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4
귀환 마교관
374화
퍼어엉!
두 사람의 손이 마주치면서 요란한 폭음이 일어났다.
동시에 사방으로 기풍이 확 불어나갔다.
등부형이 눈살을 구기곤 소리쳤다.
“흥! 영감이 제법이군!”
“언제까지 잘났다는 듯 떠드는지 보겠소, 조교!”
퍼퍼퍽! 파파팡!
두 사람의 손발이 어지럽게 서로 뒤엉켰다.
과연 경지에 오른 고수들의 싸움답게 먼 곳에서 지켜보아도 박력이 느껴졌다.
만약 이 싸움을 하급 생도들에게 그대로 보여준다면, 큰 공부가 될 수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적어도 생도들보다는 실력이 우월할 것이라 자신한 등부형으로서는 내심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감이 생각보다 꽤 하잖아!’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
한편 등부형과 양초지가 격돌하니 지켜보던 자운룡은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어어, 저 두 분… 이제 그만… 하아… 진정 좀 해주십시오!”
하지만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양초지는 좀처럼 손을 거두지 않았고, 등부형 역시 먼저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결국 자운룡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말리려는데,
“굳이 방해할 것까지는 없잖아? 교관의 선배 능력 좀 확인하자는 건데!”
팟!
사파의 무인 중 풍검진(馮劍眞)이 불쑥 끼어들며 주먹을 뻗어 오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들은 교관과 조교가 사파인 양초지에게만 따지는 것을 보고 빈정이 상한 터였다.
풍검진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았다.
하지만 자운룡은 반원을 그리듯 보법을 밟으며 물러나더니 날아드는 주먹을 가볍게 손등으로 쳐내고는 일장을 뻗어냈다.
파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기풍이 뻗어 나가면서 풍검진이 부웅 날아 서너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깜짝 놀란 풍검진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강력한 기운이 폭발하자, 주변의 다른 무인들도 움찔거리고는 자운룡을 바라보았다.
그들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뭐야? 이 비리비리한 교관이 이런 내공을…?’
얼핏 보면 굉장히 단순하고 가벼운 공격이었지만, 그 동작에 군더더기가 일절 없다는 건 생도들 모두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자운룡이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고는 예의 그 해맑은 표정으로 웃었다.
“이런… 제가 생도에게 손을 대고 말았네요. 후유, 교관으로서 자격이 없군요.”
양초지와 등부형도 조금 놀란 표정으로 한참이나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때 진경산이 풍검진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따졌다.
“교관님께 이게 무슨 짓이냐! 위아래도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배운 게 없으니 그 모양 그 꼴이지!”
“뭐가 어째?”
풍검진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그러자 자운룡이 다시 난감한 표정으로 말렸다.
“저, 저는 괜찮으니 이제 그만 하십시오.”
“교관님! 저런 사파 잡종들은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오냐, 이 정파 새끼들아! 어디 한 번 해보자!”
“새끼라니! 당신이 내 아비냐!”
“이 쥐 좆만 한 것들이…!”
그때였다.
“다들 열정이 넘치는군.”
연무장 앞쪽에서 무신경한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그제야 기척을 느낀 생도들이 고개를 돌리고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낸 사비강을 보았다.
자운룡이 얼른 달려와 굽실거렸다.
“죄송합니다, 관주님. 제 부덕의 소치로….”
“됐어.”
사비강이 대수롭지 않게 말을 뱉더니 손을 들어 올리고는 휙 저었다.
슉슉! 슈슈슈슉!
그러자 연무장 한쪽에 진열되어 있는 병장기들이 일제히 뽑혀 나오면서 한가운데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타다다다다닥!
수십 자루의 병장기가 연무장 한가운데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 꽂혔다.
생도들은 물론, 자운룡과 등부형 역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올려다보았다.
사비강이 생도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뭣들 하나? 주워들고 싸워라.”
“예?”
생도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반문했다.
자운룡과 등부형도 나섰다.
“관주님, 무슨 말씀이신지….”
“말했잖아. 말귀 못 알아들어? 맘에 드는 놈으로 골라들고 싸우라고. 반병신을 만들어도 좋고, 죽여도 좋다.”
“……!”
“목숨 걸고 서로 싸워라. 뭐, 당연하겠지만 정파와 사파가 오대 오로 싸운다.”
자운룡과 등부형은 턱이 찢어질 듯 입을 척 벌리고 말았다.
한참을 어정쩡하게 서 있던 생도들이 슬금슬금 서로 눈치를 살폈다.
그때, 풍검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사비강에게 물었다.
“진심입니까? 정말 죽여도 됩니까?”
“당연하지. 너희들은 실전을 대비해서 훈련하는 반이다. 실제로 마물들과 싸울 때는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훈련은 언제나 실전같이’라는 말 모르냐?”
이쯤 되자 생도들도 벙찐 표정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는 진경산이 나서서 물었다.
“언제까지… 싸우면 됩니까?”
“당연히 한쪽이 전멸할 때까지다. 목숨 걸고 싸우라는 뜻 모르는 건 아니겠지?”
“허어…”
“갑자기 왜들 그래? 아까 보니 잘 싸우던데.”
생도들의 표정이 복잡 미묘하게 일그러져 갔다.
관주가 ‘괴짜’라는 소문을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한편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자운룡이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며 나섰다.
“저어, 관주님. 아무리 그래도 죽이는 것까지는 좀….”
“흐음.”
잠시 생각하던 사비강이 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물었다.
“좀 그런가?”
“예에… 아무래도 좀 그렇지요. 하하…”
자운룡이 애써 웃음을 짓자 사비강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다시 또 다섯 명씩 채우려면 꽤 귀찮긴 할 거야, 그치?”
“하하… 그런… 문제인가요?”
“좋다. 그럼 목숨만 붙여놔. 반병신을 만들어도 좋다. 새로 뽑는 건 영 귀찮을 테니.”
하지만 생도들의 표정에는 더욱 황당한 기색이 스며들었다.
적어도 사비강이 진심으로 싸움을 붙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결국 정파 생도 표하림(表河林)이 발끈하며 나섰다.
“이런 제길! 이건 해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왜?”
“관주님이라면 응당 싸움을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예?”
“내가 왜? 너희들 싸우려고 왔잖아. 알아서 훈련 잘 하고 있는데 내가 왜 말려야 하지?”
“그, 그런…”
“어쨌든 강한 놈이 살아남는다. 무슨 짓을 해도 좋다. 정도의 예법? 그딴 건 집에서 자장가 부를 때나 쓰도록. 앞으로 너희들이 싸워야 할 상대는 예법 따위는 밥 말아먹은 마물들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싸워서 이겨라. 뭐, 그러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때론 이기기 위해 뭉쳐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아무리 그래도 이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럼 나가.”
“나가라니…!”
표하림이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자,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내 방침에 따를 수 없다면 나가야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 그럼 이제 오대 사가 되겠군. 뭐, 정파 쪽이 좀 불리한 싸움이 되겠지만 어차피 세상에 공정한 싸움이라는 건 없잖아?”
표하림이 주먹을 꾹 말아 쥐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뭐해? 안 가냐?”
“싸우…지요.”
“그래도 의리는 있나 보군. 그럼 시작해라.”
사비강이 말을 마치고 쪼그려 앉자, 사파 무인들이 먼저 쭈뼛쭈뼛 병장기가 꽂힌 것으로 다가갔다.
그걸 본 정파 무인들도 얼른 병장기 쪽으로 달려갔다.
이후에는 순식간이었다.
“하아압!”
“이여업!”
정파와 사파의 생도들이 서로를 향해 격돌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봐도 될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었다.
선혈이 튀어 오르고 꽤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사비강은 집단 비무를 중지시키지 않았다.
그렇기에 생도들은 더욱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생도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사비강이 마침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자운룡에게 말했다.
“부상자가 발생하면 초환당(超換堂)으로 보내도록.”
‘초환당’이란 멸마관 내에서 의술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 가십니까?”
사비강이 히죽 웃으며 답했다.
“또 싸움 붙이러 가야지.”
**
- 들어가지 마시오! -
하복산의 어느 동혈 앞.
기울어진 팻말에 붉은 글씨가 삐뚤삐뚤 새겨져 있었다.
쏟아져 내리는 비에 젖은 팻말은 어딘지 음산해 보이는 글씨체 때문에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던 두 명의 심마니 중 한 명이 그 팻말을 보고는 투덜거리듯 말했다.
“제길, 대체 왜 들어가지 말라는 거야?”
그러자 옆에 있던 심마니가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는 어깨를 툭 쳤다.
“어허, 이 사람! 큰일 날 소리를! 자네 그거 몰라?”
“뭘?”
“얼마 전에 북도문이 멸문을 당했잖은가!”
“그래서?”
“허, 이 사람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줄도 모르는 모양이군! 그때 북도문주가 문도들을 이끌고 저 동혈에 들어갔다가 실종된 것 아닌가!”
“그게 정말이야?”
그제야 다른 심마니도 화들짝 놀라서는 동혈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동혈이 괴물이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분명히 저 동혈은 이곳에 없었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생기고 나서부터는 이상한 일만 생기고 있어.”
“아니, 북도문은 왜 저길 들어간 거야?”
“소문에 의하면 도적떼를 쫓아서 들어갔다고 하더군.”
“그럼 설마 대호채가 갑자기 종적을 감춘 것도…?”
“바로 그걸세. 대호채 도적단도 부하들을 찾으려고 저 동혈로 들어갔다가 돌아 나오지 못한 걸세.”
“허어. 도대체 저기에 뭐가 있기에?”
“그거야 낸들 알겠나? 아무튼 뭔가가 있는 건 확실하겠지. 괴물이든 뭐든.”
“하긴 요즘 강호에서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별 괴상한 마물이 설치고 다닌다고 하더군.”
“나도 듣긴 들었네. 이거 어디 무서워서 산이나 타겠는가?”
“흐음. 그나저나 저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하군. 자고로 함정이 깊으면 보물이 있다는데, 혹시 여기 엄청난 보물이 있는 건 아닐까?”
“아서라. 목숨 아까운 줄 알면 얌전히 가자고. 괜히 무서워지는군. 가세!”
“끄응. 그러지.”
두 심마니가 얼른 자루를 챙겨 몸을 일으키고는 어디론가 걸어갔다.
쏴아아아아.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차가운 빗줄기만 연신 쏟아져 내렸다.
부스럭.
때마침 수풀이 흔들리더니 노루 한 마리가 그곳에 불쑥 나타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노루는 시커먼 동혈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성큼성큼 달려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쿠와아아아아!
포효 소리가 울리고 노루는 다시 나오지 못했다.
**
겨울이 끝나 가고 있었다.
살을 엘 듯이 차갑게 불던 바람도 이젠 어느 정도 훈기를 머금고 있었다.
사비강은 관주전에서 멸마관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수련에 임하는 수많은 생도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사비강의 파격적인 지도 방식에 반발하는 자들도 꽤 많았다.
실제로 소속 문파의 장문인이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사비강은 일절 흔들리지 않았다.
정 버티지 못한 자들은 돌려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가 그의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그 결과 진도가 빠른 생도들 중에는 벌써 마나를 운기하고 1서클의 마법을 간단하게 부리는 수준까지 됐다.
새롭고도 낯선 절공을 익혔다고 생각한 생도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하지만 사비강은 알고 있었다.
그들 중 다수가 마계의 침공으로 스러져 갈 것이라는 것을.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사비강이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들어와.”
“생각이 많나 봐요.”
고운 목소리가 등을 때렸다.
매설란이었다.
사비강이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당신이 이렇게 방안에서 꿈쩍하지 않을 때는 무척 감상적일 때니까요.”
“나에 대해서 꽤 많이 조사했군.”
사비강의 농에 매설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분이 오셨어요. 지금 단리 조교가 안내하고 있을 거예요.”
“아!”
사비강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