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75화 (375/670)

# 375

귀환 마교관

375화

“이쪽으로 오십시오.”

단리정이 머리가 희끗한 노인을 안내했다.

노인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감탄사를 터뜨렸다.

“참으로 훌륭하군. 이렇게 큰 학관일 줄은 몰랐네.”

“관주님은 이것도 성에 안 차는 것 같던데요?”

단리정이 웃음기를 머금고 말하자, 노인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하긴. 녀석의 그 성격이라면 그럴 지도 모르겠구나.”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늘 평온한 일상 아니겠느냐? 자네야말로 전보다 훨씬 늠름해진 것 같군.”

“감사합니다. 모두 사비강 관주님 덕분이지요.”

단리정이 부드럽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노인이 저만치 보이는 언덕 위의 관주전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녀석의 얼굴도 한 번 보고 싶긴 하군.”

그렇게 상념에 빠져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마침 너른 마당을 지나가고 있을 때, 다른 쪽 대문을 통해 일단의 무리가 들것을 들고 다급하게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머리 위에 검고 하얀 무늬가 새겨진 의관(醫冠)을 쓰고 있는 걸로 보아 의생들인 듯했다.

들것에 실린 자는 연신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들것을 옮기는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었는데, 부상자 중에는 이미 의식을 잃고 기절한 자도 있었다.

부상자의 행렬을 지켜본 노인이 입을 척 벌리고는 혀를 내둘렀다.

“이들은 다 어쩌다가….”

“훈련 중에 다친 자들입니다.”

단리정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노인은 더욱 황당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아니, 도대체 무슨 훈련을 하기에 저리도 심한 부상을 당한 건가?”

“일종의 비무와 같은 형식인데… 좀 치열합니다.”

“한데 사람이 저 지경이 되도록 놔둔단 말인가?”

“관주님의 지시입니다.”

“허어, 도대체 그 녀석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그때였다.

“으아아악!”

돌연 한쪽에서 비명이 울려서 돌아보니, 부상자 한 명이 들것에 실려서 옮겨지고 있었다.

부상자는 몸을 뒤틀면서 이따금씩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러댔는데, 워낙 발작을 심하게 하니 의생들이 힘에 겨워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마침 중년인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어떻게 된 거야? 우선 진정부터 시켜라!”

그는 초환당의 부당주 정한중(鄭旱仲)이었다.

의생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혈맥이 전부 뒤틀려서 점혈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런! 부상자가 이리 많다니. 아무리 비무라지만 적당히 해야지. 이건 다 죽이겠다는 거야, 뭐야?”

“관주님의 허용 범위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끄음.”

정한중도 관주의 허용이라는 말에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으아아아악!”

갑자기 부상자가 격심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몸을 마구 뒤트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들것을 들고 있던 의생들이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넘어지고 말았다.

“우앗!”

“억!”

이제 부상자는 입에 거품까지 물면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깜짝 놀란 부당주 정한중이 얼른 소리쳤다.

“뭐하느냐? 어서 진정시켜라!”

의생들이 헐레벌떡 달려가서 부상자의 사지를 잡으려는 순간,

퍼엉! 콰콰쾅!

갑자기 부상자의 몸에서 폭기가 소용돌이치면서 의생들을 저만치 튕겨내는 것이 아닌가?

“우아아악!”

“크아악!”

종잇조각처럼 날아간 의생들이 벽과 건물에 부딪치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저런!”

노인이 흠칫거리며 소리치자, 곁에 있던 단리정이 얼른 활을 꺼내들더니 시위에 네 대의 화살을 걸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다음 순간,

패애앵!

단리정이 시위를 놓자, 네 대의 화살이 빛살처럼 날아갔다.

쒸쒸쒸쒸에엑!

파바바박!

네 자루의 화살은 부상자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옷깃을 꿰뚫었다.

두 자루는 양 어깻죽지의 옷깃을 뚫으며 바닥에 꽂혔고, 다른 두 자루는 소매를 뚫으며 바닥에 박혔다.

단리정은 다시 네 자루의 화살을 쏘았다.

쉬쉬쉬쉬이잇!

파바바박!

이번에는 허벅지와 발목의 옷깃을 뚫으면서 바닥에 박히자, 순식간에 부상자는 바닥에 큰 대자로 벌려 누운 채 꿈쩍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크아아아아!”

부상자의 발작은 계속 됐다.

연신 비명과 괴성을 질러대며 몸을 퍼덕거렸는데, 그 주변을 에워싼 의생들도 섣불리 다가서질 못했다.

자칫했다간 또 알 수 없는 폭발에 휘말려 튕겨나갈 것을 염려한 것이다.

노인이 의생들을 헤치고는 부상자에게 다가갔다.

“크으으윽! 으아아아!”

부상자는 연신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비틀어댔다.

노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주화입마의 초입 단계네.”

“……!”

단리정 뿐만 아니라, 모여든 의생들 역시 누군지 모를 노인의 한 마디에 흠칫 떨며 부상자를 보았다.

부상자는 이제 눈을 허옇게 뒤집은 채 비명을 내질러댔다.

부우우욱!

“우앗!”

마침 오른팔의 옷깃이 찢어지면서 부상자가 팔을 세차게 휘둘러댔다.

노인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품에서 침 하나를 꺼내 날렸다.

핑!

벌처럼 날아간 침은 그대로 부상자의 정수리에 박혔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발작하던 부상자는 축 몸을 늘어뜨리더니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그제야 의생들이 주춤거리며 다가가 들것에 옮겨 실으려는데,

“건드리지 마라.”

노인이 묵직하게 꺼낸 한 마디에 의생들이 저마다 흠칫거리고는 물러났다.

노인이 말을 이었다.

“지금 의식만 잠들었을 뿐이야. 뒤틀린 혈맥에서는 폭기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 자칫 잘못 만지면 화를 입을 수 있다.”

단리정이 다가와 물었다.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그냥 지나칠 수도 없지 않느냐?”

노인이 얕게 한숨을 내쉬더니 쓰러져 있는 부상자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바라보았다.

노인의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잡혔다.

그가 옷깃을 잡아 확 젖히자, 상의가 찢어져 나가면서 단단한 근육질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흐음.”

부상자의 몸을 세세히 살피던 노인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이자는 부상을 당한 게 아니군.”

“하면…?”

“이자가 익힌 건 사공일세. 아마도 사파의 무인이겠지. 기를 폭발시키는 종류의 무공을 익힌 것으로 보이는군.”

“하면… 혹시 스스로의 힘을 제어하지 못한 것일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아마도 무공을 완전히 대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기를 운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러다가….”

“주화입마의 초입까지 내몰린 거군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폭기는 특히 다스리기가 어려운 법일세. 느리게 쌓여서 일시에 폭발하기 때문이지. 한데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자칫 찰나의 다스림을 놓쳐 기혈이 뒤틀리고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지.”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이래서야 차라리 부상을 당한 것만도 못한데요.”

“사공이 원래 그렇지 않나? 대성하면 매우 강맹한 무공이 되지만, 어중간하게 익히면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어디보자…”

노인이 부상자의 몸을 찬찬히 훑다가 중얼거렸다.

“운문혈(雲門穴)에서 협백혈(俠白穴)에 걸쳐 시퍼런 멍이 들어 있군. 이는 중부혈(中府穴)과 천부혈(天府穴)의 압박이 심해 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뜻이지.”

말을 마친 노인이 부상자 옆에 쪼그려 앉더니 품에서 두루마리 천 하나를 꺼내 쫘악 펼쳤다.

두루마리 천 안에는 온갖 종류의 침이 꽂혀 있었는데, 노인이 그 중 몇 개를 집어 들더니 빠르게 손을 놀렸다.

탁. 탁.

“이럴 경우에는 이렇게 중부혈에 이 촌 삼 푼 깊이로 찔러 넣고, 천부혈에는 삼 촌 깊이로 찔러 넣는다.”

노인이 침을 놓자마자 부상자의 오른쪽 어깨부터 팔에 걸쳐 있던 멍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오.”

의생들이 모여서 침을 꿀꺽 삼키고는 탄성을 터뜨렸다.

노인은 여전히 부상자에게만 집중하며 마치 의생들을 가르치듯 말을 이어 갔다.

“복애혈(腹哀穴)에서 복결혈(腹結穴)이 지나는 곳에 붉은 기운이 일어났다가 가라앉길 반복하고 있다. 양기의 뭉침이 심해 폭기로 변하기 전에 극양의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뜻이니, 음기를 순환시켜 중화해야 하지. 그러기 위해서는 대횡혈(大橫穴)에 이 촌 일 푼의 깊이로, 부사혈(府舍穴)을 일 촌 사 푼의 깊이로 찔러줘야 한다.”

이번에도 역시 침을 놓자마자 붉게 달아오르다가 가라앉길 반복하던 구간이 점차적으로 안정을 취해 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여기 누렇게 변색이 된 것은 이미 극양의 기운이 폭기로 변해 소규모 폭발이 체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럴 경우에는 기를 밖으로 빼내야 한다.”

말을 마친 노인이 유문혈(幽門穴)과 석관혈(石關穴), 중주혈(中注穴)에 각각 침을 삼 촌 길이로 찔러 넣었다.

마지막으로 찔러 넣은 침은 조금 독특하게 생긴 것이었는데, 침이 하나의 관처럼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관을 통해서 폭기가 밖으로 배출되는 듯했다.

그렇게 잠시 지나자, 이따금씩 경련을 일으키던 부상자도 차츰 안정을 취해 가더니 이내 고른 숨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와아!”

“대단하다!”

의생들이 저마다 박수를 치며 노인을 추켜세웠다.

노인이 일어나며 의생들에게 나직이 일렀다.

“이제 옮겨도 된다.”

“예!”

의생들이 얼른 달려들어 부상자를 들것에 실어 옮기기 시작했다.

한편 의생들 틈에 섞여서 이 과정을 지켜본 부당주 정한중이 다가와 포권을 취하며 예를 다해 물었다.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혹, 실례가 안 된다면 선배님의 존함을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진백’이라고 하오.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오.”

진백이 겸허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데, 마침 저만치 뒤에서 불쑥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부로 초환당주로 부임하실 분이기도 하지.”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사비강이 매설란과 함께 나란히 서 있었다.

정한중을 비롯한 의생들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관주님, 오셨습니까?”

“아,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 하도록.”

“알겠습니다.”

정한중을 비롯한 의생들이 다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진백은 사비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보고 싶었습니다, 부신각주님.”

사비강이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매설란과 단리정은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저런 표정을 짓기도 하는구나.’

**

“훌륭하구나. 이 정도의 시설이라니. 맹의 의신각(醫神閣)보다도 좋은 환경일 듯하다.”

초환당의 시설을 둘러본 진백이 솔직한 심정을 담아서 이야기했다.

사비강이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그 이상이어야 할 겁니다. 이곳은 앞으로 중원의 중심이 되어야 할 테니까요. 그런데 진 당주님께서는 의신각에 가보신 것 같군요.”

순간 진백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물론, 사비강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진백이 곧 그 표정을 지우고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냥 추측일세. 맹의 의신각이라면 그 규모가 장엄할 테니 말일세.”

“그렇습니까?”

사비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묻자, 진백이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왜 하필 나인가?”

“이 일을 해내실 분은 어르신뿐이라 여겼습니다.”

“이 일…?”

“우선 앉으시지요.”

초환당 당주실로 들어선 사비강이 자리를 권했다.

진백이 자리에 앉자 시녀가 차를 내왔다.

진백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일이라면… 무슨 일 말인가?”

탁.

사비강이 탁자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투명한 병에 들어 있는 그것은 붉은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액체였다.

그리고…

탁.

한 개의 병이 다시 놓였다.

이번에는 푸른색을 띄고 있었다.

바로 힐링 포션과 마나 포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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