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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21화 (221/670)

# 221

귀환 마교관

221화

“죽을 뻔했습니다.”

추량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의 온몸은 잔뜩 젖어 있었다.

사비강이 추량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래도 두 번은 막았잖아?”

“이래서야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아니야. 그 정도면 충분해. 어차피 한두 번 공격을 막아낼 정도의 시간만 벌어 주면 되는 거다. 그게 호신위 역할이지.”

“아닙니다. 아무래도 저는 피해만 끼칠 것 같습니다. 역시 저는 호신위에 어울리지 않….”

“전혀. 오늘은 아주 훌륭했다니까.”

“아니라고요! 전 호신위로서의 자격이 없다고요! 오히려 사부님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니까요!”

“글쎄,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사부님! 사부님이 절 너무 신뢰하시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제가 막은 것은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는 오늘부로 호신위를 그만 두….”

“맞을래?”

사비강의 표정이 서늘하게 식었다.

추량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결국 그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사부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정말 죽을 뻔했다고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호신위라니요.”

“괜찮아. 원래 그게 호신위의 운명이니까.”

“괜찮다는 설명이 전혀 안 되잖아욧!”

추량이 발끈해서 소리쳤지만 사비강은 피식 웃어 버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했다.

결국 추량도 자포자기했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옆에 다가섰다.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정말 그들을 괴물로 만드실 겁니까?”

“그래야지. 괴물보다 더한 괴물로 만들어야지.”

“그것도 전부 다 그때를 위함이겠지요?”

지하 수련실에서 마계 침공에 대한 이야기를 대략이나마 전해들은 추량이었다.

아직도 선뜻 믿어지지 않지만, 눈앞에서 마법을 보고 나니 마냥 불신하기도 어려웠다.

추량이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들을 괴물로 만들어 봐야 혈사련만 좋은 일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대로라면 그럴 지도. 그래서 혈사련의 요직을 차지할 생각이다.”

“예에? 혈사련에서도요?”

추량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이미 정도맹에서도 ‘감찰총국주’라는 요직에 임명되었던 사비강이 아니던가?

한데 정도맹의 무인이 혈사련에서 요직을 차지한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만약 정도맹이 혈사련을 무너뜨렸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강호일통을 하더라도 사파를 완전히 흡수할 수는 없을 테니, 이들을 감시하는 차원에서 정도맹의 무인이 요직을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세력이 팽팽하게 공존하는 상황에서 혈사련에서도 요직을 차지하겠다니.

정말 황당한 이야기임에도 왠지 사비강이라면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추량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직이라면 어떤 자리를 노리시는 겁니까?”

“왜 비어 있는 자리가 있잖아?”

“설마…! 주작을 차지하시려는 겁니까?”

혈사련에서 비어 있는 요직이라면 역시 주작당주가 아니겠는가?

주작당주 악천괴가 사망하고 나서 주작당의 주인은 아직까지도 공석이었다.

악천괴를 대신할 만한 인재를 찾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련주가 악천괴를 기리는 의미로 당분간 주작당주의 자리를 공석으로 두겠노라 공표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혈사련 내의 알력 다툼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사비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하. 그럼 그렇죠. 갑자기 주작당주의 자리를 노린다니. 말도 안 되지. 제가 너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를 했….”

“청룡이다. 나는 청룡 자리를 원한다.”

“아하, 청룡 자리를 원… 예에에엑?”

추량이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그가 얼른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청룡이라뇨?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혈사련에는 청룡당이 없잖아요.”

“없지.”

사비강이 순순히 인정했다.

추량의 말은 사실이었다.

혈사련에는 청룡을 나타내는 직위가 어디에도 없다.

백호당과 주작당, 현무당은 있다.

하지만 청룡당만은 없다.

그것은 혈사련주가 흑룡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한 조직 내에서 두 마리의 용이 공존할 수는 없는 법.

때문에 련주의 아래로는 백호당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청룡당이라니?’

추량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보는데, 사비강이 그를 스윽 돌아보았다.

“없다고 해서 만들지 못할 것도 없잖아?”

“하하… 그렇긴 하지만….”

추량이 연신 입매를 씰룩였다.

불길한 예감이 음습해왔다.

왠지 앞으로 고생길이 훤할 것 같다는 건 자신만의 착각일까?

‘이거… 내가 사부를 잘못 선택한 것 아냐?’

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비강이 추량을 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봐?”

“아, 아뇨. 그냥….”

“네가 생각해도 완전 멋있어? 사부 하나는 정말 잘 고른 것 같지?”

“하하… 하… 그럼요. 저는 정말 복이 많은 놈인가 봅니다.”

추량이 애써 웃음 지었다.

‘죽을 복이요….’

물론 그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

홍염이 사비강에게 명부를 내밀었다.

“말씀하신 자들에 대한 상세 보고입니다.”

“수고했어.”

사비강이 명부를 펼쳐들고 내용을 죽 훑어보았다.

어느 순간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윤천회(尹天懷), 이자에 대해서는 딱히 조사된 게 없는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이 없는 법이지요. 그런데 처음 봤습니다. 그런 자가 있다는 것을.”

“들어갈 틈이 없다는 건가?”

“저희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딱히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좀 더 조사해 보겠습니다.”

홍염이 깍듯하게 대답하자, 사비강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추량이 끼어들며 물었다.

“그런데 사부님, 이자들은 다 뭡니까?”

“언젠간 내게 도움이 될 수족들이지.”

“도움이라면….”

“말했잖아. 요직을 원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하나씩 포섭해야지.”

사비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여기부터 찾아가 볼까? 일단 제일 먼저 해결될 것 같군.”

사비강이 손가락으로 짚은 명단.

거기에는 ‘장후겸(莊後謙)’이라는 이름 석 자와 ‘북천각주(北天閣主)’라는 직책이 적혀 있었다.

**

장후겸이 주먹을 꽉 말아 쥐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객잔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수하들을 보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한편, 조금 전까지 장후겸이 앉아서 식사를 하던 탁자에는 젊은 사내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술병을 들이켜고는 장후겸에게 시선을 던졌다.

“장 각주님. 그렇게 서 계시지만 말고 이리 와서 앉으시지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장후겸이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젊은 사내가 눈살을 슬쩍 구겼다.

동시에 사내 주위로 시립해 있는 무인들이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댔다.

젊은 사내가 목을 우두둑 꺾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후겸이 움찔거리고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제기랄! 이 새파란 애송이한테!’

생각할수록 분하고 괘씸했다.

자신이 누군가?

명색이 혈사련의 북천각주가 아니던가?

한데 저렇듯 새파랗게 젊은 녀석에게 이런 멸시를 받다니!

물론 상대방의 배후도 만만치는 않다.

흑운방(黑雲幇)의 소방주 주기현(主氣現).

흑운방은 혈사련을 지탱하는 방파 중 한 곳이다.

때문에 장후겸이 제아무리 북천각주의 신분이라고 하더라도 흑운방의 소방주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빚을 지시고도 이렇게 큰 소리를 치면 되겠습니까?”

“끄음.”

장후겸이 어금니를 꾹 씹었다.

문제는 이 지긋지긋한 빚이다.

무려 천만 냥!

몇 개월 전, 생사투장에서 주기현과 내기를 했다.

처음에는 몇 푼으로 시작했던 액수가 점점 불어나더니, 나중에 정신을 차렸을 땐 무려 팔백팔십만 냥이 되어 있었다.

여기에 이자가 붙고 붙어서 이제는 천만 냥까지 오른 것.

빚을 진 그날부터 주기현은 악귀처럼 장후겸을 괴롭혀댔다.

저지른 짓이 있으니 장후겸 역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돈 문제는 부모형제도 간섭할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북천각주의 신분이 무색할 만큼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리고 오늘, 저 악귀 같은 놈이 회식을 하는 자리까지 나타나 이런 행패를 부린 것이다.

“끄음.”

장후겸이 희미한 신음을 뱉다가 입을 열었다.

“시간을 좀 더 주시게.”

“이거 참, 저도 인내심의 한계가 있습니다, 각주님.”

“최대한 빨리 갚겠네.”

“벌써 사흘이나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객잔에서 수하들과 밥 먹을 돈은 있으면서, 빚진 돈 갚을 여력은 없다는 겁니까?”

주기현이 주변을 휘 둘러보며 비아냥거렸다.

장후겸이 치욕을 참아내며 말했다.

“석 달 만에 가진 회식이었을 뿐이네.”

“휴우, 각주님.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십니까?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우리 어렵게 가지 말자고요. 이만하면 각주님도 눈치를 채셨을 것 같은데….”

“…….”

장후겸이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여기서 더 입을 열었다가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기에.

한데 주기현의 입을 다물게 하지는 못했다.

“그나저나 장 소저는 요즘 잘 지내지요?”

장후겸의 표정이 흠칫거렸다.

‘이놈이 또 내 딸을…!’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참으며 씹어뱉듯이 답했다.

“잘… 지내고 있네.”

주기현의 표정에 음흉함이 물들었다.

“장 소저를 만난 지도 참 오래됐군요. 뭐, 혹시라도 장 소저가 또 직접 찾아와서 효심을 발휘해 성의를 보인다면 각주님이 진 빚을 어느 정도….”

결국 장후겸이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 들었다.

“이런 개 같은…!”

차앙!

그 순간 주기현의 곁에 서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며 장후겸을 에워쌌다.

차차차차차앙!

섬뜩한 예기가 사방에서 숨 막힐 듯 뿜어져 나왔다.

장후겸이 검을 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치욕과 분노가 뒤엉켜 뱃속에서 들끓는데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자신이 죽고 나면 그 빚을 남은 가족들이 떠안아야 한다.

자고로 빚은 혼백마저 노예로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살벌한 상황 속에서 주기현이 천천히 일어났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 왜 이렇게 상황을 어렵게 만드십니까?”

“내 딸을 더 이상 그 더러운 입에 올리지 마라.”

“아이참, 그럼 돈을 갚으시던가?”

“돈은 갚는다. 하루의 시간을….”

짜악!

순간 주기현이 장후겸의 뺨을 후려쳤다.

주기현의 눈에 핏발이 섰다.

“크익…!”

“각주님. 천만 냥이 동네 개새끼 이름입니까?”

“……!”

“상황 파악을 못하시는 것 같은데… 휴우, 그럼 이렇게 하지요.”

“무슨 말을 하려고?”

“지금 당장 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열 번 이마를 찧으십시오. 그럼 오백만 냥은 까드리지요. 뭐, 하는 것 봐서 백만 냥 더 까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장후겸이 검을 콱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뿐.

그가 꿈쩍도 하지 않자, 주기현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돌아섰다.

“나참,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닐 텐데. 이럴 땐 정파 새끼들 흉내라도 내는 건가? 뭐, 할 수 없죠. 손 좀 봐드려.”

말을 마친 그가 휘적휘적 걸어갔다.

이에 흑운방 무인들이 장후겸에게 다가서는데,

“잠깐… 기다려라.”

장후겸의 떨리는 음성이 주기현을 붙들었다.

주기현이 돌아서자, 장후겸이 천천히 무릎을 꿇어 갔다.

그의 표정은 이미 흙이라도 씹은 것만 같았다.

‘참자, 참아야 한다!’

한 번의 굴욕으로 빚의 절반을 깔 수만 있다면….

장후겸의 무릎이 바닥에 닿으려는 순간,

탁.

누군가 팔을 붙드는 게 아닌가?

무심결에 돌아보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당신은…?”

기억났다.

정도맹에서 교관으로 왔다던 그 사비강이다.

사비강이 툭 내뱉듯 말했다.

“남자라면 무릎을 함부로 꿇는 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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