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
귀환 마교관
220화
투콰앙!
창문이 박살나면서 맹가숙이 튀어 나왔다.
“크아아악!”
연무장 바닥에 떨어진 맹가숙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얼른 연못으로 달려갔다.
그의 머리에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첨벙!
잠시 후 맹가숙이 천천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그의 머리카락은 불에 홀라당 타 버려서 벌겋게 익은 살결만 드러나 있었다.
온몸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런 개 같은 교관이…!”
죽여 달라기에 죽여 버리려고 숙소를 암습했다.
한데 기관 장치가 있을 줄이야!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그만한 수준의 기관 장치를 심어 놓을 수 있었을까?
물론, 이는 마법의 결계였지만, 맹가숙으로서는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젠장할!”
첨벙!
주먹으로 수면을 거칠게 때린 맹가숙이 벌떡 일어나서는 연못가로 나왔다.
그때,
“우아아아악!”
“크아악!”
다시 비명을 지르며 사람들이 튕겨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진조영을 비롯한 동기들이었다.
“헛!”
아슬아슬하게 진조영을 피했지만, 연이어 날아드는 조원들을 모두 피하지는 못했다.
결국 조원 하나가 맹가숙과 부딪치면서 그대로 연못에 다시 빠지고 말았다.
몇몇 이는 몸 여기저기에 뾰족한 침이 박힌 상태였고, 몇몇은 맹가숙처럼 불에 잔뜩 그슬린 모습이었다.
진조영은 온몸을 오들오들 떨며 사비강이 머무는 숙소를 바라보다가 몸을 휙 돌렸다.
“젠장! 다시는 안 들어가!”
“나도 밖에서만 노리겠어!”
조원들이 얼른 몸을 빼내자, 맹가숙이 당황한 표정으로 불렀다.
“이 멍청한 것들아! 겨우 이 정도로 쫄아!”
“흥! 영감 꼬락서니나 제대로 보고 말하라고!”
그 말에 맹가숙이 수면에 비친 얼굴을 잠시 보았다.
벌겋게 익은 머리가 유독 반질거렸다.
“씨벌….”
맹가숙이 욕지거리를 씹어 뱉고는 사비강의 숙소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두고 보쇼. 내 언젠간 죽여 버릴 테니까!”
그가 입술을 쿡 씹고는 담벼락 밖으로 몸을 날렸다.
**
첫눈에 반했다.
이렇게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 사람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
추량은 조금씩 멀어져 가는 여인에게 달려갔다.
생각처럼 발이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과감히 손을 얹었다.
“저기! 첫눈에 반했습니다!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인생 최초의 고백!
가슴이 마구 뛰었다.
마침내 여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당신에게 내 정열과 사랑을 바치… 으응?”
추량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신을 향해 돌아보며 미소 짓는 여인… 아니, 사내.
“사부…님?”
사비강이 씨익 웃더니 느닷없이 뺨을 후려쳐 왔다.
철썩!
“으악!”
철썩! 철썩!
“아얏! 사, 사부님…! 그만…!”
**
철썩! 철썩!
“으아악! 그만 좀 때리라고요!”
추량이 벌떡 일어나면서 고함을 내질렀다.
그제야 사비강이 손찌검을 멈추고는 일어났다.
“깼냐?”
“아우우.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제자가 수련에 몰두하다가 쓰러졌는데, 이렇게 마구잡이로 두드려 패서 깨우시다니….”
추량이 울상을 짓자 사비강이 코웃음을 쳤다.
“쓰러진 것 치고는 코까지 골면서 잘도 처자더구나.”
“끄음. 그나저나 제가 얼마나 쓰러져 있었던 거죠?”
부스스 몸을 일으킨 추량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지하 수련실이었다.
사비강이 툭 내뱉듯 말했다.
“하루를 꼬박 쓰러져 있었다.”
“예에에? 설, 설마요! 거짓말이죠?”
“그래, 거짓말이다.”
추량이 멍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너무 순순히 인정하시니까 오히려 의심되네. 혹시 화나신 건가?’
엉거주춤 일어난 추량이 허리를 뒤틀며 몸을 풀었다.
그가 다부진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더니 또박또박 말을 뱉어냈다.
“자, 다시 시작해 주십시오. 저는 아직 더 수련할 수 있습니다.”
“됐다. 오늘은 무리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사비강이 말을 마치더니 저벅저벅 걸어갔다.
추량이 얼른 소리쳤다.
“아닙니다! 더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충분히 할 만큼 했어.”
“저어… 혹시 화 나신 건 아니죠?”
추량이 얼른 쫓아가며 물었다.
사비강이 힐끔 보았다.
“화? 내가? 왜?”
“제가 제대로 버티지도 못하고 일찍 쓰러지는 바람에….”
“후후. 넌 충분히 버텼어. 내 예상보다 두 시진을 더 버텨냈지.”
추량의 입매가 슬그머니 찢어졌다.
두 시진이나 더 버텨냈다고?
“으아! 그게 정말입니까아?”
“그래, 나도 기쁘다. 내 호위무사가 강해질수록 좋으니까.”
“호위무사요? 호위무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추량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사비강과 시선이 마주쳤다.
“에… 설마 저요?”
추량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이 적이고 날 암살하려는 녀석들 천지인데, 네가 날 지켜야 할 게 아니냐?”
“제, 제가요? 제가 사부님을 지킨다고요?”
추량이 눈을 휘둥그레 뜨자,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그래. 그러니까 걱정 마라. 난 널 놔두고 먼저 죽을 일이 없을 테니까. 적어도 나보단 네가 먼저 죽을 테니까.”
“하하… 하… 하…!”
추량이 입매를 파르르 떨며 애써 웃음 지었다.
**
밤바람이 서늘하게 불어 왔다.
사비강과 추량은 연무장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정자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마나와 마법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끝에 추량이 넌지시 사비강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사부님. 오늘 하신 말씀이 진심은 아니죠?”
“무슨 말?”
“제가 사부님의 호위무사라고 하신… 하하하! 생각해 보니 정말 그건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저 같은 게 어떻게 감히 사부님을 지켜….”
“진심인데. 앞으로 넌 목숨을 걸고 날 지켜라.”
“하아… 그럼 신생조 수업 중에 하신 말씀은요?”
“신생조 수업중이라…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생도들에게 암살 임무를 내리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진심인데?”
추량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너무 막 나가시는 것 아닙니까? 그러다가 그 대책 없는 녀석들이 죽자고 달려들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괜찮아. 그 정도는.”
“헐. 도대체 어쩜 그렇게 자신만만하십니까?”
“나한텐… 네가 있잖아.”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평소라면 그 말 한 마디에 엄청난 감동을 받았을 추량이었지만, 어쩐지 지금만큼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듯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난 너를 믿는다. 내가 위험해지면 네가 언제든 나설 거라는 것을.”
사비강의 표정이 전에 없이 진중해졌다.
추량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사부님… 그렇게 절 믿어 주신다니 제가 정말 감동…이라도 할 줄 알았습니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요! 사방이 암살자로 득실거리는 혈사련 한복판에서 아직 한창 젊은 저를…! 커헙!”
추량은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느닷없이 사비강이 그의 목덜미를 잡더니 휙 돌려세우며 앞으로 내민 탓이다.
“막아라.”
찰나지간,
쒸이이이잇!
허공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비수 세 자루가 정면에서 날아드는 게 아닌가?
“허억!”
깜짝 놀란 추량이 반사적으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며 휘둘렀다.
따다당!
세 자루의 비수가 모두 그의 검신에 튕겨 날아갔다.
‘막, 막았다…!’
꼼짝없이 죽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한데 몸이 저절로 반응하면서 거짓말처럼 비수를 막아냈다.
혹시 이것도 오늘 수련한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의식이 깨어난 이후로 줄곧 몸이 가볍다고 느꼈다.
마침 뒤에서 사비강이 불쑥 말했다.
“봐, 하면 되잖아.”
뒤늦게 발끈 화가 치밀어서 휙 돌아섰다.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요!”
“그런데 안 죽었잖아.”
“그런 말도 안 되는…!”
이번에도 추량은 말을 마저 끝내지 못했다.
팍!
갑자기 사비강이 그의 가슴을 손으로 밀어낸 것이다.
“우악!”
뒷걸음질을 치던 추량이 정자 난간에 다리가 걸리면서 그대로 연못으로 풍덩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다시 허공을 가르며 비수가 날아들었다.
쒸에엑! 쒸엑! 쒸에에엑!
추량이 서 있던 자리를 지나 곧장 사비강의 심장으로 향한 비수!
찰나,
쑤아아아아앙!
희미한 막이 생성되면서 세 자루의 비수가 일제히 튕겨 나갔다.
따다당!
뒤이어,
슈슈슈슈슈슉!
장발의 사내가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정자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수면검귀 옹기승이었다.
순식간에 정자 위로 오른 그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검을 불쑥 뻗어 냈다.
쒸에에에엑!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움직임!
하지만 사비강이 한 걸음 물러나며 몸을 가볍게 뒤틀자, 그의 검신이 아슬아슬하게 가슴을 스치며 지나갔다.
스핏!
사비강이 손가락으로 옹기승의 검신을 튕겼다.
따앙!
순간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인 옹기승이 그대로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검을 횡으로 베어 들어갔다.
툭!
사비강이 난간을 밟고 정자 지붕 위로 올라섰다.
뒤이어,
콰앙!
옹기승이 눈을 감은 채로 지붕을 뚫으며 솟구쳤다.
파편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는 사이 옹기승은 그대로 사비강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질러 왔다.
따앙!
이번에는 사비강이 발을 들어 올려 옹기승의 검신을 걷어찼다.
휘청!
옹기승이 중심을 잃은 사이,
슈슈슛!
사비강이 그대로 옹기승의 옆으로 파고들면서 일장을 뻗어 냈다.
퍼엉!
“크어억!”
옹기승이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연무장 마당을 나뒹굴었다.
사비강이 정자 지붕에서 뛰어내리고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면검귀가 아니라 몽유검귀(夢遊劍鬼)라고 해야겠어. 이래서야 원, 자는 건지, 잠꼬대인지도 모르겠잖아.”
그의 비아냥거림에 수면검귀가 콧잔등을 팍 구겼다.
그가 바닥을 차고 다시 달려드는 찰나,
츄아아아!
연못에 빠졌던 추량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솟구쳐 올랐다.
“사부님, 제가 막아…!”
스카앙!
쿠당탕탕! 풍덩!
수면검귀의 일검을 막아낸 추량은 그대로 튕겨 나가면서 연못에 다시 빠지고 말았다.
마침내 수면검귀가 사비강 코앞까지 다다른 순간,
쉬쉬쉬쉿!
사비강의 배후에서는 또 다른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쒸에에엑!
순간 사비강이 몸을 낮게 숙이더니 그대로 옹기승의 품으로 파고들면서 손목을 낚아챘다.
타닷!
뒤이어 그가 그대로 관성을 이용해서 옹기승의 검신을 뒤쪽으로 밀어 보내자,
“헛!”
배후에서 달려들던 유송령이 헛바람을 삼키며 얼른 옹기승의 검신을 쳐냈다.
까앙!
하마터면 옹기승과 유송령이 서로를 찌를 뻔한 상황.
두 사람이 가까스로 화를 모면하자, 이번에는 사비강이 양팔을 펼치며 쌍장을 내질렀다.
퍼펑!
“크아악!”
“꺄아악!”
두 사람이 그대로 튕겨 나가면서 바닥을 굴렀다.
사비강이 먼저 옹기승을 향해 말했다.
“힘이 너무 들어갔어. 지금의 절반 정도로 낮춰라. 특히 손목과 어깨를 부드럽게.”
“……!”
옹기승이 흠칫거리는 사이, 사비강은 유송령에게 말을 던졌다.
“조금 전의 일격에서는 다리와 도의 각도가 더 좁았어야 해. 동작이 커지는 만큼 실수도 커지는 법이지.”
“……!”
유송령이 입을 척 벌리고 사비강을 보았다.
암습을 막아내고 훈계까지 할 줄이야.
사비강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기본 중의 기본은….”
슈우우우웃!
순간 그림자 하나가 사비강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비수를 날려대던 도비천이 정자 지붕 위에서 뛰어내린 것.
그때 사비강이 불쑥 손을 내밀어 도비천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바닥에 메다꽂았다.
꽈다아앙!
“…기척을 들키지 않는 거지. 비도술이 특기인 녀석이라면 특히 최후의 순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말았어야 하고.”
사비강이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진 도비천을 보며 무심한 듯 중얼거렸다.
“크익! 제기랄!”
도비천이 신음을 뱉으면서 얼른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가 두 자루의 도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경계를 하자,
“암살이란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법. 그렇게 손이 산만해서야 제대로 공격이 되겠어?”
“제길! 어차피 들킨 것 아닙니까?”
타닷!
순간 도비천이 바닥을 차고는 곧장 몸을 날렸다.
쒸잇! 쒸이잇!
두 자루의 비도가 허공을 먼저 갈랐다.
동시에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뽑아 들면서 날아드는 비도를 쳐냈다.
따당!
쒸엑! 쒸에엑!
도비천이 얼른 허리를 숙여 튕겨 나간 비도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하지만 그 비도 두 자루가 곧장 유송령과 옹기승에게 향하는 것이 아닌가?
“헙!”
“엇!”
까앙!
피츗!
옹기승은 얼른 비도를 쳐냈지만, 유송령은 미처 피하지 못해 어깨를 살짝 베이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사비강은 자신에게 달려들던 도비천에게 주먹을 꽂아 넣고 있었다.
퍼어억!
“쿠아아악!”
쿠당탕탕탕!
한참을 굴러간 도비천이 유송령과 옹기승 곁에 멈췄다.
사비강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급함이 생기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달려들면 십중팔구 죽는다. 연습을 실전처럼 해라.”
“치잇!”
결국 세 사람은 얼른 몸을 일으키고는 담벼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사비강이 입매를 치켜 올리고는 소리쳤다.
“아, 갈 땐 가더라도 부서진 정자는 너희들 돈으로 고쳐야 한다. 안 그러면 내가 수금하러 갈 테니까.”
순간 움찔 거렸던 세 사람이 이내 담벼락을 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밤중에 일어난 신생조의 첫 암살 시도는 그렇게 실패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