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귀환 마교관
109화
먼발치 산수객잔이 보이는 나뭇가지 위.
단리정은 그곳에 꼿꼿하게 선 채로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방금 쏜 화살은 정확히 점소이의 뒤통수를 뚫었다.
‘확실히 실력이 늘었어.’
스스로 느끼기에도 예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제 떨어지는 잎사귀 세 개를 연이어 꿰뚫을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지옥 훈련을 통해 한 단계 성장했고, 실전과 다름없었던 조직대항전과 혈사련의 비밀 분타를 치면서 거듭 성장했다.
그러고 보면 지난 몇 개월 사이에 자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야 몸에 맞는 옷을 걸치니, 행동이 달라지고 성격에도 변화가 생긴 듯하다.
“스으읍, 후우우!”
단리정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시위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우선 자신의 임무는 완전히 끝났다.
점소이가 객실로 들어설 때, 확실히 제거하는 것.
“물론, 네가 실패한다고 해서 내게 위험이 생기진 않는다. 다만 널 시험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그 시험에서 통과한다면 특별히 네게 선물을 주도록 하마.”
사비강이 객잔에 들어가기 전, 자신에게 한 말이다.
결국 시험에 통과한 셈이다.
다만, 지금 당기는 시위는 만약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객잔의 동향을 살피고, 혹시나 자신에게 다가올 적을 방비하기 위해서.
‘그러고 보면 역시… 근접전이 가장 아쉬운 건가?’
조직대항전 때처럼 자신을 호위하는 이들이 있다면 한결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타인의 손에 자신의 안위를 맡겨야만 한다는 것이 불안하다.
‘단 일격을 회피할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렇게만 되면 그 후에는 가까운 거리라도 활로 처리할 수 있다.
‘뭐, 우선은 더 수양을 할 수밖에.’
단리정은 잡념을 버리고 화살을 조준하며 객잔을 살폈다.
이제 여름의 중심으로 달려가는 계절이었기에 객잔의 창문은 모두 활짝 열려 있었다.
그런 만큼 내부를 살피기에도 수월했다.
마침 그의 눈에 주방으로 몰래 잠입하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바로 조문탁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만 실력이 늘어난 건 아니야.’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숙수는 조문탁이 실내로 들어선 것도 모른 채 음식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찰나, 조문탁의 신형이 번개처럼 날아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그의 단검이 숙수의 목을 그어 버렸다.
철판 위로 고기를 굽던 숙수는 그대로 피를 뿜어내며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숙수의 얼굴이 뜨거운 철판에 눌러 붙으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차마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지만, 단리정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마침 조문탁이 이쪽을 돌아보고는 싱긋 웃는 게 보였다.
**
쓰러진 숙수를 확인한 조문탁은 곧장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점소이 하나는 아마도 단리정이 처리했을 터.
그렇다면 남은 적은 하나다.
그 역시 산수객잔의 점소이로 위장한 자다.
이곳은 숙수 하나와 점소이 둘이 있었으므로.
객잔 입구에는 ‘금일 휴업’ 팻말을 걸어 놓았으니, 손님이 들어올 걱정은 없다.
점소이 한 명은 이 층에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혈사련 무인이 왜 이곳에 와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사비강이 임무를 내렸으니 하는 것이다.
게다가 임무를 완수하면….
‘흐흐흐.’
좋은 걸 준다고 하셨으니!
조문탁은 계단을 올려다보며 그림자처럼 스르르 움직였다.
이 층에는 없다.
하지만 삼 층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 선 점소이가 힐끗 보였다.
다행히 점소이는 아직 조문탁을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조문탁의 은신이 뛰어난 이유도 있지만, 점소이의 모든 신경이 삼 층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찰나, 조문탁이 얼른 바닥을 차고 점소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쉬이이잇!
“엇!”
점소이가 깜짝 놀라며 돌아섰을 때.
쉭! 쉭!
조문탁의 손에서 비수 두 자루가 빛살처럼 날아갔다.
파팍!
놀랍게도 점소이는 얼른 빗자루를 들어 비수를 막아냈다.
하지만 조문탁 역시 예상하고 있던 바.
진짜 공격은 그 다음이었다.
타닷!
어느새 점소이에게 다가선 조문탁이 단도를 뽑아 들며 재빨리 휘둘렀다.
‘끝이다!’
그런데….
차앙!
까앙!
“큭!”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간 사람은 다름 아닌 조문탁이었다.
콰당탕!
그가 이 층 복도에 쓰러지며 단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제기랄! 저 빗자루…!’
그랬다.
점소이가 사용하던 빗자루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빗자루 끝을 잡아 뽑자, 놀랍게도 검신이 뽑혀 나온 것이다.
“웬 놈이냐!”
점소이가 날카롭게 소리치며 몸을 훌쩍 날려 왔다.
그가 떨어져 내리면서 검을 거꾸로 쥐었다.
그대로 조문탁을 찍어 버릴 심산이었다.
그런데.
쒸에에에엑!
퍽!
콰당탕!
창밖에서 날아든 화살 한 자루가 그대로 점소이의 이마를 꿰뚫더니, 몸채로 날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화살을 맞고 계단을 굴러 내려간 점소이는 다신 움직이지 못했다.
겨우 죽을 위기에서 벗어난 조문탁이 비틀거리며 일어나서는 창밖을 보았다.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먼 거리에서 단리정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쳇, 신세졌군.’
투덜거리면서도 믿을 만한 동료가 있다는 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가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
“거기 술 좀 가져와.”
사비강이 턱짓으로 바닥에 떨어진 술병을 가리켰다.
점소이가 가지고 왔다가 떨어뜨린 것이었다.
다행히 술병은 깨지지 않았고, 마개로 막혀 있었기에 마시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부주가 버젓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저렇듯 태연히 명령질을 하니, 홍염으로서는 다소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미 익숙한 기분인지라 별 말 없이 술병을 주워 들고 탁자에 내려 두었다.
“다들 서 있지 말고 앉아.”
사비강이 대수롭지 않게 말을 던지고는 이로 마개를 뽑아 술병을 나발 불었다.
그러는 사이 웅패와 홍염이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다.
홍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긴 어떻게…?”
“왜? 내가 불청객이 된 건가?”
“그건 아니지만….”
정말 그건 아니다.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긴 하다.
사실, 사비강은 정도맹의 군사인 구윤에게 부탁했다.
밀사대를 이용해 귀영부와 접촉하는 혈사련의 인물을 예의주시해 달라고.
과연 밀사대는 총군사의 정예답게 제법 정확한 정보를 알려 왔고, 사비강은 한 발 앞서 낙일립을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크으, 술맛 좋군. 들 텐가?”
“됐소.”
웅패가 거절하자, 이번에는 홍염을 보며 눈짓으로 물었다.
홍염 역시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
“뭐, 그렇다면 내가 다 마시지.”
사비강이 다시 한 번 술을 들이켜자, 웅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좀 전에 협상을 하자고 하셨는데…. 무슨 뜻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말 그대로 협상을 하자는 거야. 뭐, 거래라고 해도 좋고.”
“어떤 거래를?”
“혈사련이 너희들에게 제안한 것과 비슷한 거지.”
“독점 계약을 말하는 거요?”
“그런 셈이지. 하지만 좀 달라.”
“구체적으로?”
마침 술 한 병을 완전히 비운 사비강이 탁자 위에 술병을 탁 내려 두었다.
그의 표정이 어느새 진중해졌기에, 웅패와 홍염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사비강이 입을 열었다.
“귀영부는 앞으로 귀영단이 된다.”
“뭐요?”
“한 마디로 너희들은 내 직속 단체가 되는 거란 말이지.”
“지금 무슨 소리를…?”
“임무도 바뀔 거다. 지금까지 돈만 주면 너희들은 뭐든 해왔겠지? 살인, 납치, 겁간, 절도, 정보 수집 등. 하지만 이제는 오로지 정보 수집에만 최대한 집중한다.”
“이보시오. 지금 대체 혼자 무슨 소리를…?”
“물론, 내 직속 단체가 되는 만큼, 나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 만약 나를 배신할 경우에는 죽인다.”
웅패와 홍염이 입을 꾹 다물었다.
사비강의 표정은 시종 진지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순간은 홍염도 헷갈렸다.
과연 자신의 주장이 옳았는지.
가랑비 피하려다 소낙비 맞는다고 했지만, 이거야말로 폭풍우 같은 소리가 아닌가?
웅패가 난감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그런데.
“크크크. 너무 쫄지 마. 강요는 아니니까.”
뜻밖의 말이 사비강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두 사람이 그를 바라보자,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지.”
“어떤…?”
“방금 내가 한 말대로 직속 기관이 될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귀영부를 유지하면서 내게 협력하는 선에서 머물 것인지.”
“정말 우리가 선택해도 될 문제요?”
“말했잖아. 그렇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전자를 선택할 이유가 있소?”
“물론이지.”
“그게… 뭐요?”
척!
사비강이 탁자 위에 전표를 올려 두었다.
웅패와 홍염의 표정이 흔들렸다.
십만 냥!
사실, 이것은 사비강이 죽여 버린 낙일립에게서 빼앗은 돈이었다.
“혈사련이 너희들에게 줄 계약금이 딱 십만 냥이었겠지? 그 돈을 너희들에게 주마.”
“하지만 우린….”
“거기에 더.”
척!
사비강이 다시 탁자 위에 전표를 올려 두었다.
이번에는 웅패와 홍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 이건….”
“백, 백만 냥!”
사비강이 웃었다.
“그래, 너희들이 가장 좋아하는 돈이지. 백만 냥을 더 주지.”
“진심이오?”
“그래.”
그런데 파격적인 제안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참고로 백만 냥은 해마다 주도록 하마. 나는 내 수하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성격이거든.”
“……!”
웅패와 홍염이 멍하니 서로를 보았다.
백만 냥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보통 귀영부에서 규모가 큰 의뢰를 받게 되면 선금 십만, 완수금 십만을 합해 총 이십만 냥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처럼 거금의 의뢰는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다.
한데 해마다 백만 냥을 주겠다니!
그야말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어때? 해볼 의향이 있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강요는 아니다. 나는 지금도 크게 불편한 건 없으니까.”
사비강의 표정과 말투에서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웅패가 망설이고만 있자,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전표를 품에 갈무리했다.
웅패와 홍염의 눈이 전표를 따라 움직였다.
사비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갑작스러운 제안이라서 어리둥절하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 오늘은 이만 가도록 하지. 결정이 되면 얘기해 줘. 아참, 그리고 너희들이 찾아줘야 할 물건이 하나 있어.”
“물건이라면…?”
“허리띠 두 개와 ‘용의 눈’이라 불리는 물건이지. 뭐, 자세한 건 다음에 또 말하지. 지금은 머리가 복잡할 테니.”
그러자 홍염이 얼른 웅패에게 전음을 날렸다.
[부주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조건이라면 오히려 저자의 마음이 바뀔까 봐 염려스러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귀영부가 역사에서 지워질 수 있네.]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는 거지요. 어차피 우리야 돈만 보고 달려오지 않았습니까?]
홍염이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그는 웅패와 함께 처음으로 귀영부를 만들었던 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은 귀영부의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웅패로서는 신중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알렸고, 사비강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답한 뒤 홀로 돌아갔다.
그런 여유가 오히려 두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다 객실을 나선 두 사람은 계단에 쓰러진 점소이와 주방에서 탄내를 풍기며 죽은 숙수를 발견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결국 이들도 모두 죽었구나.”
사실, 두 사람은 사비강이 말해 주기 전부터 이들이 혈사련의 무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정보 취급에 있어서는 어지간한 조직에 뒤지지 않는 귀영부였기에.
다만 은신과 경공이 뛰어난 두 사람인 만큼 여차하면 여길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기에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낙일립과 싸움이 벌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불리하다고 판단이 서면 곧장 몸을 빼내고 달아날 생각이었다.
물론, 뜻밖에도 상대가 사비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럴 필요가 없게 됐지만.
웅패가 객잔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답이 정해져 있는 것 같군.”
하지만 그의 표정만큼은 이곳에 들어설 때보다 한결 밝아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