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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53화 (253/670)

# 253

귀환 마교관

253화

추희룡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절대 사람이 들어가서는 안 될 곳에서, 절대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나왔다.

그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입만 척 벌린 채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그가 뺨을 파르르 떨면서 추량을 다시 돌아보았다.

이제야 추량의 이상한 행동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의 전신에서 살기가 폭사되어 나왔다.

“이 개 잡것들이…!”

그는 도를 쥔 채 부르르 떨었다.

사비강이 그런 추희룡을 빤히 바라보더니 추량에게 턱짓을 했다.

“나가 봐라.”

“어딜!”

추희룡이 버럭 고함을 지르며 사비강을 노려본 채 말을 이었다.

“누구 마음대로 여기서 나간단 말이냐? 꼼짝 말고 그 자리에 있어라.”

하지만 사비강 역시 물러나지 않았다.

“나가라.”

“저어, 그럼….”

추량이 자라목을 한 채 쭈뼛쭈뼛 일어나서는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쉬이이이잇!

한 줄기 섬광이 날아들더니 그의 목 언저리에서 정확히 멈췄다.

꿀꺽.

침을 삼키자 목울대가 차가운 칼날에 닿았다.

추희룡이 사비강을 노려 본 채로 말했다.

“단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였다가는 목이 떨어질 줄 알아라.”

상황이 이리되자 추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사부님…! 살려 주세요!’

그가 간절한 눈빛을 사비강에게 보냈다.

사비강이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추희룡을 바라보았다.

“그 녀석, 놔 주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앞으로 당신과 나눌 이야기가 꽤나 중하기 때문이지.”

“내 거처에 무단 침입을 한 것치고는 지나치게 당당하군.”

“그럴 수밖에. 나는 저 아래에 있는 것들을 전부 살펴보았으니까.”

순간 추희룡의 표정이 흠칫 떨렸다.

사비강이 추희룡을 빤히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적어도 당신이 들어서 손해 볼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요.”

추희룡이 미간을 잔뜩 좁히고는 사비강과 추량을 번갈아 보았다.

잠시 후 그가 추량에게 내밀었던 도를 거둬들이고는 사비강에게 말했다.

“그 이야기 한 번 들어보지. 하지만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라면 오늘 벌어진 일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할 거요.”

“물론.”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추량에게 턱짓을 했다.

그제야 추량이 허겁지겁 실내를 빠져나갔다.

**

추량은 한참이나 실내를 서성였다.

해가 저문 지는 벌써 한참이 지났다.

창밖 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지만, 그는 등불조차 켤 생각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사비강의 지시로 백호당을 빠져나온 지 벌써 두 시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비강에게서 아무런 기별이 없다.

백호당의 움직임도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창가에서 왔다갔다 걸음을 옮기던 추량이 문득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더 이상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

‘나라도 사부님을 구해야 한다.’

명색이 호위무사가 아닌가?

아, 그러고 보니 호위무사가 하나 더 있지 않았던가?

“흑귀, 그 녀석은 어디에 있는 거지?”

“나를 찾았나?”

문득 등 뒤에서 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시커먼 연기와 함께 흑귀가 나타났다.

“헉!”

깜짝 놀란 추량이 화들짝 놀라면서 물러났다.

“뭐, 뭐야? 갑자기 왜 뒤에서 나타나는 거야?”

“날 갑자기 찾은 건 자네이지 않나?”

흑귀가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추량이 헛기침을 했다.

“커험! 아무튼 난 지금부터 사부님을 구하러 갈 생각이다. 아무래도 사부님의 안위에 문제가 생겼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가?”

“그런가… 라니. 너는 나와 함께 갈 생각이 없나?”

“물론.”

“어, 어째서?”

“주군께서 대기하라고 하셨으니.”

“아무리 그래도 호위무사로서 주인이 걱정되지도 않는가?”

“수하로서 감정을 자제하고 명에 따를 뿐.”

“흥! 그럼 네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나는 사부님을 구하러 가야겠으니까.”

“그럼 무운을 빌지.”

말을 마친 흑귀가 스르르 어둠속으로 숨어 버리는가 싶더니 감쪽같이 기척이 사라지고 말았다.

비교적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추량으로서는 저렇게 꽉 막힌 흑귀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 사부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마음을 굳힌 추량이 오른손을 쭉 내밀면서 마나를 운기했다.

쑤아아앙!

날카롭게 다듬어진 마나가 송곳처럼 튀어나왔다.

그 다음 왼팔을 굽히며 내밀자,

후아아앙!

푸르스름한 빛의 방패가 형성되면서 나타났다.

확실히 며칠 전과 비교하면 카르텔의 수호구를 다루는데 꽤나 익숙해진 상태였다.

‘좋아, 사부님이 주신 이 무기로 구해 드리자!’

마음을 다잡은 추량이 문 쪽으로 걸음을 성큼성큼 옮겼다.

하지만 그는 문을 열기 직전 우뚝 멈추고는 돌아섰다.

‘아직은 준비가 부족하다. 적진 한복판으로 가야 하는 것인 만큼 좀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겠지!’

다시 방 한쪽 구석으로 돌아온 그는 수납함을 열고 비수들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몸에 지닐 수 있는 최대량의 비수를 챙긴 그가 다시 문으로 걸어갔다.

‘아냐, 아직 부족해. 아무리 무기가 많아도 내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면 무소용이 아닌가?’

추량은 곧장 지하 연무실까지 내려가서 단단하고 질긴 가죽 갑옷을 찾아서 착용했다.

‘좋아, 이 정도면 될 것 같군. 아, 혹시 이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니 배도 든든히 채우는 게 좋겠구나.’

추량은 마지막 만찬이라고 생각하면서 저녁 식사를 배불리 먹었다.

이제야말로 마음을 굳힌 추량이 숙소를 나섰다.

바깥 공기는 싸늘했다.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부님을 구하기 위해 결의를 굳히고 떠나는 제자의 신세라니.

‘어쩌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지.’

울적한 마음을 달래며 백호당으로 향할 때였다.

“어딜 가나?”

갑자기 옆에서 불쑥 들린 목소리.

“우앗!”

깜짝 놀란 추량이 얼른 물러나면서 양손에 힘을 주었다.

당황했기 때문일까?

나와야 할 마법 방패와 마법 검은 보이지도 않고, 몸 여기저기 찔러 넣고 있던 비수들만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웬, 웬 놈이… 사부님?”

“그래, 그 웬 놈이 네 사부다.”

“사부님! 살아계셨군요!”

“뭔 호들갑이야? 언제는 내가 죽었었냐?”

“그, 그건 아니지만…! 전 정말 사부님이 위험에 빠지신 줄 알고….”

“그래서 자살하러 가는 길이었나?”

“자, 자살이라니요! 사부님을 구하기 위해서…!”

“내가 먼저 발견한 게 다행이군.”

사비강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추량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것 마냥 기뻤다.

“어째서 이렇게 오래 계셨습니까?”

“꽤나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지.”

“중요한 이야기라면…?”

사비강이 걸음을 우뚝 멈추더니 추량을 슬쩍 돌아보았다.

그 표정과 행동들이 무척 진중하게 느껴졌기에 추량도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다.

사비강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를 죽여야겠다.”

“그라니…?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설마 백호당주를 죽이시겠다는 겁니까?”

“아니.”

“그, 그럼?”

다음 순간, 사비강의 입에서 경천동지할 만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혈사련주. 그를 죽여야겠다.”

**

‘련주를 죽여주겠다니….’

추희룡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창밖을 보았다.

저만치 사비강의 숙소가 보였다.

볼모로 잡혀 온 주제에 천상궁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쌓아 올린 사비강.

그야말로 속생각을 읽을 수 없는 자다.

그런데 그자가 자신의 비고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추량이 물러간 후 사비강이 당당하게 말했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뇌리에 울리는 것만 같다.

“혈사련주, 죽여주겠소.”

“……!”

사비강의 말을 들었던 그 순간, 추희룡은 뺨을 씰룩이고는 잠시 숨을 멈췄다.

‘이 녀석이 확실히 봤구나! 모든 걸!’

어떻게 자신의 비고에 들어간 것일까?

그 와중에도 눈길은 재빨리 사면초가 군단상과 사방신의 그림으로 옮겨졌다.

분명 모든 게 제자리였다.

그럼에도 사비강이 그곳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누군가 기관을 작동시키고 다시 원위치해 놓았다는 거군!’

너무 쉽게 생각했다.

자신이 없을 때라도 경계를 삼엄하게 했어야 했거늘.

하지만 이 또한 허허실실(虛虛實實)의 계책이었다.

오히려 비어 있는 백호당의 경계가 지나치게 삼엄하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여길 테니 일부러 평상시처럼 경계를 느슨하게 해둔 것이었다.

적어도 지하로 향하는 공간을 드러내는 기관 장치는 자신이 아닌 한 누구도 열지 못할 것이라 자신했으므로.

사비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추희룡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당신의 야망을 이루어 드리겠소.”

“…….”

추희룡은 망설였다.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이곳에서 발뺌을 하면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첫 번째.

두 번째는 인정을 하고 놈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마지막으로 당장 눈앞의 사비강을 죽여 버리는 것.

하지만 첫 번째 방법은 이미 물 건너갔다.

사비강이 지하 비고에 들어간 이상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결국 받아들이거나 죽여 버리거나.

그가 속으로 갈등하고 있을 때, 사비강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부와 손을 잡지 않고서는 힘들 거요. 하지만 내가 돕는다는 것은 정도맹이 당신을 돕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거요.”

추희룡이 고개를 들었다.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사비강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추희룡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그는 일전에 악천괴를 만났을 때, 왜 그가 추희룡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추희룡은 야망이 큰 자였다.

그저 유순해서 정도맹에 대해 온건적 입장을 취하려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외부와 전쟁을 치르는 중에는 내부적 위계 서열이 견고해지기 마련이다.

정사대전 역시 마찬가지.

혈사련이 정도맹과 전쟁을 하게 되면 련주의 권한은 넘을 수 없는 벽이 되고 만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기가 도래하면 내부에서는 다시 서열 경쟁이 치열해지기 마련.

지하에서 그 많은 문서들을 살펴본 결과, 사비강이 내린 결론은 한 가지였다.

‘추희룡. 혈사련주가 되고 싶어 했던 거군.’

야망이 큰 자일수록 속내를 감추는 법.

반면 타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높다.

추희룡이 수집한 정보는 대체로 혈사련 내의 계보와 수뇌 인사들의 성향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혈사련주에 대해서 치밀하게 조사한 기록들이었다.

이제야 그가 왜 혈사련주에게 죽임을 당했는지 이해가 됐다.

거사를 계획했다가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마침내 추희룡이 결심을 굳혔는지,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을 어찌 믿고?”

“믿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있소?”

사비강이 싸늘하게 웃음을 흘렸다.

추희룡의 손이 아주 천천히 도의 손잡이로 미끄러져 갔다.

여차하면 도를 뽑아 들고 일격에 사비강을 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망설임은 계속되고 있었다.

모든 기회는 위험부담과 함께 온다는 것을 오랜 세월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에.

사비강의 시선이 추희룡의 손길에 머물렀다.

“그 도, 뽑을 거요?”

“글쎄.”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이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라도.”

“하나만 묻지.”

“얼마든지.”

“왜 날 도우려는 거요? 아니, 왜 선뜻 련주를 죽여주겠다고 하는 거요?”

“그건….”

사비강이 잠깐 뜸을 들이다가 곧 입을 열었다.

“그가 뇌전흡살공을 익혔기 때문이오.”

“뇌전흡살공?”

역시 사비강은 비고에서 꽤 많은 정보를 훑은 게 분명했다.

련주가 뇌전흡살공을 익혔다는 사실은 자신 외에는 거의 아는 자가 없었다.

혈사련 내에서도.

혈사련주는 한 번도 그 무공을 선보인 적이 없었기에.

말하자면 련주가 숨겨 놓은 비장의 한 수 같은 것이리라.

한데 그게 왜?

그 속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뭐,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복수해 두는 셈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추희룡의 표정이 슬쩍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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