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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58화 (258/670)

# 258

귀환 마교관

258화

“추적할 수 있습니다.”

추량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평소 속없이 농담을 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거기에 유송령도 추량의 뜻과 같았다.

“최근 강호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예요. 이곳처럼 관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치안이 약한 곳은 심심찮게 혈겁이 일어나고 있어요. 뭔가가 벌어지는 게 분명해요.”

추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덧붙였다.

“정도맹에서도 신경 쓰고 있는 사안입니다. 쫓아가면 뭐라도 건질 수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매 국주님도 특별히 부탁하시지 않았습니까?”

“갈 길이 멀다. 그리고 매 국주는 그 일들이 혈사련과 관계된 건지만 파악해 주길 바랄 뿐이야.”

“그렇다면 더욱 쫓아가 봐야죠! 본련이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유송령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사비강이 그녀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럼, 네 거신도를 되찾는 시간도 늦어질 거다.”

“상관없어요.”

유송령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자,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네가 늘 경멸하던 정도 무인처럼 말하는군.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구해 주고 싶나? 아니면 저 아이 때문에?”

유송령의 눈길이 금자연에게 힐끔 향했다가 돌아왔다.

그녀가 입술을 쿡 씹고는 말했다.

“저 꼬맹이나 마을 사람들 때문이 아니에요. 단지 본련이 의심받는 게 싫을 뿐이죠.”

“뭐 그럴싸한 핑계다.”

“교관님 정말 자꾸…!”

“탄강, 너는 어때?”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석탄강이 무심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번에는 적무린을 돌아보았다.

“무린은?”

“누구라도 본련의 명예에 먹칠을 한다면 용서할 수 없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후후. 혈사련에 명예가 있긴 했고?”

적무린이 미간에 힘을 주었지만, 더 이상 따지지는 않았다.

사비강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추량에게는 따로 묻지 않았다.

이미 그는 금자연에게 엄마라도 찾아 주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있을 테니.

‘유행처럼 일어나는 일이라….’

확실히 신경이 쓰였다.

어쩐지 이번 일이 혈사련과 관계된 것 같지는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

적어도 이런 대규모 일을 꾸민다면 혈사련 내에서도 모종의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

뭐라고 딱 짚어 말할 수는 없어도 어떤 분위기나 기류를 느꼈을 것이다.

한데 혈사련은 평상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만약 이게 혈사련과 연계되어 있지 않다면….

‘정도맹이나 혈사련만큼의 대규모 조직일 가능성이 크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다.

설백을 구했던 그 복면인들.

만약 지난번 하오문과의 일도 그들의 짓이라면 충분히 이런 일을 꾸미고도 남을 세력이리라.

‘조사해 볼 필요는 있겠군.’

마음을 굳힌 사비강이 추량을 보았다.

“뭐, 이것도 실습이 되겠지. 량, 쫓아라.”

“알겠습니다!”

추량이 다부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

인왕채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었는데, 절벽 아래의 동혈이 바로 인왕채에서 납치한 사람들을 가둬 두는 곳이었다.

한편, 인왕채주 육한수는 자신의 방에서 탁자 위에 놓인 전표를 한 장씩 세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아시겠지만 한 번 더 말해 주겠소. 아이는 정확히 여자들의 두 배 가격이오.”

노예상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한두 번 장사해 보는 거요? 그 정도야 척하면 딱이지.”

육한수가 피식 웃었다.

“좋소, 그럼 액수에 맞춰서 골라가시오. 이번에는 상품이 많아서 고를 맛이 있을 거요.”

육한수가 눈짓을 주자 부채주 황규억이 노예상을 힐끔거리고는 말했다.

“따라 오슈.”

**

철창 안은 신음과 억눌린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다들 감히 울음소리를 밖으로 토해내지는 못하고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끅끅거리기만 했다.

누군가 소리 내어 대성통곡을 했다가, 순식간에 목이 잘려 나가는 것을 본 이후로 마음 놓고 울지도 못했다.

감정 조절을 못하는 아이들이 혹여나 소리 내어 울까 봐 어미들은 그 입을 틀어막으며 어금니를 깨물기가 일쑤였다.

그 속에서 주화영은 멍한 표정으로 벽만 응시했다.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 가던 남편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모든 게 꿈만 같았다.

그러다가도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는 살을 도려내는 것만 같은 아픔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뻥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마을에서 호위무사들을 고용할 때만 해도,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만약의 경우가 우리 마을에 일어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한데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문득 옆에서 아이의 입을 틀어막는 어미가 보였다.

‘자연아….’

마룻바닥 안으로 기어들어 가면서 두려움에 떨던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연이… 우리 자연이… 살아 있을까?’

분명 이들이 데려오진 않았다.

딸과 아이들이라면 웬만해선 죽이지 않고 납치하는 자들 같았다.

한데 여기에 없다는 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

‘천지신명이시여, 부디 그 아이를 굽어 살피소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온통 그녀의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오직 딸뿐이었다.

그때 마침 동혈 입구 쪽에서 철커덩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인과 아이들이 일순간 조용해지면서 고개를 무릎 사이로 파묻었다.

이제 누군가 끌려 나갈 것이다.

이따금씩 노예상인지 뭔지 모를 자들이 나타나서는 여인과 아이들을 무작위로 데려가곤 했던 것이다.

방문하는 사람은 날마다 달랐다.

그들에게 이끌려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살아남을 수는 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마침내 부채주와 함께 낯선 노예상이 철창 밖에 다다라서는 멈춰 섰다.

노예상은 뱀 같은 눈으로 여인과 아이들을 쓸어 보았다.

그 누구도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주화영도 얼른 시선을 피했다.

마침 노예상이 아무렇게나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시작했다.

“저년, 저년, 저년. 그리고 이 녀석과 저 녀석. 마지막으로… 그렇지, 저년이 좋겠군.”

말이 끝나자마자 부채주가 철창을 벌컥 열고는 들어왔다.

여인들과 아이들의 비명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

“오는군.”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중얼거렸다.

나뭇가지에 올라 선 다른 사람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만치 보이는 적의 본거지에서 수레가 비탈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적의 본거지가 보일 때쯤 급습하는 대신 이곳에서 곧 나올 노예상들을 사로잡아 정보를 빼내자고 제안한 사람은 바로 추량이었다.

노예상이 올지 오지 않을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을 때, 추량은 이렇게 대답했다.

“수레바퀴의 크기와 간격을 보면 수레 자체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지. 그런데 그 크기에 비하면 바퀴자국이 깊지 않아. 그건 수레가 비어 있다는 뜻이야. 즉, 비어 있는 수레가 저곳으로 향했다는 건, 나올 때는 뭔가를 채운다는 소리지. 들어간 자국만 있고, 아직 나온 자국이 없어. 인신매매를 하는 조직에 이처럼 크고 빈 수레를 가지고 들어갈 일이라면 하나밖에 더 있겠어? 곧 녀석들이 나올 거야. 수레에는 노예들을 태우고.”

그리고 그 추측이 지금 정확히 맞아 들어간 것이다.

‘맹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이럴 땐 귀신같잖아.’

유송령이 추량을 조금은 낯설게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노예상이 이끄는 수레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부석에 앉은 노예상이 한 명이었고, 그를 호위하는 무인들이 다섯 명이었다.

마침내 사비강이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한편, 말을 몰며 비탈길을 내려오던 노예상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비강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헉! 누, 누구냐!”

사비강이 목을 우두둑 꺾고는 말했다.

“글쎄. 이럴 땐 구원자라고 해야 하나? 저승사자라고 해야 하나?”

“뭐, 뭣?”

“여러 말 할 것 없고, 내려라.”

노예상은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들은 적어도 인왕채 무인들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신호탄을 쏘아 올려서 인왕채에 알리는 게 상책이었다.

그가 얼른 품에 손을 집어넣는 순간,

쒸에에엑!

푹!

“크아악!”

사비강의 손을 떠난 비수가 그의 손등에 박혔다.

노예상이 비명을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다섯 명의 무인들이 일시에 사비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찰나,

쉬이이이이잇!

한 줄기 검은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컥!”

“억!”

“크윽!”

호위무사들이 차례로 비명을 터뜨리며 그대로 고꾸라지는 게 아닌가?

그들은 무엇에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 채 목이 베여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노예상의 두 눈이 잔뜩 커졌다.

“고, 고수…!”

그러거나 말거나 사비강은 바닥에 쓰러진 다섯 명의 무인들을 보며 투덜거렸다.

“흑귀. 네가 다해 버리면 내가 할 일이 없어지잖아.”

[…….]

“다음에는 내가 정말 위험할 때만 나서도 충분하다.”

[알겠습니다.]

사비강이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더니 새파랗게 질린 노예상의 머리채를 꺾어 잡았다.

“크익!”

그러는 사이 적무린이 수레로 다가가 검은 천을 휙 벗겨냈다.

아니나 다를까, 수레 위에는 추량의 말대로 초췌한 모습의 여인과 아이들이 공포에 질려 떨고 있었다.

사비강이 살기를 드러내며 물었다.

“길게 묻지 않는다. 저들을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

“조… 좆 까라!”

푹!

“크아아아악!”

단검 한 자루가 노예상의 어깨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사비강은 단검을 뽑지도 않은 채 다시 물었다.

“어디로 보내냐?”

“나, 나도… 몰라…! 으헉! 크흐아악!”

사비강이 어깨에 박은 단검을 쥐고는 이리저리 후벼댔다.

노예상은 이제 입에 게거품을 물면서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사비강이 다시 뺨을 때리고는 물었다.

“아직 편안해지면 안 되지. 이 사람들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모, 모릅니다. 그,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정말입니다!”

사비강이 노예상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철저하게 점조직 형태로 운영된다는 거군.’

노예상이 부들부들 떨며 애원했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넌 그렇게 말한 사람들 중 몇이나 살려 줬나?”

“아…”

노예상의 표정에 절망이 스쳤다.

다음 순간,

피츗!

“커럭!”

그는 자신의 목을 가르며 흘러내리는 선혈을 손으로 막았다.

피가 입과 목으로 마구 솟구치듯 튀어나왔다.

마침내 그가 마부석에서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량, 너는 여기서 여인들과 아이들을 지켜라.”

“저도 가겠습니다.”

“아니, 감정을 다스리는 것도 수련의 일부다. 오늘은 빠진다.”

추량이 입술을 쿡 씹었지만 별 수 없었다.

누군가는 철창에 갇힌 여인과 아이들을 풀어 주고 지켜 주어야 했기에.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별 말을 다하는군.”

사비강이 피식 웃고는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 뒤를 적무린과 석탄강 그리고 유송령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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