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79화 (379/670)

# 379

귀환 마교관

379화

“출구가… 없습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사비강이 상념을 거두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야명주처럼 빛나던 자이렌의 눈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천장을 떠받치는 빛의 기둥 때문에 주변은 꽤 밝은 편이었다.

한데 누군가 소리친 것처럼 사방의 벽이 막혀 있었다.

심지어 사비강과 생도들이 들어온 통로 역시 완전히 막혀 버려서 길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다.

‘결계인가?’

갈수록 파악이 안 된다.

애초에 처음 발견된 던전인 만큼 슬라임 정도의 마물들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거의 지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데 자이렌이 나타난 것도 놀라운데, 이제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함정에 빠졌다?

이 정도 수준의 결계라면 평범한 던전은 아니라는 말이다.

적어도 수장이 머무는 즉, 보스 방이 따로 있는 던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왠지 제대로 걸려든 느낌인데….’

사비강이 속생각을 갈무리하며 주변을 둘러보고는 소리쳤다.

“다들 흩어져서 특이점이 될 만 한 건 모두 찾아내라.”

“예, 관주님!”

생도들이 대답과 동시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첫 마물을 성공적으로 격퇴한 것에 조금 들떠 있는 상태였다.

진경산이 여소정에게 다가갔다.

“소저, 혹시 모르니 조심하시오.”

그러자 양초지가 그 곁을 지나가며 대놓고 비웃었다.

“킬킬, 여자 꽁무니나 쫓아다니지 말고 출구나 찾으라고. 그러다 또 혼자 계집년처럼 비명이나 지르면서 살려 달라고 하지 말고.”

“뭣이? 내가 언제…!”

“아아, 살려 달라고는 안 했군. 미안하네. 그때 표정이 너무 절박해 보여서. 킬킬.”

진경산이 이를 빠득 갈고 쏘아붙이려는데, 양초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는 걸어가 버렸다.

표하림이 다가와 달래고 나서야 겨우 진정한 진경산도 콧방귀를 뀌고는 발길을 돌렸다.

한편, 양초지는 벽을 따라 걷다가 자이렌의 사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가까이 다가가 찬찬히 살폈다.

“흐음. 참 독특하게 생겼단 말이지.”

그는 단검을 꺼내 들고는 자이렌의 눈알을 뽑아냈다.

살아 있을 때만큼은 영롱한 빛을 품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암회색의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썩은 동태 눈깔이 따로 없군.”

혀를 끌끌 찬 그가 돌덩이처럼 변한 눈알을 어깨너머로 휙 던졌다.

철퍽!

자이렌의 눈알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양초지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돌아섰다.

“뭐지? 바닥이 왜…?”

어느새 그가 서 있는 주변이 진흙처럼 진득하게 변한 게 아닌가?

‘자이렌의 사체가 썩으면서 땅이 녹아 버린 건가?’

양초지가 질척한 바닥의 감촉을 느끼고는 얼른 발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헉! 우아아아아아악!”

그가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마침 근처를 살펴보던 진경산이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그는 곧 양초지를 확인하고는 노골적인 비웃음을 머금었다.

“어이, 영감탱이. 이번엔 뭘 보고 그리 여인네처럼 호들갑을 떠는 거지?”

모처럼 놀려먹을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한 진경산이 저벅저벅 걸어오는데,

“이 멍청한 애송아! 오지 마라!”

“뭐야? 이 영감이 자꾸 아까부터 사람 열 받게….”

“거기 서라! 뒈지기 싫으면!”

“흥! 누가 먼저 뒈질지 내기라도 해볼… 음?”

그제야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진경산이 흠칫거리며 훌쩍 물러났다.

놀랍게도 양초지의 발목 아래가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닌가?

그 뿐만 아니라 무릎 아래가 서서히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야? 영감! 갑자기 왜 그 지경이 된 거야?”

“시끄럽다! 나도 몰라! 다만….”

양초지가 부들부들 떨며 이미 녹아버린 무릎 아래를 바라보았다.

이제 진흙처럼 질척해진 바닥은 허벅지까지 삼키고 있었다.

마치 바닥이 늪으로 변해서 양초지를 야금야금 삼켜 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를 더욱 두렵게 하는 것은 바로…

“통, 통증이… 느껴지지 않다니…!”

발목이 떨어져 나가고 허벅지가 녹아들어 가고 있음에도 어떠한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환영일지도 모르겠다는 의심까지 했다.

그때,

“어? 바닥이 왜 질척거리지?”

근처의 다른 생도 하나가 중얼거리면서 발을 들어 올리는데…

툭!

“헉! 우아아악!”

그 역시 발목이 완전히 녹아 버리면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대로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진 그는 순식간에 늪에 빠진 사람처럼 진흙에 잠겨 들어가고 말았다.

“살, 살려…!”

그는 말을 마저 맺기도 전에 늪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생도들이 혼란에 빠져 소리쳤다.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바닥이 점점 물러지면서 늪으로 변하고 있다!”

“어쩐지 저 거미 떼가 난리 칠 때부터 바닥이 유난히 출렁거리더라니!”

“제길! 출구도 찾을 수 없는 마당에… 점점 늪지대가 넓어지고 있잖아?”

생도들이 얼른 마른 땅을 골라 디디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사비강이 얼른 왼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리버스 그래비티(Reverse Gravity)!”

그러자 생도들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면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우앗!”

“몸, 몸이…!”

사비강이 재빨리 소리쳤다.

“당황하지 말고 기둥에 매달리도록 해라!”

지시를 받은 생도들이 저마다 기를 발출하면서 그 반동으로 이동해 기둥에 단검을 꽂아 넣고 매달렸다.

문제는 이미 늪지대에 하반신이 빠져 버린 양초지였다.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점점 차오르면서 양초지는 마법의 영향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아래로 잠겨 드는 상황.

구륵… 그륵그륵…!

놀랍게도 공동의 바닥 전체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늪지대로 변하고 있었다.

하얗게 빛을 뿜어내던 기둥은 이제 붉은 빛을 품기 시작했다.

“킬킬킬. 젠장…!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양초지는 점점 녹으면서 늪에 빠져드는 자신의 몸을 보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사비강으로서도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당장 양초지의 머리 위로 날아가 그를 강제로 잡아당기면 상하반신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 버릴 터였다.

양초지가 진경산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네놈을 살린 게 나라는 걸 기억하고 평생 내 제사를 지내도록 해라. 애송아.”

그 말을 끝으로 양초지는 스스로 단검을 들어 자신의 목을 그어 버렸다.

츄아아아!

피를 쏟아낸 양초지가 그대로 넘어가자 늪이 그를 단숨에 삼켰다.

구르르륵…!

“영감…”

앙숙처럼 으르렁거리던 진경산도 이 순간만큼은 마음 한편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애도의 시간을 길게 이어 갈 수도 없었다.

철컹! 철컹! 철컹!

공동의 벽면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더니,

콰아아아!

갑자기 진득한 액체가 마구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숨을 쉬기도 힘들 만큼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액체는 척 보기에도 몹시 위험해 보였다.

“젠장! 저건 또 뭐야?”

“저 물이 점점 차오르면 우리 다 죽는 것 아닌가?”

“맙소사, 저 물이 자이렌도 순식간에 녹이고 있잖아?”

생도들이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떠들어댔다.

사비강은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예상치 못하게 두 명의 생도를 벌써 잃은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던전의 난이도가 너무 과하다. 뭔가 잘못 됐어.’

자이렌만 해도 벌써 소환될 리가 없는 몬스터다.

그때 사비강의 곁에 매달려 있던 진백이 차츰 차오르는 늪을 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건 마치 누군가의 몸속에 들어와 버린 기분이군.”

“그게 무슨 뜻입니까?”

“생각해보게. 아까 나는 이 빛나는 기둥을 보고 하나의 유기체 같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요.”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운룡이 기둥을 잘라냈을 때, 잘려나간 부위는 더 이상 빛을 뿜지 않았다.

마치 유기조직에서 떨어져 나간 세포 조각처럼.

진백이 그때를 떠올리는 듯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든 생각이었지만,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뱃속에 들어와 버린 느낌일세.”

“아…”

사비강이 조금은 이해를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백이 말을 덧붙였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 동혈에 들어온 순간 먹이가 된 거지. 식도를 따라 걸어와서 이곳 위장에 도착한 것일세.”

“하면 자이렌과 저 늪은…”

“일종의 소화 기능인 게지. 처음에는 저 마물들이 먹이가 된 우리를 분해하려고 했으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위액이 과다하게 분비되고 있는 것이야.”

“과연.”

“뭐, 어디까지나 내 느낌일 뿐일세. 지나치게 믿을 건 못 되지.”

진백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사비강은 그의 추측이 대단히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과연 의원의 눈에는 그런 식으로 보일 수도 있겠군.’

만약 진백이 아니었다면, 그저 하나의 함정으로만 치부했으리라.

그런데 그가 표현한 것처럼 이 모든 과정을 하나의 유기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본다면, 던전의 성격 역시 조금 더 빨리 파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마계에는 던전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와 같은 경우가 종종 존재한다.

바다 속 산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사물과 생물의 그 어느 경계쯤 해당하는 던전.

‘하지만 그 정도의 던전이 벌써 소환되었단 말인가?’

분명한 건 이렇듯 살아 있는 던전은 꽤나 어려운 난이도라는 점이다.

실제로 마계에서는 이런 종류의 던전을 ‘반생 던전’이라고 불렀는데, 반생 던전을 공략할 때는 반드시 상급 마족 이상이 동행해야만 했다.

‘좋지 않다. 생각보다 훨씬 힘든 싸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사비강이 얼른 능소소에게 말했다.

“소소. 탈출구를 찾아 봐라.”

“네, 관주님!”

능소소가 대답과 동시에 실프를 소환했다.

그녀의 주위로 훈풍이 부는가 싶더니, 곧 부드러운 바람이 공동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녔다.

타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능소소의 시야에는 수많은 실프들이 무리지어 날아다니며 공동 곳곳을 더듬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내 능소소가 고개를 번쩍 들고는 천장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예요! 저기라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잘했다.”

사비강이 모처럼 칭찬을 던지고는 능소소가 가리킨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부유 마법을 이용해서 허공에 뜬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뽑아 들었다.

“상황이 특별한 만큼 내가 직접 나서서 출구를 만들겠다. 다들 떨어지지 않도록 꽉 잡아라.”

“옛!”

생도들의 대답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열십자로 휘둘렀다.

쑤아앙! 쑤아앙!

강기가 천장을 때리자 강렬한 진동과 함께 천장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과과앙!

투투툭! 후두둑!

부서져 내린 돌무더기는 그대로 액체에 닿자마자 부글부글 끓으며 녹아내렸다.

그 모습을 본 생도들이 내심 혀를 내둘렀다.

‘자칫 빠졌다간 뼈도 못 추리겠구나!’

한편, 구멍이 뚫린 천장 위로 솟구친 사비강이 생도들에게 소리쳤다.

“위쪽에 공간이 있다. 모두 이동해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생도들이 경신법을 펼쳐 기둥을 박차며 천장 위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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