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276화 (276/670)

# 276

귀환 마교관

276화

혈사련 교관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런 괴짜한테 우리 조 생도들이 가르침을 받게 할 수는 없지!”

“나 역시 마찬가지! 저 교관에게 물든 신생조를 보면 결코 그에게 맡겨선 안 돼!”

“신생조나 되니까 내맡긴 거지, 다른 생도들을 어찌 저런 교관에게 내어 줄 수 있겠어?”

상황이 뜻밖으로 흘렀다.

사비강을 혈사련에 붙들어 놓으려면 ‘교관’이라는 명목이 필요한데, 정작 그에게 교육생을 맡기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사태를 가만히 지켜만 보던 사비강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만 있다 보니 좀 불편하군. 확실히 군사는 불편하게 해석하는구려.”

“무슨 말입니까?”

류여중이 눈살을 슬쩍 찌푸리자, 사비강이 손가락으로 혈우당을 가리켰다.

“군사가 지적한 사실 대부분을 인정하겠소. 하지만 그전에 갑사협곡에서 벌어진 일은 전적으로 혈우당 묵귀대의 음모로 시작되었소. 물론 묵귀대원들의 사상자가 많았다고는 하지만, 원인 제공을 한 건 분명 묵귀대가 아니겠소?”

이 역시 논리적으로 틀린 부분은 없었다.

때문에 이야기를 듣던 혈우당주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사비강이 여유가 넘치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징계를 한다면 묵귀대와 묵귀대를 관리하는 혈우당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거요. 단지 피해가 크다고 해서 면책되어서는 안 되겠지. 만약 그렇다면 혈사련은 강한 자가 무조건 손해 보는 곳이라는 말이 될 테니까. 그건 아니지 않소?”

구구절절 옳은 소리였기에 혈사련 무인들은 한동안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비강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묵귀대와 혈우당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하니, 그 또한 가벼운 사안이 아니었다.

적어도 신생조만큼이나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데, 그랬다간 묵귀대 전원이 파문을 당할 상황이 아닌가?

류여중으로서도 뭐라고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가운데, 마침 수뇌 인사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그렇다 해도 같은 조직의 동료를 살상한 행위는 면책받기 어려울 겁니다. 하나, 전후 사정이 있었던 만큼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는 바로 월섬당주 소천악이었다.

그가 이렇게 나선 이유로는 흑귀로 돌아온 자신의 아들이 사비강에게 얽매여 있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실제로 본 회의가 있기 전에 사비강으로부터 부탁을 받은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독고진이 이맛살을 슬쩍 찌푸리고는 물었다.

“다른 대안이라는 건 뭐요?”

소천악이 미리 사비강으로부터 들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독고 당주께서는 최근 응천 분타 소식을 들은 적이 있소?”

“응천 분타라면….”

잠시 미간을 좁히고 생각에 빠졌던 독고진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보았소. 의랑촌에서 일어난 신흥 종교와 마찰이 잦다는 이야기를.”

“그렇소. ‘천신교’라 불리는 그 신흥 종교 때문에 현재 혈사련의 응천 분타가 고전하는 모양이외다. 그렇다고 무력을 행사해서 천신교를 소탕하려니, 구역상 정도맹 관할지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오.”

이쯤 되자 류여중도 소천악이 하려는 말을 대략 눈치 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월섬당주께선 사비강 교관과 신생조에게 그 일을 해결하게 할 생각이군요.”

“그렇습니다. 사비강 교관은 정도맹과 연이 닿아 있으니 응천 분타의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다고 봅니다.”

그러자 백호당주 추희룡이 소천악을 거들고 나섰다.

“아주 좋은 방법인 것 같소. 사비강 교관과 신생조가 천신교와의 마찰을 해결하고 공을 세운다면, 갑사협곡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면책 사유를 줄 수 있지 않겠소?”

권력의 중심이라 볼 수 있는 백호당주마저 나서서 이렇게 이야기하니, 혈사련에서 그 뜻에 반발하는 자가 없었다.

다만 독고진은 내심 불만스러웠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자칫하다가는 엄한 묵귀대마저 날아갈 판이니 이쯤에서 타협을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이에 류여중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과연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잖아도 천신교 소재지가 정도맹의 영역이어서 문제였는데, 사비강 교관이 나서 준다면 그 부분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겠군요. 사비강 교관, 어떻습니까?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사비강은 짐짓 억울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척했다.

하지만 사실 이는 모두 사비강의 계략이었다.

어차피 천신교의 일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려던 차였다.

그런 와중에 명분을 챙기고, 지나간 과오를 덮을 수 있으니 일석삼조인 셈이다.

한참 만에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신생조를 이끌고 가서 천신교를 어떻게든 정리해보겠소. 이 또한 수업이 될 테지.”

“좋습니다. 하면, 묵귀대는 앞으로 한 달간의 근신처분을 내리도록 하고, 사비강 교관과 신생조는 천신교 토벌을 위해 파견토록 하겠습니다. 이의 있습니까?”

혈사련 무인들이 모두 침묵했다.

류여중이 련주를 힐끔 돌아보자, 허무극 역시 승낙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류여중이 목을 가다듬고는 소리쳤다.

“그럼 이번 갑사협곡 사건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결정을 내립니다.”

**

귀영단의 삼십사영(三十四影), 임충(任忠)은 어제 저녁 과음을 한 탓에 숙취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저잣거리를 걸었다.

“아이고, 머리야. 어디서 해장을 하긴 해야겠는데….”

그가 멈춰 서서 주위를 휘 둘러보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사람이 많은 객잔으로 발길을 돌렸다.

인파가 많은 곳을 찾아가는 것은 귀영단의 일원으로서 오래된 습관 같은 것이었다.

사람이 모인 곳에 말이 있고, 말이 있는 곳에는 정보가 있는 법이기에.

그렇게 터벅터벅 걸어가던 그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저쪽 홍등가를 바라보았다.

‘가서 확인해? 말아?’

벌써 며칠 째 매일 같이 확인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신호가 없었다.

‘에이, 설마 오늘이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임무도 중요하지만 당장 깨질 것 같은 두통부터 어찌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끈하고 매콤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섭취하는 게 좋다는 것을 그는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어서 옵쇼!”

점소이가 환대를 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무심히 탁자에 앉은 임충은 생각해둔 음식을 주문하고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대부분 시답잖은 내용들이었다.

그렇게 쓸모없는 정보들을 흘려내고 있을 때, 문득 그의 귀를 간질이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나참, 요즘은 퇴기들도 기둥서방이 있나 보지?”

“그게 무슨 말인가?”

“소화루 말일세. 거기 창가에 누가 손수건을 묶어 두었더군.”

“손수건? 한때 기루에서 기녀들이 기둥서방이나 기다릴 때 유행하던 짓 아니었나?”

“내 말이 그 말이야. 퇴기 주제에 기둥서방도 있는 모양이야. 허참.”

콰당!

갑자기 의자가 나동그라지는 소리에 사람들이 움찔거리고는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임충이 느닷없이 벌떡 일어서서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객잔을 뛰쳐나가자, 음식을 내오던 점소이가 소리쳐 불렀다.

하지만 임충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몇몇 사람들이 ‘저 녀석이 혹시 그 기둥서방 아냐?’ 하면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침내 홍등가 가장 안쪽에 있는 소화루가 보이는 위치까지 뛰어간 그가 무릎을 쥐고 숨을 헐떡였다.

숙취 때문에 속이 뒤집어지는 듯했다.

“우웨엑!”

한바탕 토악질을 해댄 그가 겨우 고개를 들고 소화루 창문을 바라보았다.

“진짜잖아?”

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있었다.

소화루 창가에 질끈 묶여 있는 찢어진 천 조각이.

**

천상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외지에 자리 잡은 민가.

싸리 울타리로 두른 허름한 민가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집이었기에 사람이 사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 민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사비강과 추량이 멈춰 섰다.

추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설마 저기라는 건가요?”

“여기에 민가는 저곳밖에 없으니 그렇겠지.”

“맙소사. 저런 곳에서 밀담을 나누자니. 아니, 그래서 어쩌면 하오문다운 건가?”

추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젯밤, 홍염은 또 다른 소식을 알려 왔다.

바로 하오문이 밀담을 요구했다는 것.

그 말인즉슨 소화루 창가에 천 조각이 내걸렸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오늘 사비강과 추량은 홍염이 말한 장소로 하오문과 접선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언덕을 내려간 사비강은 추량과 함께 싸리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데 그 순간 묘한 일이 일어났다.

분명 싸리 울타리 밖에서 봤을 때만 해도 이곳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민가였다.

한데 느닷없이 잔디가 나타나더니 양쪽으로 돌담이 쫙 늘어서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대체 무슨…?”

추량이 돌아나가서 다시 보려고 하는데, 이미 뒤쪽은 끝없이 늘어선 돌담길이었다.

그제야 추량은 자신이 진법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비강이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꽤 진법에 능한 자가 있는 모양이군.”

어차피 진법인 이상 돌담을 뛰어올라봐야 달라질 건 없을 터였다.

추량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사비강의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한데 사비강은 곧 걸음을 멈추고는 추량을 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앞장서라.”

“예? 제가요?”

“그럼, 여기 너 말고 다른 놈이 또 있냐?”

“흑귀는요?”

“흑귀는 밖에서 대기 중이다.”

사비강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 흑귀에게 전음을 날려 밖에서 대기하도록 명한 것이었다.

한편, 그 말을 들은 추량은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듯했다.

‘흑귀를 밖에 세워 두고 날 데리고 들어오셨다는 건 날 더 인정한다는 뜻이구나! 후후후!’

기분이 좋아진 추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성큼 나섰다.

“알겠습니다! 제가 사부님을 안내하겠습니다!”

“조심해라.”

“설마하니 손님으로 온 우리에게 녀석들이 암기라도 쏘겠…!”

쉭쉭쉭쉭!

추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방에서 암기 수십 자루가 갑자기 쏟아졌다.

“헉!”

헛바람을 집어삼킨 추량이 재빨리 마나를 운용하면서 왼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후아아아앙!

순간 마나 방패가 형성되면서 날아들던 암기를 모조리 쳐냈다.

타타타타타탕!

수십 자루의 암기가 튕겨 나가면서 주변으로 박혔다.

추량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반응이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것들이…! 그런데 지금 내가 저 암기들을 순식간에 막아낸 건가?’

그 뿐만이 아니다.

지금쯤이면 마나 방패가 소멸되면서 땀을 한 바가지는 흘렸을 거다.

마나의 양이 부족하다기보다는 마나의 운용이 서툴기 때문이었다.

한데…

웅웅웅…!

마나 방패는 여전히 묵직한 공명음을 내면서 상반신을 온전히 덮을 만큼의 크기로 유지되고 있었다.

“과연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 좀 늘었구나.”

“아… 혹시 이게 그 플라탄의 알 때문입니까?”

“글쎄. 플라탄의 알에게 마나를 쏟아 부을 때,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냐?”

“아뇨. 그런 건 없었고, 그냥 힘만 들었습니다.”

“그럼 플라탄의 알로 효과를 본 건 아니다. 단지 네가 매일 같이 마나를 운용했기 때문에 좀 더 익숙해진 거겠지.”

“그럼 플라탄의 알이 반응을 보인다면….”

“넌 더 발전하겠지.”

“그렇군요!”

“그러니 잡담은 그만하고 계속 가자. 지금처럼 뭔가 나타날 만하면 즉각적으로 나서서 대응하도록.”

“알겠습니다.”

“기관과 진법이 섞여 있다. 조심해야 할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추량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알 수 있었다.

사비강이 자신을 앞세운 것은 수련의 일환이라는 것을.

‘그러고 보니 기관과 진법이 섞여 있으니 마계의 결계라는 것과 상당히 흡사한 구석이 있구나.’

그렇게 걸음을 옮기는데, 문득 하늘이 웅웅 울리듯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그런 식으로는 평생을 이 진법 안에서 헤매다가 죽으리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