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04화 (404/670)

# 404

귀환 마교관

404화

한바탕 소란이 정리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의신각에서 각주가 직접 달려와 부상자들을 살피고, 조적상이 완전히 의식을 차리고 나서야 다시 회의가 진행되었다.

자신만만하게 나섰던 조적상은 차마 고개를 들지도 못했고, 다른 수뇌 인사들 역시 유구무언이었다.

이걸로 사비강은 이들에게 소환지의 위험성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알린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정도맹이 나서서 소환지 토벌을 금지한다고 해도 중원의 모든 지역을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 누군가는 주변의 이목을 속여 몰래 토벌대를 구성해서 일확천금을 노릴 게 분명했다.

이미 소문은 부풀대로 부풀어 있었다. 소환지에 들어갔다가 운만 좋으면 엄청난 보물을 얻어 올 수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돌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소환지가 매우 위험한 곳이라기보다는 마치 보물창고쯤 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이런 마당에 정도맹에서 무작정 출입을 금지한다면 반발할 자들도 많을 것이고, 따르지 않을 문파도 많으리라.

그러니 사파 무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혈사련이 그들을 관리한다지만, 명문 정파도 믿지 못할 세상에 그들을 어찌 믿겠나?

그러니 애초에 지켜지지도 않을 금지령보다는 이참에 제대로 된 질서와 규율을 만드는 것이 낫다.

그래서 사비강은 멸마관에서 미리 준비해 온 서류를 맹주와 수뇌 인사들에게 내밀었다.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모든 소환지는 정도맹에서 관리한다.

정사를 막론하고 이 규칙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

둘째, 각지에서 소환지가 발견될 때마다 무조건 정도맹에 신고해야 하며, 이때 맹은 관리단을 파견하여 등급을 파악한 후 공표한다.

셋째, 일반적인 소환지는 관리사의 허가를 받으면 누구든 사냥할 수 있으나, 제단이 있거나 석실이 있는 소환지는 높은 등급으로 분류해 맹의 허락 하에만 토벌이 가능하다.

넷째, 소환지 사냥에 나선 토벌대가 전멸했을 시에는 반드시 맹에 보고하고, 멸마관의 도움을 받는다.

이상의 내용을 찬찬히 훑어보던 수뇌 인사들 중 심지황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면 관리단은 누가 맡는 거요?”

“아무래도 소환지에 대해서 잘 아는 자가 맡아야 할 겁니다. 그리고 지금 저보다 소환지에 대해서 잘 아는 자도 없지요. 해서 제게 교육 받은 자들이 맡게 될 겁니다.”

수뇌 인사들이 다시 술렁거렸다.

몇몇 사람들은 ‘소환지를 독점하겠다는 처사가 아니냐’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노골적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모두 이미 조적상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았기에 쉽게 나설 수가 없었다.

결국 욱청풍이 다시 나섰다.

“한데 소환지 등급을 어떻게 판단한다는 거요?”

그 말에 사비강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비취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돌.

수뇌 인사들이 그 신묘한 빛의 돌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공석’이라는 겁니다. 이걸 잘게 부순 다음 그 가루를 이용해서 특별한 장치를 만들면 던전… 아니, 소환지에 들어가지 않아도 등급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직접 들어가서 확인하는 것보다는 정확도가 떨어지지만, 꽤나 유용한 방법이 될 겁니다.”

“그 장치를 어떻게….”

“현재 본관 신수각에서 만드는 중입니다.”

“그럼 멸마관은 마령교에 대해서는 손 놓고 있을 작정이오?”

“물론 마령교 본거지를 추적하는 일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다만 사안이 급박하니 소환지에 대한 건부터 정리를 하자는 거지요.”

하나하나 빈 틈 없는 대답에 욱청풍도 더는 할 말이 없어졌다.

이번엔 구윤이 물었다.

“하면 소환지 관리단으로 사 관주께서 염두에 둔 자들이 있습니까?”

“물론이오.”

말을 마친 사비강이 허공에 대고 말했다.

“인사드려라.”

그러자 시커먼 천장 어디선가 그림자가 뚝 떨어졌다.

두 사람이었는데, 바로 귀영단주 웅패와 일영인 홍염이었다.

“저들은 누구요?”

심지황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애초에 사비강의 호신위라고 짐작했던 것과 달리 웅패와 홍염이 입을 열며 대답했다.

“귀영단주 웅패입니다.”

“귀영단의 일영, 홍염입니다.”

“귀영단?”

“제가 개인적으로 만든 조직입니다.”

사비강이 끼어들며 대답했다.

심지황이 이맛살을 더욱 찌푸리며 물었다.

“사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안 될 이유가 있습니까?”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어째서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고….”

“사실 귀영단은 감찰국에 있을 때 제가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거느린 조직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분들에게 귀영단의 존재 자체를 노출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요.”

“말하자면 맹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자들이었다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사비강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사실 이 부분은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감찰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암행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원래 귀영부였습니다.”

“뭐요?”

“귀영부라니! 하면 사파나 다름없는 조직인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반발하는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사비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중원의 정세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빨리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단이 바로 귀영단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마도 총군사가 거느린 천안각보다도 한 발 빠를 것이었다.

때문에 사비강은 귀영단이야말로 소환지를 관리하기에 가장 적합한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소환지는 불특정한 지역에 예고 없이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이다.

곧 빠른 정보력이 혹시 모를 참사를 막아낼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걸렸던 것이 바로 그들의 전신인 귀영부가 사파에 속한다는 것.

언젠간 밝혀져 발목을 잡힐 바엔 처음부터 모든 걸 공개하고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비강이 더 없이 뻔뻔한 표정으로 물었다.

“문제가 있습니까?”

“당연히 문제지! 아무리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똥물을 가져와서 부을 수 있겠소?”

똥물이라는 소리에 홍염이 슬쩍 눈매를 좁혔지만, 사비강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그나마 주위에 똥물이라도 있다면 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름을 부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맹의 다른 조직에게 소환지를 맡겼다가는 또 다른 부정부패가 일어날 것을 은근히 비꼬는 말이었다.

말귀를 알아들은 심지황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따졌다.

“물인지 기름인지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알아보는 동안 타죽습니다. 아무래도 장로님께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표현을 언제 쓰는지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이익…!”

심지황이 이를 갈고는 발끈했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비강이 수뇌 인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귀영단은 이미 맹의 감찰 업무를 맡은 적이 있던 조직입니다. 여러분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사실이지요. 때문에 맹의 체계에 대해서도 익숙한 편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정사지간의 구분이 모호한 시기. 모두가 하나로 뭉쳐서 마족에 대항해야 할 때지요. 그런 마당에 탁상공론이나 펼치면서 정파니 사파니 따지다가는… 말씀드린 대로 전부 타죽고 말 겁니다.”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을 때는 서늘한 기운을 담아 흘려냈다.

효과가 있는 것인지 수뇌 인사들은 저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어깨를 슬쩍 움츠렸다.

사실 사비강이 내뱉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옳으니, 뭐라고 반박하기에도 애매했다.

그때 장로회주인 욱청풍이 한 걸음 나서며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 귀영단보다 뛰어난 정보력을 가진 조직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소? 다른 조직들이 얼마나 많은 소환지를 파악해 두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소만? 해서, 귀영단보다도 많은 소환지를 파악한 곳이 있다면 관리를 그쪽에 맡기는 것도 고려해야할 거요.”

“좋습니다. 받아들이지요.”

그러자 욱청풍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우선 장로회에서 운영하는 정보기관인 양승각(量勝閣)에서는 모두 일곱 군데의 소환지를 찾아냈소.”

그러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탄성을 터뜨렸다.

“역시 양승각이다.”

“일선에서 물러나신 분들이 만든 조직임에도 정보력 하나는 정말 대단하구나.”

“존경합니다, 회주님.”

수뇌 인사들이 떠들어대자 욱청풍이 턱을 슬쩍 들었다.

사실 그도 처음 보고를 받았을 때, 중원 전체에 소환지가 일곱 군데나 된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이 골치 아픈 곳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한데 나중에는 소환지가 바로 노다지 보물창고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는 이 정보를 잘 이용해 보기로 마음 먹은 터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신월문주 남운평이 불쑥 나섰다.

“본문에서는 모두 아홉 군데의 소환지를 파악해 두었습니다. 역시나 확인도 해두었지요.”

“아홉 군데나?”

“대단하군! 소환지가 벌써 그렇게 많이 생겼단 말인가?”

사람들이 술렁거리자, 남운평이 으스대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멸마관과 같은 지역에 터를 잡고 있다 보니 그쪽으로 관심이 많이 생겼지요. 모르긴 해도 소환지에서 얻은 재료들이 각종 무기나 보호구, 영약 등에 쓰인다는 것을 처음 알린 것도 바로 본문일 겁니다.”

“흥! 그러는 사이 본가는 눈 뜬 봉사처럼 지냈을까?”

느닷없이 끼어든 사람은 바로 무한의 만검세가주인 태고령(太高嶺)이었다.

은근한 경쟁 상대로 의식하는 남운평이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툭 쏘아붙이듯 물었다.

“하면 만검세가에서는 무얼 하셨소?”

“본가가 알아낸 소환지는 모두 열두 곳이었소.”

“열 두 곳이나!”

“맙소사!”

“도대체 이 땅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태고령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일곱 군데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 아닌가?

이쯤 되자 남운평이 눈살을 구기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게 확실한 거요? 이토록 중요한 자리에서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를….”

“확실하오. 어차피 들통 날 거짓말을 본가가 왜 하겠소? 당장 내가 지역만 알려도 머지않아 확인이 가능한 것을.”

“끄음.”

남운평은 말이 궁색해지자, 침음을 흘리면서 한 걸음 물러났다.

신월문주 태고령이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만하면 어떻습니까? 본가의 능력을 인정받아 관리단을 꾸려도 괜찮을 지요?”

그러자 총군사인 구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과연 대단하십니다. 만검세가의 정보력에 감탄했습니다. 하나… 천안각에서 파악한 정보에는 미치지 못하는군요.”

“설마… 천안각은 이보다 더 많은 장소를 파악했다는 말씀입니까?”

태고령이 눈을 가늘게 여미며 묻자, 구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그렇습니다. 천안각에서 파악된 소환지는 총 열 다섯 군데였습니다.”

“뭐, 뭣이? 열다섯…!”

태고령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자, 구윤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관리단은 제가 꾸려야겠군요. 오로지 정보만을 취합하는 천안각을 관리단으로 배정하기는 어려우니, 새로운 조직을 구성해야 할 것 같군요.”

구윤의 시선이 사비강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 향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본 욱청풍은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총군사는 멸마관주와 뜻이 잘 맞으니 분명 저들을 관리단으로 삼을 터. 그것만은 막고 싶은데 방법이 없구나!’

앞으로의 강호 정세를 짐작해 보면 소환지를 관리하는 곳이 분명 막강한 권한을 누리게 될 터였다.

하면 그 주체가 절대로 멸마관과 연결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차라리 다른 문파가 접수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구워삶아 장로회와 연결할 자신은 있었다.

그때였다.

“과연 천안각입니다. 하지만 본문이 파악한 소환지는 조금 더 많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바로 혜성문의 장로 임천백이 서 있었다.

혜성문은 얼마 전 조강민의 강한 설득으로 소환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던 것이다.

욱청풍이 반색하며 얼른 물었다.

“오, 얼마나 발견하셨소?”

“모두 스물일곱입니다.”

“헉!”

“엄청나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많은 소환지가 생겼다니!”

“잠깐. 저 소환지들 중에서 중복되는 곳도 있겠지만, 아닌 곳도 있을 것 아니겠소? 그럼 스물일곱보다 많은 것 아니오?”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와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욱청풍은 임천백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과연 대단하구려. 하면 관리단을 총괄할 곳은 혜성문이 되어야 마땅한 것 같소.”

“아직 이르지요.”

구윤이 얼른 나섰다.

욱청풍과 임천백이 이맛살을 슬쩍 구기고는 돌아보았다.

“무슨 말이오? 혜성문이 천안각보다도 많은 소환지를 발견했으니, 그들의 정보력과 탐색력을 인정하여….”

“물론 천안각보다는 많이 발견했으나, 아직 한 곳이 더 남아 있지 않습니까?”

구윤의 시선이 귀영단주인 웅패에게 향했다.

그제야 욱청풍은 잊은 기억이 떠오른 것처럼 움찔거렸다.

정말이지 깜빡 잊고 있었다.

아직 사비강이 데려온 저 둘이 얼마나 많은 소환지를 파악했는지 듣지 못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내심 코웃음 쳤다.

‘어차피 그래봐야 큰 차이는 안 날 것이다. 특히 각 문파에서 파악한 소환지가 중복되지 않을 가능성도 생각한다면, 그 논리를 내세워서 적어도 귀영단의 관리 독점만은 막을 수 있겠지.’

즉, 귀영단이 파악한 소환지가 좀 더 많더라도, 각 문파가 파악한 소환지를 모두 합하면 그 이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독점 관리를 저지할 생각이었다.

이제 모두가 사비강과 귀영단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뭐해? 말씀드려라.”

그러자 웅패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예, 본단이 파악한 소환지는… 모두 백서른일곱 군데입니다. 그 외에 의심이 되는 지역으로는 서른두 곳이 있으며,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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