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
귀환 마교관
288화
거리가 가까워서 윈드 피스트 정도의 마법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물어 볼 것이 많은 만큼 죽일 생각은 없었기에 비교적 하위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한데 상대가 실드를 펼쳐 막을 줄이야.
만약 호신강기로 막으려고 했다면, 절대 방어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호신강기보다 발동하기 쉬운 실드인 만큼 재빠르게 대응해서 막아낸 것이다.
윈드 피스트가 비록 하위 마법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직통으로 맞으면, 어지간한 고수라도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질 만큼 강하다.
한데 실드라니…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이쯤 되니 한 가지 연결고리가 생긴다.
어쩌면 저 청면인이 설백을 납치해 갔던 그 복면인들과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
“역시 죽이지 않고 심문하겠다는 내 생각은 옳은 결정이었군. 하지만 이래서야 반쯤은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마법을 썼어야 했나?”
“마…법?”
청면인이 미간을 좁히고 중얼거리자,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런 개념까지는 없는 건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모르면 됐다. 내가 지금 영감까지 지도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질문은 내가 한다.”
“흥! 건방진 놈! 네놈의 정체가 뭐든, 시체가 되어서도 그 잘난 주둥이를 나불거리는지 두고 보마!”
파앗!
청면인이 순간 시야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사비강 앞에 나타났다.
“뒈져!”
그가 그대로 검을 내질러 왔다.
‘호오, 트라이스까지?’
사비강의 눈빛에 더욱 호기심이 떠올랐다.
‘이 정도로 마법을 사용하면서 마법이라는 걸 모른다면… 단순히 마공쯤으로 생각하는 건가?’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만, 그럼 이것들이 마교의 잔당들? 천신교는 그저 허울로 내세운 것에 불과하다면….’
생각은 길었지만 실제로 짧은 순간에 떠오른 것들이었다.
팟!
쒸앙!
사비강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청면인의 검이 허공을 찔렀다.
“치잇!”
그가 당황하며 돌아서는데, 눈앞에 사비강이 딱 나타났다.
“마법은 이렇게 쓰는 거다.”
“뭐? 무슨…!”
사비강의 손이 청면인의 눈앞에 불쑥 내밀어졌다.
다음 순간,
슈퍼엉!
촤자자작!
강맹한 바람이 터져 나오면서 청면인이 뒤로 훅 멀어졌다.
동시에 그의 상의가 갈가리 찢어지면서 탄탄한 상체가 훤히 드러났다.
정말이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강인한 체구였다.
만약 이번에도 조금만 늦게 실드를 펼쳤더라면, 그의 머리통이 아예 박살이 났을 터였다.
한편, 매설란은 사비강과 청면인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넋을 놓고 말았다.
일단 제일 먼저 떠오른 의문은…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처음 사비강을 보았을 때는 환영술에 걸린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그만큼 놀랍고 반가웠다.
“국주님! 괜찮으십니까?”
제일 먼저 달려온 사람은 단리정이었다.
그가 얼른 장포를 벗어 매설란에게 덮어 주었다.
격전을 치르면서 그녀의 옷이 여기저기 찢어져 나가 속살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추량도 다가와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국주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어째서 여기에 전 국주와 당신이…?”
“음… 설명하자면 좀 긴 사연이 있습니다. 그보다 먼저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는 게 어떨까요?”
“아, 그래요. 잠깐…!”
매설란은 갑자기 잊고 있던 게 생각나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전투 중인 사비강과 청면인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격전을 치르고 있었는데, 사실 사비강이 어느 정도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마도 청면인을 생포하려는 생각인 듯했다.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매설란은 이곳 지하에서 본 그 무시무시한 괴물을 떠올렸다.
녀석이 이대로 매장이 됐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위로 올라오기라도 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국주님?”
단리정이 매설란을 다급하게 불렀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먼저 피해요. 난 저 사람과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예? 하지만 지금은 일단….”
“난 괜찮으니까 어서! 그리고 혹시 모르니 단리 대주는 이곳에 침투한 천멸대를 모두 장원 밖으로 물리도록!”
그러자 이번엔 추량이 다가와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국주님. 갑자기 침투조를 빼게 되면 천신교를 섬멸하기가….”
“지금 이들이 문제가 아니야.”
“네?”
“길게 말할 시간이 없어요. 어서!”
“흐음, 알겠습니다. 하지만 당장 후퇴를 지시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대신 유사시에 언제든 몸을 빼낼 수 있도록 지시해 두겠습니다.”
추량이 먼저 몸을 날렸다.
곧이어 단리정도 매설란의 명을 받아들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한편, 매설란은 입술을 질끈 씹고는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이제 사비강과 청면인의 싸움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청면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신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이 새끼는 어떻게 이런 공격을…!’
분명한 건 사비강이 지금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자신을 생포하려고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다.
사비강은 그 사실을 일부러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크익! 대체 네놈이 어떻게 본교의 수라마공을!”
“수라마공…?”
“흥! 시치미를 뗄 셈인가!”
팟!
청면인이 다시 한 번 트라이스를 펼치면서 사비강의 후면에 나타났다.
그가 검을 대각선으로 베어 가는 순간,
파바밧!
사비강이 옆으로 보법을 밟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수십 명으로 나뉘면서 청면인을 에워싸는 게 아닌가?
“헛!”
미러 이미지 마법이었다.
청면인이 사비강을 훑어보더니 입술을 쿡 씹었다.
그의 놀라움은 마치 ‘이런 것도 네가 사용할 수 있느냐’라는 것에 가까웠다.
다음 순간 그는 한 손으로 제 몸의 혈도를 타다닥 짚어 가더니 버럭 소리쳤다.
“경상(鏡狀)!”
곧이어 놀랍게도 그의 몸이 수십 개로 쪼개지면서 각각의 청면인이 사비강 앞에 나타났다.
“호오? 미러 이미지까지 구사할 줄 안단 말인가? 과연 생포해야 할 이유가 점점 늘어나는군.”
수십 명의 사비강이 동시에 같은 말을 뱉으니 허공이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흥! 닥쳐라!”
수십 명의 청면인이 버럭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슈칵! 서컥! 슈카칵!
워낙 근접한 거리에서 쏟아지는 빠른 공격이었기에 수많은 사비강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 한 명.
“놀랍군. 놀라워.”
“이, 이 새끼…!”
진짜 사비강이 청면인의 검을 손가락으로 낚아챈 것이다.
곧이어 사비강은 망설임 없이 베르타스를 휘둘렀다.
쉬이이잇! 슈컥!
청면인의 목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그 역시 수많은 청면인들 중 가짜였을 뿐이었다.
청면인들이 흠칫거리고 사비강을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꾸구구구구궁…!
다시 한 번 육중한 진동과 함께 지축이 뒤흔들렸다.
이번에는 진원지가 무척 가까이 있다는 느낌에 청면인들은 물론 사비강도 흠칫거리고는 천신전을 바라보았다.
‘뭐지…?’
반면 청면인은 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인지 안색이 하얗게 질리면서 다급한 표정으로 변했다.
마침 매설란이 소리쳤다.
“지하에 괴물이 있어요! 앗! 저기 청면인이 달아나요!”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십 명의 청면인이 사비강을 향해 쇄도했다.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휘두르면서 먼저 날아드는 청면인들을 가차 없이 베어냈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은 사비강은 그야말로 살귀와 같았다.
서컥! 서겅! 푹! 푹푹!
청면인들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져 가자, 달아나던 진짜 청면인이 돌아보고는 하얗게 질린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는 트라이스와 경공을 번갈아 가며 최대한 멀리 달아났다.
그런데 그가 막 트라이스를 이용해서 이동한 순간,
“많이 바쁜 모양이군.”
“헉!”
바로 앞에 귀신처럼 나타난 사비강이 강하게 발을 휘둘러 왔다.
퍼억!
“크억!”
그대로 각법에 얻어맞은 청면인이 포탄처럼 튕겨 나가면서 다시 천신전으로 날아갔다.
그때였다.
콰콰아앙!
느닷없이 천신전이 터져 나가더니 그곳에서 괴이한 생명체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녀석은 달팽이처럼 미끈거리면서도 끈적끈적한 몸체였는데, 마치 인간의 뇌가 연상되는 몸에 오징어다리 같은 촉수가 수십 개나 달려 있었다.
“우아아악!”
천신전으로 날아가던 청면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비명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콰작!
뇌와 같은 몸체를 지닌 녀석이 입으로 생각되는 것을 한껏 벌리더니 그대로 청면인을 씹어 삼킨 것이다.
으득으득 뼈째 씹는 소리가 밖에서도 들릴 지경이었다.
한편, 천신전 바로 앞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매설란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말, 말도 안 돼…!’
분명 저 괴상한 생명체는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게다가 색깔도 피처럼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뭐야?”
그녀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사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물이 매설란 쪽으로 스윽 돌아보았다.
매설란은 그것에 눈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녀석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 순간,
쉬리리리릭!
흐느적거리는 촉수 중 하나가 매설란을 향해 맹렬하게 뻗어 왔다.
“흐읍!”
매설란이 호신강기를 펼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헛바람만 삼켰다.
찰나지간,
쑤카앙!
날아들던 촉수가 잘려 나가면서 베르타스가 바닥에 내려 꽂혔다.
곧이어 매설란 앞을 막아서며 사비강이 나타났다.
“설란. 정신 똑바로 차려.”
“사, 사 교관님…! 도대체 저건….”
“‘바올드’라는 녀석이야.”
“뭐, 뭐라고요?”
“녀석이 지금 까칠한 상태여서 꽤나 성가신 상황이지만, 실제로 상대하기가 그리 까다로운 녀석은 아냐.”
“도,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자세히 말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우선 천멸대를 데리고 먼저 여길 벗어나도록. 내가 신호를 보내면 단리정에게 이 녀석을 향해 활을 쏘라고 해.”
“하지만 그래도 당신 혼자서 남는다면….”
“말했잖아. 그리 어려운 녀석은 아니라고. 약점만 알면 공략하기는 쉬운 놈이야.”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바올드는 갑자기 나타난 사비강을 경계하면서 꿈틀거리며 물러나고 있었다.
또한 잘려 나간 촉수의 일부분은 불에 데인 구렁이처럼 퍼덕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지면서 시커멓게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매설란이 곧 마음을 다잡고 일어섰다.
“알겠어요. 부디 조심하세요.”
“걱정 마.”
매설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몸을 날렸다.
사비강이 허공을 향해 말했다.
“흑귀. 가서 침투조를 모두 후퇴시켜라.”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기척이 사라졌다.
홀로 남은 사비강이 바올드를 올려다보고는 히죽 웃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이렇게 일찍 나타난 거냐? 그래봐야 빨리 죽기만 할 텐데.”
사비강의 몸에서 우러나오는 진득한 살기를 느낀 걸까?
바올드가 수 가닥의 촉수를 들어 올리며 금방이라도 공격해올 듯 흐느적거렸다.
사비강이 냉소를 지었다.
“우선 네놈을 끌고 다니면서 여기 청소부터 해야겠다. 너를 강제로 불러낸 녀석들에게 화풀이 할 시간은 충분히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