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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07화 (107/670)

# 107

귀환 마교관

107화

삼 개월 간의 근신 기간이 끝난 특목반은 좀 더 체계적인 수업을 진행하게 됐다.

물론, 어디까지나 사비강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수업이었다.

먼저 염자량과 연우경, 그리고 능소소는 사비강의 지도하에 음양환유마나심법을 중점적으로 연마하게 됐다.

특목각 안에 틀어박힌 채 거의 하루 종일 운기만 할 정도로 지루한 수업이었다. 그럼에도 세 사람은 단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따르고 있었다.

조문탁과 단리정은 당이협이 전담해서 가르치게 됐고, 목단화는 매설란이 담당했다.

곡보옥은 귀야채에서 권법으로 절정 고수의 반열에 오른 무인과 매일 대련하기로 했다.

그 외에도 사비강은 각각의 생도들 특성에 맞춰 수업을 구성하고 진행하도록 했다.

그리고 잠시 쉬는 시간….

사비강은 여느 때처럼 특목각 지붕 위에서 생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침 그의 곁으로 매설란이 다가왔다.

“꼭 그래야만 했어요?”

“음? 뭐가?”

매설란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등부형 교관 말이에요. 그자에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고요.”

“그러니까 뭘 그렇게까지 했다는 건데?”

“패왕천황도 말예요. 가짜를 선물했잖아요?”

“아, 그거. 그게 어때서?”

“어때서라뇨? 진품도 아닌 모조품을 선물했으니, 그 사실을 곧 알게 되면….”

“그자가 좋아하는 게 그런 것 아니었나?”

“뭐라고요?”

“겉보기에 화려한 것. 누구나 감탄하게 만드는 물건. 그게 진짜의 모습이든, 겉치레만 휘황찬란한 것이든. 그자가 좋아하는 게 다 그런 거였잖아.”

“그건….”

뭔가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말투.

하지만 매설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 자일수록 체면을 중시한다는 것도 아셔야죠.”

“그런 놈들일수록 체면이 쉽게 깎인다는 것도 알아야겠지.”

“정말이지 가끔 당신을 보면….”

“보면?”

“적을 만드는 성격이에요.”

“상관없어. 난 누구보다 강하니까.”

그야말로 오만방자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사비강의 태도가 익숙해져 버린 걸까?

오히려 저런 말투에서 안심하게 되다니….

사비강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흘 후에 다녀올 곳이 있어. 나흘은 걸릴 것 같군. 그동안 생도들 좀 잘 부탁해.”

“이번엔 또 어딜 가려고요?”

“지난번에 돈을 벌었으니 이젠 쓸 궁리를 해야겠지?”

두루뭉술한 대답.

하지만 매설란은 그 대답을 따지기 이전에 호투장 사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날의 일이 마치 꿈만 같았다.

여전히 사비강에게 천만 냥이나 되는 거금이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그러고 보면 그날의 사건 이후로 모든 것들이 그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해천문의 ‘가득삼’이라는 청년에 주목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초절정 고수를 때려죽인 권법의 대가.

정도맹 역시 ‘가득삼’이라는 청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천안각 인력을 총동원하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해천문의 가득삼이 ‘사비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혈사련에서는 훨씬 범위를 좁혔을 지도.’

사비강은 호숫가에서 흑사귀를 죽일 때, 일부러 인피면구를 벗고 숨어 있던 상대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혈사련은 지금쯤 한창 가득삼의 진짜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리라.

사비강의 진짜 얼굴을 봤으니, 정도맹에 비한다면 훨씬 가까이 다가온 셈이었다.

‘그러고 보면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매설란이 새삼 경외감을 담은 눈빛으로 사비강을 올려다보았다.

단 한 번의 도박으로 정사대전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세상의 이목을 엉뚱한 곳으로 돌렸고, 내부의 시선 역시 그 풍문을 따라가도록 만들었다.

단, 적의 시선은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통상적으로 생각한다면, 그 반대가 되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사비강은 내부의 적을 더욱 경계하고 있었다.

때문에 정도맹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매설란이 사비강에게 물었다.

“복귀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그렇게 자리를 비우셔도 괜찮아요?”

“학장님한테는 이미 허락을 받았어.”

“그렇군요. 참, 학장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이번 징계에 대해?”

“그야 뭐… 논리적인 내 주장에 탄복하셨지.”

사비강이 씨익 웃어 보였다.

매설란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왠지 알 만 하군요.”

**

문이 벌컥 열리면서 등부형이 씨근거리며 들어오자, 천세명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를 보았다.

“무슨 일이오? 등 교관.”

“사비강, 그놈! 그놈은 절대로 대협 따위가 아닙니다! 그놈은 악질 중에서도 악질입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요?”

“천 부장님께서는 그놈의 가면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놈은 지금도 아마 우리를 비웃고 있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은 그냥 죽어 버리길 바랄지도 모르지요!”

“허허, 거참.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소.”

“이걸 보십시오!”

등부형이 휘황찬란한 보도를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천세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엇이오?”

스르르릉!

등부형이 이번에는 도집에서 도를 꺼내 보였다.

시퍼런 날이 번뜩였다.

물론, 등부형은 상대에 대한 예를 갖춰 곧바로 칼날이 뒤집어지도록 잡아 보였다.

“모르시겠습니까?”

“으음. 아, 그건 패왕천룡도가 아니오?”

“그렇지요. 패왕천룡도지요!”

“어디서 그런 보도를?”

“보도요? 헛! 잘 보십시오!”

말을 마친 등부형이 허리춤에서 또 다른 칼을 스르릉, 뽑아 들었다.

그는 왼손으로 그 칼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패왕천룡도를 쥔 채 서로 부딪치도록 세차게 휘둘렀다.

까앙!

청명한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천세명은 그저 등부형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눈만 휘둥그레 뜰 뿐이었다.

등부형이 패왕천룡도를 다시 내밀어보였다.

“여기 좀 보십시오!”

천세명이 눈살을 구기고는 패왕천룡도의 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과연 칼날에 이가 부러져 있었다.

즉 패왕천룡도가 모조품이라는 것.

“진품이 아니구려.”

“그렇습니다. 이걸 제게 선물한 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누구였소?”

“바로 그 사비강 녀석입니다! 그놈이 제게 이딴 짝퉁을 선물했단 말입니다!”

“…….”

천세명이 잠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등부형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노발대발해서는 소리쳤다.

“그놈은 절 능멸했습니다! 지금쯤 필시 절 비웃고 있겠지요!”

그런데 한참이나 표정을 굳힌 채 서 있던 천세명이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허허, 허허헛! 하하하하!”

“뭐, 뭐가 그렇게 웃기신 겁니까?”

“아, 실례했소. 다만… 사비강 교관도 참 짓궂구려.”

“부장님, 그렇게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자자, 진정하시오. 내 생각에는 사 교관이 등 교관께 따끔한 교훈을 남기는 게 아닐까 싶소.”

“교훈…?”

“내 등 교관이 예전부터 어둠의 경로로 귀품들을 선물 받아 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소. 하지만 그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다고 여겨 따로 거론한 적은 없었소.”

“…….”

“그런데 이번 기회에 사 교관은 등 교관에게 그런 지적을 우회적으로 돌려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소.”

“돌려 표현하다니….”

“겉치레보다는 내실이 중요하다는 걸 이런 식으로 깨우쳐 주려고 한 것이 아니겠소?”

“부장님! 그게 말이 됩니까? 어째서 갑자기 그 녀석을 이렇게나 감싸시는 겁니까?”

“허허, 감싸는 게 아니오. 그저 자연히 든 생각을 전한 것뿐이오.”

“정신 차리십시오, 천 부장님! 지금 부장님은 그 악랄한 놈에게 속고 있는 겁니다!”

“허허허.”

천세명은 너털웃음만 터뜨릴 뿐이었다.

그 후로도 몇 차례나 등부형이 하소연했지만, 이미 천세명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는 듯했다.

결국 등부형이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방을 나가 버렸다.

홀로 남은 천세명이 창밖을 보며 툴툴 웃었다.

“거참, 사비강 교관도 이번엔 너무 하셨군. 등 교관의 화가 풀리려면 한참은 걸리겠어.”

그렇게 푸근한 미소를 짓는데.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누군가?”

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적색 무복을 착용한 무인 네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천세명이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당신들은…?”

관내에서 적색 무복에 ‘감(勘)’이라는 글자를 견장처럼 새기고 있는 자들은 감사부(勘査部)가 유일했다.

그들이 찾아왔다는 것은 결코 좋지 않은 징조였다.

아니나 다를까 감사부장 입에서 뜻밖의 말이 떨어졌다.

“학장님의 지시로 천세명 부장을 모시러 왔소.”

“학장님께서? 대체 무슨 일로?”

“자세한 것은 가서 얘기합시다.”

무인 네 명이 저벅저벅 다가오더니 그의 양팔을 억세게 붙잡은 채 끌고 가기 시작했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휩싸인 천세명이 얼른 저항하며 소리쳤다.

“이, 이걸 놓고 말하시오! 도대체 무슨 일이오?”

“천 부장에게 징계가 내려질 거요.”

“징계라니! 대체 무슨 이유로?”

“춘향제에서 조직대항전을 무리하게 강행하도록 종용한 것, 조직대항전 중 생도들을 지키지 못하고 본인의 신변마저 위험에 처해 동료 교관을 귀찮게 만든 점, 무엇보다 교관부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언벽 교관의 변절을 알아채지 못한 직무 태만 등이오.”

“갑자기 그 무슨 소리요?”

“사비강 교관께서 강력하게 주장하셨소. 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고. 그분이 당신의 죄목 하나하나를 일목요연하게 말씀해주셨소.”

“뭐, 뭣이?”

“사비강 교관께서는 석 달 간의 근신 징계가 부당하다고 주장하셨소. 또한 천 부장만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하셨소. 물론, 우리도 그 뜻에 동의하는 바요.”

감사부장이 싸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제야 천세명은 자신이 단꿈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비강 그놈이… 그놈이…!’

등부형이 찾아왔을 때 말을 들었어야 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했던가?

자신이 사비강에 한 짓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사비강이 자신을 그냥 두고 넘어갈 리가 없었다.

“크익! 사비가아앙!”

천세명이 감사부에 의해 끌려가면서 절규하듯 외쳤다.

**

환향루(還鄕樓).

한쪽 뺨에 자상이 길게 새겨진 무인 하나가 기루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그는 느물거리며 달라붙는 기녀들의 손길을 뿌리치고는 정해진 곳이 있다는 듯 걸음을 옮겨 갔다.

마침내 삼 층 안쪽 방에 자리 잡은 무인.

기녀 한 명이 살갑게 웃으며 들어오자, 그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월(明月)의 고향에 기별을 넣으러 왔네.”

그러자 기녀가 흠칫거리더니.

“명월을 불러오겠습니다.”

하고는 다시 나갔다.

잠시 후, 또 다른 기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대인, 명월이옵니다.”

아리따운 여인이 배시시 웃으며 무인 옆에 다가앉았다.

무인은 코웃음을 치고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탁, 올려 두었다.

명월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종이를 보았다.

굉장히 상세하게 그려진 용모파기였다.

“최고 실력자를 불러 그린 것이니 오차는 거의 없을 걸세.”

그의 말대로 종이에 그려진 용모파기는 무척 상세했다.

그 그림의 주인공은 바로 사비강이었다.

“이자를 찾게.”

명월이 말없이 용모파기를 집어 들었다.

그녀가 스르르 일어나려는데, 사내가 손목을 붙잡았다.

“아직 용무가 끝나지 않았네.”

“무슨…?”

“귀영부주에게 이 말도 전하게.”

얼굴에 자상이 새겨진 남자의 표정이 섬뜩한 미소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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