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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57화 (257/670)

# 257

귀환 마교관

257화

금자연은 마치 잔뜩 굶주린 짐승처럼 육포를 게걸스럽게 뜯어먹었다.

사비강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앞서 마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몇 마디 물어보기도 했지만, 금자연은 그 이야기만 나오면 멍한 표정으로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

충격이 너무 커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본능적으로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거부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금자연이라는 이름도 추량이 어르고 달래서 겨우 알아낸 것이었다.

그렇게 배를 채운 금자연은 실신하듯이 그대로 쓰러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동이 틀 녘이 되었을 때, 마을을 둘러보겠다며 떠난 석탄강과 유송령이 돌아왔다.

그런데 두 사람과 함께 온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는 대략 오십대 나이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금자연을 보자마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달려왔다.

“자연아! 너, 자연이가 아니냐?”

금자연도 남자를 보고는 눈물을 그렁거리더니 금세 목 놓아 울고 말았다.

“아이고, 이 딱한 녀석아. 이 난리 속에 용케도 살았구나! 용케도 살았어!”

남자가 금자연을 꽉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사비강이 남자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이 아이를 알고 있소?”

“알지요. 잘 알지요. 이 아이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 저는 이 마을 촌장입니다.”

촌장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촌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내와 함께 이웃마을에 잠깐 다녀오는 사이에 이런 혈겁이 벌어졌을 줄이야.”

촌장은 한숨을 내쉬며 금자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추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흘간 다녀오신 모양이군요.”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건물을 보니 사흘 간 타들어 간 흔적이 있어서 알았습니다.”

“아, 그랬군요. 대단하십니다. 그럼 그놈들이 우리 마을을 사흘 전에 습격했다는 뜻이군요.”

“그렇지요. 촌장님이 마을을 떠나신 그날 밤에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이고, 이 불쌍한 녀석이 그럼 이 마을에서 홀로 사흘이나 버텼다는 겁니까? 자연아, 참말 애썼구나. 이젠 걱정하지 마라. 아저씨가 널 보살펴주마.”

말을 마친 촌장이 고개를 들더니 사비강 일행에게 말했다.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제가 차라도 한 잔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연아를 구해 주신 답례입니다.”

“경황도 없으실 텐데 그럴 필요는….”

추량이 거절하려고 하자, 사비강이 불쑥 나섰다.

“고맙소.”

“예, 절 따라오시지요.”

촌장은 사비강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사비강이 머물렀던 마을 어귀에서 정반대 쪽이었는데, 그곳 마당에는 말 한 마리와 수레가 있었다.

아무래도 짐을 정리해서 마을을 떠날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곳에는 건장한 청년과 촌장의 아내로 보이는 여인이 있었다.

“제 아내와 아들입니다.”

두 사람이 사비강 일행을 보며 예를 갖췄다.

촌장의 아들은 허리춤에 장검을 패용하고 있었는데, 기골이 장대한 것이 무공을 익힌 듯했다.

“실은 제 아들이 이웃마을 창룡무관(蒼龍武館)에서 무공을 연마하고 있습니다. 해서, 이번에 아들을 데려와 마을 호위를 맡기려고 한 것인데 그만….”

“이 마을 전체를 아드님 한 분에게 호위를 맡기려고 했단 말씀입니까?”

추량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촌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이미 마을 사람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아 호위무사들을 일곱 명 고용했었습니다. 다만 제 아들도 함께 지켜 준다면 마음이 든든할 것 같아서 다녀온 거지요.”

“하지만 사체들 중에는 호위무사가 보이지 않던데요.”

추량의 지적은 예리했다.

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문제였습니다.”

“그게 문제라니… 무슨 뜻이지요?”

“우리가 고용했던 호위무사가 아무래도 그들과 한패였던 모양입니다. 저도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웃 마을에 들렀을 때, 최근 그런 식으로 마을을 습격하는 조직이 있다고 하더군요. 촌장으로서 좀 더 신중하게 고용했어야 했는데… 돈을 조금 적게 받겠다는 말에 혹해서 그만….”

촌장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 다가와 어깨를 다독였다.

“아버지. 아버지가 잘못한 건 없습니다. 누구라도 몰랐을 겁니다.”

“하지만 잘못된 내 선택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구나.”

촌장은 아예 주저앉아서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유송령은 물론 석탄강도 숙연한 모습이 들었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시선을 외면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추량만큼은 주변을 찬찬히 살피면서 눈빛을 날카롭게 빛냈다.

그가 촌장 집 구석구석을 훑어보고 와서는 말했다.

“그래도 다행히 이 집은 멀쩡하군요.”

“아, 예. 아무래도 빈 집이어서 건드리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신기하네요. 빈 집이라는 걸 밖에서 알 방법이 없을 텐데. 문을 강제로 열어젖힌 흔적조차 없군요.”

추량이 문지방과 문틈을 손으로 쓸며 중얼거렸다.

촌장이 눈가를 훔치며 답했다.

“글쎄요. 운이 좋았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운이라… 남자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죽여 버린 지독한 것들이 우연히 이런 집을 빠트렸다니….”

이쯤 되자 듣고만 있던 촌장 아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불쑥 나섰다.

“거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하시오? 그놈들에게 우리 집이 짓밟히기라도 해야 된다는 거요?”

“어허, 나서지 말거라.”

촌장이 얼른 주의를 주었지만, 아들은 영 분이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

추량은 대꾸를 하는 대신 집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촌장을 돌아보았다.

“언제 오셨습니까?”

“예?”

“마을에 돌아온 게 언제입니까?”

“얼, 얼마 되진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새벽같이 오셨단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최대한 빨리 돌아와서 마을을 지키고 싶었으니까요.”

“그런 것치고는 사흘이나 걸린 건 아쉽군요.”

“관아에 가서 신경을 좀 써 달라는 청원을 하고 오는 길이었으니까요.”

“그러셨군요. 그런데 어쩜 그렇게 놀라지도 않으십니까?”

“그게 무슨….”

“오늘 아침에 이곳에 오셔서 마을이 이 난리가 난 것을 봤다면, 촌장으로서 당연히 무슨 일인가 싶어 둘러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시라도 살아 있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이라도 하고요.”

“그, 그거야 둘러보려던 참에….”

“그런 것치고는 벌써 짐을 많이도 실었군요. 이래서야 마치 마을이 이렇게 되었다는 걸 알고 온 사람 같지 않습니까?”

그러자 다시 촌장 아들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지금 우리 아버지를 의심하는 거냐!”

“가만있어! 너도 예외는 아니니까!”

추량이 전에 없이 화난 표정으로 버럭 소리쳤다.

그가 이토록 진지하게 분노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석탄강과 유송령은 물론 적무린조차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추량의 눈이 예리하게 주변 사물들을 훑었다.

“그 수레는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게 아니군.”

“무, 무슨 소리요? 이 수레는 우리 집 창고에 항상 있었던 거요.”

“아니. 수레바퀴에 묻은 흙과 이음새만 봐도 알 수 있어. 저건 아침부터 먼 길을 달려온 수레야.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던 수레가 아니야.”

“그, 그건….”

“이미 창고도 확인했다. 오랫동안 그곳에 보관되어 있었다면 바닥에 바퀴 자국이나 지지대 자국은 남았어야지. 하지만 그조차도 보이지 않더군.”

“그건 자주 사용했으니….”

“자주 사용할 물건이었다면 구석진 창고에 처박아 두진 않았을 테지.”

실제로 촌장 집의 창고는 동선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촌장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져 갔다.

추량이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수레를 덮은 천을 휙 걷어치웠다.

그러자 온갖 가구와 잡기들이 드러났다.

“이게 무슨 짓이냐?”

촌장 아들이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들 기세로 다가왔다.

추량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잡기들을 훑다가 상자 하나를 보았다.

그가 성큼성큼 다가가서 덮개를 열려고 하자, 촌장 아들이 불쑥 나섰다.

“노옴! 우리 집 물건에 손을 댔다간 내 가만두지…!”

사납게 소리치던 촌장 아들이 말을 삼키고 말았다.

어느새 적무린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났기에.

추량은 거침없이 상자 덮개를 열었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은괴가 담겨 있었다.

대략 삼만 냥 정도 되는 듯했다.

이 정도면 어딜 가서든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추량이 차갑게 웃었다.

“돈이 꽤 많군.”

“그, 그건 그동안 내가 모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추량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촌장의 가족들이 저마다 움찔 떨면서 주춤 물러날 정도였다.

추량이 차갑게 말을 이어 갔다.

“당신이 이 돈을 받고 마을 사람들을 팔아넘긴 거겠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호위무사가 한통속이라는 것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겠지. 그리고 혈겁이 벌어지던 날 밤에는 인근 마을로 잠시 피신해 있었다가 오늘 돌아온 거야. 물론 그대로 달아났어도 되겠지만, 그랬다간 당신이 저지른 일이라는 소문이 퍼졌겠지.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당신은 일부러 이곳으로 돌아와서 짐을 챙긴 거야. 그런데 재수 없게 우릴 만난 거고.”

추량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촌장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사비강은 그저 이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마침내 촌장이 사비강 일행을 훑어보며 말했다.

“만, 만 냥을 드리겠네. 제발 이 일은 눈감아 주시게!”

추량의 표정이 기가 차다는 듯 일그러졌다.

확신에 가깝긴 했어도 상당 부분은 추측에 기반한 것이었다.

한데 촌장의 반응을 보고는 자신의 추측이 모두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자 속이 뒤집어지는 듯했다.

“아, 아니지! 이만 냥을 드리겠네! 이만 냥이면 어디서든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을 게야! 어떤가?”

“좆같은 소리. 삼만 냥 전부 내놔야겠다.”

“뭐?”

그 순간, 촌장 아들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추량을 향해 달려들었다.

“노옴! 죽어랏!”

쉬이이잇!

쑤아아앙!

푹!

“커억!”

추량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의 손목에서 튀어 나간 마나검이 촌장 아들의 목을 완전히 꿰뚫고 있었다.

몇 차례 피를 꿀럭꿀럭 토해 내던 촌장 아들이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나자, 지켜보고만 있던 촌장 아내가 눈이 뒤집혀 소리쳤다.

“안 돼!”

그녀가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달려드는 순간,

쉬컥!

추량이 어느새 보법을 밟아 그녀 앞으로 가더니 가볍게 목을 날려 버렸다.

툭, 데굴데굴.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얼굴에 묻은 혈흔이 살기등등한 그의 모습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었다.

추량이 돌아서자 촌장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살, 살려 주시오! 삼, 삼만 냥 다 드리겠소. 전부 드리겠소! 목숨만은…!”

“처자식이 눈앞에서 뒈지는 걸 보고도 저 살 궁리만 하다니. 개돼지만도 못한 놈이구나.”

“흐익…!”

도저히 가망이 없다 여겼는지 촌장이 몸을 돌리더니 부리나케 달아나기 시작했다.

순간 추량이 품에서 비수를 꺼내 날렸다.

쉬이이익!

푹!

뒤통수에 비수가 박힌 촌장은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세 사람이 죽어 버리자 장내는 일순 침묵에 휩싸였다.

적무린과 석탄강, 유송령도 낯선 표정으로 추량을 바라보기만 했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내 제자가 좀 성깔이 지랄 같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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