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3
귀환 마교관
413화
‘놀랍군…’
차재강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단순해 보이는 진법이 실제로는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그저 역할을 삼등분하여 단순하게 싸우는 방식이라고만 생각했다.
한데 지금 보니 저들의 움직임이 정교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먼저 투입된 방어조가 박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새로운 개념의 방어술이었다.
곡보옥의 경우는 워낙 신체가 단단하게 단련되어 예외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생도들의 경우는 서로가 서로에게 공력을 불어넣으며 방어하기에 최적화 된 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즉, 흩어져 공격을 한 다음에는 곧바로 이인 일조 혹은 삼인 일조로 뭉치면서 특정한 사람에게 공력을 불어넣는다.
일순간 공력이 상승한 자는 박의 공격을 무리 없이 막아내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공격조가 기습을 하게 되는데, 이때 그들의 움직임을 보면 마치 하나의 유기체와 같았다.
방어조의 움직임만 해도 서로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춰야만 방어에 성공할 수 있다.
한데 여기에 공격조가 투입되면 아무래도 동선이 꼬이게 마련인데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치유조는 또 어떤가?
부상자가 발생했을 시에 갑자기 그들이 난입한다면, 먼저 투입된 자들의 손발이 어지러워질 수도 있다.
한데 이들 역시 철저하게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저들 모두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게 아니다. 정해진 보법으로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
정말이지 겉보기에는 이보다 단순할 수 없다.
하지만 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무랑초환진은 굉장히 까다롭고 정교한 진법이었다.
촤악! 촤촤촤아악!
슈슈슈슈슈슉!
칼부림이 난무하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화살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어지러운 전투다.
하지만 무랑초환진을 위에서 내려다보게 된다면, 매우 유기적이며 규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단순히 진열만 다른 게 아니군!’
보통 생각하기에 진법이라 하면, 무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도열하여 어떻게 움직이느냐만 떠올릴 것이다.
하나 무랑초환진은 그보다 훨씬 정교하고 복잡했다.
한 명 한 명에게 정해진 보법이 있고 이동하는 경로가 있듯이, 각각의 역할과 임무에 따라 정해진 기의 운용이 다르다.
이 모든 것은 각 조의 수장이라고 볼 수 있는 교관이나 조교들이 판단하여 지시하게 되는데, 말보다는 행동으로 먼저 표현하게 된다.
가령, 곡보옥이 기도를 삼 할 정도 끌어올리면 그걸 눈치 챈 생도들이 저마다 정해진 방식대로 내공을 운용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 따라 공격조의 움직임도 달라진다.
그들이 너무 강하게 공격을 하게 되면 박의 신경을 끌게 되므로, 적당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곡보옥이 이끄는 방어조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옹기승과 단리정 역시 기도를 달리하여 다른 경로로 접근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치유조 역시 아무 때나 달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방어조와 공격조가 자연스럽게 길을 열어 주는 순간에 투입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사비강이 이끄는 토벌대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가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겉은 단순하나 속은 알찬 법. 그것이 만물의 공통점이지.”
무랑이 한 말이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복잡한 진법일수록 머리보다는 몸으로 이해해야 하네. 하나… 이 정도의 정교함을 생도들이 얼마나 빨리 몸으로 익힐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비강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노라 했다.
놀랍게도 생도들은 사비강의 말대로 매우 빠른 시기에 진법을 이해한 후 습득했다.
그건 바로 매일 같이 벌어진 무차별 생존 비무 덕분이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 같았던 그 무차별 비무가 무랑초환진에 적응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매 순간 같은 반 동료들과 서로 죽기 직전까지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기감은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워진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의 기도와 변화를 빠르게 파악해야 했을 테니.
즉, 눈치가 빠른 자가 오랫동안 버티는 법.
그러다 보니 무랑초환진에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쿠르러러렁!
박의 포효에 사비강은 잠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박은 무랑초환진에 갇힌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 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몸을 물린 천도문도들은 그저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엄청나군!”
“그러게 말이야. 처음에는 단순한 진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엄청나게 정교하잖아?”
“도대체 저런 움직임을 보이려면 얼마나 훈련을 해야 하는 거지?”
“괜히 멸마관이 아니었어….”
그들은 내심 멸마관을 무시했던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장기탁과 차재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상황이지만, 멸마관의 뛰어난 기량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쿠아아아아!
마침내 박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육중한 소음과 함께 박이 넘어갔다.
토벌대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방어조는 여전히 긴장한 채로 박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고, 공격조는 최후의 일격을 펼치고 있었다.
촤아악! 촤아아아악!
박의 배가 갈라지고, 목이 절단되었다.
비로소 완전한 승리.
박의 몸에서 붉은 빛 무리가 솟아오르더니 이내 생명이 다했음을 알리는 듯 점차 사라졌다.
사비강이 멍하니 앉아 있는 차재강을 돌아보았다.
“기여도에 따라 전리품은 본관이 챙기도록 하겠소.”
“그러…시오.”
차재강이 가까스로 대답했다.
사비강이 토벌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발톱과 깃털을 뽑아라.”
박의 발톱은 병장기로 만들기에 좋고, 깃털은 공포심을 잊어버리게 해주는 특별한 효력이 있다.
비록 마계의 마물은 아니지만, 무랑으로부터 산해경의 환수에 대해 배운 것이 많았다.
토벌대가 일제히 대답하며 박의 깃털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
“하앗!”
“이여업!”
우렁찬 기합성이 대연무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이번 토벌대에 차출되지 않은 일급반 생도들과 이급반 생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날카로운 기합성을 내지르며 수련하는 중이었다.
여전히 무차별 비무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오늘은 보름마다 한 번씩 진행되는 합동 수련이었다.
멸마관이 소환지를 토벌하는 목적으로 세워지긴 했으나, 궁극적인 목적은 마족에 대항하여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군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때문에 합동 수련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대에 합동 수련을 담당한 조교는 바로 묵양제였다.
그때 마침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군요.”
묵양제가 돌아보니 정도맹에 있을 때 가깝게 알고 지내던 흑무단주(黑霧團主) 이충(李忠)이 빙그레 웃으며 서 있는 게 아닌가?
묵양제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맞이했다.
“아니, 흑무단주가 여기에 어쩐 일인가?”
“장로회주님이 보내셨습니다.”
흑무단은 무소속에 별개의 조직이나 다름없었지만, 주로 장로회와 가까운 편이었다.
장로회주가 보냈다는 말에 묵양제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회주님께서?”
“회주님께서는 아직 당주님께 기대를 걸고 계십니다.”
묵양제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게 무슨 말인가?”
“모르시겠습니까? 당주님이 이곳에서 조교로 남아 계신 것은 아직 당주님께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일종의 위장술이라고 보십시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사비강, 그자도 사람이니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때를 노리시는 겁니다.”
묵양제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라고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닐세.”
“한데…?”
“기회를 엿보았지만 쉽지 않더군.”
묵양제는 반묘에게 물렸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목덜미가 따가운 듯했다.
이충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찾아보면 기회는 더 많을 겁니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요.”
“만들다니?”
이충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저만치에서는 매설란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벼운 경장 차림이었는데, 화려하지 않았음에도 수려한 외모에서 절로 빛이 나는 듯했다.
“정말 아름다운 분이시군요.”
이충이 어딘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자, 묵양제가 이맛살을 슬쩍 찌푸렸다.
자신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돌리는 것 같아서 내심 기분이 언짢았던 것이다.
묵양제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이충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름다운 꽃은 꺾어 버리고 싶지 않습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러는 사이 매설란이 두 사람이 있는 단상으로 다가왔다.
매설란이 이충을 보며 말을 건넸다.
“여기 계셨군요. 맹에서 손님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객청으로 갔는데, 거기 계시지 않아서 한참 찾았습니다.”
“이런, 제가 멋대로 돌아다녔군요. 죄송합니다. 생도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이렇게 나와 봤습니다.”
“그러셨군요.”
“정말이지 대단합니다. 놀랍습니다. 이런 투지와 열정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러더니 문득 매설란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생도들을 이렇게까지 훌륭하게 가르칠 수 있다는 건 총관님이나 교관님들의 역량이 대단한 것 아니겠습니까?”
“과찬이십니다.”
“총관님께선 겸손하시군요. 이왕 말이 나왔으니 저도 한 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잠깐 눈살을 구긴 매설란이 이내 표정을 풀며 대답했다.
“관주님이 오시면 말씀드려보지요.”
“아뇨. 전 지금 당장 총관님께 가르침을 부탁드리는 겁니다. 제가 성격이 좀 급해서 말입니다. 하하.”
이쯤 되자 매설란 역시 표정이 굳었다.
말이 좋아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지, 실은 비무를 청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매설란이 정중히 사양하려는데, 이충이 얼른 말을 가로질렀다.
“부디 매 총관님께서는 제 간곡한 청을 물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총관님이 제게 가르침을 내려 주신다면, 여기 있는 모든 생도들에게도 견식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포권을 한 채 고개를 푹 숙인 이충의 입매는 웃고 있었다.
이쯤 되자 묵양제는 충분히 이충의 의도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생도들이 모두 보는 자리에서 매 총관에게 망신을 줄 속셈이구나.’
하긴 매설란의 무공 수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모든 논란의 중심은 사비강이었기에.
일전에도 매설란은 남운평과 비무를 펼치기 직전에 사비강이 나서면서 넘어가지 않았던가?
그러다 보니 매설란의 무공 수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다만, 총관이라는 위치에 있는 만큼 누구도 함부로 의구심을 제기하지 못했을 뿐.
만약 매설란이 이충에게 손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한다면?
그녀의 자질에 대한 논란이 일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확실히 이충은 간사하구나. 이렇게 노골적으로 매 총관을 궁지에 몰아넣다니.’
이충이 조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혹시 지켜보는 생도들이 있어 부담되시는지요?”
묵양제는 지금 바로 자신이 나설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허, 이 단주도 참. 매 총관님이 부담스러울 게 뭐가 있겠나? 무공 수위가 자네보다 약한 것도 아닐 진데.”
“하하. 하긴 그렇군요. 하면 역시 한 수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이충이 내심 조소했다.
‘어쩔 거지? 내게 망신을 당하거나, 비무를 회피한 겁쟁이로 남거나. 선택하라고.’
그때 매설란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좋아요. 그리 원하신다면.”
“예?”
이충이 고개를 들어 묻자, 매설란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그리 원하신다니 한 수 가르쳐드리지요.”
매설란이 씨익 웃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나 왠지 점점 그 사람 닮아가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