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3
귀환 마교관
373화
강서 정흥(鄭興)에 위치한 하복산(遐復山).
일단의 무리가 산길을 따라 성큼성큼 올라갔다.
살벌한 투기를 뿜어내며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은 저마다 허리춤에 무기를 패용한 무인들이었는데, 꽉 다문 입술과 구겨진 미간으로 보아 무척 화가 난 듯했다.
대략 백여 명의 무인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걷는 노인은 선풍도골의 풍채를 지녔는데, 시종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며 모종의 위엄을 보이고 있었다.
마침내 무리가 멈춘 곳은 숲속 깊숙한 동굴 앞이었다.
구름이 잔뜩 끼어서 한껏 낮아진 하늘은 아까부터 우르릉거리며 불길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침 이미 동굴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인 두 명이 다가와 깍듯이 인사를 올렸다.
“문주님 오셨습니까?”
문주라고 불린 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그치듯 물었다.
“여기가 틀림없느냐?”
“예, 그렇습니다.”
“감히 도적떼 주제에 본문을 건드려?”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은 뺨을 씰룩이면서 시커멓고 커다란 동굴 입구를 노려보았다.
그는 바로 정흥에서 ‘북도문(北道門)’이라는 소규모 문파를 이끄는 문주, 남악(藍鄂)이었다.
비록 작은 마을의 문파였지만, 그래도 정흥 일대에서는 북도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가 없었고, 남악의 성품이 워낙 대쪽 같은지라 인근 주민의 존경도 받고 있었다.
한데 최근 도적떼들이 모여 하복산에 ‘대호채(大虎寨)’라는 산채를 차렸다는 소식이 그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남악은 토벌대를 구성해 하복산으로 파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호채의 일부 도적들과 우연히 마주친 토벌대가 그들을 추격하다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돌아온 것이다.
한 마디로 대호채와 제대로 판을 벌이기도 전에 조직이 사라진 셈.
이에 격분한 남악은 직접 문파 내 이백여 명의 고수들을 이끌고 하복산 중턱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남악 곁으로 다가선 무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추호대(追虎隊)가 들어간 후에 일각이 지나지 않아서 비명소리가 난무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 나온 자가 없었단 말이렷다?”
“그렇습니다. 확인을 위해 의림대(意林隊)를 다시 들여보냈지만 그마저도….”
“흐음.”
남악이 침음을 흘리며 성큼 한 걸음 나섰다.
추호대는 정예 중에서도 정예였다.
모두 쉰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한낱 도적떼 따위쯤이야 그들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래도 혹시 몰라 서른 명의 의림대를 구성해 함께 보냈다.
한데 고작 스무 명의 도적들을 쫓아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가 모두 살아나오지 못했다니.
이곳이 도적들의 본채라면 또 모르겠지만, 도적들이 거주하는 본채는 여전히 멀쩡하게 건재해 있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
하긴 그러니 수하도 섣불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본문까지 돌아와 보고를 한 것이리라.
시커먼 동혈을 빤히 노려보던 남악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한데… 이상하군.”
“……?”
곁에 선 수하가 뜻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남악이 미간을 잔뜩 구기며 물었다.
“이런 곳에… 이런 동굴이 있었던가?”
남악은 정흥에서 육십 년이 넘도록 살아온 인물이었다.
하복산이 크다지만 어지간한 일대는 안마당처럼 훤히 꿰고 있는 그였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동혈은 생전 처음 보는 곳이었다.
하복산에 이토록 크고 너른 동굴이 있었다면, 진작 그도 알고 있었으리라.
곁에 선 수하가 추측을 말했다.
“이틀 전 하복산 일대에 지진이 있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그때 생긴 동굴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흐음.”
남악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동혈의 입구가 자연적으로 생겼다고 보기에는 너무 깔끔하지 않은가?
마치 모종의 힘으로 깎아 만든 것처럼.
그렇다고 인간이 하루아침에 이런 동굴을 만들어냈을 리는 없었다.
‘묘한 일이로다.’
그제야 조금 불길함을 느낀 남악이 살짝 긴장을 하며 물었다.
“이곳으로 들어간 놈들은 서른 명의 도적떼가 전부였느냐?”
“그렇습니다! 이후로 출입한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동혈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남악이 결심을 굳히고 말했다.
“좋다. 더 이상 시간 끌 건 없겠지. 이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이 도적떼건 호랑이건 잡아 죽이면 그만이다. 가자!”
“존명!”
남악이 단전의 내공을 끌어올리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갔다.
그 뒤를 백여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따랐다.
휘이이이잉!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차가운 겨울바람만 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마도 반각이 채 지나지 않았을 시간.
“크아아아악!”
“흐이이익! 이, 이게 뭐야아아악!”
“살, 살려줘억! 아아악!”
동굴 안에서 괴성과 비명이 마구 뒤섞이며 튀어나왔다.
그렇게 얼마나 처절한 절규가 토해져 나왔을까?
마침내 동굴 안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그곳에서 돌아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제법 오랜 심사를 거친 끝에 멸마관의 개관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사비강은 천오백여 명의 생도들이 모인 대연무장에서 간략하게 연설을 마친 후, 다음날부터 곧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화려하고 장황한 분위기와는 달리 생도들의 속사정은 제각각 조금 달랐다.
아무래도 다양한 지역에서 많은 무리들이 모인 만큼, 은근한 질투와 견제, 집단적인 따돌림, 노골적인 차별 등으로 시끄러운 일이 종종 생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가장 심한 것은 정사 간의 대립이었다.
정파와 사파에서 한가락 한다는 무인들이 모두 모이다 보니, 자연히 정사간의 갈등이 일어났고 불화가 잇따를 수밖에 없었다.
생도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일급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급 일반.
동급의 다른 반과 마찬가지로 정파 무인이 다섯 명, 사파 무인이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데 첫 수업이 시작된 오늘, 그들은 연무장에 모여 동과 서로 갈라진 채 서로를 보며 연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해 보거라. 애송아.”
하얀 머리카락을 허리춤까지 기른 꼽추 노인이 맞은편에 선 청년에게 살벌한 눈빛을 보냈다.
그는 ‘양초지(羊草地)’라는 인물로 섬서 일대에서 ‘혈신광도(血身狂刀)’라는 별호로 알려진 사파 무인이었다.
맞은편에 선 청년, 진경산(鎭傾山)이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근본도 없는 나부랭이들이라고 했소.”
“그 잘난 근본부터 아작나고 싶으냐?”
양초지가 누런 이를 뿌드득 갈면서 으르렁거렸다.
진경산 역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시던가?”
“맹랑한…! 네놈을 보니 부모를 알겠구나.”
“감히 부모를 욕하다니. 그 굽은 등을 활짝 펴게 만들어 줄까? 영감?”
진경산이 분노로 치를 떨며 말을 씹어 뱉었다.
양초지가 피식 웃었다.
“오냐, 그래주면 고맙지. 내 평생의 소원이었으니까 말이야. 킬킬.”
그러자 사파 무인들이 키들거리며 웃었다.
진경산이 내공을 끌어올리자 장삼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흥! 죽어도 좋다면 그 등부터 펴드리지!”
“그래, 다만 네놈이 하지 못하면 네놈의 등이 나보다 더 처참하게 구겨질 각오는 해야 할 것이야.”
“흥!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오!”
파앗!
진경산이 바닥을 차며 쏘아져 나갔다.
그가 주먹을 쑥 내뻗자, 양초지가 얼른 두 손바닥을 교차하며 막아냈다.
파앙!
“제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들보들한 손길로 내 굽은 등을 펼 수 있겠느냐!”
쉬팟!
양초지가 재빨리 손날을 내질렀다.
그는 비록 손을 이용했지만 사용한 초식은 도공이었다.
예리한 기가 손날에 실리면서 진경산의 옷깃을 찢어냈다.
펄럭!
찢어진 옷자락이 늘어지자, 진경산이 이를 빠득 갈고는 거추장스러운 부분을 완전히 찢어냈다.
부욱!
그리고 두 사람이 다시 격돌하려는 순간,
“뭣들 하는 짓인가!”
느닷없는 호통소리가 연무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생도들이 돌아보니 젊은 남자와 보다 나이가 많은 중년의 남자가 들어서고 있었다.
바로 교관인 자운룡과 조교, 등부형이었다.
자운룡은 양초지와 진경산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란 얼굴로 달려와 달랬다.
“아아, 이렇게 서로 싸우면 안 됩니다. 여기는 학관입니다. 배움을 익히는 곳이지요.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분은 대화로 해결하심이….”
“저놈이 먼저 노부를 공격했소!”
양초지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러자 진경산이 맞받아 소리쳤다.
“영감이 노망이 난 모양이군! 먼저 공격하라고 한 건 그쪽이 아니던가!”
“닥쳐라! 네놈이 노부를 먼저 모욕하지 않았더냐?”
“흥! 쓰레기를 쓰레기라고 부른다면 그것이 어디 모욕인가?”
“노오옴!”
양초지가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내공을 실어 사자후를 터뜨렸다.
그 바람에 주변 기왓장이 다르르 떨렸다.
“으으.”
자운룡이 얼른 귀를 막고 눈살을 찌푸리다가 애매하게 웃으며 양초지를 진정시켰다.
“자자, 진정하십시오, 영감님.”
“양초지요.”
“아, 양 대협. 우선 노여움을 거두시고 차근차근 이야기로….”
“흥! 저런 쓰레기 같은 인간과 이야기할 것도 없습니다!”
“오냐, 문답무용이다!”
두 사람이 다시 당장이라도 치고 박을 듯 싸워대자, 자운룡은 난감한 표정으로 웃으며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급기야 그가 도움을 청하는 표정으로 등부형을 돌아보았다.
“선배님… 어쩌지요?”
“이런 녀석들은 말로 해서는 통하지 않는 법일세.”
등부형이 어깨를 으쓱이며 앞으로 나섰다.
“다들 조용!”
순간 공력이 담긴 사자후가 연무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 바람에 서로를 향해 격돌해 가려던 양초지와 진경산도 움찔거리며 멈추고 말았다.
양초지가 등부형을 힐끔 돌아보았다.
“뭐요?”
“영감도 진정하시오. 잘한 건 없잖소?”
“뭣이? 왜 다들 나만 보고 지랄이야! 저놈이 먼저 날 모욕했다니까!”
“어쨌든 연배가 있으니 먼저 마음을 다스리라는….”
“젠장! 그게 아니라 당신들이 정파인이니까 그런 거겠지! 안 그래?”
양초지는 진심으로 화가 난 듯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학관이라고는 하지만, 나이도 제한 없이 오로지 실력 위주로 선발하다 보니 아직까지도 교관과 생도들의 위계질서가 잡히지 않은 상황.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 등부형도 발끈해서 소리쳤다.
“억지 부리지 마시오! 나잇살 먹고 창피하지도 않으시오! 게다가 지금껏 사파의 무인들이 저지른 잘못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소?”
이쯤 되자 자운룡은 괜히 등부형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후회가 일어났다.
그가 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등부형을 말렸다.
“선, 선배님 이제 그만… 하하…”
“비켜 보게. 저런 자들은 따끔하게 한 마디 하지 않으면….”
하지만 양초지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보아하니 그쪽이야말로 교관보다 선배인 모양인데, 직위가 조교인 것을 보니 실력이 한참 밑도는 모양이군! 멸마관 조교는 개나소나 다 받는 모양이지?”
자신의 역린이 건드려지자, 등부형이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닥치지 못할까!”
“호오, 화난 모양이군. 꼴에 자존심이라는 건가?”
“역시 사파 나부랭이들은 매가 약이구나!”
결국 흥분을 참지 못한 등부형이 바닥을 차고 날아갔다.
“오냐! 노부가 인생을 헛먹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마!”
양초지 역시 일갈을 터뜨리며 마주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