 있었고, 타인의 피가 튀어서 묻은 경우도 있었다.
“헉, 헉, 헉…!”
매설란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야말로 처절한 사투.
일신마는 너무 강했다.
이신마를 죽인 자운룡과 설서린이 합류해서 일신마를 상대하고 있음에도 그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게다가 곡보옥과 목단화, 구강룡 등이 상대하는 사신마 역시 아직까지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건 멸마관 무인들이었다.
이제 어둠이 물러가고 동이 트는 시간.
일신마가 이끄는 마인들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졌고, 급기야 멸마관 무인들은 낭떠러지까지 거의 내몰릴 상황에 처했다.
매설란은 배수의 진을 친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무리를 해서라도 포위망을 뚫어야 하지 않았을까?
살아남으려고 하지 않고 이기려고 했다.
어쩌면 그게 잘못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포위망을 뚫는다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땐 적어도 모든 부상자들이 적에게 도륙 당했을 것이다.
경공이 빠른 몇 명은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럴 수가 없었어.’
부상자들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야 마령교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그리고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어차피 벌어진 일!
“우린 살아도 다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매설란의 입에서 굳은 의지가 흘러나왔다.
멸마관 무인들이 저마다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멸마관 무인들은 낭떠러지를 등지고 부채꼴로 경계를 서면서 방어 태세를 취했다.
무리해서 적을 공격하지도 않았고, 가까이 다가오는 적들을 베어 넘기기만 했다.
반면 일신마는 느긋했다.
삼신마가 죽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사제들은 후일 자신이 교주의 자리를 이어받으면 정리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죽어 준다면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었다.
사신마가 용케도 끝까지 버티고 있었지만, 이 일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사신마 역시 제거할 생각이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하지.”
“알겠습니다.”
사신마가 옆에 다가서며 대답했다.
그가 희멀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내공을 실어 말했다.
“더 이상 사정 봐줄 것 없다. 섬멸하라.”
“존명!”
마인들이 우렁찬 대답과 함께 파도처럼 밀고 올라갔다.
그때였다.
쏴아아아아아아아!
느닷없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리면서 절벽 위에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게 아닌가?
마인들이 흠칫거리고는 뒤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수백 대의 화살이 동녘 미명을 등지고 빽빽하게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공, 공격이닷! 적이다!”
“방, 방어해라!”
“방호!”
슈슈슈슈슈슈슈슈슉!
푸푸푹! 투타타탕! 푹! 푹! 타탕!
실드를 펼치며 재빨리 대응한 마인들은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미처 대비하지 못한 마인들은 소낙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화살비에 전신이 관통당해 쓰러지고 말았다.
느닷없는 화살비에 당황한 것은 마령교 뿐만이 아니었다.
매설란 역시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한에 아직 남아 있는 문파가 있었던가?
아니다.
무한의 대부분 문파는 벌써 토벌대에 차출되어서 맹주와 함께 강림지로 향했다.
그럼, 저들은 누구란 말인가?
그 의문을 해결해 주겠다는 듯 우렁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혈사련 월섬당 소천악이 련주님의 명을 받고 멸마관을 돕기 위해 달려왔소!”
“혈사련 북천각 장후겸이 련주님의 명을 받아 멸마관을 돕기 위해 왔소이다!”
“혈사련 불귀당(不歸堂) 양만균(楊萬均)이 련주님의 명을 받아 멸마관의 힘이 되어 주러 왔소!”
“혈사련 칠혈각(七血閣) 유응향(油凝香)이 련주님의 명에 따라 멸마관 총관님을 도우러 왔어요.”
여기저기에서 그림자들이 마구 나타나면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댔다.
모두 혈사련 무인들이었다.
혈사련에서는 총 열두 개의 조직을 보내왔는데, 무인들의 머릿수만 따져도 족히 천 명은 넘었다.
반면 멸마관을 치면서 많은 인력을 낭비한데다 절반 정도가 교주와 함께 멸마관 내에 남은 마령교로서는 썩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제야 멸마관을 궁지에 몰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지원군이 있을 줄이야.
그야말로 혈사련에서 거의 모든 인력을 이곳으로 보낸 게 아닌가?
그렇잖아도 얼굴이 희멀건 사신마가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서는 말했다.
“사, 사형…!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하나? 전부 조져버려야지!”
처음으로 일신마의 표정에 짜증이 묻어났다.
시종 무감하던 그도 이제는 슬슬 조바심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매설란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서 희망을 보았다.
‘사비강…! 정말 당신은 어디까지 날 놀라게 할 셈이야?’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사비강은 정도맹에서 돌아왔을 때 어딘가에 들렀다가 왔노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한데 이제 확실히 알았다.
그는 만약을 대비해서 혈사련을 찾아갔던 것이리라.
그리고 련주인 추희룡에게 지원을 요청했을 것이다.
그녀의 예상은 비교적 정확한 것이었다.
실제로 사비강은 추희룡을 찾아가서 멸마관에 상당한 인력을 보충해 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이에 추희룡이 수뇌부 회의를 거쳐 무인들을 파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때까지도 혈사련에는 사비강이 매수했던 수뇌 인사들이 많았기에 무인을 파견하는 사안에 대해 큰 이견이 없었던 것이다.
“악랄하고 비열한 마령교도 놈들아! 본련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저들을 남김없이 죽여라!”
월섬당주 소천악이 사자후를 터뜨리며 달려 나갔다.
“우와아아아아!”
함성이 터져 나오면서 월섬당 무인들이 매서운 기세로 휘몰아쳐 왔다.
“북천각도 돕는다!”
“존명!”
북천각에 이어 불귀당과 칠혈각 등 모든 무인들이 달려 나갔다.
상황이 이리되자 멸마관 무인들도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카카카카캉! 푹! 퍽! 까앙!
“죽어랏!”
“크아악!”
“아악!”
절벽 위에서 처절한 난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그 양상은 이제까지와 달랐다.
마인들이 일방적인 수세에 내몰려 갔고, 멸마관과 혈사련 무인들이 무서운 기세로 무공을 펼쳤다.
매설란도 연검 두 자루를 힘주어 움켜쥐고는 이를 악다물었다.
‘나 최선을 다할게! 그래도 당신이 돌아왔을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분명 희망적인 상황이었음에도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흘렀다.
이곳에 분명 사비강이 없음에도 그가 함께 있는 것만 같은 기분.
언제나 대충대충 넘어가는 것처럼 보임에도, 이토록 세심한 배려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나니 어찌 마음이 격동하지 않을까?
“절대 지지 않겠어!”
취취리리리릿!
두 마리의 은빛 뱀이 다시 일신마를 향해 섬광처럼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