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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316화 (316/670)

# 316

귀환 마교관

316화

“부르셨습니까?”

적무린이 고개를 숙이며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마침 창가에 서서 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던 허무극이 부드러운 미소를 그리며 돌아보았다.

“왔는가? 그간 잘 지내고 있었나?”

“예, 감사합니다.”

“이리 와서 앉지.”

허무극이 의자를 가리키자, 적무린이 창가의 탁자로 다가가서 앉았다.

시녀가 다가와 적무린의 찻잔에 찻물을 채웠다.

‘누가 이곳에 있었군.’

비어 있었던 자리치고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들게.”

“감사합니다.”

적무린이 다시 깍듯하게 예를 차리고는 찻잔을 들었다.

향긋한 차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허무극이 창밖을 보면서 말을 꺼냈다.

“요즘 사비강 그자는 어찌 지내는가?”

“평소와 다름없습니다. 자기만의 방식대로 수업을 진행 중입니다.”

“그렇군. 참으로 놀랍지. 죽을 줄만 알았던 구강룡을 살려내다니.”

“확실히 예사로운 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군. 역시 그렇겠지. 괜히 그에 대한 소문이 이리저리 나는 것이 아닐 터. 자네는 사비강 교관이 본련에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적무린을 바라보는 허무극의 눈빛이 깊어졌다.

적무린이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다가 답했다.

“사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신생조에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내 듣기로는 그의 무공은 매우 독특하다고 들었네. 자네는 옆에서 오랫동안 같이 지냈으니 잘 알 것 같은데… 어떤가?”

“그 역시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공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었습니다.”

“과연 그런가? 하면….”

허무극이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 그가 본련에 눌러앉을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나?”

“예?”

“말 그대로다. 그의 무공은 정공보다는 사공에 더 가깝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 해서 말인데, 그자를 아예 우리 사람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적무린은 뜻밖의 질문에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잠시 후 그가 곧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대꾸했다.

“물론 그자를 본련의 무인으로 아예 만들어 버린다면 큰 힘이 될 겁니다. 다만….”

“다만…?”

“그자는 개성이 강한 무공만큼이나, 자기 생각이 분명한 자입니다. 어딘가에….”

“…얽매일 정도로 간단히 설득되진 않을 거란 말이군.”

허무극의 말에 적무린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사비강은 확실히 강하다.

자신이 생각한 정도맹의 샌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들은 어쭙잖은 명분을 내세워 공명정대를 외치지만 사비강은….

‘그냥 제멋대로지.’

그렇다.

그는 공명정대하지도 않다.

그냥 마음에 안 들면 죽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확실히 사파의 무인과 더 가깝다.

하지만…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다.

그게 뭘까?

굳이 따지자면…

‘그래, 인간성이다. 인간성을 버린 자를 대할 때만큼은 어떠한 타협도 없지.’

마치 사비강은 인간이 아니면서도 지성을 가진 그 무언가를 오랫동안 상대해 본 것처럼 행동한다.

그나저나 련주가 갑자기 자신을 불러서 왜 이런 것들을 물어보는 걸까?

때마침 허무극이 나직이 웃음을 흘렸다.

그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면서 입을 열었다.

“역시 그렇군. 하면… 사비강 교관이 지금 본련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기회이자, 위기라고 볼 수 있겠군.”

적무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확실히 그가 이곳에 남아 있으면 신생조가 발전할….”

“아니지.”

“예?”

“본좌는 본련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정도맹의 입장에서 한 말이다.”

정도맹의 입장에서?

정도맹의 입장에서 기회이자 위기라고?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허무극이 착 가라앉은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정도맹으로서는 우수한 인재를 이곳에 남겨 우리를 감찰하는 셈이니 기회라고 볼 수도 있을 테고, 반면 그런 인재가 볼모로 잡힌 격이니 위기가 아니겠나?”

“그건 피차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적무린이 홍묘를 염두에 두고 말했다.

허무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서 이럴 경우에는 결국 눈치 싸움이 될 수밖에 없겠지. 우리 쪽에서는 홍묘가 적진 복판에서 애써 주고 있고.”

“그렇습니다.”

“해서 이번에 본좌가 홍묘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려고 한다. 애써 주는 만큼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야 할 테지.”

“좋은 생각이십니다.”

“자네는 홍묘의 호신위로 지낸 적이 있다고 들었다.”

“한때 잠깐 연이 닿았습니다.”

“연이라… 위로부터 받은 임무를 요즘은 그렇게도 표현하는군.”

허무극이 피식 웃자, 적무린이 얼른 고개를 숙이며 정정했다.

“죄송합니다, 가벼운 뜻은 아니었습니다.”

“됐네. 그런 것까지 나무랄 생각은 없으니. 어쨌든 그런 걸 따져서 이번 임무의 적임자가 자네라고 생각했지.”

“무슨…?”

“자네가 직접 가서 홍묘에게 내 선물을 전해 주도록 하라.”

“…존명!”

적무린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허무극이 옆을 보고는 턱짓을 했다.

잠시 후 시녀가 손바닥만 한 목곽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

척 보기에 상자부터 무척 귀해 보였다.

“이건…”

“아수대환단(阿修大丸團)일세.”

허무극이 상자의 덮개를 열어 보였다.

고급스러운 황금빛 천 위에 놓여 있는 것은 둥근 단환이었는데, 알싸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어딘지 사이한 기운이었지만, 향을 맡는 순간 이미 체내의 기운이 꿈틀대는 것만 같았다.

아수대환단은 혈사련이 오래전부터 제조해 온 영약이었다.

온갖 진귀한 약초를 섞어서 제조한 것인데, 혈사련에서 익힌 심법으로 내공을 운기하면 무리 없이 흡수할 수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단숨에 이 갑자에 가까운 공력을 늘릴 수도 있는 진귀한 영단이었다.

얼마 전 신생조로 돌아온 구강룡이 바로 이 아수대환단을 과거에 복용했었다.

“련주님의 깊은 뜻을 반드시 전해 드리고 오겠습니다.”

“자네가 고생 좀 하겠군.”

적무린은 목곽 상자를 다시 비단으로 감싸며 생각에 잠겼다.

‘아수대환단을 선물하시다니. 과연 련주님은 홍묘를 아끼시는구나.’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조금 헷갈렸다.

그가 홍묘를 이용하는 것인지, 진심으로 아끼는 것인지.

그런데 이번에 좀 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하긴. 그녀는 이런 분에게 어울리지.’

잠시 주제넘은 생각을 했다는 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언제 떠나면 되겠습니까?”

적무린의 질문에 허무극이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말했다.

“첫눈이 좀 늦었네.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바로 떠나겠습니다.”

적무린이 대답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

천상궁 인근 객잔 삼 층.

진수성찬이 차려진 그곳에 홀로 앉은 백호당주 추희룡은 술잔을 들고 거칠게 들이켰다.

탁!

그가 기분 나쁜 듯 잔을 내려놓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거야?”

그가 신경질적으로 술잔을 채우는데, 마침 기척과 함께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주님, 도착했습니다.”

“안내하라.”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들어섰다.

사비강이었다.

추희룡이 사비강을 보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많이 바쁜가 보오.”

“알다시피 요즘 여러 일이 있었소.”

“그러시겠지.”

“불만이 많은 것 같군.”

“그쪽이 내 입장이었다면 안 그렇겠소?”

추희룡은 에둘러 표현하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많은 협조를 했던가?

한데 사비강은 련주를 제거해 주겠다는 말만 했을 뿐, 아직까지 뭔가를 보여준 것이 없지 않나?

사비강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

“공감을 해 달라는 것이 아니외다. 지금 나는 교관에게 따지고 있는 거요.”

“알겠소. 따져 보시오.”

“먼저 물어보겠소. 지난번에 내게 부탁했던 일.”

“부탁?”

“출타하려는 련주를 붙들고 시간을 끌어 달라고 했던 것 말이오.”

“아아, 그거.”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그가 흑운성으로 떠나면서 했던 부탁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추희룡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었소? 이제 말해 줘도 되지 않겠소? 이미 우리는 한 배를 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비강이 웃었다.

“아니지. 한 배를 탄 건 아니오.”

“뭣이?”

“목적지가 다른데, 어찌 한 배라고 하겠소?”

“그럼…”

“다만 내가 탄 배로 당주의 배를 끌어 주겠다는 거요. 이왕 가는 길이니까 당주가 가려는 곳까지는 끌어 주겠다는 거요. 대신 그쪽 짐이 가벼워야 끌기 좋지 않겠소? 그래서 내게 그 짐을 다 넘기라고 한 것이고.”

그럴싸한 표현이었지만, 추희룡으로서는 무시당하는 기분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쨌든 내가 교관에게 협력한 결과가 뭐요? 만약 이런 식으로 나를 이용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엄중히 경고….”

“결과 보여드리지.”

사비강이 술잔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안주를 젓가락으로 집어 우적우적 씹으며 말했다.

“들어와라.”

“들어오라니 뭘…”

추희룡의 눈썹이 꿈틀거리는데, 마침 문이 열리면서 한 사내가 들어왔다.

사비강 뒤에 선 그를 보고 추희룡이 미간을 좁혔다.

“구…강룡 대주?”

“뭐, 지금은 대주가 아니지만 어쨌든 구강룡인 건 맞소.”

사비강의 말에 추희룡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물었다.

“이게 무슨 결과라는 거요? 구강룡이 신생조로 복귀했다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라는….”

“련주를 겨눌 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소?”

“무슨…!”

갑자기 반역에 관한 이야기 툭 튀어나오자, 당황한 추희룡이 흠칫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사비강 뒤에 선 구강룡의 반응을 보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면… 구 대주가….”

“이제 대주는 아니래도.”

“어쨌든 구강룡이 련주를 죽이는데 힘을 보탤 거라는 거요?”

사비강은 여전히 안주거리를 우적우적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술병을 나발 불며 꿀꺽꿀꺽 삼킨 후 입가를 닦아내고는 길게 트림을 했다.

“그렇소. 이 녀석은 련주를 직접 죽이고 싶어서 환장한 놈이니까. 뭐, 이 녀석의 동생도 마찬가지지만.”

추희룡이 당황한 기색을 차츰 지우고는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구강룡을 빤히 보았다.

이내 구강룡이 그 시선의 의미를 눈치 채고는 입을 열었다.

“원하는 건 없습니다. 그저 련주의 목을 따겠다고 맹세했을 뿐. 누구의 강요도, 사주도 아닙니다. 제가 원한 겁니다.”

“하면 련주가 죽고 난 후에….”

“관심도 없습니다.”

구강룡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추희룡이 한참이나 구강룡의 두 눈을 응시했다.

구강룡 역시 그 시선을 일절 피하지 않았다.

이내 추희룡이 껄껄 웃음을 터뜨리더니, 사비강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과연 사비강 교관의 수완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소. 어떻게 이런 인재를 영입할 수 있었소?”

“뜻이 같다면 한 자리에 자연히 모이는 법 아니겠소?”

“맞는 말이오. 하면 거사는 어찌 계획하고 있소?”

그러자 사비강이 술잔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말했다.

“얼마 전 흑운성에서 마령교와 마찰이 있는 건 알고 계실 테고.”

“그렇소. 그 일로 련주는 지금 마령교를 토벌할 계획을 세우고 있소.”

“하지만 마령교를 찾기가 쉽진 않을 텐데. 더구나 지금처럼 몸을 사릴 때라면.”

“하지만 군사의 정보망에 마령교가 걸려든 모양이오.”

“류여중 군사 말이오?”

“그렇소. 해서 조만간 토벌 작전에 대규모 조직을 이끌고 련주가 직접 참여할 것 같소.”

“련주가… 직접?”

안주를 먹던 사비강이 눈을 치떴다.

이건 다소 의외였다.

“그렇소. 지금 분위기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오.”

“련주가 직접이라….”

이쯤 되자 추희룡이 주변을 슬쩍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꺼냈다.

“역시… 거사를 치르기엔 그때가 좋지 않겠소?”

“일리는 있소.”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마령교와 전쟁이 벌어진 이후가 되면 거사를 치르기 힘들어진다.

오히려 마령교를 토벌하기 위해 이동하는 순간이나, 작전에 들어가기 직전이 가장 적기가 되리라.

사비강이 술잔을 내려놓고는 입매를 틀었다.

“그럼 슬슬 그림을 그려 봅시다. 용을 잡을 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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