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34화 (334/670)

# 334

귀환 마교관

334화

서래향은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다.

그녀를 막아서던 암영대는 물론, 천멸대 역시 등골이 서늘해졌다.

“헉, 헉, 헉…!”

“제길…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염자량이 흑패도를 양손으로 쥐고는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이곳이 뚫리면 끝이다.

벌써 꼬박 하루 동안 막아서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진지 오래였고, 다시 미명이 밝아 왔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온갖 마법을 사용했고, 수면독을 비롯한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독공을 익힌 홍묘는 어지간한 수면독에 내성이 있었다.

게다가 천멸대원이 익힌 마법이나 정령 정도로는 이미 초절정의 영역에 오른 서래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애초에 초절정 고수를 살생하지 않고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닌가?

암영대와 천멸대는 부상을 입고 지쳐 가는데, 서래향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제길…! 살초만 쓸 수 있어도!”

그녀를 죽이고자 마음먹었다면 지금쯤 결판이 났으리라.

하지만 절대로 그녀를 죽여서는 안 된다.

그녀가 죽는 순간, 암영대는 물론 천멸대도 전멸할 가능성이 높다.

해서 단리정이 쏘는 화살도 급소만은 피해서 날아들고 있었다.

천멸대가 호흡을 고르며 에워싼 채로 경계 태세를 취하는 중, 서래향은 왼쪽 어깨에 박힌 화살을 무심히 뽑아내더니 아무렇게나 휙 던져 버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인형처럼 생기가 없는 표정으로 주변을 에워싼 무인들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단 한 명의 여인을 둘러 싼 수십 명의 무인들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미 천멸대와 암영대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

정말 온갖 방법을 다 썼다.

염자량은 마법으로 막아섰고, 능소소는 바람의 최상급 정령인 실레스틴을 소환해 그녀의 발을 묶었다.

하지만 그녀를 죽이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나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휘이이이잉!

겨울바람이 마당을 휩쓸며 지나쳤다.

매설란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당 대주는 암영대를 이끌고 최대한 그녀를 구속하는데 집중하도록 하고, 단리 대주!”

“예!”

언제 날아온 것인지 단리정이 인근의 지붕 위에 착 안착하면서 대답했다.

“천멸대는 차륜술을 펼쳐서 홍묘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에 초점을 두도록! 무조건 시간을 끌어야 해!”

“존명!”

당이협과 단리정이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단리정이 전음으로 천멸대에게 각각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이협은 둥글게 포위하고 있는 암영대원들을 부채꼴로 펼쳐지도록 정비하고 사슬갈퀴를 던지도록 했다.

파바밧!

연우경과 목단화 그리고 조문탁이 먼저 서래향을 향해 짓쳐들었다.

“지나가게 둘까 보냐!”

“교관님께는 한 발자국도 못 가!”

“이번엔 우리가 교관님을 지킨다!”

세 사람이 저마다 일갈을 터뜨리며 공력을 끌어올렸다.

쉬이잇! 쒸엑! 쉭쉭쉭!

연우경의 청빙검이 한기를 풀풀 날리며 묵직하게 날아들었고, 그 곁에서 사심자가 춤을 추듯 구불구불 파고들었다.

마지막으로 조문탁이 날린 열 자루의 비수가 어지럽게 서래향의 정면으로 쇄도했다.

하지만 이 역시 살초를 쓴 것은 아니었기에 서래향의 목숨이 위협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그녀를 주춤거리도록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까앙! 휘익! 따다당!

서래향은 잔상을 남기면서 어지럽게 움직였다.

이형환위의 수법까지 펼치면서 방어를 해내자, 지켜보던 무인들은 더욱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특히 당이협은 입을 딱 벌리고는 생각했다.

‘아무리 직전에 아수대환단을 복용했다지만, 이렇게까지 강할 줄이야….’

하긴 초절정에 이른 고수를 죽이지 않고 발만 묶어 두라는 것은 호랑이를 깨우지 말고 코털만 뽑으라는 소리와 다를 게 뭐가 있겠나?

게다가 당이협은 모르겠지만, 세혼폭멸고는 지금 홍묘의 선천지기까지 모조리 끌어올려 이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 마디로 본능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잠재된 힘까지 모두 이용하고 있으니, 어지간한 초절정 고수도 그녀를 상대하기는 힘들 일이었다.

그렇다고 감탄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현재 맹 내의 초절정 고수들은 여전히 맹주전을 호위하는 데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들은 홍묘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일종의 속임수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속임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맹주의 안위였다.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맹주전 인근에서만 자리를 지켰다.

‘어쨌든 이 자리에서 묶어야 한다!’

당이협이 소리쳤다.

“결박!”

그의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부채꼴로 흩어져 있던 암영대원들이 일제히 서래향을 향해 사슬갈퀴를 던졌다.

촤라라락!

콰콰콱! 콰콱!

그래도 천멸대의 차륜술이 어느 정도 먹혀들었던 것인지, 이번에는 암영대의 사슬갈퀴가 서래향의 양손과 발목을 제대로 구속했다.

물론 몇 개의 사슬갈퀴는 그대로 바닥을 찍고 말았지만, 지금 사지를 구속한 사슬 갈퀴만으로도 충분했다.

“됐다! 절단한다!”

당이협은 망설임 없이 명을 내렸다.

암영대원들이 사용하는 사슬갈퀴는 평범한 무기가 아니었다.

그들이 쥔 사슬 끝부분의 고리를 잡아당기면 갈퀴 부분에서 칼날이 튀어나와 상해를 입힐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즉, 그들이 고리를 잡아당기는 순간 날카로운 칼날이 튀어나오면서 서래향의 손목과 발목이 절단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멈춰라!”

갑자기 등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훅 튀어나왔다.

그림자는 서래향을 결박하고 있던 암영대원들에게 날아가더니 각각 일장을 날려댔다.

퍼펑! 퍽퍽!

“크아악!”

“어억!”

암영대원들이 저마다 사슬갈퀴를 놓치고 나뒹굴었다.

당이협이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그림자는 바로 혈사련에서 파견 온 적무린이었다.

지금껏 그는 정도맹의 무인들이 서래향을 막아서는 것을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그 이유는 정도맹의 무인들에게서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도맹 무인들은 살초를 사용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그녀를 막아내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듯했다.

물론, 나중에는 정도맹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엿듣고는 대략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세혼폭멸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 서래향의 몸속에 들어가 있었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정도맹이 서래향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기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칫 서래향이 반신불수가 될 순간이 아닌가?

그것만은 지켜볼 수 없었다.

당이협이 격노했다.

“노옴! 이게 무슨 짓이냐?”

“홍묘께서는 지금 세혼폭멸고에 당한 것일 뿐이다! 그걸 당신들도 알지 않나?”

“하지만 그녀 때문에 수많은 희생자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 죄도 없는 홍묘 님의 사지를 절단한단 말인가?”

“방해 말고 비켜라! 지금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 이대로 두면 여긴 죽음의 땅으로 변할 것이야!”

결코 과장된 허언이 아니었다.

절대로 바라지 않는 일이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젠 단순한 폭발의 문제가 아니다.

서래향은 독공을 익힌 여자다.

그녀가 자폭을 하는 순간, 그녀의 내공에 응축되어 있던 온갖 종류의 독기가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만약 그녀가 맹주를 노렸다면, 거기서 끝이었을 거다.

한데 이젠 대상이 바뀌었다.

사비강이 바로 그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사비강은 현재 땅속에 파묻혀서 온갖 독기와 싸우고 있지 않은가?

만약 그 독들이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래향이 그곳에서 자폭을 한다면?

그야말로 정도맹 본단 복판에서 대재앙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것까지 혈사련주가 노린 것은 아닐 테지만, 그가 본래 노리던 상황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알겠나? 저 여자를 이대로 놔두면 이 일대는 온통 죽음의 땅으로 변한다! 물론, 그녀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한다!”

당이협이 다시 한 번 강조하자, 적무린이 입술을 쿡 씹었다.

반박할 만한 마땅한 말이 없다.

그렇다고 그녀가 평생 불구로 사는 모습을 보는 건 더욱 괴로울 것 같다.

‘제기랄! 련주…! 련주…!’

적무린이 주먹을 꽉 말아 쥐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정녕 이렇게까지 해야 했단 말인가?

홍묘는 그를 사랑했다.

련주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이용했다.

단지 그뿐이다.

눈에 핏발이 섰지만,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천멸대는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서래향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때였다.

“대주님!”

수하 한 명이 경공을 펼치면서 빠르게 달려왔다.

당이협이 돌아보자, 수하가 도착하기도 전에 소리쳤다.

“세혼폭멸고를 제거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뭣이?”

당이협의 표정에 환희가 찼다.

적무린 역시 기대를 건 표정으로 얼른 달려갔다.

“그게 정말인가?”

수하는 갑자기 끼어든 적무린을 힐끔거렸지만, 이내 개의치 않고 보고를 이어 갔다.

지금은 이런저런 것을 따지기에 너무나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수하가 손에 든 상자를 내밀었다.

“본가에서 전서응을 통해 보내온 영단입니다!”

“이건…?”

“제멸고독단(制滅蠱毒團)입니다.”

“용법은?”

“그것이…”

수하가 잠시 뜸을 들이자, 당이협이 얼른 다그쳤다.

“뭐하는가? 지금 급박한 상황이 보이지 않나? 어서 말해라!”

제멸고독단은 당이협으로서도 금시초문이었다.

그 말은 원래 있는 독단이 아니라, 세혼폭멸고를 제거하기 위해 당문에서 만들어낸 단환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당이협도 그 용법에 대해서는 모를 수밖에.

수하가 적무린을 다시 한 번 힐끔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제멸고독단은 세혼폭멸고를 유혹하는 미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만약 제멸고독단을 복용한 자가 홍묘와 관계를 가지게 되면 세혼폭멸고는 상대의 몸으로 이동하여 기생하게 됩니다. 그 후에는 세혼폭멸고가 숙주의 몸에 남아 있는 제멸고독단을 섭취하게 되고 마침내 사멸하게 됩니다.”

“…….”

당이협의 표정이 슬쩍 일그러졌다.

세혼폭멸고를 제거하는 방법이 쉽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까다롭지 않은가?

적무린이 불쑥 끼어들며 물었다.

“하면 세혼폭멸고가 사멸하면 숙주는 어떻게 되는 거지?”

“숙주 역시 중독되어 죽을 수밖에 없소. 제멸고독단은 세혼폭멸고를 사멸시킬 정도로 강한 독이오. 세혼폭멸고가 사멸하는 것과 동시에 숙주의 온몸에도 제멸고독단의 독이 퍼져서 반각 이내에 죽을 거요.”

한 마디로 누군가 제멸고독단을 복용한 후 홍묘와 정사를 가져야 한다.

이때 세혼폭멸고는 제멸고독단에 본능적으로 이끌리게 되므로 홍묘를 유혹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미약이나 춘약을 복용한 것과 진배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다만, 관계를 가지고 나면 제멸고독단을 복용한 자의 몸에 세혼폭멸고가 들어오게 되고, 이내 세혼폭멸고와 함께 독상을 당해 죽게 된다는 뜻이다.

즉, 누군가는 죽을 각오로 제멸고독단을 복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껏 찾아낸 방법이….’

당이협이 한숨을 내쉬는데,

“내가 복용하지.”

적무린이 불쑥 나섰다.

당이협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보았다.

“진심인가? 제멸고독단을 복용하면 결국 중독되어서 당신도 죽는다는 걸 들었을 텐데?”

“들었다. 하지만 홍묘 님은 살지 않나?”

“그야 그렇지만….”

“내가 복용한다.”

적무린이 다시 한 번 딱딱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로서는 누군지도 모를 놈이 홍묘와 정사를 가지는 걸 도저히 허락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게 바로 자신이길 바랐다.

‘나는 당신의 분신이지 않소?’

내심 자조적인 미소를 지은 적무린이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다.

“내놔.”

당이협이 흠칫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적무린을 보았다.

이렇게 간단히 죽음을 각오하고 나설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파의 충성심은 대체로 이 정도인 건가?’

그때, 바로 곁으로 내려선 매설란이 당이협의 손에 들린 작은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단환을 꺼내더니 적무린에게 건네주었다.

“받아요. 당신은 충성심만으로 그녀를 지키려는 게 아니군요.”

“쓸데없는 참견이군.”

적무린이 냉소를 짓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멸고독단을 입에 털어 넣었다.

고약한 냄새가 입안에서 퍼지는가 싶더니 이내 식도를 타고 꿀꺽 넘어갔다.

다음 순간,

까가가강!

한 차례 적의 공격을 막아내던 서래향이 우뚝 멈추더니 멍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녀의 시선이 적무린을 똑바로 향했다.

모든 무인들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과연 통할 것인가?’

잠시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그 자리의 무인들에게는 억겁의 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마침내 서래향이 한 걸음 내디뎠다.

적무린이 반사적으로 물러났다.

다시 서래향이 한 걸음 내디뎠다.

이번에는 적무린이 보법을 밟아 열 걸음을 물러났다.

홍묘가 적무린에게 다가갔다.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됐다!’

적무린이 얼른 돌아서서 몸을 날렸다.

어쨌든 그녀를 최대한 정도맹의 본단에서 떨어뜨려 놓을 생각이었다.

딱히 정도맹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홍묘를 이용하려고 한 련주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라고 해야 될 것이다.

홍묘가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적무린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적무린이 돌아보며 생각했다.

‘나중에 깨어나면 내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사비강 교관.’

한데 왠지 그라면 고마워하기는커녕 평생 놀려 먹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하긴 그러든 말든 그땐 이미 자신이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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