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78화 (78/670)

# 78

귀환 마교관

78화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렸다.

수위무사들에게 이끌려 걸음을 옮기는 생도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침울했다.

그 모습을 보던 언벽이 혀를 끌끌 찼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빨리 끝나겠군요.”

“항상 그래왔지. 해마다 조직대항전이 끝나는 시기가 짧아졌으니.”

“역시 기재들의 활약 때문일까요?”

“애석하지만, 그 반대요.”

“반대라 하심은….”

“해가 갈수록 생도들의 수준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말이오.”

“허어… 그렇다면 참 문제로군요.”

“어쩔 수 없지. 평화가 지속되니 다들 나약해졌소.”

언벽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 또한 우리 정도 문파들이 평화 유지를 잘 해주고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대로 발전이 없다면 언젠간 깨지고 말 평화요.”

“그러고 보니, 옛날이 좀 그립군요.”

언벽이 회상을 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마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은 그 잔당들을 휩쓰느라 곳곳에서 투쟁이 벌어지곤 했다.

그때 젊은 언벽은 정도맹 소속 무인으로서 전장에 투입되곤 했다.

천세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목적이 있었던 삶이었지.”

“어쩌면 이 지루함은 그 목적을 상실해서 그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후후. 그럴지도.”

천세명이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사비강 교관에게 이리도 집착하는 건지 모른다.

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일환으로 말이다.

마침 사망 판정을 받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생도를 그가 불러 세웠다.

“혹시 특목반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느냐?”

“으음. 저희들과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런가?”

천세명이 다소 실망한 투로 고개를 끄덕이자, 생도는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난 것인지 걸음을 멈추고 천세명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화룡반 생도들을 만났습니다.”

“화룡반? 거긴 등 교관이 맡은….”

“예, 등부형 교관님도 봤습니다. 사망 판정을 받아 숲을 나가시는 길이었지요.”

“등 교관이 사망 판정을?”

“예, 특목반과 조우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이 어디라더냐?”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동쪽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간 곳으로 압니다.”

“그렇군. 잘 알았다.”

생도가 다시 허리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언벽이 천세명 곁으로 다가왔다.

“동쪽이라… 조금 이상하군요. 매설란 교관이 필생조(必生組)를 이끌고, 사비강 교관이 공격조를 이끌 텐데… 그리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는지….”

“뭐가 됐든 그가 있는 곳으로 갈 수밖에. 우리가 함께 다니는 이유가 그 때문 아니겠소?”

천세명이 눈을 빛내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언벽이 그런 천세명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곧 뒤따랐다.

**

“이여업!”

기합성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바위 뒤에서 그림자 하나가 덮쳐 왔다.

하지만.

쒜에에엑! 퍽!

“커억!”

당한 쪽은 그림자였다.

“아으으윽!”

쓰러진 생도가 가슴을 쥐고 신음을 흘렸다.

왼쪽 가슴.

즉 심장에 화살이 박혔으니 사망 판정이다.

“쩝.”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던 염자량이 혀를 차며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이거야 원. 단리정이 다 해버리니 할 게 너무 없어요.”

그 말을 수긍하듯 연우경과 목단화를 비롯한 다른 생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단리정은 언제나 한 박자 늦게 따라오고 있었다.

그를 호위하는 민유향과 백미령도 마찬가지.

그러다 보니 앞서 이동하는 적멸조에게 위기가 닥치면, 단리정은 거침없이 화살을 쏘곤 한 것이다.

연우경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아까부터 느꼈지만 사람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어.”

“너무 깊이 들어와서 그래.”

목단화가 대꾸했다.

염자량이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교관님, 이제 방향을 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계속 간다.”

“이대로 계속 말입니까? 더 들어가 봐야 사람들도 없다고요. 게다가 우리 목적은 생존이 아니라 적을 처리하는….”

“그러니까 들어가야 돼.”

“예?”

“적을 죽이기 위해서 들어가는 거다.”

사비강이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염자량을 비롯한 생도들은 사비강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담임 교관이 저리 확고하니 따를 수밖에.

마침 단리정도 적멸조 무리에 합류했다.

“교관님, 더 이상 가도 소용없을 것….”

그 역시 염자량과 같은 말을 꺼내는데.

슈슈슈슉! 슈슈슉!

마침 사비강 앞으로 백의를 입은 무인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염자량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경계까지 와버린 거야. 도대체 무슨 생각이시람?’

아마도 수위무사들이 돌아가라고 경고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리라.

그런데….

“오셨습니까?”

가장 앞장 선 수위무사가 고개를 깍듯이 숙이며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음?”

자세히 보니, 그는 바로 부담임인 당이협이었다.

사비강이 진중한 표정으로 그를 물끄러미 보더니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나?”

“최대한 수거해 두었습니다. 총 열다섯 개입니다.”

“열다섯 개라….”

사비강은 당이협이 내민 보를 풀어보았다.

그 안에는 심지가 꽂힌 폭약이 가득 들어 있었다.

“헉, 이게… 뭡니까?”

옆으로 다가온 염자량이 화들짝 놀라서 당이협을 바라보았다.

직접 본 적은 별로 없지만, 그것이 폭약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모형인가?’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사비강과 당이협의 표정이 사뭇 진중하다.

연우경도 옆으로 다가오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건… 진짜군요?”

“그래. 열화탄(熱火彈)이라는 거다. 과거 마교 녀석들이 개발한 것이지.”

“마교…!”

연우경은 물론 적멸조 생도들 모두 흠칫거리며 놀랐다.

“그, 그런 게 왜 이런 곳에…!”

염자량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이곳은 조직대항전을 펼치는 용자림이 아닌가?

그것도 용천관이 코앞인 장소다.

한데 마교에서나 사용했다는 열화탄이 어째서 여기에?

“이런 것도… 조직대항전에 포함된 겁니까?”

“아무래도 그럴 것 같군.”

“설마… 진짜는 아니죠?”

염자량이 입매를 씰룩이며 물었다.

하지만 사비강은 시종 딱딱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각별히 주의해라. 심지에 불이 붙으면 끌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피해라. 범위 안에 있으면 목숨은 보장할 수 없다.”

“교, 교관님? 장난치지 마세요. 이건 그냥 훈련이라고요. 조직대항전일 뿐이잖아요. 그저 생도들의 기량을 확인하고 실전 훈련을….”

“지금부터는 아니야.”

“그게 무슨…?”

사비강이 당이협에게 눈짓을 했다.

당이협이 곧 어깨 너머로 손짓을 했다.

잠시 후, 무천을 비롯한 당문의 수하 몇 명이 커다란 관을 들고 나타났다.

생도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사비강이 손을 한 차례 휘저었다.

그러자 관을 덮고 있던 덮개가 휙휙 날아가 버렸다.

“교관님? 이, 이건…!”

“각자 들어라.”

연습용이 아닌 진짜 검과 도였다.

물론 단리정의 탄월신궁도 들어 있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이걸로 진짜 생존 싸움을 시작한다.”

사비강의 말이 생도들의 귀에 천둥처럼 꽂혔다.

**

“정말 시시하군.”

천세명이 혀를 끌끌 찼다.

비룡반 생도들에 의해 몰살당한 이년생 봉화반(鳳化班) 생도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숲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해는 어느새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지금까지 이곳으로 오는 동안 비룡반을 힘들게 한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일년생 생도들은 물론, 이년생과 삼년생도 비룡반을 상대하진 못했다.

그만큼 비룡반 생도들의 무공 실력은 우수했다.

‘저 녀석들이 내 자부심이긴 하지.’

천세명은 조금 흐뭇한 표정으로 이비겸과 황기 등을 바라보았다.

누구에게나 타고난 재주 하나 쯤은 있는 법.

천세명에게 그 재주라면 바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있었다.

정작 본인은 초절정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가 지금껏 가르쳐 온 생도들은 모두 뛰어난 고수로 성장했다.

그들 중에는 초절정을 앞둔 고수도 있었다.

그런데….

‘감히 그 녀석이…!’

다시 지난 번 비무대회를 떠올리자 속이 아렸다.

‘어떻게든 사비강 그놈을 찾아내서 코를 납작하게 밟아 줘야 한다!’

천세명은 비룡반을 이끌고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 뒤를 언벽이 태극반(太極班) 생도들을 이끌며 따라갔다.

두 반이 연합 세력을 구축하니, 그야말로 무적이나 다름없는 상황.

한참을 이동하던 천세명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흐음. 더 들어가야 하는 건가?”

이미 용자림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더 이상 들어가도 사람이 보이지 않을 듯했다.

자칫하면 용천관 경내를 벗어날 수도 있었다.

뒤따라온 언벽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쪽은 아닌 듯합니다. 걸음을 돌리는 게 어떻습니까?”

“흐음.”

천세명이 턱을 쥐고 침음을 흘리자, 언벽이 쓴 웃음을 지었다.

“참 안타깝군요.”

“뭐가 말이오?”

“한때 강호를 종횡무진 하던 천 부장님이 삶의 목표를 잃고 이런 하찮은 일에 집착하시는 모습이 말입니다.”

“후후. 그렇게 보이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과거 같았으면 이런 장난 대신, 진짜 적과 칼을 겨누고 목숨을 걸지 않으셨겠습니까?”

“하긴, 그것에 비하면 확실히 장난이지. 시시한 장난.”

언벽이 지그시 미소를 그리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무슨 소리요?”

“진짜 적이 있던 그 시절 말입니다. 목숨을 걸고 강호를 누비며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적을 베던 그 시절.”

“훗, 난 언 교관께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의 정도맹이 무너진다면? 그럼 강호는 어찌 될까요?”

“그야… 혼란에 빠지겠지. 그리고 혈겁이 불겠지. 서로 강호를 차지하겠다고 말이오.”

“바로 그겁니다. 사라졌던 꿈이 생기고, 잊어버렸던 낭만이 되살아나고,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되겠지요.”

천세명이 멈칫하고는 돌아보았다.

그는 살짝 짜증 섞인 표정이었다.

그렇잖아도 사비강의 행방을 몰라 답답한데, 도대체 언벽은 아까부터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건가?

“도대체 언 교관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언벽이 가만히 웃었다.

그의 등 뒤로 노을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 아스라이 북소리가 울렸다.

둥! 둥! 둥! 둥…!

“세 번째 북소리가 울렸군요. 결전의 때가 되었습니다.”

“뭐, 이제 삼 할의 생도들만 남았으니 지금부터 치열한 싸움이 되겠지.”

하지만 언벽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 치열한 싸움, 진짜로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천 부장님이라면 저와 뜻이 맞을 거라고 봅니다만.”

“뭐요?”

어느새 언벽의 양손에 뭔가가 들려 있었다.

천세명이 이맛살을 구겼다.

‘비수?’

검게 칠해진 그것은 분명 비수였다.

그것도 연습용이 아닌 진짜.

찰나.

쒸익! 쒸익! 쒸이익! 쒸이익!

언벽의 손에서 네 자루의 비수가 빛살처럼 날아갔다.

퍽! 퍽! 퍼벅!

“컥!”

“크억!”

순식간에 네 명의 생도가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생도들은 물론 천세명조차 어찌 된 일인지 몰라 눈을 부릅떴다.

그가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고는 쓰러진 네 명의 생도를 돌아보았다.

“으아악! 피! 피다!”

“꺄악! 진짜로 죽었어!”

생도들이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 흩어졌다.

천세명은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비겸… 황기… 예설영, 상초진!”

그가 쓰러진 생도들을 하나하나 불렀다.

겨우 발을 떼고 달려가 보니, 네 사람 모두 급소에 비수를 맞고 절명한 상태였다.

천세명의 이마에 핏발이 섰다.

“이,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언 교관!”

“사사로운 정으로 대의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오늘 거사를 위해 저와 손잡읍시다. 천 교관.”

“그게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 내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천세명이 일갈을 터뜨리며 도를 뽑아 들었다.

언벽이 픽,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그대는 그래도 우리 쪽에 더 가까울 줄 알았는데… 아쉽군.”

“뭣이?”

“그 선택에 후회가 없길 바라지.”

언벽이 허리춤에 패용하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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