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
귀환 마교관
289화
콰콰콰아앙!
바올드의 괴력은 어마어마했다.
녀석이 수십 장에 이르는 촉수를 마음껏 휘두르면 나무로 지어진 전각이 통째로 부서져 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처럼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던 침투조는 저마다 침음을 흘리면서 하얗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신생조와 천멸대는 서로 으르렁대며 기 싸움을 하던 것도 잊을 만큼 넋이 나가 버렸다.
“국, 국주님… 저게 도대체 뭐죠?”
염자량의 질문에 매설란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몰라. 다만….”
“……?”
“이 세상의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 말은….”
“천신교에서 소환해 낸 마물일 가능성이 있어.”
그녀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저 마물이 어린 아이들을 포식하려던 모습을.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자, 망설임 없이 제물로 바쳐진 아이들을 몰살시키던 광경을.
그것은 정말이지 오로지 순수한 악(惡) 그 자체로 보였다.
매설란의 말에 다른 무인들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다시 마물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물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만큼 힘도 비례하면서 커졌다.
장원은 순식간에 초토화되고 있었다.
곳곳에서 녀석에게 당한 신도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 갔다.
자신들이 불러낸 마물에게 당해서 비명횡사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매설란과 적무린이 침투조를 지휘하며 후퇴하자,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한 줄만 알고 기쁨에 젖어 있었다.
그러다가 저렇게 생각지도 못한 존재에 당하는 중인 것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매설란과 다른 무인들은 통쾌하기는커녕 모종의 공포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가 인간을 학살하는 모습은 아무리 적이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결코 유쾌한 광경이 아니었다.
“흐윽! 사, 살려줘어어억!”
신도 한 명이 비명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목이 날아갔다.
바올드의 촉수 끝에는 빨판 같은 것이 달려 있었는데, 촉수가 목을 잃은 시체를 빨아들이자 물컹한 촉수관 속으로 꾸물거리며 시체가 넘어가고 있었다.
사비강은 블링크 마법과 경공을 섞어 가면서 바올드를 최대한 유인하면서 장원을 종횡무진했다.
이제 바올드는 웬만한 전각만큼 몸체가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누구라도 그 모습을 보았다면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고 말았으리라.
꾸아아아앙!
바올드가 몸을 비틀어 올리면서 괴성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모든 내공을 경공에만 집중했던 신도들은 고막이 터져 나가는 것과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픽픽 쓰러져 나갔다.
바올드의 괴성에는 특별한 공명음이 있기 때문에 내상을 입기 딱 좋다.
때문에 바올드가 촉수 중 세 개 이상을 뇌처럼 생긴 몸체 위로 들어 올린다면 반드시 괴성에 대한 방비를 해야만 한다.
그때는 어김없이 공명을 이용한 괴성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바올드의 특징 중 하나인데, 애초에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 방어하기에 어려운 부분은 아니었다.
때문에 사비강은 바올드의 괴성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아무런 내상을 입지도 않았다.
물론 그의 내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어쨌거나 상당수의 신도들이 장원을 미처 벗어나지도 못하고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바올드는 마치 청소라도 하듯 촉수를 뻗어내어 시체들을 흡입해 갔다.
사비강은 그 중 가장 높은 전각에 올라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실컷 먹어 둬라.’
한편, 장원 밖에서 대기하던 매설란과 침투조는 장원을 탈출한 천신교 신도들을 급습해서 남김없이 처리했다.
그들이 마물에게 당하던 광경은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런 마물을 불러낸 것 또한 그들이었기에 손속에 사정을 두진 않았다.
장원을 깨끗하게 청소한 바올드가 장원 밖을 향해 흐느적거리며 걸어 갈 때였다.
“어딜 가나?”
전각 위에 서 있던 사비강이 기도를 활짝 드러내고는 바올드를 향해 말을 던졌다.
그으으으응.
바올드가 요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뇌처럼 생긴 몸체가 연신 꾸물거리면서 움직였다.
사비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볼수록 못생긴 놈이군.”
자신을 놀린다는 사실을 알아들은 것일까?
바올드가 촉수 다섯 가닥을 몸체 위로 들어 올리면서 흐느적거렸다.
꾸아아아아아아앙!
다시 한 번 공명음이 터져 나왔다.
드드드드드…!
푸서서석! 콰과과아앙!
공진을 견디지 못한 전각들이 일시에 터져 나가듯 부서졌다.
사비강이 밟고 서 있던 전각 역시 마찬가지.
우르르르르! 콰당탕!
사비강은 떨어지는 나무기둥을 밟으면서 재빨리 경공을 펼쳤다.
탓, 타타앗!
그가 화살처럼 몸을 날리면서 바올드를 향해 도약했다.
이제 저 마물이 장원 밖으로 나가게 허락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하필 바올드라니…’
녀석의 특징 중 하나는 피아를 전혀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동족끼리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녀석들이다.
때문에 바올드는 암수가 한 몸에 공존하면서 자체 생식을 통해 번식한다.
또한 결코 무리를 지어 생활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때문인가?’
지능이 떨어지고 거의 본능만 존재하는 마물.
마계에서 건너오려면 아직 시간이 걸릴 터였는데, 이렇게 빨리 나타난 것은 분명 조금 전에 보았던 청면인이 주도한 소환 의식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어떻게 그자는 소환술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
고대 무림에서는 마물을 소환해서 싸우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들이 마치 전설처럼 전해질 뿐이다.
확실하지 않지만 어쩌면 그 ‘마령’이라는 존재와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
“뭐가 어찌 됐든 네놈을 마음대로 설치게 둘 수는 없지!”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그대로 수직으로 베어 내렸다.
쑤아아아앙!
강기가 앞으로 뻗어 나가자, 바올드의 몸에서 순간 하얗고 진득한 물이 스며 나왔다.
쩌어엉!
강기와 바올드의 몸이 부딪치면서 요란한 금속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 호신액(護身液)이 나오는군.’
이 역시 바올드의 특징 중 하나다.
바올드는 덩치가 커졌을 때, 적의 공격을 피하기가 까다로워지는 만큼 스스로 체액을 분비하면서 방어하는 능력을 가진다.
이때 체액이 분비되는 속도는 그야말로 찰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마치 호신강기나 실드의 효과를 가진다고 볼 수 있었다.
또한 체액이 분비된다는 것은 그만큼 바올드가 완전체에 가깝게 커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비강은 이 체액을 ‘호신액’이라고 불렀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올드의 체액이 분비되는 순간, 바로 녀석의 최대 약점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 약점은 바로 저 수많은 촉수가 뻗어 나오는 곳 정 중앙에 위치한다.
그곳에 ‘마나 홀’이라는 급소가 있는데, 호신액이 분비되는 순간에는 급소가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게 된다.
우습게도 살을 지키기 위해 뼈를 내어 주는 방법이랄까?
물론, 이러한 공략법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바올드처럼 까다로운 적도 없으리라.
실제로 중원인에게는 바올드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공포의 대상일 것이다.
훌쩍 물러난 사비강이 부서진 전각을 밟고 서서는 품에서 신호탄을 꺼내 쏘아 올렸다.
삐이이익, 파앙!
그리고 잠시 후, 사비강의 예상대로 강기를 머금은 화살이 날카로운 소리를 이끌며 날아들었다.
쒸이이엑!
찰나, 바올드의 몸에서 다시 한 번 하얀 액체가 배어 나왔다.
‘지금이다!’
사비강이 바닥을 찼다.
탓!
곧이어 바올드에게 상당히 근접한 순간, 사비강이 그대로 베르타스를 날려 보냈다.
쒸아아아앙!
이기어검술을 이용한 공격이었기에 그 정교함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푸콱!
그대로 솟구쳐 오른 베르타스는 바올드의 마나 홀에 정확히 꽂혔다.
동시에 바올드가 온몸을 뒤틀면서 괴성을 내질렀다.
뀌아아아아앙!
푸콰콰콰…!
공명을 이용한 괴성이었기에 주변 건물들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뒤틀리면서 부서져 나갔다.
사비강도 이번에는 얼른 내공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내상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
쒸에에에에엑!
다시 한 번 화살이 날아들었다.
단리정이 쏘아 보낸 것이리라.
‘확실히 감은 있는 녀석이라니까.’
따로 신호를 보내지 않았음에도 단리정은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지금이 다시 한 번 공격을 감행해야 할 때라는 것을.
이번에도 역시 바올드가 하얀색 호신액을 뿜어내면서 몸을 덮었다.
따아앙!
강기를 머금은 화살은 매우 강맹했기에 바올드가 움찔거리며 물러날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사비강은 다시 손을 뻗어 텔레키네시스 마법을 이용해서 베르타스를 한 차례 휘저었다.
쫘좌좌아아악!
시커먼 구체가 완전히 균열이 생기면서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내듯, 검은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퀴아아아아앙!
조금은 혼탁한 공명음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강도는 약했기에 더 이상 건물이 부서지지는 않았다.
사비강도 딱히 내공을 끌어올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녀석이 보유하고 있는 선천 마나가 상당히 손실된 것이리라.
금속처럼 단단했던 마나 홀은 완전히 부서진 채로 계속해서 검은 기운을 사방팔방 흘려대고 있었다.
꾸구구우우웅…!
육중한 소리와 함께 바올드가 쓰러지기 시작했다.
흐느적거리는 촉수들은 이내 쿵쿵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축 늘어졌다.
그 무게가 상당했기에 장원 바닥에 깊은 구덩이가 생길 정도였다.
쿠구구구궁….!
전각 하나를 완전히 깔아뭉개더니 바올드가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희뿌연 먼지 안개가 피어오르고 나서 한참이 지나서야 주위가 어느 정도 시야에 들어왔다.
저벅저벅.
사비강이 쓰러진 바올드를 향해 걸어갔다.
녀석은 마계에 존재하는 마물 중에서도 하급 마물에 속한다.
지금처럼 약점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게다가 이렇다 할 지능은 없고 단순히 공격적인 본능만 있다.
츠츠츠으으읏…!
순간 녀석의 사체가 녹빛으로 녹아들어 가면서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역시… 성가신 건 어쩔 수가 없군.’
바올드가 비록 하급 마물임에도 귀찮은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녀석은 죽은 후에도 독을 뿜어낸다.
사체가 급속히 썩어 가면서 주변 공기는 금세 독무로 변해 버린다.
사비강은 품에서 라겔의 주머니를 꺼냈다.
피독주처럼 사용할 수 있는 안티포이즌을 하나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해독제 역할을 하는 큐어포이즌은 포션과 같은 액체로 되어 있다.
하지만 피독주의 역할을 하는 안티포이즌은 구슬로 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중독당한 자가 약을 조금이라도 삼키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 제조되었기 때문이리라.
반면 미리 예방하는 성격의 안티포이즌은 굳이 보관하기 어려운 액체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피독주가 모든 독에 내성을 가진 게 아니듯 안티포이즌이라고 해도 마계의 독에 만능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바올드의 독이 하급 마물에 속하기에 방어가 가능한 것이었다.
“정말 못생겼네.”
돼지 내장을 보는 것처럼 흐물흐물해진 바올드의 몸체는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사비강은 깨진 마나 홀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액체를 빈 병에 담았다.
바올드가 내뿜는 독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액체.
‘하필 이런 놈을 소환해서 건질 거라곤 이 정도 뿐인가?’
사비강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바올드 포이즌을 라겔의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