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05화 (405/670)

# 405

귀환 마교관

405화

모두들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놀라서 그럴까?

술렁임도 없었다.

그저 온몸이 굳어 버린 것처럼 꿈쩍도 하지 못했다.

욱청풍 역시 마찬가지.

‘말도 안 돼…!’

백서른일곱 군데라니!

예상치 못한 숫자에 맹주 능운파 역시 화들짝 놀란 듯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게 확실한가?”

능운파의 질문에 웅패가 고개를 조아리며 대꾸했다.

“확실합니다. 장소가 너무 많아 여기 종이에 적어 왔으니 직접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웅패가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구윤에게 두루마리를 건네주었다.

두루마리를 펼쳐 본 구윤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과연… 이곳에 명시된 곳 중에는 천안각에서 파악했던 곳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소 역시 무척 자세히 표기되어 있습니다.”

“으음…”

능운파가 침음을 흘렸다.

그는 애초에 사비강이 데려온 귀영단이 총 관리를 맡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마계의 침공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경계하고 잘 아는 자가 바로 사비강이었으니.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소환지가 언급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터였다.

이게 사실이라면 강호에 위기가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아니, 아직은 아닐지라도 틀림없이 찾아온다.

사비강의 말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이쯤 되자 더 이상의 탁상공론은 그야말로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맹주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이걸로 귀영단이 정식으로 소환지를 관리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소. 이의 있는 자는 말하시오.”

“하지만 맹주님! 저들은 사파의 무리였던…!”

남운평이 즉각 나서서 말하다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능운파의 시선이 맹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기에.

능운파가 남운평을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사파였던 게 문제가 된다는 거요?”

“그, 그렇습니다.”

“어째서?”

“저들은 기본적인 신의를 저버리는 사파 종자….”

“일전에 나를 암살하려고 했던 벽력당주는 사파였소? 정파였소?”

“그건…!”

“그를 종용한 설백 장로는 사파였소? 정파였소?”

“맹주님…”

모두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백과 등왕패의 이야기가 이 시점에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 이야기는 맹주의 역린이 될 수도 있었다.

한때 그의 장악력이 얼마나 약했는지를 반증하는 내용이기에.

“정과 사를 나누는 기준은 익힌 무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무공을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겠소?”

“하, 하지만…”

“답답한 자로다. 저리 꽉 막힌 생각을 가지고 강호를 이끌려고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아시오!”

남운평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마지막 일갈은 그야말로 공력이 담긴 사자후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내공이 약한 자라면 그 자리에서 기절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만큼 능운파는 화가 나 있었다.

당장 마계가 침공한 마당에 장내에 모여서 정파니, 사파니 따지다니!

‘이래서야 강호가 마족에게 궤멸당한 게 아니라, 인간들 스스로 멸망한 게 아니겠는가?’

무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아니, 인간이 얼마나 한심한지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스스로 종말을 자초하는 인간이라니…!’

총군사 구윤이 넌지시 나섰다.

하지만 그의 표정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단이 서 있었다.

“다른 반론이 있으신 분은 제기하십시오. 진심으로 이 강호를 걱정해서 말씀하시는 분이라면 언제든 경청하겠습니다.”

그러자 장내의 수뇌 인사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한참이 지나도 나서는 자가 없자, 구윤이 마무리를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중원에서 발견되는 소환지는 모두 귀영단에서 관리사를 파견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단, 누구든 원한다면 토벌 신청을 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공식 선언이 떨어졌다.

그렇게 강호에 없던 규율 하나가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

“오, 묵 조교! 여기 계셨소?”

등부형이 바위에 걸터앉아 밤하늘을 보던 묵양제에게 다가왔다.

묵양제가 내심 발끈하면서 등부형을 쏘아보았다.

‘저 한낱 조교가 감히 내게 인사를 건네? 뭐? 묵 조교?’

묵양제가 알기로 등부형은 용천관의 교관 신분이었다.

한데 실력이 부족해 멸마관에서는 조교에 머물러 있는 신세.

그런 그가 한때 본단에서 이름 꽤나 날리던 자신을 만만하게 보니 내심 배알이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등부형은 묵양제의 표정이 썩 좋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옆에 다가와 어깨를 토닥였다.

“알고 있소. 썩 좋은 기분은 아닐 거요. 나 같아도 화가 날 거요. 하나 나는 다 알고 있소. 당신도 맹을 위해 일할 생각이 있었다는 것을.”

“치우고 말하시오!”

묵양제가 팔을 탁 걷어치우자, 등부형이 미간을 찡그렸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좀 친하게 지내서 후일을 도모해 보려고 했더니. 맹의 본단에서 왔다고 아직도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가?’

묵양제는 현재 멸마관의 조교 신세로 전락한 상태였다.

석 달간이나 멸마관에 머물면서 온갖 사치를 부리고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다가 제대로 걸렸기에 변명할 기회도 없었다.

그는 장로회주인 욱청풍으로부터 직위해제 통보를 전해 들었다.

다만, 그동안 멸마관에 끼친 피해가 있으니, 이곳에서 조교로 지내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 맹의 처분이었다.

그야말로 묵양제로서는 치욕의 나날이 시작된 것이다.

묵양제는 하루하루가 정말이지 지옥 같았다.

조교로 지내는 일이 딱히 고된 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 권력의 맛을 보았던 인간이 평범하게 지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한데 본단에 있을 땐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등부형이 나타나 친근한 척을 해오니 괜히 부아가 치민 것이다.

“뭐, 나 역시 묵 형께서 이런 자리에 있기에는 아까운 재목이라 생각하고 있소. 분명히 묵 형은 그럴 의도가 없었겠지. 사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 않겠소? 한데 그 작은 실수를… 뭐, 석 달이라는 기간은 작다고 하기엔 좀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묵 형을 이해하오!”

묵양제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돌아보자, 등부형이 히죽 웃어 보였다.

묵양제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대체 뭘 이해한다는 거요? 난 사술에 당한 것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소!”

“허참, 굳이 나에게까지 그러지 않아도 되오. 난 사실 묵 형 편이오. 나 역시 사비강 관주를 좋아하지 않는다오. 그러니 내게는….”

“됐소! 더 이상 말 섞기 싫으니 꺼지시오! 아니, 내가 가지!”

말을 마친 묵양제가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등부형이 내심 혀를 찼다.

‘나참, 저런다고 과오가 지워지나?’

사실 등부형은 묵양제의 변명을 전혀 믿지 않았다.

실제로 묵양제는 멸마관에 방문하자마자 온갖 사치와 주색잡기를 즐겼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누가 보더라도 묵양제는 딱 권력을 믿고 횡포를 부리는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쨌든 등부형은 묵양제와 친하게 지내면서 외로움도 달래고 후일을 도모해 볼 속셈이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한편 묵양제는 자신의 처지에 한숨만 흘러나왔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지만 좀처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난 삼 개월동안 주색잡기에 빠져 허우적거렸다니.

억울해도 너무 억울한 일.

그런 요망한 술법은 인간의 간사한 마음과 비틀린 욕망을 비집고 들어오기 마련이라는데, 어째서 공명정대하기만 한 자신이 그런 사술에 걸려 버렸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나처럼 법 없이도 살 사람이 그런 사술에 빠지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분명 굉장히 사악한 사술이겠지!’

또 한편으로는 기억이 점점 또렷해지면서 다른 생각도 들었다.

‘정말 내가 원해서 그랬던 건가?’

머릿속이 너무 어지러웠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어딘지도 모르는 막다른 길에 도착해 있었다.

‘여긴… 총관의 숙소인가?’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작은 정자의 지붕을 보니, 저 너머는 총관이 머무는 숙소 후원인 듯했다.

묵양제가 한숨을 길게 내쉬고 돌아서려는 때였다.

마침 담장 너머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기대되는 걸요?”

“후후. 저 믿으시죠?”

“그럼요. 믿고말고.”

남녀의 달콤한 대화 소리가 귓가에 닿는 것이 아닌가?

묵양제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매설란과 추량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추량이라는 자는 사비강의 제자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두 사람이 이 야심한 시간에 함께 있는 거지?’

한데 대화 내용이 갈수록 가관이었다.

“저만 믿으십시오. 오늘 밤 아주 황홀함을 느끼게 해드리죠.”

“하아, 벌써 가슴이 두근거려요.”

“하하. 직접 겪어 보시면 엄청날 겁니다. 이게 제대로 발기한다면요.”

“아아…”

매설란의 감탄어린 목소리 끝에 묵양제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다.

‘발기!’

발기라니? 대체 이 두 남녀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자신이 알기로는 매설란이 사비강의 정인이 아니었던가?

물론 매설란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사비강이 공공연하게 그리 떠들고 다녔다.

한데 사비강의 제자가 매설란과?

‘이것들 아주 잘 걸렸구나!’

묵양제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만약 이 약점을 잘만 틀어쥔다면 자신에게 또 한 번의 도약 기회가 올지도 몰랐다.

그는 기척을 최대한 숨긴 채 귀를 세우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추량의 말이 이어졌다.

“아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발기력은 좋은가 봐요?”

“물론입니다. 한 번 발기하면 확실히 변태가 되죠.”

“아아, 너무 기대돼요. 어서요.”

“하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자,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아아. 너무 과격해지거나 그러진 않겠죠?”

“물론입니다. 변태만 될 뿐, 절대로 과격해지진 않습니다.”

두 사람의 말이 계속 되면서 묵양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가 뜨거운 콧김을 뿜어대며 희열에 차올랐다.

‘이, 이, 이 미친 것들이! 드디어 사고를 치는구나! 발기가 어쩌고 어째? 변태가 어쩌고 어째? 흥! 이 개 같은 연놈들! 아주 제대로 걸렸어!’

그러는 동안에도 담벼락 너머에서는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는 매설란의 입에서 경악할 만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변태가 되면 너무 멋있을 것 같아요.”

묵양제는 코피를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매 총관이… 그쪽 취향이었단 말인가?’

추량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역시 총관님도 큰 게 좋으시군요?”

“네. 작아도 좋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크면 더 좋아요.”

“그렇다면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기대돼요. 어서 보여주세요. 잔뜩 커진 걸 보고 싶어요!”

“네, 잠시만요.”

부릅뜬 묵양제의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것들이… 아주 제대로 지랄을…’

마침 매설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직인가요?”

“으음. 이상하네. 왜 안 커지지? 좀 커져라. 응? 총관님이 저렇게 그윽한 눈으로 보시잖아?”

묵양제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니! 저런 미인이 그윽하게 쳐다보는데 왜 안 커진다는 거야? 이 배불러터진 새끼!’

그때였다.

“엇! 커진다! 커진다!”

“맙소사, 이게 발기인가요?”

“네, 맞습니다! 점점 커질 겁니다. 전에는 한 번에 커졌는데, 지금은 좀 서서히 커지네요. 자극적인 상황이 아니어서 그런가 봐요.”

묵양제는 이제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이 배부른 새끼는 도대체 얼마나 더 자극적인 상황을 바라는 거야? 사모를 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냐!’

다시 매설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대단한 발기력이에요!”

“그렇죠? 제가 믿으시라고 했잖아요.”

“아아, 정말 이렇게 황홀할 데가.”

“그쵸? 이 녀석 정말 대단하죠?”

“네. 변태가 되니까 너무 멋있어요!”

“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는다니까요.”

“정말. 어쩜 이렇게 늠름할 수가. 아하하. 그렇게 핥아대니까 따가워.”

마침내 묵양제는 완전히 폭발하고 말았다.

그 흥분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더 이상 웅크리고만 있을 수 없게 됐다.

‘따가울 정도로 핥아대다니! 더 이상은 못 참는다!’

생각을 마친 묵양제가 몸을 휙 날려 담벼락을 넘어섰다.

“두 사람 딱 걸렸소! 어디 제자가 사모를 탐하여 학관의 풍기를…!”

- 크르르렁!

순간 묵양제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커다란 짐승을 보고는 말을 꿀꺽 삼켜 버렸다.

덩치가 커진 반묘가 묵양제의 목덜미를 걸쭉하게 핥아 올렸다.

그 자리에 얼어붙은 묵양제는 퀭한 얼굴로 생각했다.

‘시벌…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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