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3
귀환 마교관
333화
털썩!
암귀 한 명이 눈을 부릅뜨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쓰러졌다.
그의 가슴에 구절창을 쑤셔 박았던 맹가숙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창을 뽑아내며 중얼거렸다.
“말했잖아. 네놈들이 묻힐 땅이라고.”
“커억…!”
심장이 뚫린 암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피만 울컥거리면서 토해낼 뿐이었다.
맹가숙이 이마에 묻은 핏방울을 닦아내고는 주변을 휘이 둘러보았다.
마침 마지막 남은 두 명의 암귀들이 저만치 떨어져 있는 추량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반묘의 버프를 받은 추량은 평소와 달리 굉장히 민첩하고 강렬한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암귀 하나가 그의 오른편을 공격하면서 들어오자, 추량이 빙글 돌아서면서 마나 방패로 튕겨냈다.
터엉!
상대가 휘청거리는 사이, 추량은 곧바로 바닥을 차고 달려 나가면서 또 다른 암귀의 목을 마나 검으로 그어 버렸다.
쉬컥!
피가 치솟으면서 상대의 머리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동료의 머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방패에 튕겨 나갔던 자가 얼른 몸을 돌렸다.
이제 살아남은 암귀는 자신 밖에 없었다.
신호탄을 던져 올린 지는 벌써 한 식경이나 지났다.
그런데도 지원은 없었다.
그가 막 발걸음을 내디디려는 찰나,
“어딜 가려고?”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등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헛바람을 삼키며 휙 돌아서자, 추량의 마나 검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내질러 왔다.
슈컥!
“커억! 끅…!”
생전 처음 보는 공격.
손등에서부터 자라난 이 반투명한 기운은 권강인가?
하지만 권강이라는 것이 이렇게 칼날처럼 날카로울 수도 있던가?
카르텔의 수호구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그는 그런 생각을 끝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털썩!
그가 마지막으로 쓰러지고 나자, 추량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돌아섰다.
한데 신생조원들이 모두 추량을 바라보면서 감탄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캬아, 대단한데?”
“무늬만 호위무사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제법이잖아?”
신생조원들의 칭찬에 추량이 입매를 씰룩거리면서 손을 저었다.
“훗, 뭘 이 정도로… 훗훗.”
그때였다.
마침 맹가숙 뒤에 쓰러져 있던 암귀 하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덮쳐 오는 것이 아닌가?
모두들 추량에게 시선을 모으고 있었기에 그걸 본 사람은 추량밖에 없었다.
“조심!”
추량이 버럭 외치면서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곁에 있던 반묘가 털을 곤두세우니, 추량의 경공이 순식간에 두 배 이상 빨라졌다.
쉬이이이잇!
바람처럼 날아간 그가 기합성을 내질렀다.
“하앗!”
하지만 상대는 이미 맹가숙의 목 언저리까지 칼을 휘두른 상태!
‘짧다!’
반 보 정도만 더 앞서 갔어도 맹가숙이 당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였다.
쉬팟!
갑자기 뻗어 나간 마나 검이 날카로운 소리를 터뜨리며 쑤욱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마치 검을 휘둘러 강기를 날린 것만 같았다.
슈칵!
목이 절반이나 찢어진 암귀가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카아악!”
목을 움켜쥔 손 사이로 핏물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한참이나 몸부림치던 암귀는 이내 몸을 축 늘어뜨리고는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마침 그 모습을 본 신생조원들이 일제히 추량을 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우오오오!”
숨을 몰아쉬며 멀뚱멀뚱 서 있던 추량이 수호구와 죽은 암귀를 번갈아보면서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오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맹가숙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자신에게 감탄하는 거야?”
“뭐… 그런 셈이오.”
그도 그럴 것이 추량 역시 이렇게 마나 검이 강기처럼 튀어 나갈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 니야앙
마침 반묘가 가냘픈 울음을 터뜨리며 다가오더니 추량의 품안으로 쏙 들어갔다.
‘이것도… 어쩌면 이 녀석 덕분인가?’
맹가숙이 피식 웃어 버리고는 신생조원들을 둘러보았다.
“이제 배를 구해서 건너가도록 하지.”
“그런데 어디로 갈 거야? 이제 제대로 혈사련의 적이 되어 버렸다고.”
등자경의 말에 맹가숙이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제 와서 천상궁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분타를 찾아가기도 어렵다.
그때 추량이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정도맹 본단으로 갑시다.”
“뭐라고?”
“우리더러 정도맹으로 가자는 거야?”
신생조원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추량을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지금은 련주와 갈등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흑도가 아니던가?
게다가 련주가 정도맹주를 암살할 계획까지 세운 상황이다.
맹가숙이 미간을 좁히고는 중얼거렸다.
“만약 우리가 정도맹 본단으로 갔는데, 맹주가 이미 사망한 후라면….”
“보나마나 우리를 천하의 악질 취급하면서 죽이려고 달려들겠지!”
방각이 모두의 생각을 대신해서 말했다.
하지만 추량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있소. 내가 당신들을 보증하겠소.”
“당신이 그 정도로 맹에서 인정받는 인물인가?”
맹가숙의 질문에 추량이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인생을 막 살진 않았소. 믿어 보시오.”
“흐음.”
맹가숙이 침음을 흘리며 다른 조원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추량이 한 번 더 못을 박았다.
“적어도 당신들 신변이 위험해지지 않도록 보장하겠소. 그리고… 당신들은 어디까지나 사부님의 생도들이 아니오? 그런 이상 굳이 나 때문이 아니라, 사부님을 봐서라도 당신들을 함부로 대하진 못할 거요.”
“흐음. 그건 그럴싸하군.”
맹가숙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좋아, 정도맹으로 가자.”
벌써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
류여중이 막사로 들어섰다.
침상에 걸터앉아서 운기를 하던 허무극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어찌 됐나?”
“죄송합니다, 아직입니다.”
“흐음.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군.”
“죄송합니다.”
“뭐, 자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허무극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표정이 썩 밝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쯤이면 홍묘가 맹주와 함께 자폭을 하고도 남았어야 할 시간이었다.
한데 아직도 세혼폭멸고의 혈색이 바뀌지 않은 것이다.
그 말은 여전히 홍묘가 살아 있다는 뜻이고, 맹주 또한 건재하다는 뜻이리라.
홍묘가 죽지 않았다.
그 사실이 허무극의 마음 한 구석에서 묘한 울림을 주고 있었다.
안도와 함께 밀려드는 조바심.
그 이중적인 속셈을 다스리기 위해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암귀들은 어찌 됐는지요?”
이번엔 류여중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허무극이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소식이 없군.”
류여중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랬지만, 허무극 역시 별로 아쉬울 게 없다는 눈치였다.
어차피 암귀들을 보낸 것은 둘 중 하나가 완전히 제거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신생조가 멸살되어도 상관없고, 암귀들이 전멸당해도 상관없었다.
암귀들은 련주의 비밀 병기이기도 했지만, 그의 치부이기도 했으니까.
혈사련 내부에서 그에게 반기를 드는 자가 있을 때는 어김없이 암귀들을 적극 활용했다.
그런 만큼 이제는 정리할 때도 된 것이다.
어차피 신생조야 시간문제 아니겠나?
‘모든 일이 다 풀리고 나면….’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련주가 눈을 떴다.
“맹주전을 호위하는 자들이 제법 버티는 모양이군. 만약 홍묘가 맹주전 안마당에서 자폭하게 되면 어떤가?”
“세혼폭멸고의 위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맹주가 즉사하진 않더라도 충분히 치명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본단의 절반가량은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이니까요.”
“알겠네. 조금 더 기다려 보지.”
“알겠습니다. 변화가 있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류여중이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물러갔다.
허무극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가 희미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홍묘… 마지막으로 내게 너의 마음을 증명해 보라.”
**
“홍묘가 여기로 오고 있다니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매설란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당이협이 어두운 낯빛으로 대답했다.
“제 실수입니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세혼폭멸고는 반경 십리 이내에서 가장 내공이 심후한 자를 찾아가는 성질이 있습니다. 해서 맹주님이 그 대상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말은 맹주님보다 더 심후한 내공을 소유한 자가….”
매설란의 눈길이 무심코 후원으로 향했다.
당이협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주군의 내공 수위가 그 정도로 깊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혈사련으로 떠나신 후로 뭔가 또 다른 기연을 얻으셨을 거라는 판단입니다.”
당연히 드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사비강은 두 번의 기연을 얻은 셈이기도 했다.
첫째는 설백을 죽이면서 오러 웹에서 얻은 공력이었고, 둘째는 바슈크의 해머를 구하면서 공청석유를 복용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매설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전 국주는 지금 사경을 헤매는 중이예요. 그런 사람에게 내공이 남아 있어 봐야 얼마나….”
“그게 좀 상황이 다릅니다.”
“무슨…?”
“주군의 경우 독에 의해 내공이 소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심후한 내공이 전부 독으로 변질된 상황입니다. 쉽게 말해 오히려 내공이 깊어서 중독 증상이 더 심각한 셈이지요.”
“그렇다면 세혼폭멸고가 그 중독된 내공마저 감지하고 온다는 건가요?”
“바로 그겁니다. 세혼폭멸고는 내공의 종류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죽게 만드는 독공이라고 할지라도 녀석에게는 그저 자신의 최후를 장식할 수단에 지나지 않지요. 마공이든, 독공이든, 정공이든. 세혼폭멸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겁니다.”
매설란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현재 천멸대원과 암영대원들이 최선을 다해 막고 있습니다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당장 전 국주님을 다시…!”
“여기서 해독을 멈추게 되면 주군은 살 수 없습니다.”
당이협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당이협이 말을 이었다.
“해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국주님이라도 먼저 이곳에서 피하시는 게….”
“그럴 일 없는 건 말하지 마세요. 난 여기에 남을 겁니다. 아니, 나도 가겠어요! 그 여자를 막으러!”
매설란이 걸음을 성큼 내디뎠다.
당이협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말린다고 해서 들을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으로선 한 명이라도 더 힘을 보태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이협이 후원을 보며 소리쳤다.
“계속해서 약수를 뿌려라!”
“존명!”
촤아아아악!
치이이이익!
후원 가득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
쒸에에엑! 푹!
날카로운 파공성을 이끌면서 날아간 화살이 그대로 서래향의 왼쪽 어깨에 깊숙이 박혔다.
날아든 속도와 힘이 얼마나 강한지, 서래향은 화살에 맞는 순간 팽이처럼 휘리릭 돌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결박!”
무천이 소리치자, 암영대원들이 일제히 사슬갈퀴를 던졌다.
촤라라라라락!
사슬갈퀴들이 매끄러운 마찰음을 터뜨리며 서래향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서래향은 그 잠시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그대로 몸을 튕기듯 일으켜 세우며 검을 휘둘러 갔다.
따다다다다당!
그녀가 쳐낸 사슬갈퀴들이 방향을 틀면서 오히려 암영대에게 위협이 되었다.
거기에 그녀가 들고 있던 검신이 부러지면서 그 파편이 암영대원들에게 날아들었다.
“우앗!”
“피햇!”
“커억!”
“아악!”
여기저기에서 비명과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찰나지간,
쒸에에에엑!
다시 허공을 뚫으며 화살 한 대가 날아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서래향도 그냥 당하지 않았다.
쉬이이이이잇!
그녀가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부러진 검신을 수직으로 내려 그었다.
한 줄기 섬광이 떨어져 내리면서, 날아들던 화살이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지더니 그녀의 양옆을 스쳐 지나갔다.
쉬푹! 푹!
“컥!”
“억…!”
어깨와 복부에 화살을 맞은 암영대원들이 저마다 비명을 터뜨리며 쓰러져 갔다.
이를 본 무천은 눈자위를 파르르 떨었다.
‘대, 대단하다… 이대로라면 막기 힘들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