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9
귀환 마교관
439화
피범벅이 된 여곤이 의자에 꽁꽁 묶인 채 앉아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된 그는 성한 곳을 찾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에서는 피가 섞인 침이 진득하게 늘어졌다.
어찌나 모진 고문을 당한 것인지 이따금씩 껄떡거리며 몸을 떨기까지 했다.
그런 그를 보며 땀에 흠뻑 젖은 맹가숙이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지독한 놈이군! 이렇게 독한 놈도 오랜만이야.”
“혹시 고통을 못 느끼는 게 아닐까?”
옆에 선 진조영 역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도비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어. 이놈이 비명을 지르긴 했으니까. 그건 연기라고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버티지? 웬만큼 독한 놈이어도 이 정도면 벌써 불었을 텐데.”
“오히려 고통에 적응이 된 건지도 모르지.”
“아무튼 지독한 놈이야.”
도비천과 진조영이 기가 빠진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맹가숙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던지듯 말했다.
“깨워.”
도비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으로 걸어가 물동이를 집어 들었다.
촤아아악!
순간 찬물을 끼얹자, 여곤이 흠칫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퉁퉁 부어오른 살 때문에 눈이 제대로 떠지진 않았지만, 그는 자신을 앞에 두고 보는 세 사람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피식.
‘웃어?’
맹가숙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보통의 경우라면 지금쯤 눈을 뜨는 게 공포스러울 것이다.
차라리 이대로 죽었기를 바랐을 것이다.
한데 웃어?
미치지 않고서야.
“정신이 나갔냐?”
맹가숙이 으르렁거리자, 여곤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크크큭. 겨우 그 정도로 정신이 나갈 리가 있겠냐? 너희들이 나를 아무리 간질여도 내 입은 열지 못해.”
“뭐? 간질여…?”
맹가숙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되묻자, 여곤이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대꾸했다.
“그럼? 그게 설마 고문이었냐? 크하하! 나는 또 안마해 주는 줄 알았…!”
퍽! 퍽! 짜악!
잠자코 있던 도비천이 몽둥이를 들고 사정없이 매질을 가했다.
뻐억!
마침내 휙 돌아간 여곤의 입에서 이가 후드득 떨어져 나왔다.
졸지에 앞니가 세 개나 날아간 여곤은 듬성듬성한 이를 드러내 보이며 씩 웃었다.
“안마를 하려면 힘 좀 길러야겠어.”
“이런 허세에 찌든 새끼가…!”
우두둑!
이번엔 진조영이 다가가 여곤의 어깨를 붙잡고는 내공을 불어넣어 뼈마디를 부서뜨렸다.
“크읍!”
이번만큼은 여곤도 고통을 느꼈는지 신음을 삼키며 미간을 팍 구겼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는 거친 숨을 헐떡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더 세게 주물러 보라고. 병신들아.”
“비켜라. 이 개새끼,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아예 죽여 버려야겠어.”
맹가숙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나서자, 도비천과 진조영이 얼른 말렸다.
“영감, 참으쇼! 이 새끼 죽으면 말짱 헛일이오.”
“젠장!”
맹가숙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씨근거리고 있는데, 마침 문이 열리면서 사비강이 안으로 들어섰다.
“관주님!”
세 사람이 일제히 돌아서며 면목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사비강이 여곤을 힐끔 쳐다보고는 물었다.
“어떻게 되고 있어?”
“죄송합니다. 이놈이 워낙 지독해서….”
“흐음.”
사비강이 침음을 흘리고는 여곤을 돌아보았다.
여곤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게 누구야? 그 유명한 사비강 관주가 아닌가? 이렇게 만나니 영광이군.”
사비강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씨익 웃었다.
“부디 그 영광스러운 마음이 오래 갔으면 좋겠군.”
“크크. 왜? 당신도 날 고문하려고 그러나? 소용없다니까. 본좌는 고통에 아주 익숙하지. 절대 본좌의 입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기대되네.”
짤막하게 대꾸한 사비강이 맹가숙 등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가 있어.”
“하지만 이 녀석이 보통 놈이 아닙니다. 관주님이 문초를 한다고 해도….”
“나가 있어.”
“…알겠습니다.”
결국 맹가숙, 진조영, 도비천이 고개를 숙이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사비강이 목을 우두둑 꺾고는 여곤을 가만히 보았다.
“내가 너한테 바라는 건 두 가지다.”
“뭘 바라든 얻을 수 없을 거다. 킥킥.”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첫째, 너희들이 강림지로 선정한 곳이 어딘지 불어라.”
“그런 것 몰라.”
“둘째, 천강곡의 환자들을 어디로 납치해 갔는지도 불어라.”
“모른다니까.”
사비강이 피식 웃더니 여곤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일흔두 단계.”
여곤이 눈살을 구겼다.
“뭐?”
“일흔두 단계가 있지.”
“뭐가… 말이냐?”
“마계에서 고문할 때 사용하는 기술 말이다. 그 중에서 열 단계까지는 인간에게 적용한다. 보통 인간은 열 단계를 넘지 못하니까. 그만큼 고통이 심하거든.”
“흥! 웃기는군. 그딴 말에 본좌가 쫄 것 같으냐?”
“하급 마족의 경우에는 스무 단계까지 버틴다고 하더군. 그리고 중급은 서른 단계. 상급 마족의 경우는 마흔 단계. 최상급은 쉰 단계다.”
“개소리도 작작….”
“마왕조차도 일흔두 단계의 고문을 전부 버텨내지는 못한다고 하더군. 뭐 진실은 아직 알 수 없지만.”
“별 시답잖은….”
“그러니 힘내라. 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고 싶거든. 마침 네가 그렇게 독하다고 하니… 이왕이면 마지막 단계까지 꼭 버텨 주길 바란다.”
“이 미친….”
여곤은 마지막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비강의 표정에서 그 어떤 허세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그 순간 사비강은 명백한 진심을 담고 있었다. 아니, 모종의 기대까지 품고 있었다.
거기에 두 눈은 광기로 젖어 있는 게 아닌가?
여곤은 처음으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왜… 왜 두려운 거지? 어차피 고통이란 고통은 이미 익숙할 것인데…!’
가늘게 떠는 여곤을 향해 사비강이 천천히 손을 뻗어 왔다.
“자, 그럼 첫 번째 단계다.”
**
밖으로 나온 도비천이 맹가숙을 돌아보며 물었다.
“관주님이 알아내실 것 같수?”
“힘들 거다. 여곤이라는 놈. 보통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혹시라도 관주님이 열 받아서 죽여 버리지나 않을지 걱정이군.”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저 지독한 새끼가 입을 열거라곤 생각되지 않아.”
진조영도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고문을 하면서 오히려 약이 오르다니.
그렇게 세 사람이 한숨을 내쉬는데,
끼이이익… 철컥.
철문이 열리면서 사비강이 걸어 나왔다.
맹가숙과 두 사람이 얼른 다가가며 물었다.
“왜 벌써 나오십니까?”
“설마… 죽여 버리신 건….”
“그러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녀석 보통 놈이 아니라니까요. 이제 문초할 놈도 없으니 막막하게 됐군요.”
사비강이 이맛살을 구기며 되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강림지 알아냈다.”
“예?”
세 사람이 깜짝 놀라서 되묻자,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강림지와 천강곡 환자들이 어디로 납치당했는지 알아냈어. 곧 출정해야 할지도 모르니 준비해 둬라.”
“그걸 어떻게….”
“아, 안에 들어가서 폐기물은 치워 버리고. 삼 단계에서 저 모양이니 쯧….”
“폐기물…? 삼 단계…?”
사비강이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갔다.
남은 세 사람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후다닥 안으로 달려갔다.
“으윽! 냄새…!”
“이 새끼 똥까지 지렸잖아!”
“아우, 더러운 새끼!”
세 사람이 저마다 코를 막으며 소리쳤다.
다음 순간,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척 벌리고 말았다.
입에 게거품을 물고 널브러진 여곤이 부들부들 떨며 끝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저는 쓰레기입니다… 모든 걸 말했습니다… 저는 안정(安貞)에서 태어났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십삼 세에 마령교에 입교하였습니다. 본교 수뇌 직위인 옥면의 자리에 올라 어지간한 정보를 꿰고 있으며, 최근 선별한 강림지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강림지는 현재….”
주절주절. 주절주절.
“…잘못했습니다. 저는 쓰레기입니다. 재활용조차 안 되는 폐기물입니다. 소각되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모든 걸 말하겠습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여곤은 눈물까지 줄줄 흘리고 있었다.
맹가숙이 뺨을 씰룩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관주님은 이놈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
치르르르. 치르르르!
마칸의 꼬리에서 돋아난 가시들이 이따금씩 뱀이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흐느적흐느적 움직였다.
손잡이를 쥔 설서린이 서서히 공력을 불어넣자, 마칸의 꼬리에 화르륵, 불길이 일어났다.
곁에서 지켜보던 사비강이 말했다.
“이제 공력을 좀 더 불어넣어 보아라.”
설서린이 오른손에 공력을 집중했다.
다음 순간,
촤촤촤촤촤촤촤촤아악!
놀랍게도 채찍에 돋아났던 가시가 갑자기 절지곤충처럼 변하면서 자라나는 것이 아닌가?
‘헛!’
설서린은 흠칫 놀라면서도 손끝에서 전해지는 묘한 감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단해! 의지대로 마구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치르르르륵! 키리리리릭!
설서린이 춤을 추듯 마칸의 꼬리를 휘두르며 움직이자, 가시에서 자라난 절지곤충들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휘날렸다.
키리리리리릭!
어느 순간 절지곤충들은 칼날처럼 빳빳해지면서 사방을 내질러 갔고, 또 어느 순간에는 손잡이 쪽에서부터 자라 나와서 화살처럼 뻗어 나가기도 했다.
‘다수의 적을 상대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무기도 없겠어!’
그저 손잡이에 보기 좋은 구슬을 박아 넣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다른 무기가 되지 않았나?
마칸의 꼬리는 때론 칼날처럼 곧아지면서 빳빳해졌고, 때론 채찍처럼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녀의 움직임이 격해질수록 마칸의 꼬리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하며 허공을 종횡무진했다.
신수각주와 무랑도사가 함께 협업하여 만들었다더니, 그야말로 엄청난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설서린의 뺨에 새겨진 문신이 붉은 빛을 발했다.
촤아아아악!
마침내 그녀가 반원을 그리면서 바닥에 내려섰다.
휘리리리릭!
허공에서 꿈틀거리던 채찍이 그녀의 손으로 착 돌아와 감겼다.
“정말 대단해요. 이거라면 변화무쌍한 초식을 펼칠 수 있겠어요. 혹시 이건….”
설서린이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서방님이 제게 건네주는 사랑의 증표인가요?”
사비강이 그녀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며 대꾸했다.
“너라면 잘 다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마칸의 꼬리를 제어할 수 있으니. 하지만 흡혼충은 영혼을 장악하려는 성질이 강하니,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라.”
“물론이죠. 그런데 서방님… 한 마디만 해도 될까요?”
“안 돼.”
사비강이 돌아섰다.
설서린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한 마디 하겠다니까요!”
“싫다.”
“그래도 할래요! 서방님, 저 감동받았어요! 사랑해요!”
설서린이 와락 달려드는 순간,
“파이어 볼.”
화르르륵, 퍼엉!
사비강의 손바닥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생성되더니 설서린을 저만치 날려 보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