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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15화 (415/670)

# 415

귀환 마교관

415화

“내가 없는 사이 한바탕 크게 저질렀다지?”

사비강의 말에 매설란이 피식 웃었다.

“저지르긴. 아직 당신에 비하면 멀었지.”

“무슨 소리를. 나는 그 정도로 상대에게 망신을 주진 않아.”

그러자 곁에 서 있던 추량이 멍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헐.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럼?”

“아뇨. 제가 아무리 사부님을 존경하지만 방금 하신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내가 그 정도로 망신을 준단 말이야?”

“더 심할 때도 많지요!”

“이해가 안 되는군.”

사비강이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자 추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이지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이렇게도 힘든 거군요. 그보다 사부님.”

“뭐냐?”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까?”

추량이 눈을 반짝이며 어깨를 마구 으쓱였다.

‘보십시오. 이 반짝반짝 윤기 나는 관주실을. 제가 열과 성을 다해서 청소했습니다. 거기에 일부러 화분까지 가득 들여놓았잖아요.’

하지만 사비강은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만 갸웃거렸다.

“어깨에 담 걸렸냐? 왜 그렇게 자꾸 어깨를 들썩이는 거냐?”

“그게 아니라… 관주실이 좀 평소와 다른 것 같지 않습니까?”

“흐음. 글쎄. 모르겠는데?”

‘으윽. 어쩜 이렇게 무심할 수가…!’

추량이 낙담한 표정을 짓는데, 문득 매설란이 손을 짝 마주쳤다.

“아, 알겠다!”

“네! 자, 말씀해 보십시오! 뭐가 다르지요?”

“바로 저거!”

매설란의 손가락이 관주실 입구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추량이 미리 가져다 놓은 화분이 놓여 있었는데, 형형색색의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추량이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바로 그겁니다! 어서 말하세요. 저 둔한 사부님이 듣고 감탄하시도록!’

마침내 매설란이 말했다.

“문이 열려 있군요.”

“그렇습…! 네?”

“늘 닫혀 있었는데 오늘은 열려 있네요.”

“에… 그거 말고….”

“네? 그거 말고 다른 점이 또 있나요?”

매설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보자, 추량이 입을 딱 벌렸다.

‘아주 천생연분이구만!’

그러는 동안 사비강이 말을 돌렸다.

“어쨌든 내가 없는 동안 수고했어. 그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좋은데?”

“맞습니다. 지금 모든 교관들과 조교, 생도들이 하나로 똘똘 뭉쳤습니다.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게 생겼다고나 할까요?”

추량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충이 매설란에게 망신을 주기 위해 시도했던 비무가 오히려 멸마관을 단합시킨 계기가 된 것이다.

한데 사비강이 고개를 저었다.

“그 분위기를 말하는 게 아니야.”

“예? 그럼요?”

사비강이 넌지시 매설란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우리 둘 말이야. 오랜만에 분위기 좋잖아?”

추량이 부루퉁한 표정이 되어서는 흑귀에게 전음을 흘렸다.

[어이, 후배. 저거 분명히 모태독신인 우리 놀리려고 저러시는 거 맞지?]

[그런 것 같다.]

흑귀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편 사비강은 매설란의 허리춤으로 시선을 두었다.

“연검이 하나 더 생겼군.”

“이번 비무를 하면서 확실히 깨달았어. 사사검법을 대성하려면 연검 한 자루가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을.”

“때가 되긴 했지. 한 번 봐도 될까?”

스르르릉…!

얇은 연검이 뽑혀 나왔다.

연검을 건네받은 사비강이 가볍게 휘두르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휘리링. 휘리링…!

예기를 품은 연검이 연신 꿈틀거렸다.

“나쁘진 않지만… 특별할 것도 없군.”

“저자에서 산 거야. 그래도 무한에서 제일 비싼 검을 고르고 고른 거야. 어차피 명장은 병장기를 탓하지 않는 법이니까.”

그때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열린 문을 통해 누군가 들어서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돌아간 그곳에는 신수각주 조신량이 검갑을 들고 서 있었다.

추량이 그를 알아보고는 물었다.

“신수각주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조신량이 사비강과 매설란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저벅저벅 걸어와서는 탁상 위에 검갑을 척 내려놓았다.

모두가 그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윽고 조신량이 검갑의 덮개를 열자, 그 안에 연검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신량이 그 검을 조심스럽게 받쳐 들고는 매설란에게 내밀었다.

“총관님께 드립니다.”

“제게요?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명장일수록 장비가 좋아야 합니다. 하수가 좋은 장비를 들고 다니면 돼지 목의 진주에 지나지 않지만, 명장은 다르지요. 그 가치를 제대로 쓸 줄 알 테니까요.”

“제가 그 정도로….”

“저도 총관님의 비무를 지켜보았습니다. 굉장히 감명이 깊었습니다. 총관님이 멸마관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과정을 보면서 저 역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더니 조신량의 시선이 매설란의 연검으로 향했다.

“제가 무공은 잘 모르나, 쇠붙이에 대해서는 좀 압니다. 저 녀석이 홀로 노는 모습이 무척 외로워 보였지요. 받으십시오. 제가 총관님께 표하는 경의입니다.”

조신량이 다시 한 번 검을 내밀자, 매설란이 벅찬 기분을 느끼며 받아들었다.

“고마워요. 정말 잘 쓸게요.”

지켜보던 사비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됐군.”

“당장 가서 시험해 보고 싶어.”

“그전에 내가 좀 봐도 될까?”

매설란의 시선이 조신량에게 향했다.

“이제는 총관님 것입니다.”

조신량의 부드러운 대답에 매설란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잠깐은 허락하지.”

“황송하군.”

쉬리리리링.

종잇장처럼 얇은 검이 검집에서 흔들리며 뽑혀 나왔다.

다소 거뭇한 검신이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물건처럼 보였다.

“확실히 좋은 검이다.”

휘리리링! 취리리링!

연검이 마구 꿈틀거리며 허공을 수놓았다.

한 차례 칼부림을 끝낸 사비강이 제 팔뚝을 스윽 그어 보았다.

선혈이 생기는데….

“……!”

사비강이 미간을 슬쩍 구겼다.

치이이익…!

팔뚝에 화상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본 조신량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다크번의 날개 뼈를 갈아서 조합했지요.”

“대단해요. 얼른 나도 이걸 들고 사사검법을 펼쳐보고 싶어.”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네주었다.

“조심해.”

“걱정 마.”

매설란이 연검을 받자마자 휙 돌아서더니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녀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아뜨뜨…! 크읍…!”

사비강이 베인 팔뚝을 움켜쥐고는 열심히 바람을 훅훅 불기 시작했다.

“제길! 다크번의 뼈를 갈아 넣었다고 미리 말 좀 해줬어야 할 것 아니오!”

“갑자기 자기 살을 벨 줄 알았나?”

“량! 뭐하느냐? 어서 포션…!”

“아, 예.”

추량이 얼른 힐링 포션을 찾아 건네주었다.

치이이익…!

포션이 상처 부위에 닿자 부글부글 거품이 끓어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가라앉기 시작했다.

“휴우.”

사비강이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자, 조신량이 코웃음을 쳤다.

“엄살은….”

“고맙소.”

“뭐가 말인가?”

“연검 말이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저런 검은 부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닐세. 내 마음이 동해야 만들 수 있는 게지. 그녀는 저 검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네.”

“어쨌든 고맙소.”

사비강이 씨익 웃음 지었다.

**

척!

특정한 지역을 표기한 지도 한 장이 탁자 위에 놓였다.

무랑의 제자이자, 하오문의 총관인 정류광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보시오. 여기 소환지 위치와 상세 정보가 적혀 있소. 소환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건 아시겠지?”

“알고 있네.”

마주 앉은 사내가 대답하자, 정류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설명해드리지. 우선은 소환지를 공략하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마물들이 그대로 재생되는 곳이 있소. 그곳을 ‘재생지’라고 부르지. 이곳은 그 중 한 곳이오. 마공석이 나올 확률이 꽤 높은 곳이라더군. 난이도는 중급이오.”

“알겠네. 여기 잔금일세.”

사내가 묵직한 돈주머니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다음에도 잘 부탁하겠네.”

“뭐, 수지만 맞는다면야 이 정도 정보는 언제든 드릴 수 있소.”

정류광이 웃으며 손을 뻗어 돈주머니를 들었다.

사내가 정류광의 팔목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원래 문신이 있었던가?”

“아, 이거 말이오? 원래 생겼다가 말았다가 하는 거요. 신경 쓸 것 없소.”

‘생겼다가 말았다가? 세상에 그런 문신도 있나?’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더는 묻지 않았다.

사내가 지도를 들고 방을 나가자, 정류광이 얼른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문신을 보았다.

그 문신은 사부인 무랑이 직접 그의 몸에 새겨 준 것으로, 급한 용무가 있을 때 무랑은 정류광에게 문신을 통해 연락을 하곤 했던 것이다.

놀랍게도 문신이 스르르 움직이더니 묘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정류광은 그 그림 속에 숨겨진 글자를 읽었다.

“멸마관에 한 번 들러야겠다.”

**

“이젠 직접 나서시겠군요.”

자면인이 차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마주 앉은 금면인을 바라보았다.

금면인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야지. 결국 여기까지 왔으니.”

그가 슬쩍 일그러뜨린 눈으로 찻잔에 담긴 찻물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동면이 죽다니.

게다가 혈수오마까지 전멸을 당할 줄이야.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이 나섰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 아이는?”

“백면이 잘 돌보고 있습니다.”

금면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자면인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이번에 그 아이를 이용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지.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 이용할 생각이네. 그 아이뿐만 아니라, 은면도 동시에 움직여야 할 테지.”

“은면이 알면 좋아하진 않겠군요.”

“어쩔 수 없지. 그러게 진작 그 소환지에서 동귀어진이라도 했더라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것을.”

“하면 멸마관은 은면에게 전적으로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순 없지. 옥면(玉面)을 보낼 생각이네.”

“후후, 역시 그렇군요. 이 기회에 아예 근심의 뿌리를 제거해 버릴 생각이시군요.”

“그래. 늦어도 너무 늦은 게야.”

“은면이 실패하고 사비강이 실종되었을 때는 동면이 아니라, 제가 가야 했습니다.”

자면인의 말에 금면인은 부정하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정말 그랬어야 했다고 생각했기에.

실제로 무공 실력만 따지자면 동면인보다 자면인이 한 수 위였다.

다만 무위를 제외한 다른 부분들에서 동면인의 신뢰도가 높아 더 높은 지위를 가졌을 뿐.

금면인이 차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자면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해서, 이번에는 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전에 자네가 먼저 해줘야 할 일이 따로 있네.”

“뭡니까?”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그 하오문의 종자를 그냥 내버려 두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었어.”

“‘정류광’이라는 자 말이군요.”

“그래. 별 문제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를 생각해서라도 그자를….”

“제거하지요.”

“혈살팔귀(血殺八鬼)를 붙여 주겠네.”

자면인의 눈동자가 자못 커졌다.

혈살팔귀라면 혈수오마보다도 훨씬 강한 자들이었다.

하나하나가 초절정에 이른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로지 피와 죽음만이 남는다.

고작 하오문의 총관 하나를 죽이려고 자신이 나서는 것도 과하다 싶은데, 혈살팔귀까지 붙이겠다니?

자면인이 한 마디 하려고 하자,

“자네를 무시하는 게 아닐세. 나 또한 자네의 무공만큼은 인정하고 있네. 다만, 여러 번의 실패로 인해 돌다리도 두드려 보려는 심정일 뿐.”

“하지만….”

“그들에게 견식의 기회를 준다는 셈 치세나.”

“흠. 알겠습니다. 당장 가서 정류광 그자의 목을 가져오지요.”

금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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