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
귀환 마교관
287화
‘이상하군.’
사비강은 건물 사이를 걸으면서 눈살을 슬쩍 구겼다.
장원 내에 거주하는 신도들은 예상보다 훨씬 많다.
한데 장원 내에 이렇다 할 뇌옥이나 중요한 건물이라고 생각되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 많은 인원이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여기가 아닌가?’
하지만 사비강은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곳이 요지가 아니라면 이렇게 많은 신도들이 주둔하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마침 전방으로 신도들이 우르르 몰려오면서 길목을 막아섰다.
돌아보니 뒤쪽에서도 상당수의 신도들이 나타나서 길을 틀어막고 있었다.
“저놈이다! 잡아라!”
“노옴! 사지를 찢어 주마!”
신도들은 사비강이 우두머리라고 생각한 것인지, 곧장 살기를 뿜어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침 양쪽 건물의 지붕 위에서도 그림자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팍! 콱! 파박!
한꺼번에 많은 신도들이 들이닥치자, 사비강은 아예 몸을 웅크리고는 반격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 명의 신도들이 저마다 사비강의 몸 여기저기를 잡고 힘을 주는 찰나,
후우웅!
갑자기 한기가 불어닥치는가 싶더니 사비강의 몸이 급속도로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콰아아앙!
사비강의 몸에서 막강한 냉기가 폭발하면서 엄청난 한파가 사방으로 불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쿠아아악!”
“으아악!”
강렬한 폭발에 휩쓸리면서 수십 명의 신도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튕겨 나갔다.
그나마 비명이라도 지른 자들은 목숨이라도 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도들은 폭발과 함께 아예 머리통이 터져 나가거나, 사지가 꽁꽁 굳은 채로 부서지면서 인육 파편이 되어 나뒹굴기도 했다.
뒤늦게 사비강에게 몰려든 신도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괴, 괴물이다…!”
“도, 도대체 무슨 사술을 쓴 거지?”
사실 사비강이 사용한 건 사술이 아니라 ‘쉬버 아머(Shiver Armor)’라는 마법이었다.
온몸에 냉기 속성의 방어막을 형성한 상태에서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 특징이었다.
사비강이 한기가 풀풀 날리는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며 물었다.
“납치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
“히익!”
“도, 도망가자!”
투지를 잃은 신도들이 기겁을 하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쓰레기 같은 것들이…”
사실 사비강은 조금 전부터 그답지 않게 화가 나 있었다.
여인과 아이들을 납치하고 제물로 삼으면서, 본인들은 살겠다고 설치는 꼴을 보니 마계에서 머물 때의 일이 자꾸만 떠오른 것이다.
인간을 산 제물로 바치면서 마신을 향해 경배하던 마족들.
그들은 인간을 개돼지만도 못하게 취급했다.
그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한데 천신교도들의 모습이 그때와 너무나 닮은 것이다.
사비강이 더 없이 차가운 시선으로 달아나는 신도들을 보며 손을 불쑥 뻗었다.
“파이어 버스트!”
다음 순간,
쿠우우우…!
달려가던 자들의 앞으로 시커먼 구체가 형성되더니 다시 한 번 강한 폭발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꽈아아앙!
“크아악!”
“살, 살려…!”
이번에도 수많은 신도들이 그대로 인육 파편이 되어 여기저기 널브러졌다.
팔다리를 잃고 기어가는 자들도 있었다.
사비강은 그들에게 지풍을 날려 단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다.
주변을 완전히 정리한 사비강이 훌쩍 몸을 날려서 옆 건물 지붕 위로 올라섰다.
아수라장.
제법 너른 장원 곳곳이 난장판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천신교의 대응은 의아한 구석이 있다.
물론, 이들은 지금도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있다.
하지만…
‘머리가 없어.’
그렇다.
천신교의 수뇌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
이곳에 핵심 인물이 없음에도 이렇게 많은 신도들이 머물고 있을 까닭은 없다.
‘즉,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뜻인데….’
그때 마침 기척이 느껴지면서 흑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장소를 탐색해 보았습니다만, 납치된 사람들을 가둘 만한 장소는 없었습니다.”
곧이어 두 사람이 차례대로 사비강 옆으로 내려섰다.
추량과 단리정이었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장원에 침투하자마자 매설란과 납치된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시력이 누구보다 뛰어난 단리정과 추종술에 재능을 가진 추량이라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에.
하지만 이들도 흑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부님,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매 국주님과 납치된 자들이 어디에 갇혀 있는지 찾아내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가 ‘지금으로서는’이라고 단서를 단 이유는 바로 현재 상황이 너무 어수선하기 때문이었다.
차분하게 관찰을 하고 살필 여유가 있다면, 분명 어떤 흔적이든 찾아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자신을 노리는 살검이 어디에서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호위를 붙여 준다고 해도 시시각각 상황이 급변하니 추종술이 무의미할 지경이었다.
단리정 역시 마찬가지.
“교관님. 우선 높은 곳에서 움직임을 관찰했지만, 특별히 수상해 보이는 점은 없었습니다. 현재 대응하는 이들 외에는 따로 보이는 신도도 없었고요.”
“흐음.”
사비강이 침음을 흘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너희들은 이 장원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 어디라고 생각하나?”
이번에는 세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다.
“천신전(天神殿)입니다.”
천신전은 장원의 한가운데에서 약간 북쪽으로 치우친 곳이었는데, 딱히 눈에 띄는 건물은 아니었다.
“이유는?”
사비강의 질문에 추량이 제일 먼저 대답했다.
“건물의 배치입니다. 장원의 길목을 따라가 보면 결국 천신전으로 이어집니다. 어디에서든 접근하기 좋게 배치되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신전 근처에는 신도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천신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요.”
단리정의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흑귀가 말했다.
“천신전에 잠입했을 때, 다른 곳과 달리 열 명 정도의 고수들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이 아닌, 상당히 강한 기운도 느꼈습니다.”
“열 명의 고수 외에도 누군가 은신해 있다는 건가?”
“아뇨. 그랬다면 제가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좀 질적으로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사비강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흑귀가 이렇게까지만 말했다는 것은 그도 그 기운의 정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리라.
다만 악신을 경험한 흑귀인만큼 그의 예감이 마냥 허황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군. 그럼 일단 천신전으로 가봐야겠다. 거기에서 다시 뭔가 해답이 나올지도 모르지.”
그렇게 사비강이 걸음을 막 옮기려고 할 때였다.
구구구구구우웅!
갑자기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한 진동이 일어났다.
그 육중한 진동과 소음에 장원 곳곳에서 싸우던 무인들이 흠칫거리며 잠깐 동작을 멈출 정도였다.
‘방금 그건 뭐지? 설마… 지하!’
생각을 마친 사비강이 바닥을 차고는 쏜살처럼 날아갔다.
타앗! 탓탓탓!
곧이어 세 사람이 사비강의 뒤를 따랐다.
천신전 앞마당에 내려선 사비강은 단리정의 말대로 근방에 신도들이 별로 없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온 천지가 아수라장인 것에 비하면 비교적 이곳은 조용한 편이었다.
“이놈들! 웬 놈들…!”
쉬쉬쉬이익!
푹푹푹!
소리치던 신도 세 명이 그대로 목에 화살을 꽂은 채 절명했다.
단리정의 공격에 이어 흑귀가 나직이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천신전의 고수들은 기도가 범상치 않았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천신전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열 명의 고수가 튀어나왔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방해를 하는…!”
“플레어.”
순간 사비강의 손끝에서 초고온의 화염이 뿜어져 나갔다.
화르르르르르륵!
“쿠우웃!”
“으아악!”
호기롭게 등장했던 열 명의 고수들이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얼른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호신강기로 막아내기에는 플레어 마법의 열기가 너무 막강했다.
그들이 주춤거리는 사이,
“소닉 버스터(Sonic Buster).”
사비강이 주문을 캐스팅하자, 음속의 바람이 날아가면서 거기에 닿은 열 명의 고수들이 일제히 터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퍼퍼퍼펑…!
순식간에 그들은 형체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고 말았다.
흑귀는 물론 추량과 단리정도 입을 척 벌리고 사비강을 보았다.
그들은 이처럼 패도적인 사비강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사비강이 싸늘하게 읊조렸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니까 찾아왔잖아.”
그렇게 그가 다시 걸음을 내디딜 때였다.
“……!”
사비강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들었다.
어딘지 익숙한 기운과 낯선 기운이 충돌하면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잠시 후,
투콰앙!
천신전의 창문이 깨지면서 한 여인이 튕겨져 나오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그녀는 바로 매설란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그녀가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곧장 일어나서 바닥을 박찼다.
파박!
곧이어 창문으로 뛰쳐나온 청면의 노인에게 맞부딪쳐 갔다.
까앙!
금속성에 이어 청면인이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커억!”
가슴께를 직격당한 매설란이 비명을 터뜨리며 날아갔다.
콰당탕!
바닥에 쓰러진 매설란을 향해 청면인이 쏜살같이 날아가서는 검을 내질렀다.
“뒈져라! 이 개 같은 년!”
쉬이이이잇!
매설란은 자신의 목을 향해 떨어지는 검봉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까앙!
섬뜩한 파육음 대신 청명한 금속성이 울리면서 날아들던 검신이 저만치 튕겨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매설란은 물론 청면인조차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어느 틈에…!’
두 사람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들고 서 있었다.
그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싸늘하게 읊조렸다.
“내 여자한테 무슨 짓이냐?”
“네, 네놈은 대체… 누구…?”
“이 여자의 정인(情人)이다.”
청면인의 눈동자가 사비강과 매설란을 번갈아보았다.
사비강이 그를 빤히 보며 물었다.
“그러는 영감탱이는 누구지?”
“알 것… 없다!”
순간 청면인이 쌍장을 뻗어냈다.
콰앙!
어마어마한 기의 폭발이 일어나면서 사방으로 기풍이 불어 나갔다.
‘웬 놈인지는 몰라도 네놈 스스로 저승길에 발을 들이민 거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기의 파동이 잠잠해졌을 때, 그는 눈을 들어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서 있는 사비강을 보았다.
놀랍게도 사비강은 한 손을 들어 청면인의 장력을 와해시키고 있었다.
“이게 최선인가?”
“너, 너, 너는…!”
“윈드 피스트(Wind Fist).”
다음 순간, 청면인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동시에 사비강의 손끝에서 강맹한 바람이 큰 주먹처럼 뭉쳐 불어 나갔다.
파아앙!
츠츠츠츠츠츳!
양팔을 교차한 청면인은 대략 서너 장 정도 밀려나다가 가까스로 멈춰 섰다.
사비강의 눈빛에도 이채가 서렸다.
“흐음. 실드까지?”
청면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그가 입술을 가늘게 떨다가 말했다.
“설마 네놈은 사비강? 어째서 네놈이… 넌 도대체 정체가 뭐지?”
사비강이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대꾸했다.
“말했잖아. 이 여자의 정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