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2
귀환 마교관
372화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버티고 선 협곡.
차고 습한 바람이 협곡 사이를 휩쓸며 지나갔다.
펄럭펄럭!
붉은 사제복을 입은 마령교도들이 망토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며 옷깃을 여몄다.
협곡 사이에서 의식을 준비하는 수십 명의 마령교도들.
얼굴을 잿빛으로 칠한 회면인(灰面人)의 지시에 따라 신도들이 자리를 잡고 멈춰 섰다.
수십 명의 신도들을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남쪽을 기준으로 역오망성의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사제복을 입은 신도들이 역오망성을 감싸듯 크고 둥근 원을 그리며 섰다.
신도들이 완전히 자리를 잡고 나자, 회면인은 경공을 펼쳐 절벽을 타고 빠른 속도로 솟구쳐 올랐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보았더라면 회면인의 가벼운 몸놀림에 감탄을 금치 못했으리라.
이윽고 협곡 꼭대기까지 오른 그가 하늘을 꺾어 보았다.
구름이 별에 스치면서 유유히 흘러갔다.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렸을까?
마침내 회면인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가 협곡 아래를 보며 외쳤다.
“때가 되었다! 의식을 거행하라!”
공력이 담긴 묵직한 음성이 협곡 아래에 쩌렁쩌렁 울리자, 붉은 옷을 입은 신도들과 검은 옷의 신도들이 일제히 몸을 좌우로 흔들며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수라문하알함타(修羅紊瑕軋陷墮) 이두사가율타할라(利竇死假律墮割懶) 살랄불오(殺剌不汚)…”
일정한 리듬으로 울려 나오는 주문은 어딘지 음산한 기운을 한껏 풍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문은 점점 더 큰 소리로 협곡 가득 울려댔다.
급기야 먼저 내뱉은 소리와 나중에 내뱉은 소리가 서로 뒤섞이면서 또 하나의 기묘한 언어를 만들어내는 듯했다.
거기에 협곡을 비집고 드는 바람소리까지 더해지니, 마치 귀신의 울음을 듣는 듯했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 이 좁은 협곡에 들어섰더라면, 사이하다 못해 괴기스럽기까지 한 분위기에 혼을 놓아 버리리라.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 의식이 진행되었을까?
기묘한 음률은 쉴 새 없이 협곡에서 미미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나타난 현상은 귀신이 휘몰아치듯 불어대던 바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것이다.
마치 협곡 전체가 진공 상태라도 된 듯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함 속에서 오로지 신도들의 주문만 또박또박 들렸다.
급기야 울림은 완전히 사라지고,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새겨지는 그때,
우우우우우웅…!
미묘한 진동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모래 알갱이들이 스르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정확히 말하자면 역오망성을 감싼 원 안에 든 모래 알갱이들만 허공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자갈돌까지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쩌적…! 쩍!
검은 사제들을 둘러싸다시피 땅에 원형으로 균열이 발생하더니 시뻘건 핏물이 우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얼핏 보면 마치 대지가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일 지경.
한편 그것을 본 회면인의 표정이 희열에 젖어들었다.
‘드디어… 시작이다!’
잠시 후,
우우우우웅!
원 안에서 일어나는 진동음이 더욱 거세졌다.
동시에 주문을 읊는 신도들의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이 기이한 상황 속에서도 신도들은 주문을 멈추지 않았다.
길고도 긴 주문.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주문을 어떻게 다 암기했을까 싶을 정도로 긴 주문이었다.
마침내 주문을 읊는 신도들마저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주문 소리는 점점 더 고조되고 있었다.
신도들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발하사이구탐(渤割死利拘貪)! 알선타할라지마(軋羨墮割拏之魔)!”
마침내 길고도 긴 주문의 마지막을 외쳤을 때,
쑤아아아아아앙!
원형 안에 든 역오망성에서 강렬한 빛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핏빛 빛줄기는 그대로 우주까지 뻗어 나갈 듯 높이 솟아올랐다.
협곡을 내려다보는 회면인의 얼굴이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드디어… 드디어…! 이 땅에 변화가 시작된다!”
만약 저 하늘의 달이 뜬 위치에서 중원을 내려다본다면, 지금 중원 전역의 열 군데에서 이와 같은 빛줄기가 솟구쳐 올랐으리라.
그리고 그 빛줄기는 정확히 역오망성의 꼭짓점을 이룰 것이다.
회면인이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협곡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한편, 주문을 끝낸 신도들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무릎을 꿇고는 각혈했다.
“쿠웨엑!”
“크억!”
한 움큼의 피를 토한 그들이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원형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쑤아아아앙!
다시 한 번 원형을 따라 붉은 빛줄기가 솟구쳐 오르더니 반투명한 막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텅. 터텅.
반투명한 막에 부딪친 신도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막을 두드렸다.
“이, 이건…?”
“뭐, 뭐야?”
회면인이 원형의 결계로 다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의 희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신도들이 막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단주님! 안 됩니다! 살려 주십시오!”
“여기서 나가게 해주십시오!”
신도들이 애타게 소리쳤지만, 회면인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모든 거사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는 법. 본교는 너희들의 희생을 기억할 것이다.”
“안, 안 됩니다! 단주님!”
“으아악! 손, 손이…!”
“헉! 안 돼! 살, 살려줘…!”
신도들이 비틀거리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놀랍게도 그들의 손끝이 한줌 재처럼 변하면서 스르르 흩어져 허공으로 휘날리는 게 아닌가?
회면인은 수십 명의 신도들이 그렇게 잿더미가 되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가늘게 몸을 떨며 모종의 희열을 만끽하고 있었다.
제물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의식이 성공했다는 뜻이었기에.
**
“……!”
침상에 죽은 듯 누워 있던 무랑도사가 눈을 번쩍 떴다.
길고 하얀 눈썹에 덮여서 좀처럼 두 눈을 보이지 않던 평소와 달리 지금 그의 모습은 무척 이례적이었다.
그는 마치 수백 장을 쉬지 않고 달린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보통 문제가 아니구나…!”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할 것 같은 그가 손끝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가 얼른 장삼을 걸치고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왔다.
그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하고 적막한 밤하늘.
이따금씩 별똥별이 떨어졌지만,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별 다를 것도 없는 하늘이었다.
하지만 무랑은 뭔가를 찾으려는 듯 이리저리 시선을 옮겨 가며 한참이나 천문을 읽었다.
이윽고 그가 가늘게 떠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천지가 개벽하다니…!”
**
그 시각 사비강은 관주전의 최상층에서 귀영단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흔적을 쫓았지만 특별한 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유인책이었나 보군.”
홍염의 말끝을 사비강이 이었다.
홍염이 송구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그동안 귀영단은 마령교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
사비강은 특별히 서두를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결국 귀영단은 어떠한 흔적도 찾지 못했다.
의심이 생기는 곳을 집중 조사하면 번번이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그야말로 마령교는 정사마대전 이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조직처럼.
하지만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
분명 어디선가 뭔가를 꾸미고 있을 게 분명했으므로.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사비강은 가만히 중얼거리고는 창가로 다가섰다.
귀영단의 정보력도 피해 갈 수 있을 만큼 은밀하게 움직이다니.
분명 뭔가 엄청난 걸 준비하는 것이리라.
“기분이 안 좋단 말이야.”
사비강이 전에 없이 착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데, 마침 문이 벌컥 열리면서 무랑이 성큼성큼 들어섰다.
“문제가 생겼네.”
그를 돌아본 홍염은 물론, 사비강도 깜짝 놀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영감이 어떻게 여길….”
그러자 무랑이 사비강을 힐끔 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깟 결계 따위야. 결국 만물의 이치가 하나인 것을. 내게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네.”
실제로 관주전에는 예전 신생각과 마찬가지로 각종 결계를 설치해 둔 상황이었다.
한데 그것들이 무랑에게는 모두 무용지물이었던 것.
사비강이 내심 감탄하면서도 용건을 물었다.
“한데 무슨 일이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네.”
“우려했던 일이라면….”
“이제 중원은 더 이상 우리가 생각했던 곳이 아닐 수도 있네.”
무랑의 말에 사비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무랑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과연 내 생각보다 빠르군. 벌써 소환지가 만들어졌다는 건가?”
사비강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새겨졌다.
**
소녀는 한참이나 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해가 뜨기 전부터 꼼짝없이 꽃만 바라보며 서 있던 소녀는 해가 중천을 지나 서녘으로 기울 때까지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마 누군가 보았더라면 소녀를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밀랍으로 만든 인형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가 서쪽 언덕에 걸쳐 긴 땅거미를 만들었을 때였다.
“오래 기다렸느냐?”
비로소 소녀가 허리를 펴며 돌아섰다.
그녀 뒤에는 소녀만큼이나 오랫동안 호흡을 조절하며 서 있던 교주가 있었다.
“아닙니다.”
교주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제로 그는 오전부터 소녀의 뒤에 다가와 서 있었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느끼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소녀가 이렇듯 꼼짝없이 뭔가에 집중할 때면, 자신도 내공을 운기하며 의식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행위가 자연스러울 만큼 몸에 배어 있었다.
소녀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이 좋아졌구나.”
“과찬이십니다.”
“곧 중원 각지에 소환지(召喚地)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처음에는 열군데, 그리고 차츰 늘어나겠지.”
“드디어…!”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대할 것이다.”
교주가 주먹을 꾹 말아 쥐고 몸을 가늘게 떨었다.
간밤에 중원 각지에서 거행한 의식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는 뜻이리라.
교주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소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녀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자 나비 한 마리가 나풀거리며 날아와 손가락 끝에 내려앉았다.
“기다리면 된다. 가만히.”
“기다리겠습니다.”
“때가 되면…”
나비가 다시 나풀거리며 어디론가 날아갔다.
잠시 후 소녀의 전신에서 모종의 기운이 사방으로 훅 뻗어나가자, 꽃밭에서 노닐던 나비와 벌떼가 일제히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일대장관을 이루었다.
“중원은 알아서 흔들릴 것이다.”
소녀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허공을 어지럽게 날아오르는 나비와 벌떼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혼돈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질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