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귀환 마교관
250화
“저는 왜 안 줍니까?”
추량이 다짜고짜 꺼낸 말이었다.
사비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영단이나 영약 같은 거 말입니다! 며칠 전에는 석탄강에게도 던져 주지 않았습니까? 아니지, 직접 먹여 주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아… 열화신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 녀석이 그걸 먹고 생사현관까지 타통했다면서요?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진정한 제자인 저에게는 왜 그런 걸 주지 않는 겁니까?”
추량이 씨근거리며 말을 쏟아냈다.
요 며칠 동안 꿍한 표정으로 내내 지내더니 그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열화신단은 네가 복용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
“왜요? 절 무시하는 겁니까?”
“넌 천성이 낙천적이어서 안 돼.”
“무슨 소리를! 저도 한 까칠합니다! 사부님께서 절 잘 모르시나보군요!”
“흐음? 그래? 정말 그렇단 말이지?”
“물론이지요!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은 누구보다도 강합니다!”
“선망과 열망은 결이 다르다. 너는 날 선망하는 거겠지.”
어쩐지 정곡을 찔린 것 같은 말이었지만, 추량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 이상 절 무시하지 마십시오! 저도 잘 할 수 있단 말입니다! 제가 한 번 화나면 물불 가리지 않습니다!”
“흐음. 정 그렇다면….”
사비강이 품에서 영단 하나를 꺼내 주었다.
“먹어라.”
“예?”
추량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순순히 영단을 내어 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달라며? 먹어라.”
“정, 정말로 주시는 겁니까?”
“그래. 하나밖에 없는 진정한 제자야. 먹고 소화나 잘 시켜라. 잘못하면….”
사비강이 음산한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추량의 귀에 나직이 속삭였다.
“어떻게 되는지 알지?”
“그, 그런다고 겁, 겁먹을 줄 아십니까? 그, 그래봐야 죽,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맞아. 그냥 죽을 뿐이지. 생살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면서. 아, 내장을 입 밖으로 토해 본 적은 없지? 아마 그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온몸이 불에 타들어 가는 작열통은 물론이고, 살가죽이 벗겨진 곳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괴로워지겠지. 또….”
나직하면서도 조곤조곤 말을 이어 가는 사비강.
추량의 표정이 점점 해쓱하게 변했다.
말을 마친 사비강이 한 걸음 물러나며 물었다.
“뭐하냐? 안 먹고.”
“안, 안 도와줍니까?”
“아, 운기 하는 거? 뭐, 도와주지. 사실 내가 돕는다고 해봐야 별 건 없어. 그저 운기를 잘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호통을 좀 치는 정도지. 자칫 운기 할 때 개입했다간 주화입마에 걸릴 수가 있거든. 그럼 뭐, 바로 뒈지는 거지.”
추량의 안색이 더욱 하얗게 질려 갔다.
사비강은 거침없었다.
“자, 앉아라. 구결을 읊어 주마.”
추량이 사비강의 손에 이끌리듯 자리에 앉았다.
그는 손바닥에 올려 진 단환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이, 이게 그렇게 고통스러운가?’
그때 사비강이 다시 하품을 하며 말했다.
“뭐해? 안 먹고!”
“저어… 석탄강이 이걸 먹고 생사현관을 타통할 확률은 얼마나 됐습니까?”
“이 할 정도.”
“예엑? 겨우 그 정도요?”
“이 할을 무시하냐? 그 정도면 큰 확률이다. 목숨을 걸고 도전해 볼만하지. 물론, 너는 그보다 더 용기 있는 녀석이겠지만.”
“저, 저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흐음. 일, 이푼 정도 되겠구나.”
추량의 안색이 이제 완전히 사색이 되고 말았다.
이, 이푼의 확률이라니.
백 번을 하면 한두 번 성공할까 말까 아닌가?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그 한두 번에 해당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이건… 자살행위야.’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자, 자신도 모르게 다른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저어, 다른 영단은 없습니까? 이것 말고… 헤헤.”
“열화신단을 달라면서? 그것보다 강한 건 없다. 아니면 공청석유(空淸石乳)라도 달라는 거냐?”
“아, 아니요.”
추량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처음의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고, 두려운 마음만이 그를 잠식해 갔다.
“저어…, 아무래도 다음에 도전해 보는 게 좋을….”
“아무래도 너도 내가 먹여 주길 바라는 모양이군.”
“아뇨, 그게 아니라….”
“옛다, 먹어라.”
“커헉! 으읍! 읍읍!”
추량이 눈을 부릅뜨며 팔을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이미 사비강이 영단을 집어 들고 입안에 쑤욱 집어넣은 후였다.
곧이어 사비강이 턱과 목을 치자 영단이 식도를 따라 절로 꿀꺽 넘어갔다.
“크억! 으아아아악! 먹어 버렸다! 젠장! 먹어 버렸다고요! 으허어억!”
“먹고 싶어 했잖냐? 먹여 줘도 지랄이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요! 으흑! 이제 어떻게 해요? 어쩌면 좋습니까? 아아! 난 이대로 죽는 것인가? 헉, 뱃속이 뜨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빈속에 먹으면 원래 그렇다.”
“아으으윽! 배가… 배가 불타오르는 것만 같습니다! 저 이대로 죽는 겁니까? 크흑! 으아아아!”
추량이 비명을 내지르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얼른 가부좌를 틀었다.
사비강은 팔짱을 끼고는 가만히 추량이 하는 행동만 지켜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운기에 집중을 했을까?
뜨겁던 뱃속이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기운이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소화가… 된 건가?’
천천히 실눈을 뜨는 추량.
마침 사비강이 침상에 걸터앉아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좀 어떠냐?”
“몸이 좀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설마… 제가 소화를 다 한 건가요?”
“뭐, 지금쯤이면 소화가 됐겠군.”
“오오옷! 으하하하하!”
추량이 벌떡 일어나 파안대소했다.
그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주먹을 쭉쭉 뻗었다.
팡팡!
허공을 때리는 주먹질이 무척 경쾌했다.
“오옷, 힘이 넘칩니다! 이제 보니 생사현관을 타통하는 것도 별 것 아니었군요! 이제 보니 제가 타고난 기재였던 것 아닙니까? 맞아! 그러고 보니 사부님께서는 석탄강 그놈에게 재능이라곤 없다고 했지요? 으하하하! 하긴 그러니까 겨우 생사현관을 타통하면서 코피나 줄줄 흘리고 그랬겠죠? 으하하하!”
‘겨우 생사현관 타통이라니….’
사비강은 황당함을 감추며 가만히 추량을 지켜보기만 했다.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약발을 잘 받으니 다행이다.”
“그러게요. 이제 보니 전 모든 영약을 다 소화시킬 수 있는 재능이 있나 봅니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겠죠?”
“뭐… 그렇겠지.”
“흐음. 그런데 사부님. 분명 몸은 좀 가벼워진 것 같은데, 내공이 왜 늘어난 것 같지가 않죠? 혹시 천천히 늘어나는 건가요?”
“아니. 안 늘어.”
“예? 왜요? 전 생사현관을 타통했는데?”
그제야 사비강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확실히 이 녀석하고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다.
“넌 생사현관을 타통한 적도 없고, 네가 먹은 건 열화신단이 아니니까.”
“예에?”
“열화신단을 복용했으면 넌 벌써 시체가 되었을 테지.”
“헉! 그럼 제가 먹은 게 뭡니까?”
“보양환이다.”
“예에에엑? 보양환이라면….”
“그래, 일전에 방각에게 먹였던 것과 같은 거다.”
“하아…”
추량은 힘이 쭉 빠져나가는 걸 느끼고는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분명 복용하고 나서는 뱃속이 화끈거렸는데….”
“말했잖아. 빈속에 먹어서 그렇다고.”
추량이 다시 한 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제야 모든 현상이 이해가 됐다.
갑자기 생기가 돌아온 것도 보양환의 효력을 받아서 그런 것이리라.
그것도 모르고 생사현관 타통이 어쩌고저쩌고 했으니.
하기야.
생사현관을 뚫는다는 건 겪은 사람도 거의 없는데다가 천운이 따른다고 해도 일생에 한 번만 겪을 수 있는 것이니, 그게 어떤 느낌인 줄 알 게 뭔가?
물론, 그렇다고 해도 진짜로 타통하면 뭔가 다를 테지.
확연한 변화가 있겠지.
“너무하십니다.”
추량이 잔뜩 풀 죽은 소리로 말하자, 사비강이 웃음을 거두고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낙심하지 마라. 너한테는 열화신단이 맞지 않아서 주지 않는 것뿐이니까.”
“그럼, 다른 영약은요?”
“그 비슷한 걸 줄게.”
“정말입니까?”
“그래. 대신 내일 일을 마치면 줄 생각이다.”
“일이요? 내일 무슨 일을 하실 겁니까?”
“백호당에 잠입하려고 한다. 그때 네가 필요해.”
“예? 백호당에요?”
“그래. 내일 낮에 백호당주가 자리를 비운다는 정보가 들어왔어. 그때 백호당을 한 번 살펴보려고 한다.”
추량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게 돌아왔다.
“하지만 제가 혹시라도 방해가 되면….”
“아니. 네 도움이 반드시 필요해.”
“추적하는 일도 아닌데….”
“난 네 능력을 믿는다.”
“사부님…!”
추량이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그가 힘차게 대꾸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기대하지.”
사비강의 대답에 추량이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날, 백호당이 내려다보이는 나뭇가지 위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사비강과 추량 그리고 홍염이었다.
그들은 먼발치에서 백호당을 떠나는 추희룡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침내 백호당이 비었군요.”
추량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홍염을 돌아보았다.
“기관 장치를 해체하면 그 즉시 밖으로 나가도록. 괜히 여러 사람이 들어가 봐야 흔적만 남길 수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홍염이 깍듯하게 대답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어딘가에 잠입하는 것은 그의 특기였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실수는 할 수 있는 법.
사비강은 그 작은 허점도 남기기 싫다는 뜻이었다.
“흑귀도 여기 남는다.”
[알겠습니다.]
흑귀의 전음이 들려왔다.
추량이 굳은 표정으로 복면을 뒤집어썼다.
“그럼, 이제 들어가죠.”
사비강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좋아, 넌 이제부터 망을 본다.”
“알겠습… 예? 뭐라고요?”
“밖에서 백호당으로 들어오는 자가 없는지 망을 보도록 한다.”
추량이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도 같이 잠입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아닌데?”
“하아. 제가 꼭 필요하다면서요? 중요한 임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추량이 한숨을 내쉬자, 사비강이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중요한 임무다. 만약 백호당주가 생각보다 일찍 오거나, 내가 늦게 나오면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게 네 역할이다.”
“예엑? 시간을 어떻게 끕니까?”
“그건 너의 재능에 달렸겠지.”
재능. 재능. 재능.
사비강이 말한 그 단어가 추량의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았다.
“널 믿고 가마. 가자, 염.”
“예!”
두 사람이 나뭇가지를 차고는 순식간에 백호당 지붕 위로 날아갔다.
추량은 그저 허망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