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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08화 (108/670)

# 108

귀환 마교관

108화

죽립을 깊이 눌러 쓴 남자 둘이 객잔 입구에 잠시 멈춰 섰다.

외진 곳에 위치한 객잔이었다.

그중 키가 작은 사내가 슬쩍 죽립을 들어 올리고는 객잔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중년 남자는 팔자 콧수염이 길게 뻗어 있었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눈코입이 전체적으로 둥근 것이 특징이었다.

산수객잔(山水客棧).

현판을 확인한 그가 옆에 선 사내에게 물었다.

“이곳이군.”

“결국 여기까지 왔군요.”

사내의 대답에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인 그가 객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비수기인 데다 외진 곳에 위치한 만큼 손님이라고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삼 층 방으로 안내를 받은 두 사람은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죽립을 벗고는 심각한 얼굴로 탁자에 마주 앉았다.

“정말 혈사련과 결탁하실 생각이십니까?”

키 큰 사내가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바로 귀영부의 일영, 홍염이었다.

“흐음.”

얼굴이 둥근 중년인은 그저 침음을 흘리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바로 귀영부의 주인, 귀영부주 웅패(雄覇)였다.

그는 품에서 한 장의 용모파기를 꺼내 보았다.

그림으로 그려진 대상은 틀림없이 사비강이었다.

“이자가… 분명한가?”

“그렇습니다.”

홍염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정말로 이런 날이 오다니.

일전에 사비강은 자신을 찾아와서 오늘 같은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암시했다.

“혈사련에서 사람이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아마 내 용모파기를 들고 나타나겠지.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즉각 내게 보고부터 해라.”

일방적으로 남긴 말이었다.

어차피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한 홍염은 부주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사비강이 시킨 대로 하겠노라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리고 정말로 혈사련에서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의뢰를 받은 자는 기루에서 기녀로 위장하고 있던 명월이었다.

한데 그녀가 전해 온 소식 중에는 뜻밖의 것도 있었다.

“혈사련주는 본부와 독점 거래를 하고 싶어 합니다.”

주렴으로 가린 홍염 앞에 다소곳하게 앉아서 보고하는 그녀는 혈사련에서 제시한 조건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물론, 그 내용은 고스란히 귀영부주 웅패의 귀에도 들어갔다.

고민이 시작됐다.

사비강의 말대로 이 사실을 모두 그에게 고해바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사파 조직인 혈사련과 손을 잡을 것인가?

귀영부주 웅패는 일영부터 오영(五影)까지 긴급 소집하고는 회의에 돌입했다.

의견은 분분했다.

우선 사비강의 고강한 무공을 직접 목격한 홍염은 사비강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더구나 사비강은 귀영부의 본단과 지단의 위치를 모두 꿰고 있는 유일무이한 외부인이었다.

때문에 그를 등져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사비강’이라는 자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은 그의 노리개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차라리 혈사련과 손을 잡는 게 좋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혈사련에서는 계약금으로 십만 냥을 준다고 했습니다. 혈사련과 독점 계약을 하게 된다면 앞으로 본부는 큰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혈사련이 본부를 지켜 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홍염과 마찬가지로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쉽게만 생각할 문제는 아냐. 혈사련의 조건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놈들은 우리 본단의 위치와 지단의 위치를 모두 공개하라고 했어. 그 말은 여차하면 우리를 제거할 수 있을 정도의 패를 손에 쥐고 있겠다는 뜻이지. 역시 혈사련도 마음에 안 들어.”

결국 회의에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리고 웅패는 약속 장소인 여기까지 와서도 고민 중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상대를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하고 말을 한 번 섞어 보기 위함이었다.

홍염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한 번 더 말했다.

“부주님, 가랑비 피하려다가 소낙비 맞는 수가 있습니다.”

“흐음.”

웅패의 이마에 새겨진 주름만큼이나 고민이 깊어졌다.

“그렇다고 우리가 언제까지 사비강이라는 자에게 끌려 다녀야겠는가? 게다가 자네도 칠성문의 일을 듣지 않았던가? 혈사련의 제안을 거절한 칠성문주가 어찌 되었는지를.”

“하지만 정사지간의 칠성문과 우리는 다릅니다. 그들이 우리 같은 사파도 그처럼 대한다면 소문이 흉흉하게 돌아 다른 사파들의 협조를 구하기 어려울 겁니다.”

“크음.”

웅패는 다시 침음을 흘렸다.

그라고 왜 모르겠나?

하지만 어느 쪽이든 안심할 수가 없다.

“부주님.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홍염이 다시 부주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잠시 후 이곳으로 혈사련의 혈살귀도(血殺鬼刀) 낙일립(洛一立)이 올 것이다.

그가 바로 명월을 만나 의뢰를 맡긴 자였다.

낙일립에게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귀영부의 존립에 큰 영향을 주리라.

마침내 웅패의 결심이 섰다.

“결정을 굳혔네.”

그의 표정이 결연한 의지로 굳었다.

홍염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묻지는 않았다.

웅패는 결정을 내릴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편이지만, 결정을 내린 후에는 절대로 번복하는 일이 없다.

때문에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한들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

때마침 점소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인,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홍염과 웅패가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올 것이 온 거다.

혈살귀도 낙일립이 온 것이리라.

“모셔라.”

홍염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한 사내가 객실로 성큼 들어섰다.

한쪽 뺨에 자상이 새겨진 남자.

예상대로 낙일립이었다.

그가 들어서자 웅패가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건넸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소. 내가 귀영부주요.”

“반갑소, 낙일립이오. 한데 그쪽은?”

“귀영부의 일영이오.”

당연히 두 사람은 본명을 밝히지 않았다.

홍염의 표정은 다소 딱딱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왜 낙일립에게 이처럼 적대감을 가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건방진 태도로만 보자면 사비강이 더 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마음은 자꾸만 사비강 쪽으로 기운다.

그간 미운 정이라도 붙은 건가?

홍염이 내심 쓴 웃음을 지었다.

낙일립이 의자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생각은 해보셨소?”

“물론이오, 충분히 심사숙고해 보았소.”

“해서 답변은?”

“우선 이쪽이오.”

웅패가 탁자에 놓인 용모파기를 가리켰다.

낙일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염이 마른 침을 삼켰다.

‘과연 부주의 결정은 어느 쪽일까?’

만약 혈사련을 선택했다면, 상대에게 사비강의 정체를 밝히리라.

마침내 웅패가 입을 열었다.

“이자가 누군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소.”

“흐음?”

낙일립의 눈살이 슬쩍 찌푸려졌다.

반면 홍염은 내심 안도했다.

‘결국 혈사련을 경계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셨구나.’

아마도 점조직으로 구성된 귀영부의 모든 정보를 넘기라는 조건이 가장 걸렸으리라.

그 말은 혈사련의 소속 단체로 복속되라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기에.

아무리 대가를 지불한다지만, 치명적인 약점을 상대에게 넘겨서는 공정한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다.

재앙은 이미 겪은 하나로 충분하다는 것이 웅패의 생각이었다.

낙일립이 조금 날선 목소리로 따졌다.

“귀영부의 실력은 가히 중원에서 한손에 꼽힌다고 하더니 영 실망스럽군.”

“미안하게 됐소.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소. 단순히 용모파기만을 가지고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소.”

“뭐, 그럴 지도. 하면, 다른 건에 대해서는?”

혈사련의 독점 거래에 관해 묻는 질문이다.

웅패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거절하겠소.”

순간 낙일립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그렇소. 본부는 혈사련과 독점 계약을 할 수 없소.”

“지금 본 련을 상대로 각을 세우겠다는 거요?”

후우우웅!

낙일립의 무복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내기가 체외로 발출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홍염의 손이 반사적으로 허리춤을 향했다.

여차하면 비도를 뽑아 들 생각이었다.

웅패는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부주로서의 위엄을 유지한 채 대꾸했다.

“앞으로 혈사련에서 정식 의뢰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는 있소. 하지만 그쪽에서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혈사련과 독점 계약을 할 의사는 조금도 없소.”

타앙!

낙일립이 탁자를 내리치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의 전신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차차앙!

웅패와 홍염이 동시에 물러나며 허리춤에서 비도를 꺼내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은신에 특화된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기에 도검보다는 짤막한 비도를 주 무기로 다루었다.

“감히 우리의 제안을 무시하다니! 네놈들이 우리를 하찮게 보는구나!”

“그러는 당신들이야말로 우리를 하찮게 보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조건을 제시할 수가 있소?”

홍염이 날선 목소리로 받아쳤다.

낙일립의 표정이 차갑게 일그러졌다.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이렇게 된 이상 너희 둘 모두 죽여 버리고 귀영부를 강호에서 지워 버리겠다.”

“흥! 우리라고 맹하니 당할 줄만 아느냐!”

결국 웅패도 참지 못하고 마주 소리치더니 스스슥, 보법을 밟았다.

잠시 후, 그의 몸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과연 은신의 귀재다운 보법이었다.

낙일립이 웅패의 은신에 놀라는 사이 홍염도 스르르 기척을 지워 갔다.

귀영부의 무인들을 상대할 때는 단순한 무공 수위만을 따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은신과 경공에 특화된 자들이다.

이기긴 쉬우나 죽이긴 어려운 자들이 바로 귀영부의 무인들이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낙일립이 피식 웃더니 탁자 위에 상자 하나를 턱 올려 두었다.

그가 처음 나타날 때부터 들고 있던 상자였다.

“잔재주는 그만 부리고 이제 나와도 된다. 너희들과 싸울 생각은 없으니.”

기척을 지운 웅패와 홍염이 이해하기 힘든 표정으로 낙일립을 보았다.

낙일립의 시선이 정확하게 웅패를 향했다.

‘헛, 저자는 내 위치를 정확히 감지하는군!’

엄청난 기감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터인데.

결국 웅패가 허공 속에서 스르르 나타났다.

“갑자기 무슨 수작이오?”

“크크크. 이건 너희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낙일립이 탁자 위에 놓인 상자의 덮개를 열었다.

“헉!”

“이게 도대체…!”

순간 웅패와 홍염이 깜짝 놀라며 주춤 물러났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뜻밖에도 사람의 머리였다.

한데 얼굴 가죽이 완전히 벗겨져 있었다.

“이게 누구…?”

웅패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데, 낙일립이 제 얼굴을 잡아 뜯기 시작했다.

찌이익.

마침내 자상이 새겨졌던 낙일립의 얼굴이 사라지고, 사비강의 얼굴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웅패와 홍염이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척 벌렸다.

사비강이 씩 웃었다.

“오늘 결정이 너희들의 목숨을 살린 거다.”

“사, 사, 사비강…!”

웅패와 홍염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때마침 문이 열리면서 점소이가 들어섰다.

“대인, 주문하신 술을….”

객실로 들어서던 점소이가 멈칫거리고는 방안을 살폈다.

제일 먼저 웅패와 홍염을 보았고, 그 다음으로 얼굴 가죽을 벗겨낸 사비강을 보았다.

그리고 탁자에 놓인 상자의 머리를 확인했고, 마지막으로 바닥에 떨어진 인피면구를 보았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쒜에에에엑!

푸욱!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 하나가 점소이의 뒤통수를 뚫고 안면으로 팍 튀어나왔다.

점소이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웅패와 홍염이 화들짝 놀라는데.

“저놈은 혈사련 무인이다. 놀랄 것 없어.”

사비강이 무뚝뚝하게 말하더니 의자에 척 걸터앉았다.

웅패와 홍염이 멍한 시선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사비강이 다리를 꼬더니 말했다.

“자, 그럼 다시 협상을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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