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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52화 (152/670)

# 152

귀환 마교관

152화

감찰총국의 제 일 내실.

스물한 명의 생도들이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책상 위에는 두터운 서류더미가 놓여 있었다.

야트막한 단상에 오른 사비강이 생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제 들어서 알겠지만, 너희들은 아직 정식 감찰대원이라 할 수 없다. 검증 절차가 남아 있어. 기간은 앞으로 열흘이다. 그 안에 외원에서 공금을 횡령하고 고아를 살해한 조직을 찾아내야 해.”

“헐! 정말 그런 조직이 있습니까?”

염자량이 놀란 표정으로 묻자, 사비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디까지나 설정이다. 너희들은 그 설정 안에서 범행 조직을 색출해내는 임무를 맡는 것이다.”

사비강이 대략적인 설명을 해준 다음 각자의 책상 위에 올려 둔 서류더미를 가리켰다.

“외원에 속한 모든 건물의 회계 장부다. 지난 한 달치만 추려낸 것이다. 확인해 보고 이상한 점이 있는지 살펴보아라. 의심스러운 조직을 찾아내서 내게 보고해라. 이것이 첫째 임무다.”

말을 마친 사비강이 팔짱을 끼고는 의자에 앉았다.

생도들은 곧바로 서류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몇몇 이들은 앞에 비치되어 있는 주판을 가져가서 계산에 이용했다.

마치 필기시험을 치르는 듯한 분위기.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주의력이 흐트러지고 두런거리는 대화 소리가 들려 왔다.

제일 먼저 난색을 표한 사람은 곡보옥이었다.

그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소리쳤다.

“아오! 진짜 머리가 지끈거린다! 난 숫자에 약한데. 쳇! 차라리 힘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요.”

그의 말에 몇몇 생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염자량 역시 그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그 역시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온통 숫자만 보고 있으려니 주화입마에 걸릴 것만 같습니다. 속이 메스껍고 두통이 시작됐습니다. 게다가 머리가 어지러운 것이 집중도 안 되고….”

“그럼 이리와라. 내가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특별히 안마를 해줄 테니.”

“아닙니다. 갑자기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염자량의 넉살에 다시 생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중에도 사비강은 생도들의 면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역시 이런 일에는 연우경과 목단화인가?’

두 사람은 사비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판부터 챙겨 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리에서 엉덩이 한 번 들썩이지 않고 집중하고 있었다.

촤라라라락.

마침 계산을 끝낸 연우경이 엄지와 검지로 주판을 재정비하고는 다음 장을 넘겼다.

‘이번엔 천향루(天香樓)구나.’

탁탁탁. 탁탁.

연우경은 빠르게 주판을 튕기며 계산을 이어 갔다.

그러다가 멈칫하고는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보았다.

확실히 약간의 오차가 있다.

‘혹시 여기가?’

그는 또 한 번 계산을 마친 다음, 천향루의 서류를 따로 빼두었다.

우선은 의심 후보다.

“후유!”

워낙 집중을 한 탓인지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소매로 슥 닦아낸 그가 지금까지 처리한 서류들을 훑어보았다.

대략 절반 정도를 처리했다.

‘좋아, 이대로면 내가 가장 빨리 끝낼 수도 있겠다.’

그는 시선을 힐끔 돌려서 목단화를 보았다.

그녀의 속도가 자신과 비슷했다.

‘역시 단화도 빠르군. 대략 절반 정도 남은 것 같은데….’

이 상태라면 자신이나 목단화 중 한 명이 가장 먼저 보고하게 되리라.

‘질 수 없지!’

연우경은 다시 주판을 고르게 나열한 다음 서류를 보고 빠르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 시진 정도만 더 진행하면 모든 장부를 다 확인할 수 있으리라.

타탁탁. 탁탁. 탁탁탁.

연우경의 손가락이 주판 위를 날아다녔다.

그런데….

“저어… 교관님, 다했습니다.”

내실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손을 들고는 말하는 게 아닌가?

뭐라고? 다 했다고? 뭘?

연우경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생도들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쪽을 돌아보았다.

사비강 역시 마찬가지.

“벌써 다 풀었다고?”

“예.”

사비강을 빤히 바라보며 대꾸하는 사람은 바로 ‘담우기(曇宇氣)’라는 이름의 생도였다.

비교적 평범한 외모에 존재감이 희미한 생도.

애체(眼鏡 : 안경)를 쓴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인 아이.

다만 무공에 대한 재능은 별로 없는지, 지난 육 년간의 수련에서 가장 늦게 절정의 영역에 오른 생도였다.

한데 벌써 장부를 다 훑어봤다고?

사비강의 시선이 담우기의 자리에 놓인 회계 장부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담우기는 주판을 들고 가지도 않았다.

‘오로지 암산으로만 했다는 건가?’

하긴 일단은 두고 볼 일이다.

빨리 풀었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

사비강이 놀란 표정을 지우고는 근엄하게 물었다.

“그래, 말해 봐라. 의심스러운 곳이 있더냐?”

“예, 세 군데가 의심됩니다.”

담우기가 담담하게 말했다.

사비강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세 군데?”

“예, 신화객잔(神花客盞), 통문각(通問閣), 만인당(萬人堂)입니다.”

담우기가 막힘없이 술술 대답하자, 생도들이 동요하며 파바박 서류를 뒤지기 시작했다.

사비강이 슬쩍 눈살을 구기고는 생도들에게 일렀다.

“동요할 것 없다. 우기가 틀린 것일 수도 있으니, 너희들은 너희들대로 계속해서 점검해 보아라. 만약 우기가 놓친 부분이 있거나, 더 수상한 곳이 발견되면 더 큰 공을 세우는 셈이다.”

사비강의 말에 넋을 놓고 있던 연우경과 목단화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경은 서류를 뒤지던 손길을 멈추고는 심호흡을 했다.

‘그래, 맞아. 이렇게 빨리 정답을 알아냈을 리가 없어. 분명 뭔가….’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담우기가 애체를 밀어 올리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찾은 이 세 군데가 가장 수상한 곳입니다. 확실합니다.”

사비강이 눈매를 씰룩였다.

“너 이 새끼… 정말 재수 없지만 좀 마음에 드는데?”

“예?”

“다들 동작 그만.”

사비강의 말에 서류를 뒤지던 생도들이 움직임을 뚝 멈추고는 고개를 들었다.

사비강이 여전히 담우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녀석이 하는 말 들었지? 더 이상 찾아볼 필요 없겠다. 확실하대.”

그러자 연우경이 발끈해서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교관… 아니, 국주님! 우기가 혹시라도 실수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담우기가 먼저 말을 질러 왔다.

“그런 거 없어. 내 계산은 정확해.”

“…라고 하는구나. 역시 그런 건 없다잖아. 실수가 아니라잖아.”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연우경이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평소에는 존재감도 없던 녀석이 어떻게 갑자기…!

하긴 그동안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한 적이 없긴 했다.

“그래도 만에 하나 실수가 있다면….”

연우경이 못내 아쉬운 듯 말하자,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뭐, 좋아. 동료의 실수를 찾아내는 것도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좋은 현상이지. 그런 뜻이라면 더 찾아봐도 좋다. 그리고 너는 나 좀 보자.”

사비강이 담우기의 어깨를 툭 두드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사비강과 담우기가 내실을 빠져나가자 생도들이 그대로 퍼져 버리듯 의자에 등을 기댔다.

“아오오오! 드디어 해방이다.”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그나저나 쟤는 뭐야? 어떻게 저렇게 빨리 푼 거지?”

“그러게. 우리 중에서 무공도 제일 늦게 절정에 오른 녀석 아니었나?”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계산을 저렇게 빨리 할 줄이야. 알고 보면 타고난 기재 아냐?”

생도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연우경은 붓대를 꾹 말아 쥐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말도 안 된다.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그 정도로 완벽하게 했을 리가 없다.

저건 자신감이 아니라, 명백한 자만이다.

객기다.

한 사람의 객기가 조직에 끼치는 악영향은 막대하다.

그런 건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연우경이 서류를 묵묵히 내려다보는 사이, 생도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내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사비강이 그만해도 된다고 말했으니, 더 이상 서류를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만… 갈까….’

연우경이 서류를 정리하려고 손을 뻗는데.

사락.

옆 자리에서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목단화가 주판을 튕기며 서류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었다.

‘그래, 아직 확실하지 않다. 분명 놓친 게 있을 거다!’

연우경은 그대로 다시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

한 시진 반이 꼬박 흘렀다.

탁!

연우경이 마지막 서류 한 장을 탁자에 내팽개치듯 내려 두고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후우우우.”

긴 숨이 토해져 나왔다.

무공을 연마한 것도 아닌데 숨이 차오르고 땀까지 흘렀다.

그만큼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제기랄….”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틀렸다.

아무리 찾아도 그 세 군데 외에는 보이질 않는다.

처음 찾아냈던 천향루는 단순한 표기 오류 정도의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공금 횡령으로 따지기에는 워낙 미미한 차이.

반면 담우기가 발견한 세 곳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물론, 단순하게 보면 틀린 부분이 없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잘 따져서 필요한 것들끼리 대조를 해보면 확실한 구멍이 보인다.

확실히 돈이 샜다.

담우기는 정말로 빠른 시간 내에 그곳을 모두 찾아낸 것이다.

힐끔 옆을 돌아보았다.

목단화가 멍하니 고개를 들고 앞만 보고 있었다.

책상을 보니 서류는 모두 확인한 모양이었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알아냈어?”

“응….”

목단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경이 눈을 빛냈다.

“어딘데?”

“만인당, 통문각, 신화객잔.”

“그게 뭐야? 거긴 이미 그 녀석이 말한 곳이잖아.”

목단화가 연우경을 힐끔 보았다.

“못 들었어? 그 잘난 기재가 얘기했잖아. 이 세 군데 외에는 없다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그 애 말이 맞았어. 우린 헛짓 한 거야.”

**

최근 겪는 일들은 사비강도 이전 생에 겪어 보지 않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 역시 현재로서는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사비강이 그동안 익힌 무공과 세월의 깊이로 이 정도의 관문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젯밤 이 서류들을 받아들고 나서 사비강은 생도들보다 먼저 꼼꼼하게 훑어보았다.

그리고 수상한 곳으로 추린 곳은 모두 세 군데.

신화객잔과 통문각, 만인당이었다.

생도들 중에 이곳을 세 시진 내에 밝혀낼 수 있는 사람은 연우경이나 목단화가 유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녀석… 참 재미있군.’

순박한 외모에 애체를 쓴 담우기는 천진한 얼굴로 앞에 서 있었다.

주판을 쓰지도 않고 단 한 시진 만에 계산을 끝내고 정답까지 맞힌 녀석이다.

‘이 녀석은 이전 생의 기억에도 없던 놈인데….’

사비강이 집무 책상을 돌아가 앉으며 말했다.

“훌륭하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찾아냈지?”

“제가 빨리… 찾은 겁니까?”

담우기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더욱….

‘재수 없군.’

사비강이 준비해 온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빠르지. 상당히. 그간 이런 부류의 수업을 하지 않아서 너의 능력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이게 능력…인가요?”

“아주 대단한.”

“아… 네.”

담우기는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사비강의 입매가 슬쩍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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