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38화 (438/670)

# 438

귀환 마교관

438화

이 순간만큼은 머리끝이 쭈뼛 설 정도의 위협을 느꼈기에 설서린은 본능적으로 마칸의 꼬리를 휘둘렀다.

“안 당해요!”

휘르르르르륵!

불길이 무지개처럼 굽으며 날아드는데,

탁!

사비강이 얼른 손을 뻗어 마칸의 꼬리를 휘어잡았다.

치이이이이익!

사비강은 손바닥이 타들어가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빠르게 보법을 밟았다.

그의 현란한 보법에 설서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휙휙휙! 타타탓!

그녀가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마칸의 꼬리에 전신이 꽁꽁 묶인 다음이었다.

옴짝달싹도 못하게 된 설서린이 얼굴을 붉혔다.

“아이참, 이런 취향이셨으면 진작 말씀을 하시지. 서방님이 좋다면 소녀도 이런 것쯤은 감수 할 수….”

“헛소리도 작작해. 내가 적이었으면 넌 벌써 죽었다.”

“하지만 서방님은 적이 아니잖아요? 제 영원한 사랑….”

휘리리리릭!

사비강이 마칸의 꼬리를 거칠게 잡아당기자, 설서린이 팽이처럼 휘돌았다.

촤아아앗!

미끄러지듯 중심을 잡은 설서린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소리쳤다.

“거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이렇게 무작정…!”

“네 자랑거리인 무기가 지금 내 손에 들어왔다.”

“그건…!”

“이 정도 실력으로 날 죽이겠다고 달려들다니. 배짱 한 번 두둑하군. 참고로 과제가 아닌데도 날 죽이려는 인간은 봐주지 않아.”

“그렇다고 날….”

팟!

사비강이 다시 설서린 코앞에 나타났다.

“……!”

이번에야 말로 설서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인간이야? 괴물이야? 이런 인간이 마족 따위를 신경 쓰는 이유가 뭐지?’

설서린이 대항할 생각조차 잊고 서 있자, 사비강이 채찍을 감아쥐고는 설서린의 턱을 받쳐 들었다.

“잘 들어라. 상대를 죽이려고 달려들 때는 너 또한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죽고 나서 후회하면 늦으니까.”

“……!”

순간 설서린은 단 한 마디도 대꾸할 수 없었다.

사비강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진짜였다.

여기서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간 꼼짝없이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온몸을 음습했다.

“알, 알았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게 떨려 왔다.

그제야 사비강이 기에 담은 의념을 지웠다.

“내가 너희들에게 암살 과제를 그만두라고 한 이유를 아느냐?”

“우리가 너무 강해져서 정말로 죽을 것 같으니까 그런 거겠죠.”

“천만에. 지금도 너희들은 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평소라면 발끈했을 설서린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조금 전 그가 보여준 무위는 충분히 위협적이었고, 그 말을 증명하는 것이었기에.

“암살 과제를 더 이상 진행해도 너희들에게는 하나의 유희 정도로 끝날 것 같았지. 무엇이든 습관이 무서운 법이다. 자칫 잘못 길들여진 습관은 목숨도 앗아갈 수 있다. 한 마디로 실전에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하게 되면 십중팔구 죽는다는 소리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돌려주세요. 이제.”

설서린이 입술을 꾹 깨물고는 마칸의 꼬리를 가리켰다.

“아니, 이건 압수다. 나중에 돌려주마. 이 녀석을 좀 만져봐야겠어.”

사비강이 휙 돌아서서 관주전 안으로 들어가자 설서린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유, 정말! 어쩜 저렇게 멋있지? 괜히 몸이 뜨거워졌잖아. 칫! 만지려면 날 만질 것이지!”

**

그날 밤, 멸마관에서는 사비강의 귀환을 기념하며 모처럼 연회가 벌어졌다.

식탁마다 고급 만찬이 차려져 있는 것을 보고 추량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했다.

“맙소사! 이 많은 걸 전부 총관님이 만드신 겁니까?”

매설란이 얼굴을 붉히며 여린 미소를 지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답니다. 모두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어요.”

“물론이죠! 남김없이 다 먹겠습니다! 그렇잖아도 배가 고팠거든요!”

추량이 군침을 흘리며 입을 헤벌쭉 벌렸다.

사비강이 피식 웃고는 매설란을 돌아보았다.

“조금 감동인데. 이렇게까지 애써 주다니.”

“말했잖아. 언제든지 당신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겠다고.”

“고마워.”

마침 고적산이 사비강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관주님! 모처럼 다 같이 모인 자리인데 한 말씀 해주시죠!”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사비강에게 집중됐다.

매설란 역시 사비강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비강이 멋쩍게 웃고는 잔을 들었다.

“다들… 많이 먹어라.”

“예? 그게 끝입니까?”

고적산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되묻자,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프지들 마라. 먹자.”

짧은 한 마디.

하지만 그 한 마디에는 분명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랬기에 그 어떤 연설보다도 큰 울림이 있었다.

맹가숙이 코를 훌쩍이고는 툴툴거렸다.

“니미… 어미한테도 못 들어본 소리를 관주님한테 다 들어보네. 뭣들 하냐? 먹자! 잘 먹고 아프지들 말자!”

그러자 자리에 모인 무인들이 저마다 잔을 들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잘 먹겠습니다!”

한편, 추량은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처음에는 망나니 같은 특목반 생도들을 정도맹 감찰대로 만들더니, 이제는 정파와 사파가 한 자리에 어울려서 웃고 떠들도록 만들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

추량의 눈에는 사비강이 딱 그렇게 보였다.

‘정말 사부님은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괜히 벅차오르는 가슴에 주먹을 불끈 쥔 추량이 젓가락을 들었다.

‘먹자! 잘 먹고 아프지 말자!’

동파육 한 점을 들어 올린 그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입에 넣고 최고의 요리에서 우러나오는 풍미를 만끽…해야 하는데….

‘윽……!’

몸을 흠칫 떤 추량은 얼른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모두가 술잔만 기울인 지금이 바로 그에게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음식을 집을 때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벌떡 일어나면서 포권을 취했다.

“사부님! 갑자기 잊은 게 있어서 다녀오겠습니다!”

“음? 그래. 얼른 다녀와라.”

“예,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추량이 후다닥 달려 나가자, 그 모습을 본 맹가숙이 피식 웃었다.

“저 자칭 호위무사는 어딜 저리 급하게 가는 거야?”

“보나마나 뭘 또 깜빡하고 왔나보지.”

도비천의 말에 유송령이 깔깔거렸다.

“저치가 좀 덜렁거려?”

“하긴. 자자, 먹자고.”

맹가숙이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뒤를 이어 신생조 조교들이 음식을 먹는데….

“……!”

일순 굳어 버린 표정.

맹가숙이 절로 찡그려지는 얼굴을 간신히 펴면서 벌떡 일어나려는데,

탁!

구강룡이 맹가숙의 손목을 낚아채는 것이 아닌가?

맹가숙이 전음을 흘리며 으르렁거렸다.

[무슨 짓이냐?]

[혼자만 살 거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삽시다.]

[니미… 언제부터…]

[지금부터라도.]

[쳇! 알겠으니, 이것 놔.]

[믿겠소.]

구강룡이 은밀한 시선을 보내고는 손을 놓아 주었다.

맹가숙이 벌떡 일어나면서 포권했다.

“관주님! 잊었던 임무가 있어서 신생조 조교들을 이끌고 급히 다녀오겠습니다!”

“잊었던 임무?”

“예, 진천살마광폭패선진법(振天殺魔狂暴敗仙陳法)을 완성시켜야 하는 임무를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곧 완성이 되는 단계라….”

“그럼 할 수 없지. 가보도록.”

“감사합니다!”

맹가숙이 말을 마치자, 이번에는 신생조 조교들이 우르르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다.

사비강이 매설란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진천살마광폭패선진법이 뭐지?”

“글쎄. 나도 금시초문인데. 무랑도사가 새로 창안한 진법일까?”

그 후로도 계속해서 이탈자가 생겨났다.

하지만 감동에 취한 사비강과 사비강의 반응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매설란은 그들의 행동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를 비웠을 때, 아직 음식 맛을 보지 않은 적무린이 서래향을 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관주님과 총관님을 위해 자리를 비켜 주는 것 같습니다.”

“흥! 난 그럴 생각 없어. 내 인생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니까.”

무린이 피식 웃으며 그녀답다는 생각을 했다.

“한 잔 하시지요. 주인공님.”

“그래, 무린도 내 인생의 조연으로 끼워 줄게.”

“언젠가 제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날이 올까요?”

“…어쩌면?”

기분이 좋아진 무린이 단숨에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음식을 집어 먹은 두 사람.

“……!”

흠칫 몸을 떤 두 사람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제야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이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바빠진 것인지.

그것이 결코 관주와 총관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음을.

사람이 만든 음식에서 이런 맛이 날 수 있다니. 아니, 사람이 먹는 음식에서 이런 맛이 날 수 있다니!

[제가 이 상황을 해결해 보겠습니다!]

적무린이 최선을 다해 음식을 삼킨 다음 전음을 흘리고는 벌떡 일어났다.

“관주님!”

“왜 또?”

“음… 인생의 작은 행복을 찾으러 가도 되겠습니까?”

“인생의 작은… 뭐?”

“그러니까 저… 어딘가에 두고 온 작은 행복을 찾으러 가도 되겠습니까?”

“오늘 다들 정말 왜 이러는 거야?”

사비강이 신경질적으로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적무린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젠장! 저 한 점을 먹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

“관주님!”

“아, 왜!”

“아무래도 오늘은 두 분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 참, 별 쓸데없는 배려를.”

사비강이 무심결에 말을 뱉고는 양념된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적무린은 알 수 있었다.

이제 모든 희망이 끝났음을.

아니나 다를까.

“……!”

사비강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곧이어 그가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적 교관.”

적무린이 눈을 질끈 감았다.

“말씀… 하시죠.”

“앉아.”

“예?”

“앉으라고 했다.”

“하지만 제 인생의 작은 행복은 아직….”

“그건 나중에 찾도록 하지.”

“그래도…”

“그나저나 우리 그때 일을 진지하게 이야기해 볼까? 옆에 있는 서 교관이 세혼폭멸고에 당했을 때, 적 교관은 제멸고독단을 망설이지 않고 복용했지? 그건 혹시 죽기 전 마지막 소원으로 서 교관과 뜨거운 밤을 한 번 보내보는….”

순간 적무린이 털썩 앉았다.

“인생의 작은 행복이 여기도 있었군요! 젠장!”

말을 마친 적무린이 느닷없이 음식을 우걱우걱 집어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상황이 반전되자, 서래향이 발끈해서 소리치려는데,

[전 괜찮습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무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전 정말 괜찮습니다. 이 정도 쯤이야!]

이제 적무린은 내공까지 이용해서 음식을 삼켰다.

순식간에 차려진 음식을 완전히 먹어치운 적무린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잘 먹었습니다!”

그가 서래향의 손목을 낚아채듯이 잡고는 휘적휘적 걸어갔다.

매설란이 그 모습을 보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사비강을 보았다.

“이제 우리 둘만 남았네.”

그때였다.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한쪽 구석에서 우렁차게 소리친 남자.

바로 신생조 등자경이었다.

그가 연이어 외쳤다.

“전 정말 맛있습니다! 제 입맛에 딱 맞습니다.”

한데 매설란은 사비강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뭐 다 떠났지만 상관없어. 당신만 내 옆에 있으면 돼.”

등자경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이젠 내 목소리도 안 들리는 거냐!’

마침 사비강이 벌떡 일어났다.

“그럼 우리도 같이 작은 행복을 찾으러 가볼까?”

매설란이 입매를 치켜 올리며 답했다.

“아니, 앉아. 작은 행복은 여기에도 있어. 적 교관이 그랬잖아? 여기도 행복은 아주 많아.”

“하하… 하… 내겐 과분한 행복인데.”

매설란이 눈썹을 곱게 구겼다.

“혹시 내 요리가 맛이 없는 건 아니지?”

그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정말 행복합니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언제 먹어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 요리입니다! 어째서 이게 작은 행복입니까? 이건 아주 큰 행복입니다!”

등자경이 소리쳤지만, 매설란은 가볍게 한숨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 둘 뿐이니, 그만 일어날까?”

“그래, 난 당신이 고파.”

“하여튼 못살아.”

매설란이 곱게 웃으며 눈을 흘기자, 사비강이 그녀를 번쩍 안아서 걸어갔다.

등자경이 두 사람의 뒤를 향해 소리쳤다.

“저는 끝까지 남아서 다 먹겠습니다! 여기 있는 것 제가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의 공허한 외침에 이어 시녀들이 나타나 식탁 위의 음식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자, 다들 일어나셨으니 치웁시다.”

“역시 음식을 거의 드시지 않으셨네요.”

“다음에는 필히 총관님을 말려야 합니다.”

“그래야겠어요.”

시녀들이 웃으며 정리하는 동안 등자경은 발악과 같은 외침을 이어 갔다.

“아직 난 먹고 있다고! 그것도 무척이나 맛있게!”

이때까지만 해도 멸마관 무인들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오늘의 연회가 환영회가 아닌, 지옥과도 같은 전쟁의 전야제가 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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