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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376화 (376/670)

# 376

귀환 마교관

376화

진백은 생전 처음 보는 두 가지 물건을 한참이나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붉고 푸른 빛깔을 띤 액체.

액체 안의 빛 알갱이가 영롱하게 떠돌고 있었다.

그 신묘함은 오랫동안 시선을 붙들어 두게 만들었다.

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진백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이게… 뭔가?”

“마계의 약물입니다.”

“약물이라? 그것도 마계의?”

대략의 사정은 은기륭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곳 멸마관이 마령교에 대항한 것이 아닌, 마계에 대항하기 위한 시설이라는 것까지.

하지만 역시나 진백도 실감하지 못했다.

세상에 마계가 침공한다니?

분명 쉽게 믿을 수 있는 성질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나 실감을 하지 못할 뿐, 의심을 하는 건 아니었다.

다시 한참이나 포션을 바라보던 진백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중원의 약물과 많이 다르군.”

“그렇지요. 붉은 색은 힐링 포션이라는 것으로, 부상을 치료할 때 쓰입니다. 체력을 보충하기도 하지요.”

“만병통치제인가?”

사비강이 고개를 저었다.

“어지간한 부상과 상처를 치료하기에는 더없이 좋으나, 병에 걸린 자를 낫게 하는 건 어렵습니다.”

“과연. 하면 이것은?”

“마나 포션이라는 겁니다. 체내의 마나를 일시적으로 회복시켜 주는 약물입니다. 말하자면 일시적인 내공 회복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보면 됩니다.”

“마계에서도 내공이 있다는 건가?”

“내공심법은 중원에만 존재합니다. 다만, 마계에서는 마나를 내공처럼 다스리지요.”

“참으로 오묘하도다.”

“생소하시겠지만 금방 익숙해지실 겁니다. 어르신이라면 더욱.”

“내 기분을 띄울 생각은 말고, 이제 요점을 말해 보게. 내게 원하는 게 뭔가?”

사비강이 씨익 웃고는 답했다.

“이 두 약물을 개량해 주십시오.”

“개량을 해 달라?”

“간단합니다. 중원인의 몸에 좀 더 맞게 만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양도 대폭 늘릴 수 있다면 좋지요.”

“허참, 엄청나게 간단하군. 그런 걸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어르신이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날 잘못 봤네. 난 그저 학관에서 의생들이나 가르치는 보잘 것 없는 의원일 뿐일세. 다른 자를 알아보게나.”

“천상환의(天上幻醫)도 할 수 없다면 중원의 그 누구도 할 수 없겠지요.”

사비강의 말에 진백이 흠칫 떨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에 당혹감이 스쳤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천상환의는 진백의 과거 별호였다.

그 별호를 아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었다.

워낙 오랜 세월이 흐르기도 했고.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한때 감찰국주였습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하면 내가 왜 의생들이나 가르치고 있는지도 알겠군.”

진백의 표정은 전에 없이 무거워졌다.

사비강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도 의생들을 가르쳐 주시면 됩니다. 겸해서 방금 말씀드린 연구도 같이 진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거절한다면?”

“그 대가는 중원인들의 목숨이 될 겁니다.”

“사람들이 죽어 가는 거야….”

“몇 사람이 아니라, 멸망을 말하는 겁니다.”

진백이 움찔거렸다가 손을 저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단 일 푼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위험이라면, 그것을 방지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의술을 익힌 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늘 말씀하셨다지요.”

“끄음.”

“지금 중원에서 마령교가 저질렀던 그 일은 재발할 가능성이 일 푼이 아니라, 십 할입니다.”

진백이 입을 다물고 사비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진실을 밝혀 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한참이나 얽히고설켰다.

마침내 진백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군. 세상은 이렇게 평화롭기만 한데.”

곧 봄이 오면 눈이 녹고 꽃이 피고 나비가 한가로이 날아다닐 터다.

한데 중원인의 멸망이라니…

진백이 다시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기한은 언제까지인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것들이 많아질 것이네.”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말씀만 하십시오. 무엇이든 구해 드리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네.”

진백이 몸을 돌리고 서서 사비강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사비강이 미간을 슬쩍 좁히고는 물었다.

“무엇입니까?”

“자네가 말한 그 마물들과 싸우는 날이 다시 온다면… 그땐 한 번은 날 데려가야 하네.”

사비강이 이유를 들어보겠다는 듯이 가만히 바라보자, 진백이 말을 이었다.

“적어도 어떤 병균인지 내 눈으로 확인을 해야 치료법도 개발하지 않겠나?”

사비강이 잠깐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정 그 과정이 필요하시다면 수용하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몰랐다.

그날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 것이라는 사실을.

**

대략 한 달이 흐르면서 추위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멸마관 생도들도 어느 정도 학관의 분위기에 적응을 해가는 시기.

“헉, 헉, 헉…!”

생도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래향을 포위하고 있었다.

서래향은 날카롭게 주위를 훑어보며 말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이 정도로 마물을 상대할 수 있겠어?”

“하아압!”

마침 생도 하나가 기합성을 터뜨리며 서래향의 배후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타닷!

서래향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보법을 밟더니 기습한 생도의 검을 피하고는 그대로 금나술을 펼쳐 상대를 바닥에 내다꽂았다.

꽈앙!

“커억!”

“한심하긴. 기습을 하면서 기합성을 터뜨리는 건 어디서 배운 거냐?”

서래향의 힐난에 다른 생도들이 입술을 쿡 씹더니, 일시에 날아올랐다.

파바바밧!

사방에서 갑자기 투기를 드러내며 공격하자, 서래향이 얼른 호신강기를 끌어올리며 몸을 회전했다.

타다다다다다당!

기막에 부딪친 병장기들이 일제히 튕겨 나가는 순간, 그녀는 목검을 휘둘러 생도들의 요혈을 찔러 갔다.

푹! 푸푹! 콱!

“커억!”

“으아아악!”

끔찍한 고통에 생도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데굴데굴 굴러댔다.

한 차례 공방이 끝나자, 서래향은 우아한 동작으로 바닥으로 내려서며 호흡을 골랐다.

확실히 그녀는 며칠 전과 비교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을 이루었다.

지금처럼 생도들을 상대로 실전 훈련을 하는 것은, 오히려 그녀 자신에게 더욱 혹독한 수련이 된 것이다.

서래향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일어서! 이 정도로 쓰러져서 무슨 마물을 상대하겠다는 거야?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돼?”

“크윽… 젠장!”

생도들이 욕지거리를 뱉어내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벌써 해가 저문 지 한참이 지났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울릴 정도로 허기가 졌다.

그럼에도 서래향은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생도 하나가 옆에 선 생도에게 전음을 흘렸다.

[제길! 왜 하필 오늘 저 교관이 우리 반에 걸린 거야?]

[오늘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우리 반이 걸렸을 거야. 교관들이 돌아가면서 반을 담당하니까.]

[어쨌든 저 여자 유명하잖아. 붉은 마녀라고.]

[노처녀의 신경질을 우리가 다 받아 주는 것 같군.]

그렇게 전음을 주고받는데, 마침 생도 한 명이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교관님. 이제 그만하면 안 되겠습니까? 다른 반 생도들은 이미 숙소로 들어 간지 한참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내가 너희 반을 맡았다. 다른 반과 상관없는 일이지. 덤벼라. 아니면 내가 먼저 간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생도들이 무기를 바로 잡고는 다시 서래향과 대척했다.

타다닷!

“하아앗!”

이번에는 서래향이 먼저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동시에 생도들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그녀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일방적인 학살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생도들은 때론 정교한 차륜술을, 때로는 강맹한 합격술을 펼쳤지만, 서래향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어쩌다가 그녀의 어깨를 베었지만, 서래향은 아랑곳하지 않고 반격을 해왔다.

그야말로 실전에 임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달이 한쪽으로 많이 기울어 버린 시각.

“헉, 헉, 헉…!”

“후욱, 후욱, 후아…!”

초주검이 된 생도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채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체내의 모든 기운을 다 토해낸 듯했다.

그들 한가운데에 우뚝 선 서래향이 싸늘한 눈초리로 주변을 훑어보다가 얕게 한숨지었다.

“형편없는 것들. 그만 가라.”

생도들로서는 모욕적인 말이었음에도 수업이 끝났다는 사실에 모종의 희열감마저 느꼈다.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쉰 생도들이 서둘러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떠나자, 서래향은 그제야 비틀거리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던 것.

그나마 최근 계속된 강행군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버티긴 어려웠으리라.

마침내 다리에 힘이 풀린 서래향은 그 자리에서 큰 대자로 털썩 드러눕고 말았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후우, 후우, 후우…!”

격동하는 심장과 함께 가슴이 부풀어 오르다가 가라앉길 반복했다.

때마침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돌아보니 적무린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오늘도 무리하셨군요.”

“그래야… 잠이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직… 잊지 못하시는 겁니까?”

서래향은 적무린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녀는 밤하늘에 쏟아질 듯 빼곡하게 박힌 별들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처럼 답했다.

“그럴 줄 알았는데… 우습게도 이제 조금씩 잊히고 있어.”

“좋은 소식이군요. 노력의 성과일까요?”

“글쎄. 적어도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면 마음이 편해지는 건 사실이야.”

홍묘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적무린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또 하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뭔데?”

“드디어 찾았습니다.”

“뭘?”

서래향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적무린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인생의 작은 행복을요. 끝내주는 국수집을 찾았거든요.”

서래향이 멍하니 적무린을 올려다보았다.

마침내 그녀가 풋 웃음을 터뜨리더니 낭랑하게 웃어젖혔다.

“무린도 정말 못 말리겠군.”

“그거… 칭찬이지요?”

“그럼. 아주 좋은 칭찬이지. 가자. 작은 행복을 찾으러. 오늘은 내가 쏠게.”

서래향이 기분 좋게 몸을 일으켰다.

**

“이상한 소문?”

사비강이 묻자, 홍염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예, 진원지는 강서 ‘정흥’이라는 곳에 위치한 하복산입니다. 그곳에 생긴 동혈에 관한 겁니다.”

그가 대략적인 소문에 대해 알려 주었다.

사비강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지진이 일어난 후 생긴 동혈이라. 확실히 뭔가 있군.”

“귀영단에서 자체적으로 알아보려 했습니다만, 주군께서 선보고 하라고 하셔서….”

“잘했다. 거긴 너희들이 들어갈 만한 곳이 아니다.”

“혹시 마령교가 숨어 있을까요?”

사비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더한 것들이 있을 거다.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 사람을 배치해서 그 동혈에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라.”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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