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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51화 (251/670)

# 251

귀환 마교관

251화

백호당 내부는 굉장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미 이곳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었던 사비강은 어지간한 물건의 위치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사비강이 기지개를 한껏 켜고는 홍염을 돌아보았다.

“그럼 시작할까?”

“예.”

홍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걸음걸이는 거침이 없었지만 방 한쪽 구석에 다다른 그는 무척 섬세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손으로 가만히 벽면을 쓸어 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바늘만한 구멍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관찰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이라도 잡는 게 아닌지 생각될 정도로 무척 섬세하고 꼼꼼하게 살폈다.

그럼에도 대단한 것은 그의 동작들이 무척 신속하다는 것이었다.

빠르면서도 정교한 관찰력이 그가 가진 특기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한쪽 벽면을 모두 손으로 쓸어 가면서 살핀 홍염이 이번에는 침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베개와 이불 등을 결 따라 훑어 만지면서 무척 치밀하게 살폈다.

이불 같은 곳에 기관 장치가 되어 있을 리가 없음에도 이렇게 꼼꼼하게 살피는 것은 그만의 철칙이었다.

어떠한 기관 장치도 예측 가능한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실제로 그는 지금까지 잠입 임무를 하면서 별의별 기관 장치를 다 접해 보았다.

때문에 이러한 조심성과 관찰력은 몸에 배어 있는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반면 사비강은 무심한 듯 주변을 훑어보더니 손바닥을 바닥으로 향하게 한 다음 서치 마법을 시전했다.

다음 순간, 그의 손바닥에서 은은한 광채가 맺히더니 일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후우우웅!

범위를 최대한 좁혔기 때문에 실외에서 번을 서는 무인들이 있더라도 조금 전의 기운을 느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묘한 빛의 파장이 바닥과 벽 천장을 훑으며 지나갔지만 더 이상은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흐음.”

사비강이 침음을 흘리고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이럴 경우에는 둘 중 하나다.

마법 도구가 백호당에 숨겨져 있지 않거나, 매우 두꺼운 뭔가에 가로막혀 있거나.

서치 마법은 하이 레벨의 마법사가 시전할수록 투시력이 점점 좋아진다.

예컨대, 2서클에서 개방되는 서치 마법은 처음에는 시야를 가리는 무언가가 있을 경우에는 대상을 찾아내지 못한다.

즉, 백사장에 떨어진 바늘을 단번에 찾아내는 건 가능하지만, 모래 속에 파묻혀 있는 바늘을 찾아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그 바늘에 마나가 담겨 있을 경우에 한해서.

하지만 4서클 이상이 되면 반 장 정도의 두께를 투시할 수 있게 된다.

즉, 모래에 파묻혀 있더라도 그 깊이가 반 장 안에 해당된다면 시전자의 눈에 빛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7서클 이상이 되면 한 장 정도의 두께를 투시할 수 있다.

물론, 결계나 다른 마법 장치가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다.

한데 지금 사비강의 서치 마법에 어떠한 것도 걸려들지 않았다.

‘지하에 숨겨 놨다면 그 깊이가 한 장 이상이라는 뜻이겠지.’

제법 깊은 지하를 파서 보관해 두었다는 말이다.

그게 아니면 이곳에 없다는 건데….

‘왠지 신경이 쓰인단 말이야.’

지금까지 추희룡을 신경 써서 관찰해 보았지만, 주기적으로 찾아가는 별도의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중하고 신비한 물건일수록 멀리 떨어뜨려 놓기 보다는 가까운 곳에 두기 마련일 터.

‘염에게 기대를 걸어야겠군.’

사비강이 시선을 돌려 홍염을 바라보았다.

침상을 모두 훑은 홍염은 이제 선반을 훑어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먼지 한 톨도 어떻게 내려앉아 있는지 다 알아내고 말겠다는 듯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밀하게 훑어보던 홍염이 어느 순간 눈빛을 반짝였다.

그가 신경 써서 보고 있는 것은 굉장히 섬세하게 깎아서 만든 군단상(軍團狀)이었다.

유방과 항우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조각상이었는데, 세공(細工) 실력이 어찌나 뛰어난지 인형 하나의 크기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정도의 크기에 말과 사람을 모두 담아 놓고 있으니, 척 보기에도 값진 물건임을 알 수 있게 했다.

홍염이 그 군단상을 보며 꿈쩍하지 않자, 흥미를 느낀 사비강이 곁으로 다가왔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이군. 정말 대단한 조각상인데? 우미인의 칼춤이 정말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군.”

홍염은 사비강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크기의 인형이 수천 개나 조각되어 있는 군단상.

그리고 항우와 우미인을 둘러싸고 있는 한나라 군의 모습.

이때 한나라 군은 초나라 군의 사기를 꺾기 위해서 동서남북 네 방향을 완전히 포위한 채 초나라의 전통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랫가락에 맞춰 우미인은 칼춤을 추다가 자결한다.

지금 이 조각상은 바로 그 당시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오늘날의 ‘사면초가’라는 속담을 남긴 명장면이다.

그런데…

‘위화감이 든다. 그리고 그 위화감의 정답은 기관 장치와 연결되어 있을 거다.’

홍염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어느 순간 그가 미묘한 웃음을 그리면서 사비강을 보았다.

“주군께서는 이 군단상에서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습니까?”

“글쎄. 딱히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하지만 저는 주군께서 하신 말씀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뭐지?”

“사면초가입니다.”

“사면초가?”

“예. 이건 사면초가를 나타낸 조각상입니다. 한데… 한나라 병사들을 보십시오.”

사비강이 한나라 군을 가만히 살피다가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초가를 부르지 않고 있군.”

“바로 그겁니다. 하지만 우미인의 칼춤은 무척 생동감이 넘칩니다. 초가를 듣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럼 초가는 누가 부르는 중일까요?”

“항우인가?”

하지만 항우의 입도 굳게 다물어져 있다.

유방으로 시선을 옮겨 보았지만 역시 아니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형의 얼굴을 일일이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사비강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만 있자, 홍염이 희미하게 웃으며 나섰다.

그가 먼저 손가락으로 우미인을 가리켰다.

“우미인의 동쪽.”

그러더니 홍염이 시선을 그대로 오른쪽으로 옮기며 정확하게 동쪽 방향 선상에 서 있는 군사들을 하나씩 짚어 갔다.

“아…!”

사비강이 탄성을 터뜨렸다.

우미인의 동쪽 방향에 있는 군사들 중 한 명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초가를 부르는 것이다!

“초가를 부르는 동쪽의 병사입니다.”

말을 마친 홍염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더니 병사의 손에 쥐어진 창을 잡아당겼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바늘만큼이나 가느다란 창이 병사의 손에서 뽑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은 서쪽.”

홍염의 손가락이 행렬을 따라 우미인을 기준으로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져 갔다.

그가 멈춘 곳에는 역시나 입을 벌리고 노래를 부르는 병사가 있었다.

“서쪽에서 초가를 부르는 병사입니다.”

병사는 칼을 들고 있었다.

그것도 홍염이 조심스럽게 집어 들자 칼날이 뽑혀 나왔다.

“그 다음은 남쪽으로 가겠습니다.”

홍염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노래를 부르는 병사들의 무기를 꺼냈다.

각각의 무기는 도검창이 골고루 섞여 있었는데, 당연히 생긴 모양도 달랐다.

그렇게 바늘처럼 가느다란 네 자루의 무기가 홍염의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실내에서는 그 어떠한 기관도 작동하지 않았다.

“왜 아무런 변화가 없지?”

사비강의 질문에 홍염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이건 쉽게 말해서 열쇠 같은 겁니다.”

“열쇠?”

“사면초가 군단상에서 열쇠를 얻었습니다. 이제 이 방에서 이것과 연관된 무언가라면….”

“사방신(四方神)이군.”

사비강의 대답에 홍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홍염과 사비강은 이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쪽 벽면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사방신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청룡 대신 흑룡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호와 주작, 현무는 흑룡의 아래쪽에서 마치 청룡을 떠받치는 듯한 형상이었다.

그 그림은 조금 전에 홍염이 무척이나 세밀하게 살피던 것이기도 했다.

먼저 홍염이 흑룡으로 다가갔다.

“흑룡을 두고 청룡을 없앴으니, 동쪽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말을 마친 홍염이 흑룡의 눈 부위에 바늘처럼 가느다란 창을 쑤욱 집어넣었다.

“아!”

사비강이 다시 한 번 탄성을 터뜨렸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저 그림에 구멍이 있을 줄이야.

하긴 바늘구멍처럼 작은 틈이다.

그런 것까지 어찌 찾아내겠는가?

한데 홍염은 찾았다.

홍염이 말을 이으면서 이번에는 서쪽을 맡는 백호의 발톱에 칼을 쑤욱 집어넣었다.

백호의 발톱 부위에도 역시 바늘만한 구멍이 있었던 것.

그곳에 집어넣은 칼은 역시 서쪽에서 초가를 부르던 병사의 것이었다.

“사방이 정확히 맞아야 기관이 작동할 겁니다. 창고처럼 숨겨 놓은 기관이라면 딱히 함정이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수시로 들락거리는 곳인데, 그때마다 기관을 해제하는 것도 적잖은 노동이 될 테니까요. 게다가 복잡한 기관일수록 잔고장이 일어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럼 출입구를 숨겨 두는 것에만 중점을 두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어차피 그 정도의 기관을 해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함정을 설치한다고 해도 무소용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긴.”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홍염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침내 홍염은 마지막 북쪽을 맡고 있는 현무의 등짝에도 바늘만한 무기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철커덕. 스르르르르릉!

한쪽 벽면이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열리는 것이 아닌가?

그 공간으로 꽤나 깊이 이어진 계단이 드러났다.

“역시 예상하신 대로 지하에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좋아, 다녀오지.”

“그럼 조심하십시오.”

사비강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에 서 있던 홍염은 어느새 기척을 스르르 지워 갔다.

**

“흐음.”

추량이 기울어져 가는 그림자를 보며 침음을 흘렸다.

‘앞으로 한 시진인가?’

백호당주가 귀가하는 시간이다.

백호당주 추희룡은 오늘 외부에서 볼일을 본 후 해가 저물 무렵 귀환할 예정이었다.

‘으으. 왜 이렇게 안 나오시지?’

사비강이 백호당으로 잠입한 지가 벌써 세 시진 가까이 지났다.

두 시진 전에 자신에게 전음이 흘러들어왔다.

홍염이었다.

그는 기관을 해체하고 사비강 홀로 그 비밀 공간으로 들어가셨노라 말했다.

이제 남은 건 사비강이 나올 때까지 이 자리에서 망을 보는 것.

그리고 사비강이 늦어지거나, 추희룡이 일찍 돌아오면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다.

물론 이왕이면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사비강이 나오는 게 제일 좋은 상황이지만.

그렇게 한 식경 정도가 흐르자 그림자가 조금 더 길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추량의 가슴도 두근거렸다.

‘으으… 쫄리는구만! 빨리 나오시면 좋겠는데… 이제 한 시진도 안 남았다고요!’

그렇게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헉! 왜 하필…!”

백호당 대문 앞을 서성이던 추량이 저만치 나타난 추희룡을 보고는 사색이 되고 말았다.

예상보다도 훨씬 이른 시간에 추희룡이 돌아오고 있었다.

‘망할! 좆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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