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귀환 마교관
79화
세 번째 북소리가 울렸다.
수풀 속에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던 흑살대가 날렵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흑호가 전음으로 명령했다.
[미리 매설해 둔 열화탄을 터뜨리도록.]
[존명!]
조량이 대답과 함께 흑살대를 이끌고 숲으로 뛰어들었다.
흑호가 면구를 고쳐 쓰고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럼, 한 번 설쳐 볼까?”
그가 기분 좋게 걸음을 내디디려는데.
“음?”
숲으로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조량이 다시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인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매설해 둔 열화탄이 상당수 사라진 것 같습니다.]
[뭐야? 앞장서라!]
그가 곧바로 조량을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조량은 매복한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흑호를 안내했다.
[여깁니다.]
조량이 바위 아래를 가리켰다.
흑호가 그곳에 착지해서 살펴보니, 분명 누군가 파헤친 흔적이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조량을 보았다.
[확실히 매설해 둔 것이 맞나?]
[틀림없습니다. 우연히 찾을 수는 없도록 했습니다.]
사실 이런 대화 자체가 우습다.
그는 조량이 꽤 유능한 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백토가 자신에게 흑살대를 붙여 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이 어설프게 열화탄을 매설했을 리는 없다.
겨우 심지만 살짝 보여 불을 붙일 수 있도록 해두었을 것이다.
즉 이건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다.
누군가 정확한 장소를 알아채고 파헤친 것이다.
‘정보가 샜단 말인가? 하지만 어떻게?’
밀선이 잡혔을 때가 아닐까?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지만 ‘절대’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아니면 적사가 배신을?
‘그럴리가… 그래서 적사가 얻을 게 뭔가? 오히려 정도맹으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어쨌거나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얼마나 없어졌나?]
[현재 일곱 개 사라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나머지는 좀 더 깊이 들어가야 해서….]
[우선 열화탄을 폭파시키는 것은 취소한다. 최대한….]
그때 다시 흑살대원 한 명이 옆으로 내려섰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번엔 또 뭐야?]
흑호가 표정을 확 구기며 되물었다.
흑살대원이 낭패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수위무사들의 복색이… 정보와 다릅니다!]
[뭐야?]
[모두 백색 무복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흑호의 음성이 떨렸다.
뭔가 잘못됐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제기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가 검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
꽈과앙!
바위가 깨져 나가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자욱한 먼지가 주변으로 흩어졌다.
저벅저벅.
먼지를 뚫고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남자는 바로 상필지였다.
그 뒤로 낭아반 생도들이 따라 나왔다.
슉! 슈슉!
수위무사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
낭아반은 현재 기관진식을 파훼하고 나온 것이다.
때문에 사망자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상필지가 그들을 차갑게 훑어보다가 코웃음을 치고는 턱짓을 했다.
그러자 생도 세 명이 불만 서린 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한 명은 온몸에 붉은 점이 찍혔다.
나머지 두 명은 요혈에 붉은 점이 찍혔다.
기관진식 안에서 당한 것이다.
수위무사들이 다른 생도들도 한 번 훑어보더니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망 셋. 확인됐습니다. 가도 좋습니다.”
사망 판정을 받은 생도 세 명만이 수위무사 곁으로 다가섰고, 나머지는 상필지를 따라 이동했다.
“흐히히히.”
요굉이 괴이한 웃음을 흘렸다.
옆을 나란히 걷던 노치은이 요굉을 힐끔 보고는 예의 그 맥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웃긴 거야?”
“그냥… 흐흐흐. 그 녀석들이 날 약 올리는 게 너무 좋아서. 기관진식으로 유인하다니… 생각도 못했어. 흐히히히!”
“하여튼 쟤는 변태라니까.”
뒤따라 걷고 있던 조미미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요굉은 손가락 하나하나를 거미다리처럼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하아, 하아. 그놈들 빨리 보고 싶어. 내 광기를 더 자극시킨단 말이야. 흐히힛!”
고개를 번쩍 든 요굉은 정말이지 광인처럼 두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그렇게 잠시 걷는데, 모처럼 앞장 선 상필지가 우뚝 멈췄다.
그가 노치은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나?”
“흐으음.”
노치은이 졸린 눈으로 주변을 스윽 둘러보더니 목을 자라처럼 길게 빼고는 이리저리 살폈다.
잠시 후, 그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인 것 같은데요.”
상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앞장서라.”
“예, 그럼….”
노치은이 여전히 자라목을 하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 빠른 걸음은 아니지만, 유난히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다른 생도들에 비해 빠른 속도였다.
**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요?”
곡보옥이 매설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매설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좀 더 가야 해.”
“이러다 경내를 벗어나겠어요.”
“걱정 말고 따라와.”
매설란이 성큼성큼 앞질러 걸어갔다.
조금 전 세 번째 북 소리가 울렸다.
그렇다면 사비강이 말한 그때가 됐단 말이다.
사람은 점점 적어지는데, 매설란은 오히려 주위를 더욱 경계하고 있었다.
‘대체 왜 저러시지?’
조문탁 역시 뭔가 심상찮다고 여기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설란의 긴장감은 생도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교관으로서 생도들의 심리 상태를 편안하게 해줘야겠지만, 아무래도 생도들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그녀 역시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기척이다!’
매설란이 얼른 몸을 낮게 숙이고는 생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생도들이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그런데….
“어?”
능소소가 반색하며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닌가?
“소소! 왜 그러니?”
매설란이 얼른 주의를 주는데.
“교관님!”
능소소가 갑자기 소리치며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매설란이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
그녀가 얼른 능소소 뒤를 쫓는데, 마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암벽을 돌아 나왔다.
“아, 소소구나.”
다행히 사비강이 이끄는 적멸조였다.
그제야 매설란도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도대체 저 아이는 어떻게 저렇게 정확히 기척을 감지하는 거지?’
정령에 대해 알 리가 없는 매설란은 그저 능소소가 신기할 뿐이었다.
적어도 기척을 감지해내는 능력만큼은 절정 고수의 수준이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정령의 속삭임을 듣는 소소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사비강이 매설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잘 왔군.”
“몇 번 위기가 있었지만, 다들 잘 해주었어요.”
“수고했소.”
“저보단 아이들이 수고했죠.”
그러는 사이 당이협이 나타나 귀갑조 생도들에게도 진짜 무기를 건네주었다.
“교관님, 이게 다 뭡니까?”
조문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몇몇 생도들은 이미 진검 등을 들고 있는 적멸조 생도들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적멸조도 사정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
마침내 사비강이 특목반 생도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실전을 치른다.”
“실전이라고요?”
“그래. 너희들이 연무기행 때부터 그토록 원했던 실전이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설마 다른 반을 상대로 진짜 칼을 쓰라는….”
“너희들 상대는 생도들이 아니다. 사파의 무인들이다.”
“사파의 무인이라고요?”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건 훈련 사항이 아니다. 모두 실제 상황이다. 그러니 잘 듣고 따를 수 있도록 한다. 오늘이 바로 너희들의 첫 실전이 될 테니까.”
생도들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
상필지는 달렸다.
그 뒤로 낭아반 생도들이 바짝 따라붙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어두워지면 적을 찾아내기가 더 까다로워질 테다.
그 전에 찾아내기 위해서 부득이 상필지가 먼저 앞장을 선 것이다.
‘저긴가?’
암벽 모퉁이 너머에서 희미한 기운이 느껴진다.
희미하지만 확실히 강한 기운이다.
그리고 이 느낌.
‘틀림없이 사비강이다.’
다른 무인과 비교하면 뭔가 이질적인 이 기감.
상필지가 멈추자, 그 뒤로 낭아반 생도들이 속속 도착했다.
“저 모퉁이를 돌면 특목반이다. 각자 맡은 임무를 잘 해내도록.”
“물론입니다. 흐히히히.”
요굉이 히죽 웃으며 비수를 핥았다.
조미미가 연검에 색소를 묻히며 피식 웃었다.
“정말이지, 넌 미친 놈 같아.”
“흐히히. 칭찬으로 들을게.”
요굉이 말하자, 노치은이 맥 빠진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건 칭찬이 아냐.”
“어쨌든! 가자고! 흐히히!”
요굉이 들뜬 표정으로 바닥을 박찼다.
낭아반 생도들이 우루루 그 뒤를 따라서 모퉁이를 돌아나갔다.
그런데….
“어라…?”
신나게 달려가던 요굉이 우뚝 멈췄다.
사비강을 비롯한 특목반은 틀림없이 그곳에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정확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놀라운 건 그 때문이 아니다.
“얘, 얘들은… 확실히 나보다 더 미쳤나본데?”
요굉이 퀭한 눈으로 특목반 생도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조미미 역시 급하게 멈춰 서서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요굉이 그녀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얘들은… 우리보다 더 한 거 아니냐?”
특목반 생도 모두가 진검을 비롯한 살상용 병장기를 들고 있는 게 아닌가?
요굉이 자신의 손에 들린 연습용 비수를 내려다보았다.
마침 염자량이 한 걸음 나서며 눈살을 찌푸렸다.
“너희들은 뭐냐?”
“그건… 반칙인데….”
요굉이 머리를 긁적였다.
설마하니 특목반이 진검을 들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마침 그의 뒤에서 상필지가 걸어 나왔다.
“이건 무슨 상황이오? 사 교관.”
“사파 녀석들을 좀 사냥하려고 하오.”
상필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지. 그보단… 지금으로선 그쪽이 사파처럼 보이오만.”
“으에? 너희들 사파였어?”
요굉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상필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닥치고 빠져라. 요굉.”
“아, 네… 뭐.”
요굉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어깨를 움츠렸다.
상필지가 날카롭게 찢어진 눈으로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이럴 속셈이었나? 사비강.”
“흐음. 아무래도 오해하는 모양인데….”
“조직대항전에서 생도들에게까지 진짜 무기를 들게 하고 오해라?”
“그러니까 사파를 상대하려고….”
“네가 배신자가 아니라는 증거는?”
그때였다.
사비강과 상필지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숲속에서 빠른 속도로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마침내 숲을 뚫고 튀어나온 사람은 바로 천세명이었다.
팟, 쿠당탕탕!
바닥을 디딘 천세명이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온몸이 상처로 가득한데다 얼굴은 피범벅이었다.
“천 부장…?”
상필지가 미간을 구기고는 그를 보았다.
천세명이 비틀거리며 몸을 추슬렀다.
“크헉, 헉, 헉! 배신자… 배신자를… 알아냈습니다.”
상필지가 이맛살을 슬쩍 구겼다.
“누구요?”
“언….”
쒸에에에엑!
푹!
“커억!”
숲을 뚫고 날아든 화살이 그대로 천세명의 옆구리를 뚫었다.
“천 부장!”
상필지가 얼른 달려가 쓰러지는 천세명을 부축했다.
천세명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듯 말했다.
“…벽. 언벽이… 정파를 배신….”
“언벽…!”
언벽은 일년생 궁법 교관이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상필지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사비강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배신자가 밝혀진 모양이오.”
상필지가 올려다보자, 사비강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무천이 이번에도 커다란 관을 어깨에 짊어지고 내려섰다.
사비강이 손을 한 차례 휘젓자 관 덮개가 휙 날아갔다.
“혹시 몰라 여분을 마련해 두었소. 생도들에게 나눠 주면 도움이 될 거요.”
역시나 관 속에는 살상용 병장기가 가득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