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49화 (149/670)

# 149

귀환 마교관

149화

“뭣이? 사비강 교관이라니!”

등왕패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설마 했다.

한데 또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사비강.

그놈이 나타나고 나서 제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쥐몰이 작전을 실패했더라도 그 사비강이라는 작자가 포로들을 구해 주지 않는 편이 좋을 뻔했다.

이거야말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격이 아닌가?

“사비강 교관을 국주로 임명하겠다니. 제정신이오?”

“아, 제가 임명하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그건 맹주님의 권한이시니.”

“아무튼! 그자는 본 맹과 아무런 관련도 없지 않소?”

“그건 아니지요. 사비강 교관 역시 어디까지나 본 맹의 산하에 있는 용천관에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감찰대를 이끌기 위해서는 역시 본 맹에 지나치게 깊이 개입되어 있는 자보다는 조금 연관성이 떨어지는 자가 좋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런 일방적인 결정을 내리다니! 나는 납득할 수가 없소!”

“물론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진 않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의견을 내세울 뿐, 모든 권한은 맹주님께 있으니까요. 다만, 여러분들의 의견을 묻고 싶은 겁니다.”

등왕패가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감찰총국의 신설을 막지 못하는 이상, 감찰국주를 자신의 사람으로 앉혀 볼 작정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우겨넣어 볼 생각이었다.

한데 구윤이 선수를 쳤다.

사비강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다수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눈치다.

자신이 강하게 반발함으로써 몇몇 무인들이 반감을 드러내곤 있었지만, 분위기가 이미 사비강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구윤이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사비강 교관은 본 맹에 깊이 개입되지 않은 자입니다. 그런 만큼 공정성을 가지고 감찰하기에 적임자라고 판단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이번에 보여준 여러 공로를 따진다면 감찰총국주로 임명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하면 감찰총국의 구성은 사비강 교관이 임의대로 조직한다는 건지요?”

검영각주 섭청이 호의적인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구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래야만 최대한 본 맹과 얽히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될 테니까요. 자칫 본 맹의 빈대들이 감찰총국에도 달라붙으면 그땐 제대로 된 감찰 업무가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과연 그렇군요. 군사님의 혜지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섭청처럼 호의적인 무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등왕패와 손을 잡은 수뇌 인사들은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하지만 한낱 교관을 하던 자가 감찰국주가 되었다고 하면, 혹 멸시를 받거나 무시를 받지 않을까 염려되오. 무릇 감찰국은 두려워 할 대상이 되어야 할 터인데, 자칫 우스갯거리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소!”

“그러니 최대한 빠른 시간에 임명하는 게 좋겠지요. 지금 사비강 교관의 명성은 정파뿐만 아니라, 사파에서도 자자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이럴 때 그를 감찰국주로 임명하게 된다면 문제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리고….”

구윤이 말끝을 흐리며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몇 장의 문서였다.

“이건 각지에서 올라온 추천서입니다. 패검연가와 섬검목가 역시 사비강 교관을 감찰국주로 추천했습니다. 그 외에도 꽤 많은 명문 정파가 그를 추천했지요.”

구윤이 말을 마치고는 빙그레 웃었다.

사실 이는 사비강이 미리 언질을 주었기에 준비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아마 그들은 나를 위한 추천서를 망설임 없이 써 줄 거요.”

그 한 마디 말을 믿고 수하들을 보내 추천서를 받아 왔다.

실제로 그들은 흔쾌히 추천서를 써 주었다고 수하들이 전해 왔다.

구윤은 등왕패가 또 다시 불만을 제기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역시 사비강이 언질을 준 것.

그가 시선을 돌려 천안각주 이사흠과 정검단주 엽무강, 추의단주 사자룡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그들은 모두 일전에 혈사련의 포로로 잡혔었던 등왕패의 측근들이었다.

“세 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갑작스런 질문에 세 사람이 조금은 당황한 듯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편 등왕패는 내심 조소를 지었다.

‘흥! 저들이 사비강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그 얼빠진 소리에 동의를 할 것 같으냐? 잘못 짚었….’

“군사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이사흠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내심 자신만만해 하던 등왕패는 눈을 부릅뜨고는 이사흠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사흠은 등왕패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엽무강과 사자룡마저 그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저 역시… 찬성하는 바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쯤 되자 등왕패는 눈알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저 미친 것들이 제정신인가?’

그가 뱃속부터 끌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참는데, 구윤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행이군요. 아무래도 찬성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최종 결정은 맹주님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구윤이 능운파에게 패를 넘겼다.

능운파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불쑥 물었다.

“하면 지금의 감찰대는 사비강 교관이 인수하게 되는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현재의 감찰대는 폐쇄될 것입니다. 물론 그 구성원들 역시 각기 다른 기관으로 분산 배치될 겁니다.”

“그럼 감찰국의 핵심인 감찰대 역시 사비강 교관이 직접 임명하게 되는가?”

“그렇습니다. 아, 그 부분에 있어서는 특별히 사비강 교관이 원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현재 그가 맡은 특목반 생도들로 감찰대를 구성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특목반 생도들로?”

능운파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발언은 오늘 구윤이 내뱉은 말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다.

때문에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가 술렁거렸다.

“생도들의 능력이 감찰 업무를 할 수 있을 만큼인지요?”

“아직은 한참 어린 생도들이 그 막중한 업무를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이번에는 맹주의 측근들조차 너도나도 나서며 불안한 목소리를 냈다.

이미 예측했던 바.

구윤이 담담히 말을 받았다.

“대략 삼 개월 후면 감찰총국이 정식으로 출범할 겁니다. 그때까지 특목반 생도들의 역량이 미숙하다 싶으면 사비강 교관은 감찰대의 구성원을 다른 자들로 대체해도 좋다 하였습니다.”

그 말에 다소 우려하던 목소리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대신 등왕패는 내심 안도와 함께 조소를 지었다.

‘생도들이 감찰대라고? 하! 애들이나 가르치다 보니, 이게 무슨 소꿉놀이쯤으로 보이나보군. 여긴 정도맹의 본단이다. 치열하고 더러운 꼴을 볼 수밖에 없는 정치판이지.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발을 들이밀었다간 얼마 버티지 못하리라.’

오히려 생도들이 구성원이 된다면 다루기가 더 수월할지도 모른다.

기껏 해봐야 일류 수준의 생도들을 데리고 얼마나 해내겠는가?

등왕패가 별 반박을 하지 않자, 능운파가 곧 입을 열었다.

“좋소, 그럼 군사는 정확한 출범 날짜를 정해서 내게 보고하게.”

“알겠습니다, 맹주님.”

**

구윤은 다시 사비강을 찾아왔다.

“감찰총국을 신설하기로 했습니다. 맹주님께서는 사 교관을 국주로 임명할 겁니다. 정확히 백일 후에 출범할 예정입니다. 최대한 늦춘 겁니다.”

“잘 알겠소.”

“맹의 수뇌부에서는 불만과 걱정이 많습니다. 우선 가장 큰 건….”

“생도들의 역량 때문이겠지.”

“그렇습니다. 사실 수뇌부에서는 감찰대의 구성원이 생도들로 이루어지면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할 거라며 걱정이 많습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 역시 동의하는 바입니다.”

“누차 얘기했지만 걱정 마시오.”

“부디 그 자신감만큼 생도들의 능력을 끌어올려서 감찰대로서의 힘과 위엄을 갖춰야 할 겁니다.”

“잘 알겠소. 더 할 말이 없으면 이만 일어납시다. 오늘 용담실 회의가 있어서 말이오.”

“그렇군요. 그럼 백일 후에 뵙지요.”

군사가 돌아가고 나서 사비강은 곧바로 집무실을 나섰다.

마침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던 매설란과 마주쳤다.

“어떻게 됐어요?”

“백일 후에 감찰총국 국주로 갈 거야.”

“생도들은요?”

“물론 같이 가야지. 그때까지 시간을 주기 위해 최대한 늦췄다는군.”

“이제 어쩔 거예요? 생도들의 능력을 하루아침에 절정 고수로 만들 수는….”

“좋은 무기가 있고, 좋은 교관이 있잖아. 문제될 건 없어. 그보다 회의는?”

매설란이 한숨을 푹 내쉬며 대꾸했다.

“조금 전에 시작됐어요. 부교관은 참석 자체가 제한되어 있어서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

“뭐, 이제부터 가면 되지.”

사비강이 느긋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목소리에 날을 세운 사람은 등부형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물론 사비강 교관이 정도맹에 큰 공을 세운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교관은 교관으로서의 임무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데 요즘 사비강 교관은 툭하면 밖으로만 돌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에는 생도 둘만 데리고 또 어디론가 떠났다가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하면 다른 반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 말을 천세명이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보통 문제는 아닙니다. 사람은 무릇 모든 일이 잘 돌아갈 때 더욱 겸손하고 조심해야 하는 법이거늘. 최근 사비강 교관의 행보를 보면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흐음.”

학장 주유천이 침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더욱 고민이 깊었다.

하지만 사비강에게 특별히 징계를 내릴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애초에 사비강은 자신의 교육 방식에 대해서 학관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제시했고, 주유천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어디까지나 주의를 주는 정도일 뿐이리라.

‘하지만 그러면 이들의 불만이 더욱 높아지겠지.’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교관의 태도가 학관의 전체적인 면학 분위기에 악영향을 끼칠 경우, 이를 제제할 수 있는 관칙이 있다.

‘역시 징계가 불가피 하려나….’

주유천이 얕게 한숨을 내쉬는데, 마침 문이 열리면서 사비강이 용담실로 들어섰다.

곧바로 천세명의 날 선 목소리가 날아갔다.

“정도맹을 들락거리다 보니 이제 용천관의 일은 우습게 보이나 보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 교관 한 명을 기다려야 되겠소? 대체 늦은 이유가 무엇이오?”

“그게… 구 군사께서 찾아오시는 바람에 조금 늦었습니다.”

“구 군사라면… 맹의 총군사?”

“그렇습니다.”

사비강의 대답에 사람들이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구윤은 자신의 행보를 외부로 잘 알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용천관의 교관들은 총군사가 다녀갔다는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랐다.

예상 밖의 이유를 대자 천세명은 말이 궁해질 수밖에 없었다.

“커험. 험! 그, 그렇더라도 이런 일이 자주 있어서는 곤란하오.”

“아마 그럴 일은 없지 싶군요.”

묘한 말투에서 다른 의미를 읽은 천세명이 눈살을 구겼다.

“무슨 의미요?”

사비강이 주유천을 향해 포권을 하며 말했다.

“특목반은 앞으로 백일 간의 수련을 위해 연무기행을 떠나겠습니다. 이에 학장님께 허가를 받고자 합니다.”

“뭣이? 또 연무기행을 떠나겠다고? 학관이 무슨 여행이나 다니는….”

“백일 후 정도맹에서는 감찰총국을 신설합니다. 국주로는 제가 내정되어 있으며, 감찰대는 현 특목반 생도들로 구성할 예정입니다. 이에 수련 기간이 필요합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사비강의 발언에 천세명은 물론, 다른 교관들도 입을 척 벌리고 말았다.

물론 학장 주유천도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 그게 정말인가? 사 교관?”

“예, 조만간 맹에서 협조 공문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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