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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310화 (310/670)

# 310

귀환 마교관

310화

어두컴컴한 동혈 안쪽.

곳곳에 야명주가 박힌 동혈은 단순히 자연 그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구석구석 세공된 장식들이 있었으며, 사나운 마귀의 형상들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어 범인이 이곳에 들어선다면 절로 공포에 질릴 만했다.

그런 길을 한참이나 따라 들어가면 제법 너른 공간이 나타나는데, 공동을 떠받치는 기둥 역시 상당한 솜씨로 세공되어 그 위엄을 한층 더했다.

웅장한 공동 끄트머리에는 시커먼 바위를 깎아서 만든 태사의가 있었는데, 머리카락이 치렁치렁 늘어진 사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축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그의 안광은 바위도 뚫어 버릴 것처럼 강렬했다.

마침 그가 있는 공동 안으로 누군가 들어섰다.

얼굴을 온통 녹빛으로 칠한 사내였다.

“교주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곧 월식이 시작됩니다.”

“수고했다.”

묵직한 음성을 흘린 교주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녹면인이 걸음을 돌려 앞장섰다.

두 사람이 긴 동혈을 지나 다다른 곳은 제법 너른 분지 형태의 공간이었다.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막힌 공간.

그 절벽 중간쯤에 모습을 드러낸 교주와 녹면인은 분지 아래를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만약 누군가가 분지 아래에 펼쳐지는 광경을 목격했더라면, 그 자리에서 오줌이라도 지렸으리라.

도저히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생명체가 바닥에 길게 엎드려 꾸물거리고 있었으니.

몸체는 어지간한 전각도 삼켜 버릴 만큼 비대했는데, 마치 구더기를 엄청나게 확대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일전에 천신교에서 소환했던 바올드의 특징이 여러 개의 촉수라면,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저 녀석의 특징은 성인 한 명은 너끈히 집어삼킬 만큼 커다랗게 벌어진 입이었다.

구더기를 닮은 그것은 모두 네 마리였는데, 바닥에 새겨진 기괴한 문양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으로 각각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는 피풍의를 두른 마인들이 알아듣기 힘든 주문을 연신 읊어대고 있었다.

녹면인이 분지 아래에 펼쳐지는 광경을 내려다보며 가만히 읊조렸다.

“식태마(食胎魔)가 이미 제물을 삼킨 상태입니다. 다행히 천신교로 이목을 끌어 둔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교주’라 불린 사내 역시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존야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만약 그의 말을 다른 누군가가 들었다면, 고개를 갸웃거렸으리라.

마령교의 수장은 교주가 아닌가?

한데 그가 존야를 일컬으며 극존칭을 사용했다.

즉, 교주보다 더 높은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녹면인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대에 찬 눈으로 분지 아래를 바라보았다.

주문은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분지에 그늘이 서서히 지기 시작했다.

월식의 시작이었다.

교주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휘영청 밝았던 보름달이 벌써 절반이나 사라져 있었다.

‘드디어…!’

식태마는 집어삼킨 제물을 열심히 소화라도 시키는 것인지 연신 몸통을 꿈틀댔다.

그때였다.

두 사람의 뒤로 한 인영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는 얼굴을 온통 하얗게 칠한 사내였다.

“적면이 당했다고 합니다. 흑면은 대법에 실패하고, 선천마령지기를 취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교주의 눈살이 팍 일그러졌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대법에 실패하다니.

게다가 적면이 당해?

대체 누가 방해를 했단 말인가?

그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백면인(白面人)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흉수는 사비강이라고 합니다.”

“사비강…!”

교주가 신음처럼 그 이름을 흘리며 미간을 구겼다.

정말이지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인간이다.

정도맹주도, 혈사련주도 자신들을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 그 녀석의 이름만 계속 되풀이되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다.

우선 그 일은 차후에 생각해 볼 문제다.

“알았다. 적면의 상태는?”

“화상을 심하게 입었다고 합니다. 황면이 그에게 갔습니다.”

“알았다.”

고개를 꾸벅 숙인 백면인이 몸을 물렸다.

그러는 사이 하늘에 떠오른 보름달은 이제 거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마침내 분지가 완전한 암흑으로 잠겨들었을 때,

쉬야아아악! 쉬야아아악!

날카로운 무언가로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면서 분지 아래의 사방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키퀴에에엑!

퀴아아아아!

고막을 찢어 버릴 것만 같은 섬뜩한 비명이 마구 울려댔다.

분지에 있던 마인들이 저마다 내공을 끌어올려 청력을 보호했다.

만약 내공의 깊이가 얕은 자가 있었더라면, 필시 피를 토하면서 쓰러지고도 남았으리라.

한바탕 비명소리가 끝나고 주문을 읊는 마인들 역시 잠잠해졌을 때, 비로소 보름달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분지의 일부가 차츰 밝아지면서 이내 분지 아래에 벌어진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구더기처럼 꾸물거리던 식태마들의 배가 모두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뱃속에는 시커먼 인영들이 진득한 액체에 덮인 채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식태마에게 먹인 제물들이었다.

한데 그들 모두가 산 채로 움직이는 것이다.

다만 그들의 움직임은 어딘지 좀 달랐다.

벌거벗은 몸은 온통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고, 눈동자 역시 검은자위가 대부분이었다.

녹면인이 주먹을 콱 말아 쥐었다.

‘됐다! 드디어 마병(魔兵)이 만들어졌다!’

그는 식태마의 뱃속에서 잉태된 거뭇한 존재들을 ‘마병’이라 불렀다.

이들은 앞으로 마령교가 하는 일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식태마 한 마리가 품은 마병은 모두 이백 명 정도.

그러니 모두 팔백의 마병이 탄생한 셈이다.

교주가 마병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시험해 보라.”

“존명.”

대답을 마친 녹면인이 손을 들어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지금까지 주문을 읊던 마인들이 마병들을 통솔하며 어디론가 빠져나갔다.

그 중에서 무리에 섞여 이동하지 못하고 남은 마병이 열 명.

잠시 후, 녹면인이 다시 수신호를 보내자, 열 명의 마병을 둘러싸면서 녹색 피풍의를 두른 마인 서른 명이 나타났다.

그들이 일제히 허리춤에서 도검을 뽑아 들더니 열 명의 마병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쉬쉬쉬쉿!

퍽! 퍼퍼퍽!

놀랍게도 서른 명의 녹의인들은 몇 수 겨루지도 못한 채 마병들의 장각을 얻어맞고 튕겨져 나갔다.

마병들이 튕겨 나간 녹의인들을 향해 몸을 던지며 마무리를 지으려는 순간,

“멈춰라!”

교주가 내공을 실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 큰 소리가 아니었지만, 분지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또렷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마병이 멈춰 서서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비로소 교주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녹면인의 대답에 교주는 몸을 휙 돌리고는 어디론가 저벅저벅 걸어갔다.

**

신생각의 지하 연무실.

“정말 형님이 살아 있습니까?”

“그렇다니까.”

사비강의 대답에 옹기승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평생 자신을 원망하면서 죽이겠다고 소리치던 형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런 형이 더욱 살아 있길 바랐다.

만약 자신이 형의 입장이었어도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기에.

다만…

“형님도 지금 진실을 알고 있습니까?”

“그래. 알고 있다.”

“역시…”

이쯤 되니 짐작한 바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옹기승은 고개를 들고 사비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날 절 환옥에서 꺼낸 사람은 교관님이셨습니까?”

“나 말고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옹기승이 피식 웃어 버렸다.

과연 사비강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그가 모르쇠 할까 봐 염려했는데 괜한 기우였다.

이자는 결코 자신의 잘난 점을 숨길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절 깨우신 겁니까?”

“물론 내가 직접 하진 않았지만, 내가 한 것이나 다름없지.”

“그게 무슨….”

“그런 것까지 네가 알 필요는 없다. 설명하기도 귀찮고.”

“허어…”

옹기승이 눈을 감은 채로 입을 딱 벌렸다.

그러다가 곧 다른 생각에 빠져들면서 이야기를 돌렸다.

“형님이 많이 혼란스러워하겠군요.”

“뭐, 혼란하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겠냐? 평생을 원수로 생각했던 동생이 사실은 단순한 피해자일 뿐이고, 그토록 의지했던 인간이 원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테니까.”

“그렇군요.”

옹기승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문득 궁금했다.

그렇다면 자신을 향한 분노는 이제 말끔히 씻겨 없어졌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선천마령지기를 가지고 태어난 자신 때문이니 여전히 미움이 남아 있을까?

어렸을 때 무척이나 따르고 의지했던 형이다.

배 다른 형제임에도 구강룡만큼은 자신을 각별히 아껴 주었으니까.

그때 사비강이 툭 던지듯 물었다.

“신경 쓰이나보군.”

“예? 아, 뭐… 아무래도 좀….”

“하긴 그렇겠지. 그래서 특별히 내가 자리를 준비했다.”

“자리를… 준비하다니요? 무슨 말씀입니까?”

“형제지간의 우애를 다독일 자리지. 그동안 쌓였던 앙금을 풀라는 의미에서.”

“무슨…?”

옹기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하 계단을 따라 누군가 내려왔다.

바로 구강룡이었다.

“형…님?”

“누가 네 형이냐? 난 옹씨 성을 가진 동생을 둔 적이 없다.”

구강룡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역시나 옹기승을 향한 감정이 말끔하게 씻어지진 않은 듯했다.

몸 여기저기에 난 상처가 아직은 완벽하게 아물진 않았는지 다소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옹기승이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도 내가 원망스럽소?”

“당연하다!”

“내가 선천마령지기를 지니고 태어났기에? 아니면, 내 어머니가 마교 교주의 딸이었으니까?”

“멍청한 새끼. 그래서 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다.”

“무슨 뜻이오?”

“내가 정말 화가 나는 건 그토록 강한 힘을 가지고도 왜 련주에게 놀아났냐는 거다!”

팡!

순간 구강룡이 바닥을 차더니 곧장 옹기승에게 날아갔다.

순식간에 옹기승 눈앞에 다다른 그가 검을 대각선으로 내려쳤다.

까아앙!

옹기승이 검을 들어 올리면서 구강룡의 일격을 막아냈다.

불꽃이 터지면서 손끝이 저릿하게 울려 왔다.

‘큭…!’

만약 조금만 손에 힘을 풀었다면 손바닥이 찢어지고 말았으리라.

옹기승이 입술을 질끈 씹고는 검의 손잡이를 콱 움켜잡았다.

“네놈의 그 멍청함 때문에 난 일생을 엉뚱한 곳에 힘 쏟았다!”

구강룡이 소리치며 옹기승을 향해 다시금 달려들었다.

카앙! 까가강!

연신 불꽃이 터져 나오면서 금속성이 시끄럽게 이어졌다.

“네놈이 련주에게 놀아나지만 않았어도!”

까앙!

“네놈이 선천마령지기를 다스릴 수만 있었어도! 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았다!”

까강!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다!”

퍼엉!

“크윽…!”

아랫배로 일장을 받아낸 옹기승이 비명을 터뜨리며 뒤로 성큼성큼 물러났다.

뱃속에서부터 치미는 뜨끈한 기운을 느끼고는 울컥 토해내자 피가 나왔다.

구강룡이 검을 척 내밀고는 옹기승을 가리켰다.

“모두 다… 네놈 때문이다!”

“그게…”

“뭐라는 거냐? 큰 소리로 말해라.”

“그게 왜 나 때문이오! 난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소!”

파앗!

옹기승이 다시 바닥을 차고는 구강룡에게 쏜살처럼 날아갔다.

쩌엉!

곧장 내지른 검봉을 구강룡이 검면으로 막아내자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크웃!”

구강룡이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눈을 감은 옹기승이 쉴 새 없이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저주 받은 몸으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살아간 내 인생은 생각해 보셨소!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가 되었던 내 심정은 헤아려 보셨소!”

“응석부리지 마라!”

“형님이야말로 응석부리지 마시오! 본인의 무지를 왜 내게 덮어씌우는 거요!”

“노옴!”

까가가가강!

옹기승의 검세는 점점 격해져 갔다.

구강룡이 미간을 팍 구기며 가까스로 막아내는데, 마침 그의 귓가로 사비강의 조소 어린 전음이 들려왔다.

[뭐야? 동생이라고 봐주는 거냐? 그딴 식으로 할 거면 집어 치워.]

[크익…! 내가 진심으로 하면 이 녀석은 죽을 수도 있소!]

[어디 한 번 죽여 봐. 그토록 죽이고 싶어 하던 동생 아니더냐?]

[흥! 그럼 후회 마시오!]

다음 순간, 구강룡의 기세가 급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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