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8
귀환 마교관
378화
쿠구궁! 구그긍!
육중한 덩치의 바윗덩이가 뭉그적거리며 움직이는가 싶더니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푸스스스스…!
돌 부스러기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자 유난히 시커먼 몸체가 드러났다.
“저, 저게 뭐야?”
“거미…! 거미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거미야!”
생도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저, 저게…. 마령교가 소환한 마물…?”
“끔찍하게 생겼군…!”
거미는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벽마다 부조처럼 박혀 있던 녀석들이 제각각 떨어져 나오자 수십 마리는 되어 보였다.
시커먼 몸체는 머리와 가슴, 배로 구분되었는데, 여덟 개의 다리가 강철보다도 단단해 보였다.
특히 머리에는 야명주와 같은 눈이 수십 개 박혀 있었는데, 눈알로 보이는 것이 이리저리 마구 굴러다녔다.
사비강이 미간을 좁히고는 입을 열었다.
“저건 ‘자이렌’이라는 마물이다. 피부를 돌처럼 딱딱하게 만들어서 은신하는 것이 특징이지. 야명주처럼 빛나는 눈에서는 강렬한 빛을 쏘아대기도 하니 정면으로 보지 않도록 주의해라.”
“또 다른 특징은 없습니까?”
일반 생도 표하림이 묻자, 사비강이 말을 이었다.
“일반적인 거미와 달리, 이 녀석들은 등에 난 수백 개의 구멍에서 수백 가닥의 거미줄을 그물처럼 쏘아 올리는 게 특징이다.”
“만약 거미줄에 걸리면 어떻게 됩니까?”
“거미줄은 열에 약하다. 극양의 내공을 운기해서 발출한다면 거미줄을 녹일 수 있을 거다. 마지막으로 검기를 쓰면 벨 수 있으니 당황하지 말고 상대해라. 물론 검기 역시 극양의 기운을 담는다면 제압하기 수월할 거다.”
“알겠습니다!”
생도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고는 저마다 무기를 뽑아 들었다.
구오오오오.
생도들이 진득하게 피어 올리는 투기가 열기가 되어 허공을 가득 메웠다.
미리 주의 사항을 듣긴 했지만, 생전 처음 보는 마물을 상대하려니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쿠드드드.
절컹! 절컹!
적의를 느낀 것인지 거미들 역시 생도들을 포위하면서 점점 거리를 좁혀 왔다.
쿠궁…! 구웅!
녀석들이 다리를 찍을 듯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진동을 일으켰다.
아니, 일렁거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왜 마물은 전부 이 따위로 징그럽게 생긴 거지?”
“씨벌, 별 게 다 궁금하네. 죽이기 좋으라고 그런가보지!”
진경산의 말에 양초지가 핀잔을 주듯 말했다.
진경산이 양초지를 힐끔 흘기고는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렇다면 이 몸이 먼저 나서서 죽여보지!”
타다닷!
허공으로 도약한 진경산이 천장을 떠받치는 빛기둥을 발로 차며 쏜살같이 날아갔다.
쒸에에에엑!
마침내 그의 검신에서 검기가 일어나며 그대로 자이렌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과연 경이로운 신법에 이은 절묘한 검술이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자이렌의 눈동자가 뒤룩 구르는 듯 하더니, 강렬한 빛을 쏘아내는 것이 아닌가?
번쩍!
“아악! 눈이…!”
안구를 찌를 듯이 터져 나온 빛이 그대로 진경산을 덮쳤다.
그 바람에 중심을 잃은 진경산이 검기를 거두고는 몸을 회전했다.
그 찰나,
쉬이이이잇!
자이렌의 날카로운 앞발이 지체 없이 진경산을 향해 날아들었다.
진경산이 황급히 검을 앞세워 막아냈다.
쩌엉!
“크억!”
콰당탕탕!
포탄처럼 날아간 진경산이 바닥에 떨어져 마구 나뒹굴었다.
더욱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휘익!
육중한 덩치의 자이렌이 가볍게 허공으로 도약하더니 그대로 진경산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 일련의 동작이 무척이나 민첩했기에 진경산은 몸을 일으켜 피할 여유도 없었다.
“엇! 위험해!”
표하림이 소리치는 찰나,
타다닷!
누군가 앞으로 훅 튀어 나갔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 나간 자는 다름 아닌 자운룡 교관이었다.
그는 빛기둥을 발로 차며 순식간에 진경산의 몸 위로 날아오르더니 떨어져 내리는 자이렌의 가슴을 사선으로 그어 버렸다.
촤아아아악!
단단한 바윗덩이 같은 몸체를 베었음에도 마치 종잇조각을 베어낸 것처럼 예리한 소리가 울렸다.
탁!
자이렌을 지나친 자운룡이 바닥에 사뿐히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몸통이 정확히 대각선으로 갈라진 자이렌이 진경산 양 옆으로 육중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쿵! 쿠웅!
그 무게가 어찌나 많이 나가는지 바닥이 한참이나 출렁거릴 정도였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목숨을 건진 진경산이 얼른 몸을 일으키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정말 위험할 뻔했군요.”
자운룡이 빙그레 웃으며 돌아섰다.
반면 이를 지켜보던 양초지가 입매를 비틀며 다가와 비아냥거렸다.
“킬킬, 주제도 모르고 설레발치더니 꼴좋구나. 이래서 사람이 주제 파악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거다, 애송아.”
“이런 근본 없는 영감탱이가….”
진경산이 나직이 목소리를 깔았지만, 더 이상 말다툼을 이어 갈 수는 없었다.
“꺄아아악!”
갑자기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진경산이 무심코 돌아보니, 이 반의 여소정이 자이렌 한 마리에 의해 허연 거미줄로 꽁꽁 묶여 가는 것이 아닌가?
“엇! 소저!”
팟!
진경산이 여소정을 향해 달려가는데, 마침 그보다 한 발 앞서서 그림자 하나가 ‘쉬익!’ 소리를 내며 달려갔다.
흑립을 쓴 그 그림자는 바로 위검종이었다.
파밧!
자이렌 앞에 다다른 위검종이 그대로 날아오르면서 검을 그어 올렸다.
슈콰악!
거뭇한 검기에 의해 자이렌의 다리 하나가 통째로 잘려 나갔다.
그 바람에 거미줄에 꽁꽁 묶인 여소정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지만, 위검종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신 뒤늦게 달려간 진경산이 얼른 몸을 날려 여소정을 받아냈다.
휘리리리릭!
허공에서 여소정을 안은 채 팽이처럼 회전한 진경산이 부드럽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가 얼른 극양의 기운을 일으켜 여소정의 몸을 감싼 거미줄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과연 거미줄은 열에 약한 것인지, 극양의 내공을 운용하자 어렵지 않게 끊어져 나갔다.
“괜찮으시오? 소저.”
“네, 괜찮아요. 눈이 부셔서 잠깐 주춤거리는 사이에….”
“아무래도 저 녀석들의 눈을 절대로 응시해서는 안 되겠소.”
하지만 온통 거뭇한 바윗덩이 같은 몸에서 유난히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자이렌의 눈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이렌을 상대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 영롱한 눈을 쳐다보게 되곤 했다.
한편, 다리 하나가 잘려 나간 자이렌은 발을 쿵! 구르더니 고개를 꺾어 들고 포효를 했다.
꾸우우우우웅!
뒤이어,
솨솨솨솨솨솨솨!
녀석의 등이 하얗게 변색되는가 싶더니 이내 수백 가닥의 거미줄이 허공으로 마구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우앗! 거미줄이다!”
“당황하지 말고 극양의 기운으로 베어라!”
사비강이 버럭 소리치자, 우왕좌왕 거리던 생도들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도검을 휘둘렀다.
과연 양의 기운을 품은 검기로 상대하니 날아드는 수백 가닥의 거미줄도 손쉽게 잘려 나갔다.
다만 사방팔방 거미줄이 늘어져 있으니 항시 극양의 내공을 운기해야 한다는 점이 까다로웠다.
한편,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이렌을 향해 달려드는 자가 있었으니,
쉬이이이잇!
한 줄기 검은 바람처럼 달려 나간 위검종은 그대로 검을 쳐올리면서 자이렌의 턱을 깊이 내질렀다.
푸콰악!
턱을 뚫고 들어간 검은 그대로 자이렌의 눈알까지 뚫으며 튀어 나왔다.
츄아아아아!
진득한 녹색 액체가 쏟아져 내리며 위검종의 몸을 잔뜩 적셔 버렸다.
쿠우웅!
자이렌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자, 다른 자이렌들이 동시에 포효를 터뜨렸다.
꾸우우우우우우우웅!
“크읏!”
“제길…!”
생도들이 귀를 틀어막으며 주춤거렸다.
그야말로 사자후가 따로 없었다.
그리 큰 소리가 아님에도 독특한 공명을 울리는 이 포효는 생도들의 기혈을 마구 뒤흔들고 있었다.
포효가 끝나자,
쏴쏴쏴쏴쏴쏴아아아!
수십 마리의 자이렌이 동시에 수만 가닥의 거미줄을 허공으로 쏘아 올렸다.
허공을 새하얗게 메워 버린 거미줄을 보는 것만으로도 생도들은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위검종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파바밧!
흑백의 조화를 이루듯 검은 바람이 되어 허공으로 도약했다.
샤아아아악!
그에게 닿는 모든 거미줄이 단숨에 기화(氣化)되듯 녹아 버렸다.
그렇게 그 다음 표적까지 단숨에 날아간 위검종은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며 검기를 일으켰다.
쏴아아아아악!
쩌어어억, 쿠우웅!
놀랍게도 이번엔 자이렌 한 마리가 통째로 절반이 갈라지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대, 대단하다.”
“위 교관님 혼자서 벌써 두 마리를 처리하셨다!”
생도들이 감탄을 터뜨리며 입을 척 벌렸다.
등부형 역시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 대단하군. 마치 이런 마물을 처음 본 게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군.’
사실 지금 보니 ‘자이렌’이라는 마물이 겉보기와 달리 그리 강한 것은 아닌 듯했다.
다만 생전 처음 보는 외모와 압도적인 크기, 상식 밖의 싸움 방식으로 조금 위축된 것은 사실이었다.
원래 무지(無智)가 공포를 안기는 법 아니던가?
한데 위검종은 일절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그 점만큼은 등부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넋을 놓고 있을 때, 능소소가 날카롭게 외쳤다.
“다들 정신 차려! 나머지 마물들을 상대해!”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든 생도들이 저마다 기합성을 터뜨리며 자이렌을 향해 마주쳐 갔다.
“이 녀석들, 덩치만 클 뿐이다!”
“이 강호에 네놈들이 설칠 공간은 없다!”
꾸구우우우웅!
자이렌과 생도들이 마구 뒤엉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이렌이 터뜨려 내는 안광과 수백 가닥의 거미줄 때문에 활발한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생도들에게도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검은 천을 눈에 두른 채 감각적으로 싸웠고, 어떤 이는 자이렌의 배후로 돌아가 기습을 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자이렌은 덩치에 비해 민첩했지만, 강렬한 안광의 영향만 받지 않는다면 그리 상대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다.
자이렌의 싸움 방식이 의외로 단순하다는 것을 깨달은 생도들은 점점 자신감을 찾아 갔다.
몇몇 생도들이 가벼운 부상을 입긴 했으나, 다수는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채 자이렌을 상대했다.
오히려 이런 단순한 마물에 놀랐다는 것이 분하다는 듯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마침내 마지막 자이렌의 머리가 뎅겅 잘려 나갔다.
쿠우웅!
자이렌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자, 바닥은 이전보다 더욱 꿀렁거리며 진동했다.
“후우, 후우, 후욱! 이걸로 끝인가?”
마지막 자이렌을 쓰러뜨린 양초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더 이상 살아 움직이는 자이렌은 보이지 않았다.
“이거 마물들도 별 것 아니었구먼.”
이 정도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라더니, 어쩌면 ‘서화평원 전투에서 나타났던 마물들도 별 것 아닌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의 곁에서 숨을 고르는 풍검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우. 눈깔만 희번덕일 줄 알지. 그냥 단순히 무식하고 힘만 센 것들이었군.”
“킬킬. 그런데 누구는 그 단순 무식한 것에 당해서 골로 갈 뻔했지 뭐야?”
진경산을 두고 한 말이었다.
진경산 역시 그 속내를 충분히 짐작했기에 이를 빠득 갈고는 양초지를 노려보았다.
한편, 모두가 그렇게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있을 때, 사비강만은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확실히 이상하다. 이 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