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92화 (392/670)

# 392

귀환 마교관

392화

짹짹. 짹.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묵양제는 기분 좋게 눈을 떴다.

그는 한 차례 기지개를 켜고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가로 걸어가서 창문을 열자, 상쾌한 아침 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디선가 무예를 수련 중인 것인지, 날카로운 기합성과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묵양제는 왠지 기분이 좋았다.

어젯밤에는 신월문주를 만나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제법 많이 얻었다.

신월문은 작정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멸마관주인 사비강에게 톡톡히 망신을 당했으니, 이런 순간을 내심 벼르고 별렀으리라.

‘모든 게 순탄해. 이건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돕는다는 증거다.’

마침 누군가 문을 두드리더니 시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가져오라.”

시녀가 쟁반을 들고는 다소곳이 들어왔다가 차를 두고는 돌아갔다.

차를 마신 묵양제는 신월문에서 차려 주는 아침 식사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신월문주는 정문까지 나와 묵양제를 배웅해 주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묵양제가 웃으며 답했다.

“좋은 결과란, 감사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겠지요.”

“그럼 아쉽지만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겠군요.”

내뱉는 말과는 달리 신월문주의 표정은 어딘지 상기되어 있었다.

묵양제가 입매를 슬쩍 치켜 올렸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잘잘못은 분명히 가려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지당한 말씀입니다. 이게 다 본맹을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신월문주님께서 제 뜻을 이렇게 잘 헤아리시니 마음이 가볍습니다.”

“부디 살펴 가십시오.”

신월문주와 작별한 묵양제는 곧장 멸마관으로 향했다.

감사단이 도착할 때쯤엔 이미 멸마관에서도 단리정이 몇몇 조교들과 함께 마중을 나와 있었다.

단리정의 안내를 받으며 멸마관 안으로 들어서던 묵양제는 정문에 걸린 현판을 보며 내심 코웃음을 쳤다.

‘나중에 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관명부터 바꿔야겠군.’

단리정이 그를 숙소로 안내했지만, 묵양제는 쉴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총관님에게 안내해 주게.”

“알겠습니다.”

묵양제는 곧바로 관주전으로 향했다.

마침 매설란이 관주전 안마당까지 나와 있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구나.’

그의 눈빛에 은근한 색욕이 깃들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매설란은 고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하루 정도는 편히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

“내가 그 먼 길을 온 건 쉬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까 싶어 드린 말씀이지요.”

매설란이 공손히 대답하자, 묵양제는 왠지 모를 희열감마저 느꼈다.

그녀가 감찰국주로 지내던 시절, 묵양제는 그녀를 함부로 쳐다보기도 어려웠다.

괜히 잘못 찍혔다간 감찰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한데 이젠 그 입장이 바뀌어서 매설란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비위를 맞춰 주는 상황이 아닌가?

‘이렇게 고분고분하니 더욱 예쁘게 보이는군.’

묵양제가 슬쩍 입술을 핥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은 실전에 참가했다가 살아 돌아온 자들부터 만나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묵양제는 매설란을 따라 초환당으로 향했다.

초환당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뉘는데, 바로 약을 제조하는 제약실과 환자들이 머무는 병실이었다.

병실로 들어선 그는 생환자들을 상대로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졌다.

대체로 부정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었다.

생각보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부상자들은 사비강에 대한 불만이 매우 컸다.

자신들은 아직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실전에 투입되어서 다쳤다는 입장이었다.

심지어 사비강이 실종된 게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생도까지 있었다.

병실에서 대략의 조사를 마친 그는 훈련 중인 생도들을 상대로 다시 조사에 착수했다.

이번에도 생도들은 입을 모아 사비강을 힐난했다.

그들은 사비강의 강압적인 방식에 대해서 무척 분개하고 있었는데, 그 증오심이 너무 깊어서 오히려 묵양제조차 걱정될 정도였다.

그렇게 하루 동안 발품을 팔아 가며 전반적인 조사를 마친 묵양제는 매우 흡족한 결과를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래서야 더 조사할 것도 없지 않은가? 이 정도만 보고해도 사비강 관주는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것 같군.’

이렇게 일이 잘 풀릴 줄은 몰랐기에 묵양제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멸마관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 볼 참이었다.

‘물론 문제가 없을 시엔 만들어내면 그만이겠지.’

묵양제는 그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침상에 누웠다.

짹짹. 짹.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묵양제는 기분 좋게 눈을 떴다.

그는 한 차례 기지개를 켜고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가로 걸어가서 창문을 열자, 상쾌한 아침 공기가 폐부를 깊숙이 파고…

“음? 이상한데?”

뭔지 모를 기시감을 느낀 묵양제는 이맛살을 슬쩍 구기고는 창밖을 보았다.

어디선가 이른 아침부터 무예를 수련 중인지, 날카로운 기합성과 목검 부딪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묵양제는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젯밤에는 모든 조사가 잘 이루어져 문제될 것은 없을 터였다.

마침 누군가 문을 두드리더니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가져오라.”

시녀가 쟁반을 들고는 다소곳이 들어왔다가 차를 두고는 돌아가려는데,

“잠깐!”

“네?”

시녀가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자, 묵양제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

“왜 이곳에 있는 거지?”

“무슨 말씀이신지요?”

“너는 신월문의 시녀가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한데 왜 멸마관에 있느냐는 말이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시녀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저어… 여기가 신월문입니다.”

“뭐라?”

그제야 묵양제는 어딘지 기분 나쁜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뭐야? 그럼 어제 있었던 일은?’

그가 얼른 본당을 찾아가자, 신월문주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맞이했다.

“간밤에는 잘 주무셨습니까?”

“어째서 내가 여기 있는 겁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묵 당주께서는 무한에 도착하자마자 본문을 방문하시지 않았습니까? 혹시 지난 밤 과음을 하신 건 아닌지….”

“끄음.”

묵양제는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겪은 일들이 전부 꿈인가?’

묵양제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묘한 사술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웬 놈이 내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모양이구나!’

그는 내심 불쾌감이 치밀었지만, 애꿎은 신월문주에게 분풀이를 할 수는 없었기에 그럭저럭 말을 둘러대고는 넘어갔다.

그는 아침을 대충 먹어치우고는 곧장 감사단을 이끌고 신월문을 나섰다.

신월문주가 정문까지 나와서 배웅했다.

“오랫동안 준비하신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할 때의 좋은 결과란 아무 일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겠군요. 묵 당주님께서는 맹의 발전을 위해 그간 철저히 준비했으니까요.”

“그리 말씀하시니, 신월문주께서 옆에서 저를 오래 지켜보신 것 같군요.”

“그저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렸다고 생각해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묵양제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겨우 하룻밤을 재워 주고는 물심양면이라니. 신월문주도 꽤나 뻔뻔하군.’

그는 곧장 멸마관으로 향했다.

이번엔 매설란이 정문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숙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됐고. 나는 쉬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말을 꺼내던 묵양제가 멈칫거리고는 생각에 잠겼다.

매설란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어제와 같은 움직임을 보여서는 안 되겠다. 이번에는 확실히 이곳에서 잠을 자고 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직접 확인해야겠구나. 누가 내게 그 따위 사술을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테다.’

마음을 굳힌 묵양제가 다시 말했다.

“피곤하군요. 숙소로 안내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매설란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앞장섰다.

감사단을 숙소로 안내해 준 후, 매설란은 곧장 관주전으로 돌아갔다.

마침 안마당 정자에는 무랑이 뒷짐을 진 채 멸마관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사님 덕분에 시간을 많이 벌었어요.”

“별 말씀을. 이제부터 시작이오.”

“관주님은 언제쯤 복귀할 수 있을까요?”

“추량과 흑귀에게 최대한 천천히 찾아가라 전해 두었소. 가는 동안 강호 정세도 살필 겸.”

매설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라도 당장 달려 가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어차피 사비강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으니, 자신이 찾아간다고 한들 마땅한 방법도 없었다.

멸마관을 비울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고.

대신 다른 교관들과 조교들에게는 자세한 사정을 생략한 채 사비강을 찾았다고만 일러두었다.

혹시라도 관주의 실종 때문에 동요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무랑이 돌아서며 말했다.

“관주께서 무사히 복귀하실 때까지 잘 견뎌 봅시다.”

“네!”

매설란이 힘차게 대답했다.

**

오두막집 뒷마당.

한때는 빽빽한 나무숲으로 채워져 있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밑동이 뭉텅 잘려 나간 그루터기만 사방 가득했다.

거기에서도 유난히 커다란 그루터기 위에 두 사람이 앞뒤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먼저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손에 쥐고 정좌를 한 채 눈을 감고 있었고, 바로 뒤에는 옹해인이 사비강의 등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크르르…!”

사비강이 거친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붉은 기운이 그의 전신에서 확 일어났다가 가라앉길 반복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을까?

마침내 두 사람 사이에서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사비강의 몸속에 깃들어 있던 붉은 기운이 옹해인의 손바닥으로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이대로만…’

옹해인은 온 정신을 손바닥에 집중했다.

단 일 푼어치의 기운만 덜어 낸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자네는 중원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경지가 될 걸세. 범인이라면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그때였다.

“흡!”

옹해인이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삼키며 눈을 부릅떴다.

‘이건…!’

강렬한 기운이 그의 손바닥을 찢을 듯 날아들었다.

‘어찌 이리도 사악한…!’

옹해인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더니, 이내 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윽!”

사비강의 등에서 뿜어지는 붉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애초에 옹해인은 사비강의 체내에 잠재된 사이한 기운을 조금이나마 뽑아내어 적당히 와해시켜 버릴 작정이었다.

이러한 수법은 그의 특기이기도 했다.

때문에 의신을 데려와도 고치지 못한다는 주화입마를 옹해인은 두어 번씩이나 고친 적도 있었다.

한데 지금 사비강의 몸에서 터져 나오듯 뿜어진 기운은 무척 생소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기운이 옹해인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때문에 이젠 뽑아내기는커녕 흘러드는 기운을 막아내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할 상황이 되고 말았다.

‘크읏! 이러다가 나까지 말려들겠구나!’

옹해인은 얼른 내력을 끌어올리고는 무섭게 밀려오는 적기(赤氣)에 대항했다.

푸른 청기와 붉은 적기가 서로 맹렬하게 부딪치며 손바닥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커억!”

순간 사비강이 피를 울컥 토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옹해인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는 단전에서 솟아오르는 내공을 손바닥에 집중한 다음 일순간에 격발시켰다.

꽈아앙!

청기와 적기가 상충하면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바람에 사비강은 그대로 앞으로 튕겨 나갔고, 옹해인은 뒤로 십여 장이나 날아가 버렸다.

“크아아아!”

통증을 느낀 사비강이 다시 이성을 잃고 허공을 붕 날아서 쓰러진 옹해인을 덮쳤다.

옹해인이 눈을 번쩍 뜨고는 소리쳤다.

“안 돼!”

하지만 사비강은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상황!

그가 주먹을 세차게 내리꽂는데…

털썩!

사비강이 그대로 의식을 잃으며 쓰러지고 말았다.

옹해인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럼 안 된다니까… 거참, 여전히 흥분하면 금제를 의식하지 못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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