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25화 (325/670)

# 325

귀환 마교관

325화

‘이제 어지간히 된 건가?’

사비강은 재료실을 다시 한 번 구석구석 훑어보았다.

웬만한 재료는 모두 수집한 듯했다.

몇 가지 뻔한 재료들은 아예 챙기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챙긴 재료들은 벌써 백 가지도 넘었다.

재료실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따금씩 부각주실로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내려오곤 했다.

그러다 보니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사파 제일의 단약 제조실인 만큼 재료 한두 개 정도 빼가서는 크게 눈에 띄지도 않았다.

물론, 진귀한 약재들이 많으니 이것들의 수를 일일이 기록은 해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점검하면서 필요한 것을 보충하고, 분실한 것이 없는지 확인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아마도 모든 일이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당이협에게 이걸 가져가야겠군.’

당이협이라면 이 중에서 무엇이 문제가 될 만한지 알 수 있으리라.

백호당주 추희룡에게 미리 받아 둔 아수대환단은 이미 당이협이 가지고 있었다.

‘그럼 이제 나가볼까?’

문제는 이곳을 나갈 때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남모르게 잘 해왔지만, 나가는 순간 들키면 모두 헛일이 되고 만다.

사비강은 품에서 다시 피독주를 하나 꺼내서 복용했다.

미리 챙겨 온 피독주가 이젠 몇 개 남지 않았다.

명리각 내부에 자욱한 독기만 해도 어지간한 독인이 아니라면 버티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마 이곳에서 일하는 무인들은 저마다 특별한 방식으로 피독주를 복용하고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명리각을 가득 채운 독향에 중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쯤 밖에서는 당양으로 출발하겠군.”

정도맹과의 연합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고 하니, 천상궁에 머무는 상당수의 무인들이 당양으로 집결할 터.

다만 정도맹과 혈사련 간 협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신생조도 포함된다는 것이 좀 걸리는 부분이다.

당장 출발해야 하는데 신생조를 이끄는 교관이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지금쯤 이런저런 말들이 나올 수도 있었다.

‘뭐, 추량이 알아서 잘 대처하겠지.’

사비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곧 승강 장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그가 어느 순간 우뚝 멈췄다.

‘가만…’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반대편 벽을 보았다.

‘어쩌면…?’

어떤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비강이 몸을 돌리더니 반대편 벽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양쪽으로 늘어선 수납장.

그리고 제일 끝 정면으로 보이는 벽.

따지고 보면 이곳에 벽을 보이게 놔둘 필요가 없지 않나?

길을 내기 위해서 수납장 가운데 부분을 터놓았다지만, 더 이상 갈 수도 없는 벽을 왜 비워 둔단 말인가?

사비강이 손을 뻗어서 벽을 마구 더듬었다.

‘괜한 망상인가? 설계도면에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자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돌아서려는데,

스그긍…!

놀랍게도 벽면이 미끄러지듯 돌더니 뒤쪽 공간이 나타났다.

‘여기도 승강 장치가…!’

사비강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승강 장치를 바라보다가 그곳에 올라탔다.

잠시 후 벽이 스르르 돌아가면서 닫히더니 곧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멈추는 기분이 들고 나서 벽이 다시 스르릉 돌아갔다.

그곳은 이전에 있었던 곳보다 조금 더 좁은 공간이었다.

역시나 벽과 천장에 야명주가 가득 박혀 있었는데, 수많은 상자들이 좌우로 가득 늘어서 있었다.

‘뭐지…?’

사비강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상자부터 열어 보았다.

잠시 후 그의 눈이 꿈틀거렸다.

‘이건…?’

모랫더미 속에서 조그맣게 꾸물거리는 것은 벌레였다.

마치 새끼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녀석은 사비강을 의식도 하지 못한 듯 본능에만 충실하게 모래더미를 굴러다녔다.

‘고(蠱)…!’

사비강은 얼른 다른 상자도 열어 보았다.

상자마다 작은 벌레들이 있었다.

어떤 것은 벌집 같은 것 속에 알의 형태로 빼곡하게 들어 있기도 했다.

‘그랬군! 여긴 온갖 종류의 고를 보관하는 곳이었어!’

몇몇 고는 눈에 익은 것도 있었다.

혈고독(血蠱毒)이라든지, 천마쌍고(天魔雙蠱), 아귀고(餓鬼蠱) 등은 사비강도 직접 본 적이 있거나, 그림 등으로 익힌 것들이었다.

또한 예전에 정도맹에 있을 때 죽은 노괴의 몸속에서 나왔던 삭뇌충도 보였다.

‘어쩌면…’

아수대환단에 들어 있는 것이 만약 다른 약재가 아니라 이런 녀석이라면?

점점 의심이 확신으로 변해갔다.

아수대환단 속에 고를 심어 넣었다면 다른 약재처럼 상호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다.

게다가 그 고가 알의 형태로 심어진 것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바로 노괴가 그런 술수에 당하지 않았던가?

‘하면… 지금 홍묘의 몸에 심어진 것은 고란 말인가?’

생각할수록 비열한 것들이 아닌가?

‘하긴. 어떤 면에서는 련주답군.’

만약 홍묘의 몸에 심어진 고로 정도맹주까지 죽일 수 있는 거라면 필시….

‘폭발을 일으키는 놈일 가능성이 크다.’

사비강이 재빨리 상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

사비강의 예상대로 천상궁은 당양 분타로 출발 준비를 하느라 무척 분주했다.

신생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정사지간의 연합을 상징하는 조직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이번 출정에서 필히 포함되어야만 했다.

한데…

“도대체 교관님은 어떻게 된 거지?”

추량이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생각 앞을 연신 서성였다.

오늘 오후면 간단한 출정식을 가진 후, 모든 무인들이 당양으로 떠난다.

한데 사비강은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쯤되자 타 기관의 무인들은 물론, 신생조원들도 사비강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극비로 진행된 일을 신생조원들에게 시시콜콜 떠들 수는 없었다.

비밀은 최대한 많은 사람이 모를수록 좋은 법이니까.

하여 추량은 밤마다 흑귀를 시켜 명리각을 찾아가 남몰래 염탐하고 올 것을 지시했다.

둘 사이의 상하 관계가 애매했으나, 흑귀 역시 사비강의 안위가 걱정되었기 때문인지 군소리 없이 따랐다.

하지만 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비강은커녕 명리각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도 얼굴을 구경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흑귀의 설명이었다.

‘설마 명리각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벌써 사비강이 모습을 감춘 지 며칠이 지났다.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된 적이 있었던가?

이젠 살막을 불러야 할 차례다.

사비강은 자신이 출정식 때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만약을 대비해 살막을 불러 놓으라고 지시했다.

단,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살막도 함부로 움직이지 말 것을 명했다.

‘살막을 부른 다음은 어쩌지? 우선은 내가 신생조원들을 이끌고 가야 하나?’

그렇게 고민에 빠져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마침 저만치에서 백호당주 추희룡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가 주변을 힐끔 살피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 교관은 어찌 됐나?”

“그것이…”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건가?”

“…그렇습니다.”

“허참!”

추희룡이 혀를 차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추량이 넌지시 물었다.

“혹시 명리각에서 무슨 일이 발생한 게 아닐까요?”

“무슨 일이라면?”

“만약 발각이 되었거나… 연무에 중독이라도 되어서….”

“그럴 가능성은 없네.”

추희룡이 말을 더 듣지도 않고 딱 잘라서 부정했다.

추량은 내심 안심이 되면서도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 속내를 파악한 것인지 추희룡이 말을 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지금 천상궁이 이리도 조용했겠는가?”

“아…!”

“지금쯤 난리가 났을 테지. 정도맹과의 동맹은 금이 갈 거고.”

“하지만 정도맹주를 제거하겠다는 련주의 계획을 지키기 위해서 일부러 함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적어도 수뇌부들에게는 알리겠지. 그게 아니라면 명리각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였을 걸세. 그런데 지금은 너무 조용해.”

과연 그건 그랬다.

‘그렇다면 일단 사부님이 무사하실 가능성이 크겠구나.’

추희룡이 다시 한 번 주변을 슬쩍 살피고는 말했다.

“지금 천상궁에서는 사비강을 은근히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마령교를 토벌하는 일을 앞두고 비겁하게 숨어 버렸다는 이야기지.”

“사부님이 그럴 리가…!”

“사실 나도 조금은 의심스럽긴 하네. 그가 내 거사를 돕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 진정성이 의심스럽군. 명리각에 정말 들어가긴 한 건지도 말일세.”

추량이 표정을 굳히고는 추희룡을 빤히 노려보았다.

“사부님의 행보가 워낙 특이한 건 인정합니다만, 이런 일로 몸을 숨길 분은 아닙니다. 오해는 거두시죠. 나중에 사부님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별로 좋아하시진 않을 것 같군요.”

“크흠. 자네 말이 틀림없어야 할 걸세. 내가 인내심이 깊은 편이지만, 나 같은 사람이 한 번 화가 나면 무서운 법이지.”

“글쎄요. 전 더 무서운 분도 봐서 말이죠.”

추희룡이 추량을 빤히 노려보다가 코웃음을 치더니 몸을 돌렸다.

멀어져 가는 추희룡을 보면서 추량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설마… 진짜로 숨어 버린 건 아니죠? 어디로 날라 버린 건 아니죠? 사부님….’

추희룡에게는 호언장담했지만, 왠지 자신이 없는 추량이었다.

**

또 나흘이 지났다.

이번에도 괜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 부각주실까지 의미 없이 왕복했다.

생각보다 고의 종류가 너무 많았다.

어떤 것들은 매우 희귀한 것이었기에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 한 손을 대지 않았다.

다른 약재와 달리 고가 없어지면 바로 눈치 챌 것 같았기에.

그렇게 가리고 가려서 가져가기로 한 것은 겨우 두 마리였다.

가장 의심스러운 두 마리.

그런데 지금 그의 눈길을 끄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물건이었다.

‘이거였군. 추 당주가 말한 물건이.’

사비강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선반 한쪽 구석에 놓인 목걸이.

확실히 마계에서 건너온 장신구가 분명했다.

“크라니온…”

해골 모양의 펜던트 크라니온!

사비강은 천천히 손을 뻗어 크라니온을 주워 들었다.

눈과 코, 입이 어딘지 뒤틀려 있는 형태의 해골 모양이었는데, 척 보기에도 뭔가 심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묘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범인이라면 그저 기괴한 장신구라고 여기며 눈길을 거두겠지만, 기감에 민감한 무인이라면 아마 쉽게 눈을 떼기는 힘들 터다.

‘그러니 뭔지도 모른 채 이걸 여기에 갖다놨겠지만.’

크라니온은 마계에서도 구하기 힘든 마법 도구인데, 오로지 마나에만 반응하게 되어 있다.

일종의 버프 효과를 주는 펜던트.

“그런데 이건 좀 독특하군.”

대게는 멀쩡한 해골 모양인데, 눈앞의 크라니온은 눈, 코, 입의 위치가 묘하게 뒤틀린 모양이었다.

사비강도 이런 모양의 크라니온은 처음이었다.

어쨌거나 이런 곳에서 크라니온을 발견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라고 할만 했다.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걸 보면 아마 명리각에서는 특별한 점을 찾지 못해 이 구석진 곳에 아무렇게나 처박아 둔 듯했다.

“그럼 이것도 내가 접수해 주지. 어차피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으니.”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고는 크라니온을 목에 걸었다.

**

‘제길…!’

사비강은 입술을 쿡 씹었다.

내문을 열고 나갈 때 기관을 작동해야 할 줄이야.

최대한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건만, 기관 작동법을 모르는 이상 나갈 방법이 없다.

당연하게도 추희룡이 준 설계도면에 기관을 작동하는 법까지 나와 있지는 않았다.

결국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수하에게 잠시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제안했다.

누군지도 모를 수하는 부각주의 제안에 입이 귀에 걸렸다.

그렇잖아도 며칠 째 바깥 공기도 쐬지 못하고 일하던 차에 웬일인가 싶었으리라.

사비강은 수하를 앞세우고는 문 옆에 섰다.

‘지금쯤 모두 당양으로 떠나고 없겠군. 서둘러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수하가 기관을 작동시키려다가 힐끔 보았다.

그러더니 흠칫거리고는 사비강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사비강이 미간을 찡그리고 물었다.

“왜 그러나?”

아주 잠깐의 정적이 지난 후, 수하가 성큼 물러나더니 느닷없이 칼을 뽑아 드는 게 아닌가?

“웬 놈이냐!”

순간 사비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지금 뭔 소리를…”

말을 뱉던 사비강이 흠칫거렸다.

‘이런 제길…! 목소리가…?’

카피 보이스 마법이 무너졌다!

어째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