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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324화 (324/670)

# 324

귀환 마교관

324화

과연 우광의 모습으로 변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복도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는 자들이 사비강을 보고도 일말의 의심조차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까지 숙이며 연신 인사를 해왔다.

사비강은 복도를 거닐면서 방마다 들어가서 인사를 받으며 특이한 재료가 없는지 꼼꼼하게 훑어보았다.

뭔가 눈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집어 들어 살폈다.

명리각 무인들도 그저 부각주가 약재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려니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몇 가지를 슬쩍 품에 챙겨 가면서 일 층의 모든 방을 샅샅이 훑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약재를 찾기가 어려웠다.

대부분 실험실이나 제조실로 보였다.

‘이 많은 실험과 제조 작업을 하려면 분명히 재료실이 따로 있을 법한데… 아!’

사비강은 추희룡으로부터 받은 설계도면을 떠올리고는 곧 납득할 수 있었다.

재료실은 지하에 있다.

살짝 굽은 복도 끝으로 가면 벽이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기관 장치가 되어 있었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지하로 연결되는 승강 장치였다.

설계도면에는 지하 공간을 ‘진각실(珍各室)’이라고만 적어 두었기에 미처 재료를 모아 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결론을 내린 사비강은 곧바로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마침 복도 정면의 벽이 스르르 돌아가더니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의 손에는 온갖 종류의 약재가 들려 있었다.

‘역시!’

사비강은 두 사람의 인사를 자연스럽게 받고는 얼른 벽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벽의 뒷면은 열 사람 정도가 들어갈 공간이 있었는데, 사비강이 들어오자 벽면이 저절로 돌아가며 닫혔다.

다음 순간 쇠사슬이 미끄러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나면서 공간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역시 승강 장치군. 마계에서는 마력으로 움직이는 승강 장치를 많이 봤는데… 이 정도의 기관 장치를 만들 수 있다니… 명리각을 만든 녀석은 대체 어떤 놈이지? 어쩌면 쓸모가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승강 장치가 멈추더니 벽면이 저절로 스르릉 돌아갔다.

무심코 나가려던 사비강은 흠칫거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승강 장치에 타려는 사람이 있었던 것.

“아, 부각주님. 여기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좀 살펴볼 것이 있다.”

이미 카피 보이스를 이용해 목소리를 변조한 사비강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이번 임무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누구에게도 발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모든 일을 수월하게 풀어 가기 위해서는 쥐도 새도 모르게 필요한 것만 가져가는 것이 상책이다.

다만, 필요한 게 정확히 뭔지 모르는 게 문제지만.

세 사람이 승강 장치에 올라탔다.

그들 모두 양손 가득 약재 따위를 들고 있었다.

다행히 그 세 사람을 마지막으로 지하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기감을 활짝 펼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사비강은 비로소 느긋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야명주가 가득 박힌 지하는 일 층보다 오히려 밝은 분위기였다.

수납장이 책장처럼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과연 온갖 종류의 약재와 약초, 심지어 한쪽 우리에는 영물들까지 가둬 두고 있었다.

사비강은 내심 감탄하면서 명리각의 재료실을 꼼꼼히 훑어보았다.

‘한 가지는 확실하군.’

적어도 영단이나 독단을 제조하는 능력만큼은 정도맹보다 혈사련이 뛰어나다는 것.

아니, 어쩌면 이만한 재료를 갖추고 있는 곳은 천하에 유일할 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는 어쩔 수 없었다.

‘독’에 대해서는 정도맹에서도 사천당가가 버티고 있지만, 무림인들 중 독공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독은 힘없는 아녀자들의 수법이라고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정도의 영단이 혈사련만큼 발달하지 않은 것도 엄연한 이유가 있다.

정도의 무공을 익힐 때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정순한 기운이다.

한데 영약이나 영단을 이용해서 한순간에 상승된 내공은 아무래도 수련을 통해서 쌓은 것에 비해 정순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정도의 무공 자체가 편법보다는 정공을 추구하기에 자연히 영단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소림사의 대환단 같은 것은 매우 우수한 영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최근에 만들어지는 대환단은 그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소문이 강호에서 돌고 있었다.

어쨌거나 혈사련이 이쪽 분야에서 이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기도 하다.

‘하긴 그러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정도맹과 대적하기도 힘들었겠지.’

오랜 세월의 평화를 깬 자들이 아니던가?

자신이 회귀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정사대전은 한창 벌어지고 있었을 터.

그런 상념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컹컹! 크르르르!

컹컹컹!

느닷없는 울부짖음에 사비강이 휙 돌아서니, 창살에 갇힌 시커먼 개가 보였다.

유달리 송곳이 길고 날카로운 녀석이었는데, 두 눈이 핏빛처럼 붉은 색이었다.

‘흡혈광견(吸血狂犬)!’

사납기로 따지자면 영물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녀석.

흡혈광견이 당장이라도 우리 밖으로 뛰쳐나올 듯 짖어대자, 사비강이 얼른 손을 뻗으며 주문을 읊었다.

“슬립(sleep).”

컹…! 크르르…. 그르르…

흥분해서 짖어대던 흡혈광견이 곧 가물가물 감기는 눈을 이기지 못하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그럼 이제 방해물은 없나?’

사비강은 영물들을 둘러보면서 혹시라도 짖어대거나 울음소리가 시끄러운 녀석들이 있으면 슬립 마법을 이용해서 모두 재워 버렸다.

그러고는 라겔의 주머니를 꺼낸 후 재료실을 훑어보았다.

“자, 그럼 견본 수집을 시작해 볼까?”

어디까지나 견본을 가져가야 한다.

아수대환단에 첨가했을 것 같은 무언가를 찾기 위함이니까.

명리각에서 도둑맞은 것을 알면 안 되는 만큼 극소량만을 가져가야 한다.

그럼 그것들 중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는 당이협이 밝혀낼 것이다.

사비강은 의심되는 약재를 하나씩 라겔의 주머니에 담아 갔다.

**

저벅저벅.

마령교주는 어두컴컴한 동혈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그는 며칠 전과 달리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렸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어 놓고 있었다.

그는 높은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갔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숨이 차서라도 대여섯 번은 쉬었을 텐데, 그는 호흡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렇게 묵묵히 오르다 보니 저만치 빛이 들어오는 틈이 보였다.

마침내 그 틈으로 나간 마령교주는 갑자기 눈을 찔러 오는 햇볕 때문에 슬쩍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오랜만에 상쾌한 공기였다.

교주가 눈을 뜨고 눈앞에 펼쳐진 전경을 훑어보았다.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아름다운 곳.

마치 화산의 분화구처럼 생긴 이곳은 교주가 직접 걸어 올라온 계단을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일전에 월식과 함께 마병을 만들어내던 장소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더욱 특이한 것은 날씨가 무척이나 포근하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바깥세상은 지금 한겨울로 들어서고 있었는데, 이곳만큼은 온화한 봄 날씨가 아닌가?

그야말로 전설 속에서나 봄직한 이색지대.

분화구처럼 생긴 일대에는 오색 창연한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고, 곳곳에 나비가 한가로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지 한 가운데에는 그림처럼 작고 아담한 집이 한 채 지어져 있었다.

정말이지 마령교의 교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

교주는 꽃길을 따라 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걸음을 내딛자, 주변 풀밭에 내려앉아 있던 나비들이 포로롱 날아올랐다.

작고 아담한 집에 다다른 교주는 후원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따라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마침 후원 꽃밭에 쪼그려 앉아 나비를 관찰하는 소녀가 보였다.

교주는 말없이 가만히 서서 소녀를 지켜보았다.

소녀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나비를 관찰하고 있었다.

한데 놀라운 것은, 그녀가 바로 앞에서 관찰하는 동안에도 나비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그녀가 손을 천천히 뻗어내자, 또 다른 나비가 날아와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 끝에 내려앉았다.

곧이어 무당벌레도 날아와 앉았다.

소녀는 곧 무당벌레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마치 무당벌레의 숨결이라도 느끼겠다는 듯.

그렇게 꼬박 한 시진이 흘렀다.

그럼에도 교주는 입 하나 벙긋하지 않고 묵묵히 소녀만을 바라보았다.

소녀 역시 나비와 무당벌레만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 시진이 더 흘렀다.

이제 해가 서녘으로 많이 기울었다.

그제야 소녀의 입이 열렸다.

“나비가 참 예쁘구나.”

교주도 마침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아니. 교주는 그 아름다움을 모른다.”

“죄송합니다.”

교주는 변명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단지 호응을 해줬을 뿐이었기에.

나비 따위야 그저 하찮은 곤충일 뿐이지 않은가?

다만 누군가 이들의 대화를 엿들었다면 자신의 귀를 의심했으리라.

천하를 떨게 하는 마령교주가 한낱 앳된 소녀에게 저토록 안절부절 못하다니.

게다가 그런 마령교주에게 태연히 하대를 하는 소녀라니.

그것도 모자라 교주의 무지를 지적하다니!

그럼에도 교주는 오히려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아닌가?

소녀가 일어나자, 그녀의 손가락에 내려앉았던 나비와 무당벌레가 포로롱 날아갔다.

그녀가 몸을 돌리고 깊어진 눈동자로 교주를 보았다.

교주는 자신의 호흡조차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자유로워야 한다. 그것이 행동이든 사고이든. 그 자유로움은 방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유연성을 말하는 것이다.”

“존야의 말씀을 새겨듣겠습니다.”

그랬다.

나비와 꽃을 관찰하던 앳된 소녀.

그녀가 바로 마령교를 이끄는 존야였다.

소녀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새겨듣는 것이 아니다. 새길수록 그릇되는 경우가 많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하지만 반드시 들어두어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에도 교주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하긴. 어렵겠지. 이치를 깨닫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그녀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백면이 준비하는 ‘수라불괴(修羅不壞)’는 어찌 되고 있나?”

“그것이… 수라불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초절정 이상의 고수가 자의로 참여해야 하는데… 지원자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긴. 어려운 실험이지.”

잠시 후 교주가 어떤 기척을 느끼고는 몸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마령교 수하 한 명이 빠른 속도로 경공을 펼쳐 후원으로 달려왔다.

‘저 멍청한…!’

교주가 눈살을 팍 구겼지만, 수하는 눈치 없이 교주 앞에 나타나 무릎을 척 꿇고는 보고했다.

“교주님, 혈사련과 접촉한 황면이 돌아왔습니다.”

“물러가라.”

“예…?”

수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교주가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영문을 몰라서 엉거주춤 일어나는데,

“이미 늦었다. 너의 경거망동이 한 생명을 죽였다.”

소녀, 존야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음 순간,

존야가 주먹을 불끈 쥐자 ‘퍽!’ 소리와 함께 수하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수하는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절명했다.

한편, 존야는 수하의 시체를 치워내고는 그 발아래에 깔려 죽은 나비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받쳐 들었다.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가엾은 것… 미안하구나….”

“죄송…합니다.”

교주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자, 소녀는 한참이나 감정을 추스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표접마환진(瓢蝶魔換陳).”

“……?”

“오늘 이 아이들이 본좌에게 가르쳐준 합격진이다. 받아 적을 아이를 불러라.”

“존명!”

교주가 깊이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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