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귀환 마교관
216화
“당신의 계획? 클클. 재미있군. 그래서 그 계획은 뭐요?”
“너희들은 지금부터 죽도록 두드려 맞는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지 마라. 곧 알게 될 테니까. ‘저 여인들은 어쩔 거냐’고도 묻지 마라. 모두 살 테니까. 그냥 너희들은 뒤지게 처맞는 거야. 그러고 나서 내게 무릎을 꿇고 제발 용서해 주세요, 하고 말하는 거지. 그 다음에는….”
“다음에는?”
“마음의 소리라는 것을 쓰게 될 거다.”
“마음의 소리? 그게 뭔 말이오?”
“그것도 곧 알게 될 거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소리를 적게 되는 거지. 하지만 나도 여기까지 가지 않을 방법 하나를 알려 주마.”
“재미있군. 계속해 보시오. 클클.”
“지금 당장 저 두 여자를 풀어 주고, 개처럼 엎드려서 용서를 빌어라. 그럼 이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눈감아 주마. 물론 내 수업에도 참여해야 하고.”
“뭐? 쿡, 크하하하하!”
맹가숙이 앙천대소를 터뜨리더니 뚝 그치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정말 듣던 대로 멍청한 작자군. 다들 들었지? 이자가 여인들을 전부 죽이란다.”
“크크크. 그렇다고 지금 바로 죽이면 재미가 없잖아? 어이, 교관 나리. 당신이 그렇게 강하면 한 번 붙어나 볼까? 우리 모두하고.”
도비천이 비수를 혀로 핥으며 말했다.
사비강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결국 죽도록 두드려 맞는 쪽을 택한 거냐?”
“크하하! 이 작자 웃기는 사람일세. 정말 재미있어. 그럼 어디 한 번 놀아 보자고! 혹시 알아? 우리 생각이 또 바뀌게 될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쒸에에엑!
비수가 허공을 가르며 사비강에게 날아갔다.
따당!
순간 실드가 발현되면서 비수가 튕겨 나갔다.
맹가숙의 눈이 반짝였다.
‘호오, 호신강기인가? 하지만 고작 이런 상황에서 호신강기를? 기선 제압이라도 할 생각인가? 그렇다면 방법이 틀렸다!’
파앙!
맹가숙이 바닥을 차고 쏜살 같이 날아갔다.
뒤를 이어 진조영도 바닥을 찼다.
타다다닷!
순식간에 사비강 앞에 다다른 맹가숙이 구절창을 내질렀다.
쒸이이이잉!
스팟!
사비강의 가슴팍을 스치며 지나간 구절창.
그런데,
철컥, 철컥, 철컥, 철컥…!
갑자기 창대가 꺾이는가 싶더니 아홉 마디로 구분된 창이 그대로 사비강을 향해 몸을 비트는 것이 아닌가?
쉬이이잇!
스까앙!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뽑아 들면서 구절창을 쳐냈다.
투다다다닥!
구절창이 튕겨 나가는 것과 동시에 다시 꼿꼿하게 이어지면서 창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편, 그 틈을 이용해서 진조영이 사비강의 복부를 향해 검을 내질러 갔다.
‘됐다!’
그의 입매가 히죽 올라갔다.
그런데,
쑤우웅!
‘어라?’
뭔가 걸리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눈앞에 서 있던 사비강이 신기루처럼 스르르 흩어지며 사라졌다.
곧이어 뒤통수를 때리는 목소리.
“여기다.”
“……!”
진조영이 돌아서는 순간,
빠악!
쿠당탕탕탕!
주먹에 얻어맞은 진조영이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이런 빌어먹을 교관 새끼가!”
도비천이 발끈해서 소리치며 나서려는데,
“어라?”
그가 두 눈을 끔뻑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맹가숙도 마찬가지.
“끄음. 이건 또 뭔 사술이야?”
놀랍게도 사비강이 한 명이 아니었다.
동서남북으로 네 명의 사비강이 서 있었다.
사실 이는 미러 이미지(Mirror Image)라는 마법이었는데, 일종의 분신술이었다.
다만, 분신 개개가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비강과 똑같이 행동한다.
어쨌거나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맹가숙 무리는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네 명의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제길, 어느 놈이건 상관없어! 다 없애 버려!”
맹가숙이 소리치자 무인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물론, 납치한 여인들 곁을 지키는 무인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타다다닷!
이번에도 제일 먼저 맹가숙이 창을 내질러 갔다.
쑤우웅!
구절창이 파공음을 일으키며 사비강의 가슴을 찔렀다.
하지만 역시 신기루처럼 흩어지며 사비강의 모습이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치익!”
그가 혀를 차면서 휙 돌아서는데,
뻐억!
“크악!”
사비강의 팔꿈치에 얻어맞은 맹가숙이 코피를 터뜨리며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 진조영과 도비천을 비롯한 무인들은 사비강의 분신을 상대하고 있었다.
사실 미러 이미지 마법은 분신들이 사비강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기에 상대하기가 까다롭진 않았다.
“제길! 이놈은 아니야!”
“이것도 아니었어!”
진조영과 도비천은 자신들이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장 맹가숙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다들 동작 그만.”
사비강이 어느새 맹가숙의 목을 움켜쥔 채 서늘하게 뇌까리는 게 아닌가?
“맹 형!”
진조영과 도비천을 비롯한 무인들이 일제히 멈칫거렸다.
도대체 저놈이 언제 저기까지 갔단 말인가?
소문에 이상한 경신법을 사용해서 순간이동처럼 보인다더니, 정말 그렇지 않나?
“크익…!”
맹가숙이 이를 부득 갈고는 몸부림쳤지만, 사비강은 그를 놓지 않았다.
대신 그를 바위로 끌고 가더니 강제로 엎드리게 했다.
“아무 죄도 없는 아녀자를 납치해서 저렇게 매달아놓다니. 벌을 받아야겠지?”
“으윽! 뭐, 뭐하는 짓이냐?”
“계도를 해야지.”
사비강이 히죽 웃더니 베르타스를 뽑아 들고는 맹가숙의 하의를 찢어내 버렸다.
순식간에 아랫도리가 벗겨진 맹가숙이 입에 게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이 개자식! 이거 안 놔!”
“제기랄, 맹 형!”
무리들이 다시 달려들려고 하자,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 이 늙은이가 죽는 꼴 보고 싶어?”
“저 미친 새끼가…!”
무리들은 사비강을 씹어 삼킬 듯이 노려보면서도 어쩌질 못했다.
그러는 사이 맹가숙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노옴! 어디 당해 봐라!’
맹가숙이 손에 쥐고 있던 구절창에 내공을 슬쩍 불어넣었다.
그 순간,
구절창이 갑자기 솟구치면서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철컥, 철컥, 철컥!
순식간에 일어선 구절창이 그대로 사비강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사비강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대로 베르타스를 휘둘러 구절창을 쳐냈다.
까앙!
슈웃, 팍!
“끄아아아아악!”
베르타스에 튕긴 구절창이 그대로 떨어져 내리면서 맹가숙의 어깨를 관통해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위 깊숙이 박히면서 맹가숙이 움직일 수도 없게 됐다.
사비강이 싸늘한 시선으로 맹가숙을 내려다보더니,
“잘못했다고 빌어라.”
“좆 까라! 이 개자식아!”
쉬이이잇, 철썩!
베르타스가 무섭게 떨어져 내리면서 그대로 맹가숙의 엉덩이를 때렸다.
검신의 옆면으로 때린 것이지만, 마나를 섞었기 때문에 맹가숙은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기분이었다.
“흐아아아악! 제기랄! 이 개새끼! 죽여 버린다!”
“아무래도 넌 계도가 잘 안 되는 부류군. 하긴, 너 같은 것들을 계도하는 보람이 크긴 하지.”
쉬이이잇, 철썩!
다시 한 번 볼기짝에 불이 붙었다.
실제로 베르타스에 화염 속성의 마나를 불어넣으면서 검신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크아아악! 죽여 버릴 거야! 이 개새끼! 죽인다고!”
“자, 인질을 바꾸지. 너희들, 이 늙은이를 살리고 싶다면 저 두 여자를 풀어 줘라. 안 그러면 이 노망난 늙은이가 이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르니까.”
사비강의 입매가 길게 찢어졌다.
사비강과 대적하고 있던 무리들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저, 저 자식 정체가 뭐야? 정말로 정도맹에서 온 놈 맞아?’
‘하는 짓은 우리보다 더 하잖아!’
하지만 그들 역시 독하다고 소문난 사파의 무인들이었다.
한낱 죽음이 두려워서 힘에 굴복할 자들이 아니었다.
맹가숙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제기랄! 그 여자들 절대 풀어 주지 마! 난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이 개새끼한테 우리가 어떤 놈들인지 보여주자고! 뭘 구경하고 있어? 어서 이놈을 쳐!”
“거참, 말 많네.”
쉬이이이잇, 철썩!
“크헉! 끄아아아악!”
뼛속까지 아려 오는 고통에 맹가숙은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고통이 작열통이라고 했던가?
현재 그의 엉덩이가 그랬다.
불이 붙지만 않았을 뿐이지, 벌겋게 화상 입은 살점은 흐물흐물 녹아서 떨어지고 있었다.
무리들이 마음을 굳히고는 몸을 날려 왔다.
“맹 형! 조금만 참아 주시오!”
“받아라, 이 개잡놈의 새끼야!”
가장 먼저 진조영과 도비천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푸욱!
“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소리와 함께 그들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사비강이 사정없이 베르타스를 내려찍어 맹가숙의 등짝을 찍어 버린 것이다.
맹가숙의 등을 관통한 베르타스는 그대로 바위까지 깊숙이 뚫어 버렸다.
꿀럭꿀럭.
베르타스는 연신 맹가숙의 피를 흡수해 갔다.
진조영과 도비천이 퀭한 시선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이런 미친…! 진짜로 맹 형을 죽일 생각이냐?”
“왜? 그럼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여긴 혈사련 구역이라고!”
“그래서?”
“그래서라니….”
두 사람이 멍하니 중얼거리는데, 맹가숙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제길! 이 미친놈하고는 말을 섞을 필요도 없어! 지금 당장 저 두 년을 죽여 버려!”
최후의 수단이었다.
자신이야 죽든 말든 상관없다.
이렇게 된 이상 놈을 곤란하게 만들 일을 저지르고 볼 생각이었다.
마지막 내공을 끌어올려 고함을 내질렀더니 의식마저 가물가물해진다.
마침내 나뭇가지 위에 있던 무인 두 명이 각각 살기를 피워 올리면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위기를 느낀 것인지, 자루에 담긴 여인들이 몸부림을 치면서 절규했다.
“아아악! 살려 주세요! 제발! 우린 아무 잘못도 없다고요!”
맹가숙이 게슴츠레해진 눈으로 사비강을 올려다보더니 히죽 웃었다.
“봤지? 이게 다 네가 벌인 짓이다. 썩을 새끼야.”
그 말을 끝으로 두 명의 무인이 여인들을 향해 단검을 내지르려는데,
스스스스스스슥…!
사방에서 숨 막힐 것 같은 살기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뭐, 뭐야?’
노골적인 살기 때문에 나무 위의 두 무인은 물론, 사비강과 대척하고 있던 무인들 모두 움찔 떨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내 수풀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시커먼 그림자.
그들을 확인한 무리들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다.
“이, 이자들이 왜…?”
도비천이 더듬거리는 목소리를 쥐어짰다.
숲속에서 모습을 나타낸 그림자들의 가슴에는 검은 글씨로 ‘살’이라는 글자가 수 놓여 있었다.
‘살막이 어째서!’
의식이 가물가물 흐려지던 맹가숙조차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살막이 어떤 곳인가?
꿈에서도 만나기 싫은 조직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살막이리라.
맹가숙의 눈동자가 돌아갔다.
‘설마 사비강을 죽이려고 온 건가?’
그런 생각이 떠오른 건 다른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 중에서는 살막이 노릴 만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필시 사비강을 노린 것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복면인 한 명이 사비강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이쯤 되자 맹가숙이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킬킬킬킬! 운명이 참으로 얄궂구나! 하필 살막이 노리다니! 네놈은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구나! 어디 한 번 더 지랄해…!”
“주군, 하명하십시오!”
맹가숙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순간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주군…이라니? 지금 누굴 보고 하는 소리야?’
마치 그 생각에 대한 대답을 하듯,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막주는 오지 않은 모양이군. 하긴 껄끄럽겠지. 우선 여기 있는 개망나니들부터 한곳에 모아. 계도를 해야겠어.”
“존명!”
대답과 동시에 검은 물결이 맹가숙 무리들을 향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