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50화 (150/670)

# 150

귀환 마교관

150화

연무기행 허가가 떨어졌다.

정도맹의 감찰대로 구성된다는데 용천관에서 허가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생도들에게는 현장 실습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것도 맹의 감찰 업무를 맡으면서 불의를 응징하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역할이니 이보다 더 좋은 현장 학습이 또 어디에 있을까?

학관의 입장에서는 얼씨구나 춤이라도 출 일이었다.

물론 천세명 등은 그 후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한편 갑작스러운 소집에 특목반 생도들은 연무장에 모여 수군거렸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지?”

“설마 갑자기 관외 수업을 간다는 건 아니겠지?”

“에이, 다녀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그러겠어?”

그렇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사비강과 매설란, 당이협이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세 명의 교관이 이렇게 나란히 들어오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었기에 생도들은 내심 긴장했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백일 간 연무기행을 떠난다.”

“예에?”

생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또 연무기행이라니?

그것도 백일씩이나!

“이번에도 무슨 이유인지 알려 주지 않으실….”

염자량이 불쑥 나서서 묻는데, 사비강이 말을 가로질렀다.

“백일 후 너희들은 정도맹의 감찰총국 소속 감찰대원이 된다.”

“예에?”

놀람의 연속이다.

생도들은 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린 채 눈만 끔벅였다.

몇몇 생도들은 사비강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비강이 말을 이어 갔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너희들의 무공이 절정의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

이젠 놀랄 여력도 없는지 생도들이 입을 척 벌린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비강이 계속 말을 이었다.

“해서, 지금부터 백일 간 연무기행을 떠날 것이다. 절정 고수가 되기 위한 수련의 일환이지.”

“저기… 교관님?”

“질문은 받지 않는다.”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요! 어떻게 삼 개월 만에 우리가 절정….”

“할 수 있어. 나처럼 훌륭한 교관이 지도한다면 삼 개월은 충분한 시간이다. 오히려 차고 넘치지.”

“명백한 자만입니다!”

염자량이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사비강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자, 이제 다들 돌아가서 준비하도록. 한 시진 후에 바로 떠날 테니까.”

“이런 일방적인 통보가 어디 있습니까?”

사비강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염자량을 돌아보았다.

“지금 나한테 말대꾸하는 거냐?”

어쩐지 그 서늘한 표정에 염자량이 움찔 거리며 한 걸음 물러났다.

“설마… 지금 생도를 폭행하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폭행은 무슨. 어디까지나 계도지. 사랑의 매라고나 할까?”

“하하…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저는 단지 갑작스러운 통보에….”

“그럼 내가 네놈들에게 허가라도 받아야 하는 거냐? 그런 거냐?”

“끄응.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닥치고 어서 준비나 해.”

결국 염자량은 주눅이 든 강아지마냥 어깨를 움츠리고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언제나 이기적이라니까.’

물론 속생각을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어쩐지 사정없이 계도를 당할 것만 같았기에.

**

그날부로 사비강은 생도들을 이끌고 닷새를 꼬박 내달렸다.

경공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거의 잠도 자지 않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달리기만 했다.

이따금씩 개울에서 목을 축이고, 그늘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쉬지 않고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꽤나 낯이 익은 마을이었다.

사비강은 생도들을 이끌고 그대로 숲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 높은 암벽을 앞두고 멈춰 선 사비강.

그곳에는 귀야채 무인들이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사이에 뭔가를 담은 커다란 상자도 보였다.

한편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올려다 본 매설란은 그제야 야트막하게 탄성을 내질렀다.

“아…!”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이거였구나!’

역시 사비강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동안 사비강이 어째서 그렇게 태연할 수 있었는지.

그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귀띔이라도 해주면 어디가 덧나? 너무하잖아!’

그녀는 샐쭉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슬쩍 노려보았다.

이곳은 바로 토이산.

대략 일 년 정도 전에 사비강이 연무기행을 하면서 지나쳤던 곳이다.

그때는 다른 지역을 둘러서 오느라 시간이 꽤 걸렸지만, 이번에는 쉴 새 없이 경공을 펼친 데다 지름길로 바로 질러오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단축됐다.

토이산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올려다보던 연우경이 슬쩍 고개를 돌리고는 물었다.

“여기는 왜 온 겁니까?”

“지금부터 너희들은 저 안으로 들어간다.”

사비강이 암벽을 가리켰다.

생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곳을 보았다.

“저 안에요? 어떻게요?”

“매 교관. 시범을 보여줘.”

사비강의 말에 매설란이 체념한 표정으로 나섰다.

‘정말이지 이곳에 다시 오게 될 줄이야.’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기억.

이곳에서 사비강과 나누었던….

‘아이참! 나도 이런 때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잡생각을 떨쳐 버리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스윽.

놀랍게도 매설란의 몸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벽을 뚫고 들어간 것처럼… 아니, 벽에 흡수되며 사라진 것처럼!

물론 매설란의 시선에서는 일렁이는 반투명한 막 너머로 여전히 생도들과 사비강이 보였다.

하지만 생도들의 시선에서는 매설란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진 상황.

생도들은 물론, 당이협과 귀야채 무인들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생도들이 술렁거리는데.

“일종의 기관진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다시피 눈으로 보이는 것은 믿지 마라. 일말의 의심이라도 하는 순간, 저 벽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자신 없으면 처음부터 눈을 감고 가도록.”

**

터엉! 텅!

육중한 소리에 이어 귀야채 무인들이 무거운 철괴 상자를 공동 복판에 내려 두었다.

생도들은 연신 주변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공동은 매우 넓었다.

웬만한 대연무장의 열 배 정도는 될 듯했다.

암벽 안쪽에 이렇게 너른 공간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비강은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철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잘 담겨 있었다.

그는 일찌감치 자신이 그동안 모았던 것을 모두 귀야채 무인들에게 여기까지 옮기도록 지시해 두었다.

바로 마공석과 무기, 방어구.

그리고 각종 마법 도구들이었다.

몇 가지는 수련할 때 사용될 것이었고, 상당수는 생도들에게 나눠 줄 것들이었다.

“자, 주목!”

사비강의 말에 웅성거리던 생도들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돌아보았다.

생소한 광경에 생도들은 피로감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이곳에서 육 년 동안 수련을 할 것이다.”

“예에에에?”

생도들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몇몇 생도들은 자신들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옆 사람에게 되묻기도 했다.

염자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 농담이 너무 과하다고요. 육 년이라니….”

“진담이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육 년간 수련을 할 것이다.”

“하하, 무슨 그런 살벌한 말씀을… 흐음… 그러니까… 진짜라고요?”

“그래.”

사비강의 단호한 표정에서 생도들은 불길함을 읽어 냈다.

보통 사비강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고집을 꺾지 않을 때였으므로.

“말도 안 돼! 여기서 육 년이라니요? 분명 백 일간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육 년이나 우리가 사라지면 학관에서는… 아니, 강호가 발칵 뒤집힐….”

“걱정 마라. 바깥세상은 겨우 백 일도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비강이 생도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은 바깥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즉, 여기서 하루가 바깥세상에서는 반 시진과 같다. 너희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삼 개월. 그걸 환산하면 대략 육 년 정도의 시간이 되는 셈이지.”

“헐…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이다.”

“하지만 그런 기관진식이 강호에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는….”

“당연하겠지. 이건 강호의 기관진식이 아니니까. 전혀 다른 차원의 결계니까.”

“아무리 그래도 믿기 어렵군요.”

“믿어. 나뿐만 아니라 매 교관님도 이곳에 온 적이 있다. 그리고 너희들이 다급했던 반 시진 동안 우리는 이 결계 안에서 서로의 몸과 마음을… 읍.”

옆에 있던 매설란이 얼른 사비강의 입을 틀어막았다.

“생도들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라고요!”

그제야 다른 생도들 역시 수긍하는 표정이 됐다.

‘정말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사비강의 말대로 절정의 영역에 오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리라.

육 년의 시간이라….

그 기간이 지나면 자신들은 어엿한 절정 고수가 되어 있을 지도.

게다가 정도맹의 감찰대원이 되리라.

생도들의 눈빛은 어느새 투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사비강이 생도들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그동안 경공을 사용하느라 내공 소모가 심했을 테니, 오늘 하루 동안은 푹 쉬도록 해라. 단, 이 공동을 벗어나면 미아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알겠습니다!”

생도들의 목소리가 공동에 쩌렁쩌렁 울렸다.

**

바깥세상의 백일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정도맹의 외원 대연무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늦는군.”

단상의 태사의에 앉은 능운파가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구윤은 조바심이 났다.

‘야단났군.’

맹주가 저리 말할 정도이니 곧 등왕패를 비롯한 무리들이 딴지를 걸고넘어질 것이다.

벌써 예정된 시간으로부터 반 시진 가까이 지난 상태.

맹의 수뇌 인사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지만, 정작 출범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당사자들이 도착하지 않으니 모든 진행이 멈춘 상태였다.

휘이이이잉.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이 대연무장을 휩쓸며 지나갔다.

마침내 등왕패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성큼 나섰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요? 군사!”

“잠시만 더 기다려 보지요.”

“벌써 반 시진이 흘렀소! 이쯤 되면 사비강 교관이 막중한 책임감을 감당하지 못해서 어디론가 달아났다고 보는 게 옳지 않겠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사비강 교관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흥! 군사께서도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것 아닌지 모르겠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지요.”

구윤은 초조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사 교관!’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자신이 본 사비강은 절대로 책임감이 두려워 도망칠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뻔뻔하게 나올지언정.

한데 이상한 점이 없진 않다.

사비강이 이끄는 특목반 생도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점.

연무기행을 떠났다는 그들은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학관에서도 그들의 행적을 파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말 달아난 걸까?’

아니다.

그랬다면 생도들까지 데리고 갈 이유가 없지 않나?

분명 올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초조한 마음을 달래는데.

“군사, 아무래도 오늘 출범식은 취소해야 할 것 같네.”

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능운파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등왕패라면 어떻게든 눌러 보겠지만, 맹주가 이리 나온다면 방법이 없다.

벌써 반 시진이나 기다렸으니….

‘하아, 이대로면 감찰총국을 신설하는 일 자체가 흔들릴지도 모르겠구나.’

반면 등왕패는 내심 조소를 지었다.

이 기회를 잘 살리면 감찰총국을 신설하는 것 자체를 저지할 수 있으리라.

구윤이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끙끙거릴 때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갑자기 하늘이 쩌렁쩌렁 울리면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곧이어 한 인영이 대연무장 담벼락을 넘어 허공답보를 펼치며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탁!

단상 앞에 착지한 그는 바로 사비강이었다.

“사 교관!”

구윤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반가운 마음이 절반, 화난 마음이 절반이었다.

사비강이 능운파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늦어서 송구합니다. 좀 먼 곳에서 오다 보니 늦어졌습니다.”

“이제라도 와서 다행이오. 한데 생도들은…?”

감찰대원이 될 생도들은 출범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었다.

“곧 도착할 겁니다.”

사비강이 씨익 웃는데.

훅훅, 휘리릭! 휙휙휙!

갑자기 주변 담벼락을 넘으면서 새카만 그림자들이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그 일련의 동작들이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데다 절도가 있었다.

그림자들은 일제히 사비강 뒤에 안착하더니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포권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고막이 아플 정도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구윤은 물론 맹주와 수뇌 인사들 모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바로 특목반 생도들이었다.

그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생도들의 면면을 살핀 구윤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불과 석 달 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

생도들의 전신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엄청난 기도다.’

능운파 역시 그들의 기도를 확인하고는 눈자위를 꿈틀거렸다.

‘놀랍군. 이들이 정녕 아직 학관에 다니는 생도란 말인가?’

한편 석 달 전에 이들을 본 적이 있는 구윤은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로 놀랐다.

사람의 기도가 단 기간에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가 있나?

‘도대체 지난 삼 개월 동안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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