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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14화 (414/670)

# 414

귀환 마교관

414화

“하아, 사부님은 정녕 내가 필요 없으신 걸까?”

걸레질을 하던 추량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두 번이나 토벌대 구성에서 빠진 그였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함께 가서 사부님을 지켜드리겠다고 큰 소리쳤지만, 역시나 거절당했다.

“그럴 시간에 청소나 좀 해둬라. 방이 이게 뭐냐?”

그렇게 추량은 지금 관주실을 청소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마침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상심하지 마라. 나도 함께 가지 못했으니.”

“흥! 네놈과 내가 어디 같은 처지더냐? 너는 엄연히 내 후배! 나는 까마득한 선배다! 그러고 보니 너는 왜 청소를 하지 않는 거지? 선배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럼 쉬어라. 내가 나서지.”

“정말… 이냐?”

뜻밖에도 흑귀가 순순히 대답하자 추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음 순간 흑귀가 추량 앞에 귀신처럼 스르르 나타났다.

“내가 하지.”

“뭐… 그렇다면야…”

추량이 별 생각 없이 걸레를 건네다가 멈칫하고는 흑귀를 노려보았다.

“솔직히 말해 봐. 무슨 속셈이지?”

“속셈은. 나도 최근에 주군께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청소라도 하려는 것일 뿐. 알다시피 관주실에 설치되어 있던 결계를 없애 버리면서 많이 지저분해졌으니까. 내가 널 대신해서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 두면 만족하시겠지. 칭찬도 해주실 테고.”

순간 추량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그려졌다.

반들반들 정리된 관주실과 폭풍 칭찬을 받고 있는 흑귀의 모습이.

그리고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있을 자신의 처지까지.

사비강은 자신을 가리켜 말할 것이다.

“저 쓸모없는 녀석보다는 네가 훨씬 낫구나!”

“과찬이십니다. 단지 제가 여러모로 조금 나을 뿐입니다.”

그렇게 흑귀는 승자의 여유를 부릴 거고.

‘안 돼!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결국 추량이 걸레를 내밀다 말고는 날카롭게 반응했다.

“됐다. 내가 하지! 내가 청소의 귀재라는 걸 보여드리겠다! 결계가 있을 때보다 더 반들반들하게 청소해 놓겠어!”

“흐음. 뭐, 그렇다면야.”

어깨를 으쓱인 흑귀가 돌연 연기처럼 모습을 감췄다.

각오를 다진 추량은 다시 열정적으로 걸레질을 시작했다.

사비강의 폭풍 칭찬은 반드시 자신의 몫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지금 대연무장에서 비무를 한다는군.”

불쑥 흑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비무라니?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잠깐, 너 그럼 지금 밖에 나갔다 온 거냐?”

“뭐,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산책을 좀 하고 왔다.”

“이런 위아래 없는 놈 같으니라고! 선배가 뼈 빠지게 청소를 하는데 후배라는 놈이 허락도 없이 기어나가서 콧구멍에 바람을… 잠깐, 그런데 갑자기 웬 비무라는 거냐?”

“총관님이 맹에서 온 손님과 대연무장 단상에서 비무를 벌일 것 같은 분위기다.”

“헉! 그게 정말이야?”

그제야 추량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흑귀가 스르르 모습을 드러내더니 무심한 듯 말을 이었다.

“생도들은 물론, 교관들과 조교들까지 비무를 구경하겠다고 모여든 상황이지. 물론 나도 보러 갈 거다.”

“누구 마음대로 간다는 거냐? 내가 다녀올 테니 너는 청소하고 있어. 총관님의 비무라니…! 음? 흑귀? 이봐. 이놈아! 벌써 간 거냐?”

추량이 고함을 내질렀지만 흑귀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잠시 갈등하던 그가 걸레를 내팽개치고는 문을 박차고 달렸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갑자기 웬 비무를…?’

그가 대연무장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교관들과 조교들마저 모여들어 단상 위에 선 매설란과 이충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이잖아?’

혹시라도 흑귀가 자신을 놀리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도 했는데….

휘리리링.

얇은 연검이 바람결에 하늘하늘 움직였다.

아직 정식으로 기수식을 취한 것은 아니지만, 매설란의 전신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는 생각보다 매서웠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추량도 느낄 정도였으니까.

추량은 사람들을 헤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우연찮게 그는 맹가숙과 유송령, 설서린 등과 나란히 서게 됐다.

세 사람이 두런거리며 나누는 대화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총관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본 적은 없었군.”

“관주님의 정인이라니… 누가 거기까지 의심하고 따지겠어?”

맹가숙의 말에 유송령이 대꾸했다.

그러자 그 곁에 있던 설서린이 발끈했다.

“정인이라니? 내 서방을 누구 마음대로 정인이라는 거야?”

맹가숙과 유송령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설서린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서방님 얼굴에 먹칠을 하면 총관이든 뭐든 용서하지 않겠어. 지기만 해봐.”

‘허어…’

가만히 지켜보던 추량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마침 매설란은 이충을 향해 말을 건네고 있었다.

“뭐하는 거죠? 검 안 뽑아요?”

“아… 예, 뭐…”

이충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엉거주춤 검을 뽑아 들었다.

사실 그는 이 상황이 조금 얼떨떨했다.

당연히 비무를 회피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곳에 오기 전 매설란에 대해 조사한 바가 있었다.

조사 내용만 본다면, 매설란은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였다.

사비강 덕분에 운 좋게 감찰총국주 자리에 올라서 이미 닦아 놓은 길을 편안하게 걸어간 인물일 뿐이었다.

정도 무인으로서 떳떳하게 내세우기도 힘든 매혼섭공을 익혔고, 연검의 실력은 그저 그런 수준.

한데 그런 여자가 자신과 비무를 벌이겠다니.

‘이년이 감투 좀 쓰더니 쳐 돌았나?’

이충은 자신을 당당하게 쳐다보는 매설란을 보며 내심 이를 갈았다.

도대체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으면 이리도 당당하게 나온단 말인가?

‘어디 두고 보자. 네년의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생각을 갈무리한 이충이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게도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쪽이 패배를 시인할 때까지 하는 게 어떻습니까?”

이 정도 되면 노골적인 비무 신청이었다.

말을 꺼내는 이충의 표정 역시 매우 도발적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매설란은 여전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좋아요. 대신 전 좀 엄하게 가르치는 편이에요. 가혹하다고 생각할 만큼. 그래도 괜찮으실까요?”

“물론입니다. 저 역시 배울 때만큼은 실전처럼 생각합니다.”

“알겠어요. 제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마음의 상처로 남지 않길 바랍니다.”

‘이년이 갈수록 가관이군.’

이충이 속생각을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시지요.”

이충이 천천히 기수식을 취해 갔다.

매설란이 뭔가를 믿는 것 같으니, 방심하지 않고 먼저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연히 선공은 양보해 주시겠지요?”

이충이 뻔뻔하게 질문하자, 매설란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시지요.”

그녀는 시종 여유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떨렸다.

하지만 두려움이나 긴장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의 떨림은 놀랍게도 모종의 기대심리에 가까웠다.

‘이상하게 전혀 두렵지 않아.’

상대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오늘 이충을 보았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상대가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는 것을.

아니, 어쩌면 두 수 이상 아래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맹의 본단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분명히 성취가 있었던 거야!’

그 잘난 사비강도 인정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얼마나 성장했을까?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이충은 실전에서 구르고 구른 무인이었다.

정사대전에서도, 서화평원대전에서도 악착같이 살아남으며 적을 벤 무인이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무인은 연무장에서나 무공을 익힌 자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이충은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자세를 잡은 다음 매설란을 노려보았다.

‘흥! 이년이 보자보자 하니까… 오냐, 내 오늘 네년의 옷을 이 검 한 자루로 모조리 벗겨 주마.’

그러는 사이 매설란도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다음 순간,

‘헉!’

이충은 눈을 부릅뜨고는 매설란을 빤히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매설란의 기도가 다시 한 번 변했다.

살기?

아니다.

굳이 따지면 투기에 가까운데 살기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

숨이 턱 막힐 정도.

게다가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는 그녀의 두 눈은 차가운 뱀을 보는 것만 같다.

휘리링. 휘리링.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연검이 아름다운 공명음을 흘려냈다.

마치 방울뱀을 보는 것만 같다.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뱀.

그런데 그 뱀 한 마리가 어느 순간 두 마리에서 세 마리로 늘어나는 것만 같다.

별다른 움직임을 보인 것도 아닌데, 그 흔들림이 굉장히 묘하다.

눈이 어지럽다.

‘사술…인가?’

잠깐 마음이 흔들렸던 이충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길게 끌지 않는다!’

마음을 다잡은 그가 순간 바닥을 차며 튀어나갔다.

“이여업!”

쒸에에에엑!

과연 그의 검초는 매서웠다.

검강이나 검기를 사용한 것도 아닌데, 마치 검 한 자루가 수 척이나 자라난 것처럼 뻗어 갔다.

‘죽림일광(竹林日光)’이라는 초식이었다.

그가 사사한 문파의 독문무공인 죽림검법(竹林劍法)의 첫 번째 초식이기도 했다.

오로지 쾌검과 정확도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엄청나게 빠르잖아!’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취리리리릿!

매설란의 연검이 허공에서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이충의 검을 휘어 감는 것이 아닌가?

찰나지간에 검신을 휘감은 연검이 그대로 이충의 손목을 찍으려는 순간,

‘이익…!’

당황한 이충이 얼른 죽림검법의 삼초식을 펼쳤다.

까강!

쉭쉭쉭!

연검이 튕겨 나가는 것과 동시에 이충의 검이 수십 자루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제삼초식 죽림폭우(竹林暴雨)였다.

날카로운 검신이 빛살을 뿌리며 어지럽게 날아드니 어느 것이 검인지, 어느 것이 허상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그야말로 대나무 숲에 폭우가 쏟아지는 모습과 닮았다.

하지만 연검은 여전히 뱀처럼 유연했다.

취리리리릿!

재빠른 뱀이 대나무 사이를 유영하듯 이리저리 휘감으며 잘도 휘젓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금속성이 울리면서 이충의 검이 튕겨 나가곤 했다.

따당! 땅!

‘크읏!’

이충이 어금니를 까득 갈았다.

‘뭐, 이리 강한…!’

매설란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사실 비무가 시작되자마자 단번에 그녀의 옷자락을 죄다 찢어내려고 했다.

수많은 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걸쳐 입은 옷이 모조리 벗겨지는 것만큼 치욕적인 모습도 없으리라.

한데 지금은 그녀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가?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는데, 매설란의 표정에는 시종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이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사실 매설란은 지금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이제 확실하구나.’

지금까지는 홀로 수련했지만, 이렇게 상대를 두고 비무를 해보니 명확하게 와 닿았다.

‘성취가 있었다!’

홀로 수련할 때보다도 더욱 와 닿는 것은 또 있었다.

‘왼손이 허전해.’

이전에는 왼손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모든 신경이 연검을 쥔 오른손에만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제멋대로 날뛰는 뱀 한 마리를 다루지 못해서 식은땀을 흘려야 했으니까.

당연하겠지만 뱀이 사나워지면 사나워질수록 다루기가 어려웠다.

한데 이제는 마치 뱀과 친구가 된 것만 같다. 아니, 뱀이 분신 같다고나 할까?

자신의 의지대로 정확하게 움직여 주니 시종 여유가 넘친다.

그러다 보니 왼손의 허전함이 느껴진 것이다.

한 마리가 더 있다면….

두 마리의 뱀을 자유롭게 다루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사비강의 말대로 이젠 때가 된 게 분명하다.

“이익…!”

이충은 비무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일그러진 기합성을 터뜨리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순간 그에게서 살기가 우러나왔다.

하지만 그 역시 실수를 깨달은 것인지 얼른 살기를 지우고는 투기만 드러냈다.

‘안 되겠네. 제대로 혼을 내주지 않으면….’

매설란이 차갑게 웃었다.

그 웃음이 마치 비웃는 것처럼 보여, 이충의 눈이 뒤집혔다.

“어디 이것도 받아 보시오!”

버럭 고함을 내지른 이충이 죽림검법의 고난도 초식인 죽엽칠환(竹葉七換)을 펼쳤다.

샤샤샥! 쉭쉭!

그의 검이 여기저기 번쩍거리며 어지럽게 날아들었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

마치 장검 한 자루가 아닌, 단검 여러 자루가 어지럽게 쏟아지는 듯했다.

지켜보던 생도들 모두가 입을 쩍 벌리고 감탄을 터뜨렸다.

“엄청난 초식이군.”

“과연 총관님이 당해낼 수 있으려나?”

추량 옆에서 지켜보던 맹가숙과 유송령도 마찬가지였다.

“저건 어렵겠는데.”

“쳇, 저런 놈에게 져서는 안 되는데.”

어느새 매설란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잊은 채 그들은 비무에만 집중했다.

하나 이 순간 매설란만큼은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아니, 그녀가 다루는 뱀이 먼저 움직였다고 하는 편이 더 와 닿는 표현이리라.

타닷!

매설란이 바닥을 차는 것과 동시에 뱀은 그대로 죽엽들 사이를 헤집으며 나아가 이충의 전신을 휘어 감으며 타고 올라갔다.

취리리리릿!

“……!”

이충은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촤아아악!

두 사람이 서로를 지나치면서 등을 지고 섰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저마다 침을 꿀꺽 삼키고는 숨을 죽였다.

한참 후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이 천천히 돌아섰다.

찰나,

스륵. 스르르륵.

이충의 장삼이 갈가리 잘려 나가더니 종잇조각처럼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이충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되고 말았다.

매설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하더니,

“형편없네.”

냉랭하게 튀어나온 한 마디.

그것이 실력을 두고 하는 말인지, 다른 것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애매했다.

다만 이를 지켜보던 추량은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야만 했다.

“우와아아!”

“대단하다!”

“총관님의 무공 수위가 저 정도일 줄이야!”

“굉장하다!”

정사를 막론하고 교관들과 조교, 생도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추량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보이십니까? 총관님. 지금 멸마관이 하나로 뭉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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