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
귀환 마교관
269화
후우우웅!
뜨끈한 기풍이 사방으로 불어 갔다.
유송령은 입술을 꾹 씹으며 천천히 걸음을 옆으로 옮겼다.
‘아까랑 완전히 달라졌어!’
이게 같은 사람의 모습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느낌이다.
단지 기도 뿐만이 아니라 성격도 변한 것 같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차분한 느낌을 받았다.
한데 지금은 칼날처럼 예리한 뭔가가 느껴진다.
스읏.
유송령이 발을 땅에 비비며 자세를 완전히 갖춘 순간,
타앗!
그녀보다 한 박자 빠르게 만생검살의 신형이 날아올랐다.
쉬이이이잇!
빛살처럼 날아드는 만생검살을 보면서 유송령이 재빨리 기합성을 터뜨리며 마주쳐 갔다.
“하앗!”
째앵!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만생검살은 그대로 몸을 회전하며 연격을 시도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무거운 거신도를 든 유송령은 몸을 비틀면서 관성을 이용해 두 번째 공격도 막아냈다.
까앙!
또 한 번 터지는 불꽃.
만생검살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유송령을 휘몰아쳐 갔다.
까라라라랑! 깡깡!
만생검살이 돌풍처럼 검을 부렸지만, 유송령 역시 만만치 않았다.
두 사람의 싸움 방식은 판이하게 달랐다.
만생검살은 날카롭고 예리하며 어딘지 딱딱하다.
반면 유송령은 부드러우면서도 유연하다.
무기만 놓고 보자면 그 반대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 두 사람의 싸움을 보면 유송령이 훨씬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유송령 스스로도 그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확실히 달라졌어! 모든 움직임이 하나의 동작으로 느껴져! 단지 손잡이에 글귀를 음각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
이래서야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언제였던가?
거신도를 휘두르는 게 즐겁다는 생각을 했던 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거신도를 휘두르면서 늘 화가 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자세도 거칠어지고 움직임도 점점 투박해졌다.
한데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이전에는 거칠게 굽이쳐 흐르는 개울물 같았다면, 지금은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다.
상대가 까칠하게 치고 나오더라도 어느 쪽에서든 유유히 흐르는 물길이 그 공격을 흡수해 버리는 듯하다.
그러다가도 상대의 빈틈을 보게 되면,
“하앗!”
터져 나오는 기합성과 함께 거대한 파도가 거침없이 휘몰아쳐 간다.
쩌어엉!
커다란 소음과 함께 만생검살이 대략 이 장여를 주르륵 미끄러졌다.
중심을 잡은 만생검살이 이맛살을 슬쩍 찌푸렸다.
“생각보다는 제법이구나.”
“그러게.”
유송령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라워서 내뱉은 말이었지만, 만생검살은 자신을 놀리느라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가소로운. 이제 시험도 끝났으니 죽여 주마.”
“시험…?”
“널 죽여도 될 만한지 말이다. 축하한다. 죽여도 될 만큼의 실력을 가졌구나.”
“이거 참… 기쁘군.”
유송령이 어색한 미소를 드러내는 그 순간,
타앗!
만생검살이 바닥을 차며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쉬이이이잇!
“헛!”
까아아앙!
금속성이 터지면서 유송령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하마터면 그대로 이마에 구멍이 생겨 죽을 뻔했다.
사비강으로부터 정신 차리고 집중하라는 전음이 들려왔다.
‘칫!’
혀를 차고 반격을 시도하려는 순간,
“느리다.”
어느새 옆에서 나타난 만생검살이 검을 그대로 내질러 왔다.
그때였다.
촤라라라라락!
쇠사슬 소리가 고막을 찌르는가 싶더니,
카라라랑!
검은 낫이 날아들면서 만생검을 친친 휘어 감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런 방해에 만생검살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돌아보니, 석탄강이 쇠사슬을 잡아당기며 차갑게 일렀다.
“날 잊으신 것 같소.”
“이런 건방진 것들이…!”
만생검살이 어금니를 뿌득 갈더니 검을 확 끌어당겼다.
촤라라랑!
사슬낫이 풀리면서 그가 성큼 물러났다.
그 순간, 유송령이 다시 한 번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거신도를 휘둘러 갔다.
마치 파도가 휘몰아치듯 강맹한 공격이었다.
만생검살이 보법을 밟으며 물러나자, 거신도가 그대로 허공을 베었다.
뒤이어,
촤라라라랏!
사슬낫이 마치 파도를 타고 이동하듯 그대로 만생검살의 목을 노리며 날아드는 게 아닌가?
“치잇!”
만생검살이 혀를 차고는 몸을 휘리릭 돌렸다.
스팍!
그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친 사슬낫이 그대로 지나치더니 뒤쪽의 건물 벽을 부수며 처박혔다.
콰직!
“령!”
석탄강이 쇠사슬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부르자, 유송령이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쇠사슬을 밟으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닷!
동시에 석탄강도 쇠사슬을 잡아당기면서 반작용을 이용해서 몸을 앞으로 튕기듯 날렸다.
순식간에 두 사람이 쇄도해 오자, 만생검살은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크읏! 이 녀석들이…!’
만생검살이 그대로 유송령을 향해 달려가다가 허리를 휘청 젖혔다.
쒸아아아앙!
거신도가 그의 가슴 위를 스치며 지나쳤다.
곧이어,
촤라라라락!
사슬낫이 대각선으로 휘둘러 왔다.
파바밧!
만생검살은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면서 튕겨 올랐다.
콰차앙!
하지만 석탄강의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두 개의 사슬낫을 들고 있었다.
촤라라라랏!
허공으로 뛰어오른 만생검살을 향해 이번에는 오른손에 들린 사슬낫이 날아갔다.
“귀찮게 하는군!”
만생검살이 그대로 검기를 일으키면서 사슬낫을 쳐냈다.
쩌엉!
투쾅!
사슬낫이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땅에 꽂혔다.
그 순간 유송령이 달려와 석탄강의 어깨를 붙들었다.
석탄강은 곧장 유송령의 허리를 안고는 사슬을 잡아당겼다.
파앙!
두 사람이 동시에 반작용을 이용해 앞으로 튕기듯 날아갔다.
거기에 경신법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날아가는 화살 같았다.
촤라라랏!
쑤아아앙!
거신도와 사슬낫이 동시에 만생검살을 노리며 쇄도했다.
‘이것들 도대체 뭐야?’
만생검살은 진심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 합격술은 거의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걸 호흡이 잘 맞는다고 해도 되는 건가?
굉장히 묘하다.
합격술과 차륜술이 마구 뒤섞여서 공격해 오는데 어찌 보면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난잡하다.
‘도대체 이런 공격들이 어떻게 가능한 거지?’
지금껏 청부업을 하면서 많은 자들을 상대해 봤다.
그 중에서 합격술을 가장 잘 구사하는 조직은 바로 황실의 금의위(錦衣衛)였다.
그들은 자로 잰 듯이 정확한 움직임을 보였다.
빈틈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그때 만생검살은 처음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금의위의 위사들은 하나하나가 극강의 수준이라고 할 순 없지만, 뭉치면 그 힘이 몇 배가 되는 조직이었다.
그들은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만큼 정교하고 단단한 조직력을 자랑했다.
한데 지금은?
그래, 빈틈투성이다.
유송령에게도 석탄강에게도 온통 빈틈투성이다.
하나의 유기체가 아니라 제각각 따로 노는 것만 같다.
그런데…
“하앗!”
쩌엉!
만생검과 거신도가 부딪치면서 만생검살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했다.
곧이어,
촤라라락!
사슬낫이 어김없이 날아든다.
따당!
낫이 튕겨 나가자, 이번에는 거신도가 또 다시 베어 들어온다.
탓, 파바박!
그대로 거신도를 밟으며 유송령의 안면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
하지만,
촤르르르륵!
어느 샌가 날아든 검은 뱀이 똬리를 틀며 다리를 휘어 감는다.
이번 공격도 허를 찌른 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칫 조금만 엇나갔더라면 사슬낫은 자신의 발목이 아니라, 유송령의 모가지를 날려 버릴 뻔했으므로.
이런 위험한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동료가 죽어도 상관이 없거나, 동료에 대한 이해가 상상을 초월하거나.
“치잇!”
만생검살이 어쩔 수 없이 몸을 역방향으로 회전하며 얼른 사슬을 풀어내고는 물러났다.
‘짜증나는군.’
빈틈투성이가 분명한데, 그걸 지금처럼 매우 묘하고 지저분한 방식으로 메워 버린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짜증이 난다.
별것도 아닌 것들인데, 싸우다 보면 어느새 별 게 되어 있는 느낌.
금의위 위사들처럼 잘 짜인 전술은 아닌데, 그때그때 대응하는 방식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무모할 때가 많다.
게다가 저 녀석들…
‘웃어?’
마치 목숨 걸고 싸우는 이 상황이 즐겁다는 표정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싸우면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거지?
남매인가?
순간 그런 엉뚱한 상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리라.
누가 봐도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전혀 없었으므로.
한편 신명나게 싸우는 유송령과 석탄강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다!’
‘이렇게 잘 맞을 줄은 몰랐군.’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싸운 적은 많지만, 이처럼 하나가 된 느낌은 처음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사비강이 그때그때 전음으로 조언을 내린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움직임은 그들 스스로 몸이 가는대로 행한 것이었다.
그만큼 두 사람은 서로 호흡이 잘 맞았다.
“아무래도 내가 무례했군.”
만생검살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그가 두 사람을 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쿠우우우.
그의 전신에서 기풍이 퍼져 나왔다.
석탄강과 유송령이 표정을 굳혔다.
‘아까와 달라!’
기도가 훨씬 강해졌다.
아마 처음에는 기도를 어느 정도 숨겨 둔 것이리라.
그가 기도를 개방하고 나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눈앞에 서 있는 것만 같다.
만생검살이 무감한 표정으로 읊조리듯 말했다.
“이제는 예를 다해서 상대하도록 하지.”
한 마디로 더는 얕잡아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미 별 게 아닌 녀석들이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석탄강과 유송령이 서로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공을 양보할 필요는 없다.
이 여세를 몰아서 합격술로 들어간다!
타앗!
두 사람이 동시에 달려 나갔다.
찰나,
타아앙!
만생검살이 검을 수직으로 베며 바닥을 찍었다.
다음 순간,
쿠콰콰콰콰콰!
바닥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쩌억 갈라지면서 두 사람을 향해 직선으로 뻗어 왔다.
[피해라!]
순간 사비강의 전음이 들렸다.
석탄강과 사비강이 얼른 몸을 날리면서 각자의 무기를 앞세워 막았다.
콰쾅!
다행히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 아니었기에 두 사람은 기풍만 감당하면 되었다.
하지만 만생검살은 어느새 유송령을 향해 귀신처럼 몸을 날리고 있었다.
석탄강이 사슬낫을 던졌지만, 만생검살의 빠른 움직임을 쫓지 못하고 바닥을 찍었다.
“끝이다.”
상대적으로 약했던 유송령을 먼저 노린 것.
그가 망설임 없이 살초를 펼치는 순간,
“……!”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 만생검살이 반사적으로 돌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스까앙!
불꽃이 튀면서 만생검이 베르타스와 부딪쳤다.
촤촤아앗!
막강한 힘에 튕기듯 물러난 만생검살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으르렁거렸다.
“정말이지 더러운 놈들이군. 비겁하게 뒤통수를 치다니.”
그러자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살수에게 그런 소리 듣는 건 좀 아니지 싶은데.”
“언젠간 네놈이 나설 줄 알았다.”
“어째서?”
“아까부터 이 녀석들에게 전음을 흘리는 걸 봤지. 네놈이 우두머리냐?”
“우두머리라. 뭐,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
“그럼 더 이상은 나설 자가 없단 말이군.”
“그렇다.”
“죽이기 전에 이름은 들어주마.”
“내 이름은… 사비강이다.”
“……!”
만생검살이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