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93화 (393/670)

# 393

귀환 마교관

393화

촤르르.

고요한 호수면에 잔잔한 파동이 일어났다.

잠시 후 수면이 불룩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한 사람의 얼굴 형상이 만들어졌다.

바로 무랑이었다.

호숫가 바위에 앉아서 정좌한 채로 내상을 치료하던 옹해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꾸 그런 식으로 나타나다간 머지않아 내가 심장이 멎어 죽어 버리고 말 걸세.”

“그러지 말라고 이렇게 나타나는 것 아니겠나? 자네 심장을 단련시켜 주려고.”

“허허, 눈물겹군.”

“그것이 바로 벗을 생각하는 마음인 게지.”

무랑이 농담처럼 말하자, 옹해인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어쨌든 오랜만에 그 기괴한 모습을 보이는군.”

“이런저런 일로 좀 바빴네.”

“자네가 속세에 물들어 바쁘다는 말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러게 말일세. 관주께선 잘 계시는가?”

“오늘 흡성파기공(吸性破氣功)을 시도해 보았네.”

무랑의 표정에 모종의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그래? 어찌 되었나? 파기공만큼은 대성한 자네가 아닌가? 당연히 좋은 결과를….”

옹해인이 말을 마저 듣기도 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패했네.”

무랑의 표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일그러졌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네. 자칫하다간 나 역시 말려들어 주화입마에 걸려들 뻔했지.”

“대체 어떤 기운이 깃들었기에.”

“모르긴 해도… 마령혼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걸세. 그 검에 깃든 요기가 상상 이상일세. 지나치게 강대해.”

옹해인의 대꾸에 무랑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간 자네가 펼쳐 놓은 금제의 영향을 받았을 터인데.”

“아직 시간이 부족하네.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해.”

“하나, 자네 말대로 삼 년을 기다릴 수는 없다네. 자네도 천문을 읽을 줄 안다면 알지 않는가?”

“천문이고 자시고 방법이 없는 걸 어쩌겠나?”

“난감한 일이군.”

“나도 퍽이나 난감하네.”

옹해인이 기를 한 차례 순환시키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이제야 어느 정도 내상이 치료된 것이다.

그가 수면에 솟아 오른 얼굴 형상의 물기둥을 보며 물었다.

“자네가 보낸다는 사람들은?”

“조만간 도착할 걸세.”

“그렇군. 천천히 오라 하게. 일찍 와 봐야 할 것도 없으니.”

“이미 그렇게 전하긴 했네만… 가능하면 서둘러 주게나.”

“거참, 내 역량 밖인 걸 어쩌겠나?”

“실은 한 가지 짐작 가는 게 있네.”

“짐작이라면?”

옹해인이 고개를 돌려 묻자, 무랑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생환자들을 상대로 대략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네. 사비강 관주가 마지막으로 상대한 건….”

그가 들은 내용을 전하자, 옹해인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대체로 그는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그럴 수가… 옷을 걸치면 새가 되고, 벗으면 여인이 된다?”

“그랬네. 생환자들이 하나같이 그리 말하더군.”

“그건 틀림없이….”

“그래, 나도 알고 있네. 고획조(姑獲鳥)지.”

“말도 안 돼.”

“나도 그리 생각했네만… 자신의 아이에게 집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믿을 수밖에 없겠더군.”

“하지만 자네가 말한 현상들 중에는 고획조와 다소 거리가 먼….”

“알고 있네. 하나, 마령교가 의식을 통해 어떤 짓을 했다면? 해서 고획조가 그 의식에 맞춰 변한 것이라면 어떤가?”

“아무리 그래도….”

“믿기 힘든 일일세. 하지만 자네라면 지금쯤 벌써 받아들이고 있을 테지.”

옹해인은 무랑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두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오늘 낮, 자신의 손바닥에 와 닿았던 사이한 기운.

‘그게 고획조의 기운이라면….’

아닌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고획조는 고대에 실존했으나, 지금은 그저 산해경(山海經)으로 전설처럼 전해지는 환수(幻獸)가 아닌가?

그 환수가 마령교의 의식을 통해 봉인이 해제되어 현신한 것이라면?

이건 그야말로 보통 일이 아니다.

“확실히 천문을 잘못 읽은 건 아니로군.”

옹해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무랑이 말을 건네 왔다.

“내가 왜 이리 서두르는 건지도 알겠지? 그들을 막기 위해서는 그가 필요하네.”

무랑의 목소리는 시종 담담했지만, 옹해인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무랑이 이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한참을 침묵하던 옹해인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말했다시피 이자는 일 푼어치의 힘만 덜어 내도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어. 그땐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할 걸세.”

“그게 얼마나?”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지만… 초절정을 넘어 천해경(天解境)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보네.”

“뭣이? 천해경이라니! 그건 고대의 영희제(英熙帝) 이후로 어떤 인간도 이루지 못한 경지가 아닌가?”

“어쩌면 영희제를 초월할 지도 모르겠네.”

“말도 안 되는…!”

“하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닐세. 지금 문제는 이자의 요기를 단 일 푼어치도 덜어 내기 어렵다는 게야.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이지. 그나마 나나 되니까 삼 년을 잡은 걸세. 무력으로는 초절정도 감당하기 어려운 나지만, 도량 하나는 자네 못지않으니.”

옹해인이 농담처럼 한 말에도 무랑은 웃을 수 없었다.

그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검에 잠재된 힘이 그 정도라면… 자네는 결국….”

“알고 있네. 하나 내 명(命)을 그렇게 쓸 수 있다면야 후회는 없네.”

“자네… 그렇게까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세.”

옹해인이 고개를 들어 별이 빼곡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만약… 이자가 이 위기에서 벗어만 날 수 있다면…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기운에 맞설 수 있을 거라고 보네. 지금까지는 그 기운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이 중원에 없다고 여겼지. 해서, 이렇게 초야에 묻혀 지냈고. 하지만… 이제야 조금은 희망을 걸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

“멸마관에서 급보가 도착했습니다.”

금면인의 말에 교주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무슨 내용인가?”

“그들이 사비강의 행방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사비강의 상태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 사비강 관주를 데려오기 위해 사람을 보낸 상황이라고 합니다.”

“흐음.”

교주가 침음을 흘리다가 입을 열었다.

“굳이 사람을 보냈다는 건 아직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겠군. 또한 사비강이 어딘가에 머물러 이동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뜻이고.”

“그렇습니다. 해서, 동면에게 이 사실을 전서로 알릴까 합니다. 아마 이대로라면 동면이 먼저 사비강을 찾아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금면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곧장 걸어 나갔다.

**

동면인과 혈수오마는 나무 숲 일부가 완전히 날아간 공터를 휘 둘러보았다.

동면인이 피식 웃었다.

“아주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군.”

그는 휑한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만치 보이는 산정호수로 눈길을 두었다.

이따금씩 잔잔한 파문이 일어나는 고요한 호수.

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멀리도 왔군요.”

혈수오마 중 일마가 말하자, 동면인이 피식 웃었다.

“그래봐야 주화입마에 절반쯤 몸을 담은 폐인일 것이다. 주눅들 건 없지. 물론, 방심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가 호숫가 건너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곳에 그림처럼 지어진 오두막집 한 채가 있었다.

연기가 폴폴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사는 게 분명했다.

“묘한 곳이군.”

동면인의 말에 이마가 말했다.

“저 호수 건너편은 전부 금제 구역으로 보입니다.”

“평범한 자가 머무는 곳은 아니란 말이렷다.”

동면인이 가만히 중얼거리는데, 마침 하늘에서 삐익, 매의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삼마가 고개를 들어보고는 소리쳤다.

“본교에서 보낸 전서응입니다!”

하늘을 크게 한 바퀴 맴돈 전서응이 빠른 속도로 하강하더니 동면인의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내려앉았다.

동면인이 매의 발목에 묶인 서신을 펼쳐 들었다.

한참 동안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눈가에 미미한 웃음기가 스몄다.

“호오, 이거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동면인이 고개를 들고 건너편 오두막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진법에 조예가 깊은 사마가 다가와 말했다.

“대략 삼 할 정도의 내공만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상 사용하면 금제에 걸려 몸과 정신이 견디지 못할 듯합니다.”

“삼 할이라… 그만하면 충분하지. 아니 오히려 잘 됐어. 비슷한 조건이라면 수가 많은 쪽이 유리하지 않겠나?”

동면이 혈수오마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다들 마기를 철저히 숨기도록 한다.”

“존명!”

동면인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슬쩍 훑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변검술(變臉術)을 펼친 것처럼 그의 얼굴에 동색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말끔한 외모의 중년인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정말이지 겉모습만 보아서는 그가 마공을 익힌 마인이라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한쪽 옆의 숲으로 걸어가더니 허리춤의 검을 뽑아 휘둘렀다.

쉭쉭쉭쉭쉭!

수십 가닥의 검기가 어지럽게 날아가자, 커다란 나무가 일순간 쪼개지면서 무너져 내렸다.

동면인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통나무들이 휙휙 날아가며 호수에 첨벙 떨어졌다.

모두 여섯 개.

동면인을 비롯한 혈수오마가 각각 통나무 위에 몸을 던졌다.

여섯 사람은 그대로 내공을 이용해서 통나무를 밀며 호수 건너편을 향해 나아갔다.

**

“와구와구… 쩝쩝…! 우적우적…!”

사비강은 여전히 손으로 음식을 들어 게걸스럽게 입에 쑤셔넣었다.

소리만 들어서는 사람이 식사를 하는 것인지, 개돼지가 먹이를 먹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

맞은편에 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옹해인이 중얼거렸다.

“자네는 언제나 한결같군.”

“크르르…”

기분이 상한 것인지 사비강이 우뚝 멈추고는 다시 짐승 울음을 토해냈다.

옹해인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손을 저었다.

“그리 예민하게 굴 것 없네. 칭찬일세. 사람이 한결같다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크… 와구와구…! 쩝쩝! 우적우적!”

잠시 날카로워졌던 사비강은 다시 정신없이 음식을 집어 먹었다.

옹해인이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뭐, 때론 작은 변화도 좋지만 말이야.”

그렇게 두 사람의 식사가 잠시 동안 이어졌다.

수많은 접시를 잔뜩 쌓아 두고 먹는 사비강과 달리 옹해인 앞에 놓인 그릇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평범한 사람이 그 모습을 보았더라면, ‘이렇게 적게 먹고 사람이 살 수 있나?’ 하는 의문을 가졌으리라.

그럼 옹해인이 말했을 것이다.

“사람은 비단 음식에서만 기운을 얻는 것이 아니다.”

라고.

“크르으…!”

사비강이 다시 이를 갈자, 옹해인이 손사래를 쳤다.

“허어, 들렸나? 혼잣말을 중얼거린 건데. 굳이 자네가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야. 신경 쓰지 말게나. 커험.”

“와구와구… 쩝쩝! 우적우적!”

그렇게 다시 똑같은 식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비강이 음식을 입에 쑤셔넣다 말고 멈칫거렸다.

옹해인이 젓가락을 가만히 내려놓으며 물었다.

“자네도 느낀 겐가?”

“크르…!”

“너무 날 세울 것 없네. 자네를 데려갈 자들이 온 것 같군. 들고 있게나. 내가 마중을 나가지.”

옹해인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저만치 여섯 명의 사내들이 통나무를 타고 호수를 건너오는 중이었다.

그들은 바로 동면인과 혈수오마였다.

하지만 마기를 감쪽같이 지워 버린 상황이었기에 그들에게서는 어떠한 특이점도 느껴지지 않았다.

옹해인이 호숫가로 걸어가자, 이제 막 도착한 여섯 명의 사내들이 뭍으로 훌쩍 뛰어내리면서 포권을 취했다.

“불초 후배들이 노 선배님을 뵙습니다.”

“어서들 오시게.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네.”

“별말씀을요. 오히려 저희 관주님이 선배님께 신세를 졌습니다. 관주님을 대신하여 감사 말씀 드립니다.”

“아닐세. 빈도의 도량이 부족하여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네. 자자, 시장할 테니 들어가세. 차린 건 없지만 적당히 배는 채울 수 있을 걸세.”

그러자 여섯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멈칫거렸다.

이 지역 전체가 금제에 걸린 만큼 혹시라도 집안에 또 다른 진법이 있을 지도 몰라 자연히 경계하게 된 것이다.

옹해인이 이상한 낌새를 채고는 물었다.

“왜 그런가?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건 아닙니다. 다만, 저희들은 식사보다는 관주님을 빨리 뵙고 싶습니다. 그분의 안위가 무엇보다 중요한지라….”

“허허, 성격들이 급하군.”

“관주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지요?”

옹해인이 여섯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자연히 알게 될 걸세. 어서 들어가서 식사나 하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저희들 사정이 워낙 급하여 곧바로 관주님을 모셔오라는 명을 받은지라….”

“그 문제라면 이미 들었네. 하지만 자네들이 그를 데려갈 수는 없는 상황이네.”

“괜찮습니다. 무랑도사께서 이미 방법을 찾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무랑, 그 친구가?”

“예.”

옹해인이 눈살을 잔뜩 구기고는 여섯 사람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동면인을 비롯한 혈수오마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그 시선을 담담히 받아냈다.

옹해인이 호숫가에 떠 있는 통나무를 보고는 말을 돌렸다.

“내력을 이용해서 통나무를 밀고 건너오다니. 내공이 꽤나 심후한 모양일세.”

“많이 부족합니다. 특히나 이 구역 전체에 금제가 걸려 있어 조심스러웠습니다.”

“금제를 눈치 챌 줄이야. 과연 저자가 꽤나 중요한 인물인가 보군. 한 사람을 데려가기 위해 여섯이나 되는 초절정 고수가 오다니.”

초절정 고수라는 말에 여섯 사람이 흠칫거렸다.

옹해인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뭘 그리 놀라나? 내 진법은 적어도 초절정 이상이 아니면 눈치 챌 수가 없어서 한 말일세.”

“과연 대단하시군요.”

“한데 어떤 방법으로 그를 데리고 돌아갈 생각인가? 이 금제 구역을 벗어나면 제멋대로 날뛰는 야생마가 될 터인데.”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옹해인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매서웠다.

명백한 의심의 눈초리였다.

이쯤 되자 동면인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순순히 내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그의 말투가 더없이 차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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