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67화 (467/670)

# 467

귀환 마교관

467화

푹!

“크윽!”

푹푹! 푸욱!

“으아아아!”

일신마가 광기 서린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패마회격도를 펼쳤다.

타다다당…!

“아악!”

“크아악!”

멸마관 무인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튕겨 나갔다.

“이 개새끼들…! 전부 죽여 버린다…!”

일신마가 귀신같은 얼굴로 이를 갈자, 그를 둘러 싼 무인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지 지독한 놈이로다.”

소천악이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유응향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괴물이 따로 없네요.”

“교주의 첫째 제자라더니, 과연 무서운 자입니다.”

북천각주 장후겸도 혀를 내둘렀다.

이제 마령교도들은 거의 전멸 수준이었다.

사신마도 싸늘한 주검이 된지 오래였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버틴 사람은 일신마였다.

그는 정말이지 인간이 아닌 것처럼 싸우고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전신에서 우러나오는 마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일신마의 옆구리에는 검 한 자루가 박혀 있었고, 허벅지에는 비수가 두 자루나 박혀 있었다.

왼쪽 어깨를 관통한 창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질질 끌렸다.

상처 입은 맹수는 죽어 가는 눈빛을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광기를 잃지 않았다.

절망의 끄트머리에서도 맹수는 적을 노려보면서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매설란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비록 적으로 만났지만, 당신의 용맹함은 높이 사지요.”

“닥쳐라아앗!”

타다닷!

일신마가 바닥을 차고 쏘아지듯 달려갔다.

쒸이이이익!

그 움직임이 무척이나 빨랐기에 그를 포위하고 있던 무인들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총관님!”

하지만 매설란은 차분했다.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만약 일신마가 멀쩡했을 때라면 이 같은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지금 일신마는 깊은 부상을 입은 데다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이 같은 그의 집념이 그를 아직까지 움직이게 하고 있었지만, 그만큼 빈틈도 많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타닷, 쉬이잇!

매설란이 몸을 비틀면서 일신마의 칼을 피했다.

동시에 미끄러지듯 칼날을 스쳐 가면서 두 자루의 연검을 뿌렸다.

취취리리리리릿!

은빛 비늘을 가진 뱀이 굽이치며 일신마의 요혈을 향해 날아갔다.

푹! 푹!

“커컥…!”

일신마가 울컥 피를 토하면서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소천악이 달려들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쒸쒸이이엑!

사방에서 창칼이 날아들었다.

푹! 푸푸푸푹!

“끄윽…!”

일신마의 전신에 창칼이 꽂혔다.

“으아아아아아!”

일신마가 다시 한 번 기합성을 터뜨리자, 사방으로 마기가 태풍처럼 불어 나갔다.

“으읏!”

그를 찌른 무인들이 손을 놓고는 얼른 물러나며 몸을 보호했다.

“이… 개새끼들…!”

일신마가 어금니를 빠득 갈고는 비틀비틀 일어났다.

이미 그의 몸은 고슴도치처럼 창칼로 꿰뚫려 있었는데도 쓰러지진 않았다.

터벅… 터벅…!

그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무인들이 움찔거리며 물러났다.

“정말이지… 지독하군…!”

“저게 인간인가…?”

“아직도 서 있을 수가 있다니…!”

하지만 매설란은 그 자리에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걸어서 자신 앞에 다다를 수 있다면, 손수 목을 베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불사신 같던 일신마도 결국 인간이었다.

주르르륵…!

가슴에 박힌 칼날을 따라 피가 흘러나오자, 결국 다시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는 곧 나머지 한쪽 무릎도 꿇은 채로 주저앉았다.

쎄엑쎄엑 몰아쉬는 숨소리만이 절벽 위에 울렸다.

멸마관을 마지막까지 궁지에 몰아넣고 멸살시키려던 자는 이제 기력이 다한 것인지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동녘에서 솟아오른 태양이 그의 등을 비추고 있었다.

저벅저벅…!

무릎 꿇은 그의 그림자를 밟으며 매설란이 다가갔다.

“운이 나빴군요. 하지만 다음엔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이런 운이 없어도 이길 수 있도록 나를 더 갈고 닦을 겁니다.”

일신마가 피식 웃었다.

그가 고개를 들고 게슴츠레 뜬 눈으로 매설란을 노려보았다.

“마지막 죽는 순간에도… 그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다니… 확실히 난 운이 좋군. 하나, 당신들에겐 이제부터… 쿨럭! 쿨럭! 이제부터… 진정한… 절망을….”

일신마는 말을 마저 맺지 못했다.

그는 대신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끝까지 죽지 않을 것 같던 그가 그렇게 매설란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명을 달리했다.

멸마관 무인들과 혈사련 무인들은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비록 적이었지만 그의 용맹함과 무위는 가히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

오히려 그의 죽음에 숙연한 감정마저 들었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매설란이었다.

“본관을 위기에서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혜를 입었습니다.”

“별말씀을. 사비강 관주께서 친히 련주님을 찾아와 부탁하신 거였소. 사비강 관주님은 정도맹의 인재이기도 하나, 본련에서도 오랫동안 지내신 분. 본련의 영웅이기도 하오.”

소천악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와 함께 온 대부분의 무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사실 이들은 사비강이 혈사련에 있을 때부터 포섭했던 수뇌 인사들이었다.

때문에 대부분 사비강에 대한 인식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흑귀’라 불리는 소유강의 아버지인 소천악에게 있어서는 사비강이 더욱 각별했다.

“혹시 우리 강아는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강아라면…”

“소유강 말이오. 내 아들. 아, 이곳에서는 ‘흑귀’라고 불러야 하려나?”

그제야 매설란이 알아듣고는 말했다.

“아! 흑귀 말씀이시군요. 그는 지금 사비강 관주님과 함께 강림지로 떠난 상황입니다.”

“그랬군. 그쪽에 대한 소식은 아직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매설란도 강림지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매우 궁금했다.

소천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직 모를 테지. 부디 무사해야 할 텐데….”

“무사할 겁니다. 아드님을 믿으십…”

그때였다.

꽈아아아아아앙!

저만치 남서쪽에서 요란한 폭음과 함께 불기둥 같은 기운이 하늘로 솟구치는 게 아닌가?

절벽 위에 있던 무인들이 저마다 움찔거리며 그곳을 돌아보았다.

“저긴…?”

“멸마관입니다!”

누군가 소리치며 대답했다.

순간 단리정이 뭔가 생각난 듯 얼른 경공을 펼쳐 절벽 끄트머리까지 달려갔다.

매설란이 얼른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옹기승은?”

단리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폭주라니?”

“마령혼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교주와 마령혼이 싸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른 마령교도놈들은 어찌 됐소?”

소천악이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단리정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저곳에 여전히 삼 할 정도의 세력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거리를 두고 교주와 마령혼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누가 이길 것 같소?”

“모르겠습니다. 둘 다 대단한 경지입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누가 이겨도 위험합니다.”

마령혼은 더 이상 옹기승이 아니다.

마령혼이 옹기승의 영혼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교주보다도 상대하기 까다로울 것이다.

소천악이 소리쳤다.

“하면 우리 모두 멸마관으로 돌아갑시다! 가서 마령교도 놈들을 모조리 쓸어 버립시다!”

“위험합니다. 마령교도를 다 쓸어 버린다고 해도 마령혼을 대적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이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단리정이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매설란이 흠칫거리고는 그를 돌아보았다.

“너, 설마…?”

“총관님. 마령혼이 폭주한 이상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옹기승이 제게 따로 부탁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듣고만 있던 구강룡이 사람들을 헤치며 저벅저벅 다가왔다.

“가만! 대체 뭘 부탁했다는 거야!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단리정이 그를 가만히 보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붉은 빛깔이 영롱하게 감도는 돌이었다.

척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에 구강룡이 눈썹을 성큼 치켜 올렸다.

“그게 뭐지?”

“데블 파이어. ‘폭렬단’이라는 거요. 이거 하나면 웬만한 장원을 완전히 날려 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렬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소.”

순간 구강룡이 단리정의 멱살을 와락 움켜잡았다.

“이런 미친…! 설마 지금 그걸 저곳에 날리겠다는 거냐!”

“어쩔 수 없소! 이 방법만이 유일하게 마령혼과 마령교도들을 모두 제거할 수 있소!”

“야이 개새끼야! 그럼 내 동생은!”

“옹기승의 뜻이기도 하오! 게다가 지금 당신 동생은 저곳에 없소! 그는 이미 마령혼에 제압당해서…!”

퍼억!

“크윽!”

구강룡이 휘두른 주먹에 단리정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단리정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훔쳐내고는 구강룡을 쏘아보았다.

“애초에 당신 동생은 이런 상황을 짐작하고 저곳에 남았소. 그리고 내게 그런 부탁을 한 거고. 아무리 당신이 그의 친형이라고 하더라도 난 그의 뜻을 받들 수밖에 없소.”

“이… 이…!”

구강룡은 끌어 오르는 울분을 주체하지 못하겠는지 주먹만 꽉 말아 쥔 채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결국 그가 하늘을 보며 포효했다.

“으아아아! 젠자아앙!”

구강룡이 어디론가 경공을 펼치며 달려가 버렸다.

단리정이 매설란을 돌아보았다.

“총관님… 쏘겠습니다.”

매설란은 갈등했다.

자신이 허락한다면 이제 멸마관은 흔적도 없이 지워질 거다.

그래도 될까?

저곳에는 사비강이 그동안 쌓아 왔던 모든 것들이 녹아 있는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날려 버려도 되는 걸까?

게다가 옹기승은?

그가 부탁했다고는 하지만 정말 이런 식으로 그를 보내도 되는 걸까?

그때,

꽈과아아아아앙!

다시 한 번 멸마관에서 폭음과 함께 붉은 기운이 일어났다.

소천악이 매설란에게 다가왔다.

“총관. 지금은 감성보단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요.”

‘감성보다 이성이라….’

그렇다.

시간을 끈다고 해서 더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누구보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단리정일 것이다.

한데 그가 저렇듯 마음을 다스리고 있지 않은가?

매설란이 표정을 굳히고는 단리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쏴.”

“존명.”

단리정이 대답과 동시에 시위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절벽 위의 모든 무인들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 모습을 보았다.

화살은 모두 세 자루.

각각의 화살에는 폭렬단이 묶여 있었다.

강기를 실어 날리는 순간, 폭렬단은 멸마관으로 날아가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킬 게 틀림없었다.

단리정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미안하고 고맙소!’

옹기승을 향한 마지막 인사였다.

패패패애애애앵!

쒸쒸쒸에에에에엑!

세 줄기의 섬광이 곧게 뻗으면서 멸마관으로 날아갔다.

마침내,

꽈꽈꽈아아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음과 함께 멸마관 전체가 화마에 휩싸였다.

그 열기가 절벽 위에서도 후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매설란은 끝까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를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다.

절벽 위의 무인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

츠으으으…!

불에 타고 남은 잔재를 밟으며 죽립을 깊이 눌러 쓴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한때 웅장하고도 화려한 멸마관이 있었던 곳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이곳에 있던 마령교도들은 흔적도 없이 증발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대단한 폭발력이었다.

그럼에도 죽립인은 뭔가를 찾는 듯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리고 그는 뭔가를 느꼈는지 관주전이 있던 터에서 우뚝 멈췄다.

잿더미가 수북하게 쌓인 곳에 가서 가볍게 장풍을 날렸다.

펑! 휘이이이!

놀랍게도 잿더미가 날아간 자리에 옷을 벌거벗은 채 엎드린 남자가 보였다.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었지만 죽진 않았다.

“과연. 마령혼이군. 마령교주도 버티지 못한 화염지옥에서 살아남다니.”

죽립을 쓴 남자의 입매가 히죽 치켜 올라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