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귀환 마교관
151화
휘이이이잉!
봄바람에 송화 가루가 흩날렸다.
사비강 뒤로 서 있는 스물한 명의 생도들은 저마다 날카로운 기도를 뿜고 있었다.
‘이들이… 정녕 용천관 생도들이란 말인가?’
대연무장에 모인 사람들은 여전히 입을 척 벌린 채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구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달라진 건 그들이 뿜어내는 기도만이 아니다.
외모.
남자 생도들은 어딘지 더 남자다워진 성숙함이 엿보였고, 여자 생도들도 더욱 여성스러워진 성숙함이 보였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생도들은 육 년에 달하는 시간을 수련하며 보냈던 것이기에.
기도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변한 것은 자연스러운 세월의 흔적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성숙한 외모가 구윤을 포함한 수뇌 인사들에게는 그저 낯설게만 느껴졌다.
어쨌거나 출범식이 정식으로 취소되기 전, 사비강과 생도들이 도착한 것만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구윤이 능운파에게 허락을 받은 후 곧바로 출범식이 진행됐다.
등왕패는 못내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능운파가 일장연설을 한 후에 사비강을 정식으로 감찰총국주로 임명했다.
규모가 큰 조직의 새로운 출범을 알리는 행사인 만큼 그 후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되었다.
대략 한 시진 가까이 진행된 행사는 해가 질 무렵에서야 마무리가 됐다.
그 후 사비강과 생도들은 수뇌 인사들과 함께 내원에서 치러지는 연회에 참석했다.
맹주의 측근들은 하나같이 사비강에게 찬사를 쏟아냈다.
포로들을 구출한 사건부터 시작해서, 혈사련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부분까지.
게다가 가장 우려했던 부분인 생도들을 막상 눈으로 보니 안심이 된 것이다.
“정말 사 교관님은 대단하십니다. 그 바쁜 일정 중에도 생도들을 이렇게 훌륭하게 지도하시다니.”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어쩌면 저렇게 번듯한 무인으로 성장시키셨습니까? 사 교관님이 포로들을 구출할 때 생도들과 함께 했다고 하셨는데… 내 오늘 직접 생도들을 만나 보니 과연 그럴 만 하다고 생각되는군요.”
“누가 아니랍니까? 저도 오늘 특목반 생도들의 기도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맹주의 측근들은 침을 튀어 가며 칭찬했다.
듣고만 있던 구윤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포로들을 구할 당시의 생도들은 저 정도의 기도가 아니었다. 지금보다 외모도 훨씬 앳되어 보였고, 기도도 기껏해야 일류 수준에 불과했지. 한데 지난 삼 개월 만에 변한 거야. 대체 어떻게….’
정말이지 수수께끼가 따로 없었다.
도대체 어떤 수련을 했기에 삼 개월의 시간으로 저 정도의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걸까?
‘하긴 그 방법이 뭐가 됐든 상관없는 일이지.’
눈속임만 아니라면 자신으로서는 반길 일이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 무렵, 검영각주 섭청이 껄껄 웃으며 소리쳤다.
“어허, 언제까지 생도라고 부르실 겁니까? 이제는 본 맹의 감찰대원들입니다. 그리고 사 교관이 아니라, 사비강 국주이십니다. 허허허!”
“아, 그렇군요! 이거 참 습관이라는 게 무섭습니다. 앞으로 조심해야겠습니다. 하하!”
사람들이 웃음꽃을 피우는데.
“흥! 아무리 좋은 날이라지만 무인이란 늘 겸양해야 하는 법. 아직 마지막 관문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감찰대원이라고 부르는 건 시기상조가 아니겠소? 그들의 기도가 확실히 범상치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나, 감찰대원으로서의 역량을 평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아니겠소?”
등왕패가 날카롭게 빈틈을 파고들었다.
함박웃음을 짓던 사람들이 멋쩍은 표정으로 술잔을 내려 두었다.
그러자 패천단주 전태수가 얼른 눈치를 살피다가 등왕패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옳은 말씀입니다. 생도들의 기도가 훌륭하다고 하여 감찰대원으로서의 자질 또한 뛰어나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요. 게다가 그들을 감찰대원으로 인정하는 조건이 따로 정해진 이상, 아직은 섣불리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등왕패가 그의 발언에 흡족한 듯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사비강이 미간을 살짝 좁히고는 옆에 앉은 구윤에게 물었다.
“관문이라는 게 뭐요?”
“사 교관… 아니, 사 국주에게도 미리 알려 드리고 싶었으나 연락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마지막 관문이라는 게?”
그러자 등왕패가 사비강을 향해 불쑥 말했다.
“생도들의 자질 검증이오. 적어도 감찰대로서의 자질이 충분한지 확실하게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물론, 그 검증을 통해 우리는 생도들의 무공 수위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감찰대로서의 분석력과 판단력도 확인할 수 있게 될 거요. 그러니 그 검증이 끝날 때까지는 어디까지나 임시 감찰대원일 뿐이지. 한 마디로 정식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란 말이오. 후후.”
사비강이 고개를 돌려 구윤을 바라보았다.
구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감찰대의 구성을 생도들로 하는 것은 맹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모험이니까요. 최소한의 검증 절차를 거쳐야 했지요.”
“흐음.”
사비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기도 했다.
지금 특목반 생도들은 실제 나이가 이미 약관(20세)을 훌쩍 넘었으나, 그러한 사실을 이들이 알 리가 없었다.
그렇다곤 해도 검증 절차에 대해서 강력하게 주장한 쪽은 분명 등왕패이리라.
만약 생도들이 이번 검증에서 실패한다면, 감찰대의 구성원은 필시 등왕패 쪽 인물들로 채워지리라.
이것은 일종의 정치다.
지난 칠십 년이 넘는 인생 동안, 그가 무수히 겪어 보았던 행태들이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오히려 잘 됐소. 제대로 검증을 해야만 뒷말이 없겠지. 검증을 하고도 나중에 자질을 탓하는 인간이 나온다면, 그것이야말로 뭔가 구린 게 있는 쓰레기가 아니겠소?”
“뭣, 쓰레…!”
전태수가 발끈하며 일어서는데, 등왕패가 눈짓을 주며 제지했다.
대신 등왕패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그야 당연한 일. 검증 기간은 앞으로 열흘이오. 그래도 생도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 거요. 앞으로 열흘 동안 감찰대원으로서의 기분을 마음껏 누려 보길.”
그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고는 몸을 돌렸다.
그가 저벅저벅 걸어가는데, 마침 그 앞을 한 명이 우뚝 서서 가로막았다.
유난히 덩치가 큰 남자.
그는 바로 곡보옥이었다.
등왕패가 눈살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뭐야, 이건?’
곡보옥이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등왕패를 향해 말했다.
“감찰대원으로서의 기분을 누리는 게 열흘이 될지, 십 년이 될지는 모를 일이지요.”
“후후. 그런가? 하지만 감찰대가 이렇게 튀는 행동을 해서는 곤란하다네.”
“하나 나설 때는 나서야겠지요.”
“후후. 사 교관이 잘 가르쳤군.”
“사 교관이 아니라, 이제는 국주님이십니다.”
이쯤 되자 등왕패의 표정도 슬며시 일그러졌다.
그가 냉랭하게 바라보자, 곡보옥이 입매를 슬쩍 치켜 올리고는 말했다.
“아마 열흘 보단 십 년에 가까울 겁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긴장을 하셔도 좋고.”
“흥! 네놈 얼굴만큼은 확실히 또래보다 십 년 이상은 삭아 보이는구나.”
등왕패가 코웃음을 치고는 곡보옥을 툭 치고는 걸어갔다.
그가 연회장을 벗어나는 동안에도 곡보옥은 그 자리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능소소가 곡보옥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나….”
“응?”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
곡보옥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능소소를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능소소가 부드럽게 웃으며 곡보옥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물론, 그녀는 부정하지 못했다.
**
툭!
구윤의 집무 책상 위로 묵직한 서류더미가 올려졌다.
마주 서 있던 사비강이 이맛살을 슬쩍 구겼다.
“이게 다 뭐요?”
“지난 한 달간의 회계 장부입니다.”
“한 달간의 회계 장부가 뭐 이리 많소?”
“한 곳이 아닙니다. 본 맹의 외원에 위치한 모든 전각들의 회계 기록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걸 내게 보여주는 이유는?”
“생도들의 검증 절차입니다. 일종의 연극놀이입니다. 무대는 본 맹의 외원. 기간은 열흘.”
“자세히 설명해 보시오.”
사비강의 말에 구윤이 설명을 이어 갔다.
구윤의 설명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외원에서 공금 횡령을 하고 고아를 살해한 조직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설정이었다.
생도들의 자질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으로.
앞으로 열흘 간 감찰총국은 제공된 자료를 바탕으로 정도맹 외원의 모든 전각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야 한다.
“아시겠지만 본 맹의 외원은 무척 넓습니다. 맹의 무인들이 이용하는 객잔이나 다루, 기루도 장내에 있을 정도니까요. 한 마디로 웬만한 마을 정도의 규모라고 보시면 됩니다.”
“공금 횡령은 문서가 있다 치고, 살해범의 단서는 어떤 식으로 제공되오?”
“시체를 찾아야 합니다. 물론, 진짜 시체는 아니지요. 만들어진 겁니다. 이는 감찰대의 수색 능력을 보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용의 조직을 특정한 다음 검거해야겠지요. 단, 범인을 밝혔더라도 열흘이라는 기간 내에 검거하지 못하면 검증에 실패하는 셈이 됩니다.”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결국 이러쿵저러쿵 해도 생도들의 무력을 검증해야겠다는 말이군.”
구윤이 쓴 웃음을 지었다.
“역시 정확히 파악하시는군요. 맞습니다. 감찰총국 신설을 반대하던 쪽에서는 어떻게든 생도들의 무공 수준을 걸고넘어지려고 할 겁니다. 그만큼 이번 시험에서 유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만약 범인을 특정하고도 무력이 약해서 기간 내에 용의자를 검거하지 못한다면….”
“등왕패 당주의 측근들로 감찰대가 새로 구성되겠지.”
“잘 알고 계시는군요. 아, 그리고 이번 검증 절차에서 국주는 어떠한 무공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생도들의 검증 무대가 되어야 할 테니까요.”
“잘 알겠소.”
사비강이 두터운 서류더미를 받아들었다.
“부탁드립니다. 열흘입니다. 시간이 많진 않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걱정 마시오.”
사비강의 말에 구윤이 빙그레 웃었다.
“걱정 안합니다.”
사비강 역시 피식 웃고는 걸어 나갔다.
내실에 홀로 남은 구윤은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미소 지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비령의 전음이었다.
“왠지 우스워서 말이야.”
[무슨 말씀이신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그 말이 무책임하다고만 느꼈지.”
[지금은 아니군요.]
“그래, 지금은 아니다. 그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정말로 걱정이 안 돼.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그 말이 참 좋다.”
[왠지… 알 것 같습니다.]
“너도 느꼈느냐?”
[저는 그에게서 느끼진 않았습니다.]
“하면?”
[군사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제가 그렇게 됩니다. 군사님의 계책은 언제나 완벽했으니까요.]
“하하하! 이제는 제법 입에 발린 소리도 하는구나.”
[진심입니다.]
비령의 목소리가 약간 토라진 듯했다.
구윤은 그저 모른 척하고는 푸근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래, 믿음이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