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7
귀환 마교관
317화
“저 혼자… 들어가라고요?”
추량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내가 뒤따라 들어간다니까.”
“그러니까 어쨌든 저 혼자 들어가서 온갖 기관 장치들을 상대하라는 말씀이잖아요!”
“기관이 아니야. 결계다.”
“헐… 그게 그 말 아닙니까?”
“갑자기 왜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거냐? 드디어 반묘와 뭔가를 해냈다고 한 건 너였잖아.”
“그건 그렇지만….”
추량이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의 다리에 머리를 비벼대는 반묘를 보았다.
녀석은 여전히 니앙니앙 거리고 있었지만, 덩치가 조금은 더 커진 모습이었다.
사비강의 말대로 추량은 신생각 후원에서 홀로 수련하던 중 반묘에게서 묘한 기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미약한 기운이었다.
그는 일전에 사비강이 건네준 책자를 참고해서 호조마나검법(虎爪魔羅劍法)을 익히는 중이었다.
물론 그것 역시 사비강이 만든 무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손목에 착용하는 갈퀴 형태 무기를 사용할 때 익히는 무공에다가 카르텔의 수호구에 맞게 일부분을 수정한 내용이었다.
이는 사비강이 마계에서부터 생각한 것들이었기에 추량에게는 굉장히 유용한 책자였다.
어쨌거나 호조마나검법을 이용해서 수련하는 도중 추량은 점점 기운이 흘러넘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저 호조마나검법 때문이리라 여겼다.
그런데 이상하게 수련을 하면 할수록 기운이 넘치는데다 마나검과 마나방패가 점점 커지는 게 아닌가?
마침내 마나검이 두 배 가까운 길이가 되었고, 마나방패 역시 두 배에 가까운 모습으로 커졌다.
그 순간 추량은 보았다.
어느새 자신의 옆에 서서 온몸의 털을 곤두세운 채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반묘를.
그리고 그런 반묘로부터 묘한 기운이 흡수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걸 확인한 다음 순간, 마나검의 색깔이 변했다.
지금까지는 푸르스름한 기운이었던 반면, 이번에는 불그스름한 빛을 나타냈다.
길이와 크기는 다시 원래대로 줄어들었는데, 대신 더욱 단단해진 느낌을 가졌다.
반묘에게서 뿜어지는 묘한 기운 역시 불그스름한 빛을 띠는 것이 아닌가?
‘설마…!’
추량이 흥분되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마나검과 마나방패를 휘둘러보았다.
쒸이이익!
후우웅!
바람을 가르는 마나검이 쾌속하게 질주했다.
뿐만 아니라 신체의 모든 반응이 반 박자 빨라진 느낌.
추량은 확신했다.
‘이건… 버프다!’
디버프에 대해서는 사비강으로부터 전에 듣지 않았던가?
그리고 후에 사비강은 반묘가 버프 능력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버프가 뭐냐고 물었더니, 일시적으로 공력을 주입해 주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한 마디로 일시적으로 능력을 상승시키는 효과.
한 차례 호조마나검법을 펼친 추량은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활짝 웃는 얼굴로 반묘를 돌아보았다.
반묘 역시 기분이 좋은 듯 가르릉 거리며 다가왔다.
“오오, 이 녀석! 이제 보니 아주 쓸 만한 녀석이었구나!”
갸르르릉.
반묘가 기분 좋은 울음을 터뜨리며 추량의 손에 안겼다.
그 기쁜 소식을 알려 주려고 지하 연무실을 찾았을 때, 사비강은 옹기승에게 공력을 주입하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그날의 일을 들은 사비강이 추량을 데리고 온 곳은….
“하필 신생각이라니….”
추량이 울상을 지으면서 높다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사비강의 숙소이자, 신생조를 가르치는 건물.
사비강이 추량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신생조 녀석들이 사 층까지 뚫었더라고. 조만간 내 침소까지 올라올 것 같아서 이번에 손 좀 다시 봤다.”
“손을 다시 봤다면…?”
“그래, 좀 더 보강을 했지. 일 층부터 새롭게. 그게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해 볼 겸이니까 한 번 들어가 봐.”
“하지만 신생조 녀석들도 아직 침소까지 뚫지 못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새로 만든 결계를….”
“침소까지 뚫으라는 이야기가 아냐. 일 층만 시험해 보면 된다. 그럼 나머지도 제대로 결계가 작동하는지 알 수 있거든. 왜? 혹시 자신 없냐?”
사비강이 슬쩍 무시하는 눈빛을 던지자, 추량이 어금니를 꾹 씹었다.
“좋습니다. 해보죠!”
“그래야지. 그래야 내 호위무사지.”
추량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신생각 일 층을 빤히 바라보았다.
‘일 층 뿐이라면 어떻게든…!’
추량이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해가 저물녘이었지만 남서향으로 지어진 건물이었기에 노을빛이 길게 일 층 안쪽까지 스며들었다.
‘좋아, 반묘! 해보자!’
추량은 노을빛에 물든 일 층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저만치 실내 안쪽에 이 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고, 그 사이에 너른 공간이 있었는데, 돌을 깎아 만든 조각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도검창 등을 들고 있는 조각상이었는데, 모두 무공을 펼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는 일종의 바른 자세 교본과도 같은 것이었다.
추량이 잔뜩 긴장한 채 그 조각상들 사이를 지나며 일 층 복판으로 걸어갔다.
다음 순간,
드드득.
갑자기 등 뒤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
“뭐냣!”
쑤아아앙!
추량이 마나검을 뽑아 내면서 휙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드드득. 드득. 드드득!
주변에 세워진 조각상들이 마찰음을 일으키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다소 굼뜬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았지만, 눈 깜빡할 사이에 녀석들은 각각의 무기를 내질러 왔다.
쒸에에엑! 쉬이잇!
“헉!”
추량이 헛바람을 삼키면서 얼른 물러났다.
따다앙!
묵직한 무기가 추량의 마나방패를 때리자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촤아아악!
미끄러지듯이 중심을 잡고 선 추량이 눈을 날카롭게 치뜨고는 움직이는 석상을 보았다.
마치 마교의 대법을 받은 석상처럼 조각상들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일 층의 시험은 이 녀석들이었군!’
사실 추량은 이 조각상들이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신생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이 조각상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이전에는 이것들이 이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신생조가 침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사비강이 결계를 보강하면서 이 녀석들도 움직이게 된 것이다.
그 말인즉슨, 사비강은 처음부터 신생조원들의 실력이 향상될 때를 대비해서 결계의 난이도를 생각해 두었다는 뜻이리라.
‘정말이지 생각 없는 사부님 같다가도 이럴 땐 소름끼친다니까.’
드드득. 드득.
조각상들이 움직일 때마다 관절에서 돌 부스러기가 흘러내렸다.
그 기묘한 모습 때문에 오히려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찰나,
타앗!
다다다다다다!
조각상들이 놀라우리만치 빠른 속도로 추량을 향해 덤벼들기 시작했다.
후우웅! 쉬이익! 쒸에엑!
따당! 까앙! 카강!
거친 바람 끝에 어김없이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추량은 정신없이 몸을 놀리면서 마나검과 방패를 부렸다.
조각상들의 힘이 워낙 육중했기에 방패를 들어 막을 때면 어김없이 몸이 붕 날아가 버리곤 했다.
그렇게 얼마나 정신없이 검과 방패를 휘둘러댔을까?
‘이래서야… 끝이 없어!’
추량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호조마나검법을 펼쳐 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래, 관절이라면…!’
추량의 눈이 커졌다.
이대로 마나검을 휘둘러 봐야 저 돌덩이들을 잘라낼 수는 없었다.
보통의 바위라면 썩둑 잘려나갈 만도 하지만, 조각상을 이루고 있는 바위들은 보통의 돌과는 그 재질이 다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관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보자!’
판단을 내린 추량이 날아드는 창을 방패로 막아내고는 곧바로 바닥을 찼다.
쩌엉!
탓!
“받아랏!”
그가 마나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자 붉게 빛나는 마나검이 두 배 가까이 길어지면서 뻗어 나갔다.
쑤아아아앙!
반묘의 버프가 발동된 것!
‘좋았어!’
내심 쾌재를 부르는 것과 동시에 마나검이 조각상 중 한 녀석의 목을 내질렀다.
쿠웅, 데굴데굴…!
육중한 머리가 떨어졌지만, 조각상은 개의치 않는 듯 칼을 대각선으로 휘둘러 왔다.
따앙!
얼른 마나방패로 막아낸 추량이 이번에는 몸을 낮게 숙이면서 그대로 마나검을 뻗었다.
서컥!
쿠웅!
무릎이 통째로 잘려 나간 조각상이 그대로 중심을 잃으며 옆으로 쓰러졌다.
추량은 멈추지 않았다.
모든 것은 흐름이다.
이 흐름을 놓치면 언제 다시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때문에 그는 곧바로 몸을 돌리고 다른 조각상을 향해 마나검을 뻗어 나갔다.
거기에 반묘의 버프가 효력을 발휘하자, 그야말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쉭쉭쉭쉭!
쿵! 콰다앙!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끝나면 어김없이 육중한 소음에 이어 조각상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렇게 반각이 더 지났을 때,
쿠웅! 와르르르…!
마지막까지 버티고 서서 싸우던 조각상이 관절마다 부서지면서 그대로 허물어져 버렸다.
“헉, 헉, 헉…!”
추량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바닥에 나뒹구는 조각상들을 보았다.
머리와 몸통, 다리가 제각각 따로 놀고 있었다.
“훗! 흐하하하! 어떻습니까? 사부님! 이 정도면….”
추량이 낭랑하게 웃으면서 돌아서는데,
스르르륵. 스스스윽…!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돌덩이들이 꿈틀거리면서 다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데굴데굴 굴러가던 돌덩이들이 다시 재조립되면서 부서지기 전의 모습으로 온전히 회복되었다.
녀석들이 아예 대열을 갖추고 노려보자, 추량은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뭐야? 이것들… 대체 어떻게 죽여야 하는 거야?’
아니, 원래 생명은 없는 것들이니 죽인다는 표현은 뭔가 이상하다.
어쨌거나 무슨 수로 이것들을 멈추게 한단 말인가?
추량이 멍하니 서 있는데, 마침 사비강이 일 층 문을 열고 들어왔다.
“거기까지.”
그러자 조각상들이 그 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경계 자세를 풀더니 각각의 자리를 찾아 돌아가서 그대로 굳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
“아무래도 아직은 이것들을 상대하기엔 부족한 것 같군. 좀 더 수련을 하도록.”
“하지만 이건 반칙 아닙니까?”
추량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사비강이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반칙이라니? 마계가 침략하면 이보다 더한 녀석들이 수두룩한데. 그때도 그딴 말을 하려고?”
“그건 아닙니다만.”
“그만 가봐. 좀 더 수련하면 나아질 거다.”
“알겠습니다.”
추량이 풀 죽은 표정으로 돌아가고 나자, 사비강이 홀로 남아 조각상들을 살펴보았다.
“과연… 버프 효과가 대단하군.”
사실 그는 추량이 이렇게까지 해낼 줄은 몰랐다.
조각상의 약점을 알아낸 것과 이기는 건 별개의 문제다.
약점을 안다고 해서 전부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어떻게 생각하나?”
사비강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이 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누군가 내려왔다.
그는 놀랍게도 하오문의 총관인 정류광이었다.
“확실히 놀라웠소.”
정류광이 순순히 인정했다.
사실 추량은 이곳 일 층에 들어선 직후부터 정류광의 술법에 빠져든 상태였다.
때문에 그는 실제로 싸움을 벌이진 않았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석상들 사이에 추량이 멍하니 서 있는 것이 전부였다.
즉, 조각상들과 사투를 벌이는 것은 추량의 환상 속에서 펼쳐진 일들인 것이다.
애초에 사비강은 이곳에 결계를 보강하려고 했지만, 정류광을 만난 후로 계획을 바꾼 것이다.
결계보다는 기문둔갑술을 이용해서 진법을 만들어 보기로.
그리고 생각보다는 효과가 좋았다.
만약 이대로 추량이 두 번 조각상을 전멸시켰더라면 이 술법은 깨졌으리라.
그런 면에서 보면 추량 역시 확실한 발전을 이룬 것.
추량의 환상 속 싸움 결과를 사비강이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기의 파동 때문이다.
술법이 일차로 깨지면 조각상들을 중심으로 푸른빛의 기운이 파도처럼 사방으로 번져 나가게 되어 있고, 두 번째로 깨지면 붉은 색의 기운이 번져 나가게 되어 있었다.
사비강이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을 보니, 당신 사부에 대해서 더욱 궁금해지는군.”
정류광이 차갑게 웃었다.
“행여나 꿈도 꾸지 마시오. 사부님은 나와 차원이 다른 분이시니. 순순히 당신에게 협조하진 않을 거요.”
“물론 나도 당장 찾아가겠다는 건 아니야.”
“그 말은 언젠간 찾아가겠다는 뜻이군.”
“뭐, 그럴 지도 모르지.”
“도대체 말이 안 통하는군.”
“그건 그렇고. 한 번 더 그 잔기술을 좀 빌려야겠어.”
“이번엔 또 무슨 일이오?”
“시험을 좀 해볼 일이 있어서.”
사비강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