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
귀환 마교관
268화
“동생 분이… 죽게 생겼다고요?”
이야기를 듣던 추량이 눈을 끔뻑였다.
조신량의 표정에는 그 당시 느꼈던 괴로움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랬네. 내 아우가 곧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을 테니까. 이제 곧 녀석에게 명검을 선물할 생각이었으니까. 녀석이 그걸 받아들고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으니까. 하지만… 믿고 말고는 상관없었지. 우야는 그때 죽었다.”
“…….”
추량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어렵사리 말을 잇는 조신량의 목소리가 울음으로 잔뜩 젖어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조신량이 말을 이었다.
“그곳까지 어떻게 달려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네. 그 당시에 나는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저 그 빌어먹을 소식이 누군가의 질 나쁜 장난이길 바라고 바랐으니까. 그런데 마을에 도착해서 동생을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 평생을 서로 의지하며 보살펴 온 동생이었네. 그런데 내 눈앞에서 녀석이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어 가고 있더군. 그리고 녀석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사내를 보았지. 그의 손에는 내 아우의 피를 잔뜩 묻힌 검을 들고 있었네. 그건 바로….”
꿀꺽.
추량이 침을 삼켰다.
어쩐지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는 듯하여.
그리고 그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만생검이었네.”
“이런 개새끼가…!”
추량이 분을 터뜨리면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랴.
조신량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만생검 역시 내가 열과 성을 다해서 만든 검이었네. 아니, 그때까지 내가 만든 검 중에서 최고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지. 한데 내가 만든 그 명검이… 녀석의 심장을 찢어 놓았다는 사실이… 너무… 너무…!”
조신량은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욱신거리는 듯했다.
동생의 심장이 찢어졌던 그날, 조신량의 심장에도 커다란 상처가 생긴 모양이었다.
“…….”
추량은 뭐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괜히 물어봤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한참이 지나서야 조신량이 마음을 정리하고는 말을 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만생검에는 글귀가 하나 더 새겨져 있더군.”
“글귀라면….”
“‘살(殺)’ 자였네. 만생검이 ‘만생검살’이 된 게지.”
“만생검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지. 만 명의 목숨을 빼앗겠다는 거겠지.”
“이 빌어 처먹을 놈을 봤나!”
추량이 다시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내질렀다.
조신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알고 보니 그자는 내 동생이 생사비무를 하면서 죽인 자의 친구라더군.”
“그럼, 친구의 복수를 한 겁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생사비무를 통해서 원한이 쌓이지 않을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게 세상 이치일세. 자로 잰 듯이 의와 협을 지킬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지저분한 곳이지. 이 무림… 아니, 사람이 사는 이곳이 말일세.”
“그 후로 대장간 일을 그만 두신 거군요.”
조신량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사람을 살리는 검 따위는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망치와 모루를 손에서 놓았다.
더 이상 풀무질을 할 일도 없었다.
폐인처럼 지내다가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조각을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깎은 것이 바로 애환상이었다.
애환상은 바로 동생 조신우의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손이 가는대로 두드리고 깎아댔더니 묘한 작품이 나왔다.
그 조각상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애환이 느껴졌다.
추량이 물었다.
“그 후로 만생검살은 어찌 됐습니까?”
“그 이름답게 살인청부업을 한다고 들었네. 뭐, 아직까지도 하는지는 모르겠군.”
“하고 있소.”
불쑥 들려온 목소리.
두 사람이 흠칫거리고 돌아보니 어느새 사비강이 방으로 들어와 있었다.
조신량이 물었다.
“그걸 어찌 아는가?”
“수하에게 들었소. 정보는 신뢰해도 좋소.”
“역시… 그랬군.”
“하지만 이제 곧 그 짓도 하지 못할 거요. 내일이면 우리가 그자를 찾아갈 테니.”
“그자는 강하네.”
“걱정 마시오. 내가 더 강하니까.”
사비강이 입매를 슬쩍 치켜 올렸다.
**
그 시각, 만생검살은 의뢰인을 만나고 있었다.
의뢰인은 흑립을 푹 눌러 쓴 노인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얼굴을 온통 청색으로 칠한 상태였다.
때문에 그의 진짜 얼굴이 어떤지는 만생검살도 알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따금씩 자신을 찾아와 의뢰를 하곤 했던 자였기에 낯설지는 않았다.
만생검살이 청면 노인의 잔에 술을 채워 주며 말했다.
“오랜만에 찾아오셨구려.”
“좀 바빴지.”
“일이 잘 풀리는가 보오.”
청면 노인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 잘 풀릴 것 같으면 자네를 찾아왔겠는가?”
“뭐, 하긴.”
청면 노인이 술잔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말했다.
“사람을 하나 봐주셔야겠네.”
“누구요?”
“사비강이라는 자일세.”
“사비강이라.”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
잠시 이맛살을 구기던 만생검살이 곧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혈사련에 볼모로 잡혀 있다는 그자가 아니오?”
“역시 잘 아는군.”
“워낙 특이한 경우니까. 한데 그자는 왜?”
“왜긴 왜겠나? 자꾸 걸리적거리니까 그러지. 얼마 전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었고.”
“그랬군.”
“대가는 언제나처럼 성공하면 지불하지.”
“그자의 목은 좀 비싸오.”
“그자에 대해 잘 아는가?”
“아니. 그 반대요. 잘 모르니까 비싼 거요. 소문도 제각각이고 행적도 예측 범위를 넘어서지. 이런 경우는 대게 쉽지 않은 상대요.”
“그런가? 하면 그만한 대가를 주겠네.”
“오백만 냥.”
만약 누군가 들었다면 귀를 의심했으리라.
분명 청부금치고는 엄청나게 많은 금액이었으므로.
하지만 청면 노인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담담히 고개를 끄덕일 뿐.
“성공만 하시게.”
“좋소. 그런데 하나 물어봐도 되겠소?”
“뭔가?”
“그만한 돈을 지불할 각오를 하면서도 어째서 내게 의뢰를 하는 거요? 다른 조직도 많을 텐데.”
“자네 말대로 사비강 그자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일세. 그자의 정보력이 어디까지 뻗쳐 있는지, 어느 조직까지 포섭하고 있는지. 자칫 우리의 뒤를 밟힐 수도 있기 때문이지. 반면 자네는 믿을 만하지. 오래도록 거래해왔고 말일세.”
만생검살이 납득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청면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만생검살의 검을 힐끔 보고는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채웠나? 자네 목표인 만 명의 목숨 중에서.”
순간 만생검살의 표정에 자조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글쎄. 얼마나 채웠을 것 같소?”
“훗, 내 알 바 아니지.”
청면의 노인이 고개를 젓고는 걸음을 돌렸다.
그가 나간 후에도 만생검살은 검을 품에 안고 팔짱을 낀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나직이 읊조렸다.
“아직 절반도 못 채웠소.”
그가 술잔을 거칠게 들이켰다.
**
비가 그쳤다.
하지만 개울물이 많이 불어났고, 길이 질퍽해서 이동 간에 어려움이 많이 따랐다.
그렇다고 민가에 머물면서 며칠씩이나 보낼 여유는 없었다.
이미 혈사련을 떠나온 지가 오래였기에 큰 마을에 도착하면 혈사련으로 전서구라도 보내야 할 참이었다.
사비강 일행은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해 질 녘이 다 되어서야 목적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비강이 언덕 아래의 외딴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요.”
“저곳이… 만생검살이 사는 장소….”
“저곳에 은거한 채로 청부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소.”
“정말 그자를 죽일 수 있겠나?”
“빈말은 하지 않소. 다만.”
“다만?”
“내가 나서기 전에 여기 두 녀석이 먼저 나설 거요.”
“뭐라고?”
“예에?”
조신량은 물론, 석탄강과 유송령도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조신량이 버럭 소리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자는 강하네.”
“알고 있소.”
“한데 어째서 자네가 직접 나서지 않고….”
“영감께서 만들어 준 무기를 모처럼 실전에 사용해 볼 기회가 아니겠소? 걱정 마시오. 이 녀석들이 당할 것 같으면 내가 적절히 나서 줄 테니.”
말을 마친 사비강이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 석탄강과 유송령을 보았다.
“두 사람은 실전 준비를 해라.”
“갑,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그럼 뭐, 일 년 전부터 예고해 줬어야 하는 거냐?”
“그건 아니지만….”
“모든 실전은 예고 없이 벌어지는 법이다. 모처럼 새 무기도 생겼으니 설쳐 봐야 하지 않겠어?”
두 사람이 각자의 무기를 들어 보았다.
곧 석탄강과 유송령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단, 두 사람이 동시에 덤벼라. 합격술을 쓰든, 차륜전을 쓰든 알아서 하도록 하고.”
“동시에요?”
석탄강과 유송령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비강은 두 번 말하지 않았다.
곧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가지.”
사비강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스르릉.
삼분지 이쯤 뽑아낸 검.
은빛 검신에 선명하게 각인된 글귀.
만생검살.
‘만생검’까지는 매우 단정하고 유려한 글씨체였지만, 그 뒤에 붙은 ‘살’이라는 글자는 어딘지 그 뜻만큼이나 괴팍스럽고 난잡해 보였다.
어쩔 수 없다.
그 글자는 본인이 직접 새겼으니.
그 글자를 볼 때마다 잠시나마 잊고 있던 다짐이 되새겨진다.
반드시 만 명의 목숨을 빼앗고 말겠다는.
철컥!
검을 갈무리한 만생검살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다가 멈칫했다.
‘기척?’
한 명이 아니다.
모두 다섯 명인가?
아니, 여섯이다.
그중 한 명은 내공이 느껴지지만 굉장히 미약하다.
여섯 명은 분명 자신의 집으로 향해오고 있었다.
만생검살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침 사비강 일행이 인근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누구냐?”
어차피 이런 곳에서 자신의 집으로 망설임 없이 향했다는 것은 좋지 않은 볼일이 있다는 뜻일 터.
이런 경우가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 만생검살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석탄강과 유송령이 성큼 나서면서 대답했다.
“혈사련의 석탄강.”
“나는 혈사련의 유송령이다. 그쪽과 비무를 하려고 왔다.”
‘이건 또 뭔가? 느닷없이 비무를 하려고 왔다니?’
강호기행 중인가?
그나저나 이 정도 되면 혈사련도 명성만 믿고 너무 설치는 게 아닌가?
만생검살이 피식 웃고는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았다.
“꺼져라. 너희들은 내 상대가 아니다.”
“읏! 그 건방진 태도는 뭐냐? 아니면 우리에게 패할까 봐 겁나서 그러는 거냐?”
유송령이 발끈해서 소리쳤지만, 만생검살은 무시했다.
척 보니 나이도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아직 강호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이리라.
저런 철부지들을 상대할 시간은 없다.
이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빨리 천상궁으로 가서 사비강이라는 녀석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만생검살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길을 옮기자, 유송령이 대뜸 기합성을 터뜨리며 바닥을 차고 날아올랐다.
“까불지 마!”
쒸이이익!
거신도가 바람을 가르며 만생검살의 뒤통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순간,
째애앵!
한 줄기 섬광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거신도가 만생검살의 검에 튕겼다.
하지만 유송령은 몸을 휘청거리면서도 그대로 거신도를 관성에 따라 휘둘러 갔다.
쉬이이이잇!
연격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이번만큼은 만생검살도 눈을 부릅뜨고는 허리를 휘청 꺾었다.
차아악!
앞섶이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거신도가 지나쳤다.
유송령의 입가에 미소가 실렸다.
‘확실히 다르다! 균형이 맞는 것을 떠나 칼 자체가 내 몸에 더 맞게 변한 것 같다!’
모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반면, 만생검살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풀어진 앞섶을 다시 묶으며 차갑게 일렀다.
“아무래도 죽고 싶어 환장한 녀석들이구나. 그렇다면 원을 이뤄 주지. 어차피 채워야 할 목숨이니.”
그의 기도가 매섭게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